한국현대시

한국현대시와 시조 1수

임기종 2016. 5. 19.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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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막(酒幕)에서      - 김용호(金容浩)


 


어디든 멀찌감치 통한다는


길 옆


주막



수없이 입술이 닿은


이 빠진 낡은 사발에


나도 입술을 댄다.


흡사


정처럼 옮아 오는


막걸리 맛


여기


대대로 슬픈 노정(路程)이 집산(集散)하고


알맞은 자리, 저만치


위엄 있는 송덕비(頌德碑) 위로


맵고도 쓴 시간이 흘러가고…….


세월이여!


소금보다 짜다는


인생을 안주하여


주막을 나서면,


노을 비낀 길은


가없이 길고 가늘더라만,


내 입술이 닿은 그런 사발에


누가 또한 닿으랴


이런 무렵에.


 


(시집 {날개},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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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엉이 사랑노래/박 헌 오



 


눈이 맑아 넘치는 빛


하지감자 꽈리 불며


만산이 들썩이도록 사랑노래 부르다가


꽃반지 이슬 젖는 삼경 길을 밝혀 펴는 날개



달빛 내리는 장독대


정화수 밝힌 기도


무릎에 박힌 군살 가슴 줄 매는 누대(累代)


먼 산에 노래가 되어 귀 울음을 잦는구나.



 


피나도록 때 절은 손


어루만지는 모닥불 곁


묻어둔 뼈저린 말씀 하염없는 연기되어


별들이 한없이 깊은 하늘에 새겨놓은 푯말이여



 


별이 뜨는 시간에


부엉이 또 부르는 소리


바람의 여울 따라가면 그리움만 출렁이는 숲


어둠도 맑게 금가는 궁전 고운 영혼 문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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