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현대시

한국현대시와 시조 1수

임기종 2016. 7. 18. 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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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무(農舞) - 신경림(申庚林)

 

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

오동나무에 전등이 매어 달린 가설 무대

구경꾼이 돌아가고 난 텅 빈 운동장

우리는 분이 얼룩진 얼굴로

학교 앞 소줏집에 몰려 술을 마신다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

꽹과리를 앞장세워 장거리로 나서면

따라붙어 악을 쓰는 조무래기들뿐

처녀애들은 기름집 담벼락에 붙어 서서

철없이 킬킬대는구나

보름달은 밝아 어떤 녀석은

꺽정*이처럼 울부짖고 또 어떤 녀석은

서림*이처럼 해해대지만 이까짓

산 구석에 처박혀 발버둥친들 무엇하랴

비료 값도 안 나오는 농사 따위야

아예 여편네에게나 맡겨 두고

쇠전*을 거쳐 도수장* 앞에 와 돌 때

우리는 점점 신명이 난다.

한 다리를 들고 날라리를 불꺼나.

고갯짓을 하고 어깨를 흔들꺼나.

 

* 꺽정이서림이 : 홍명희의 소설 <임꺽정>에 나오는 인물.

* 쇠전 : 우시장(牛市場). 소를 파는 시장.

* 도수장 : 도살장. 짐승을 잡는 곳.

 

({창작과 비평} 가을호, 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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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어머니/우 제 선

 

다소곳 옷깃 여며 어둠을 가르시고

바람 잔 정화수에 지는 달을 건져 담아

우러러 북두칠성에 무탈 비신 단심이여.

 

옥비녀 검은 머리 받쳐 입은 무명치마

새하얀 날개 접고 날아든 학이어라

몸가짐 사는 슬기를 눈빛으로 전하셨네.

 

가파른 보릿고개 바느질로 넘기시고

얼룩진 고된 여정 눈물로 꽃피우며

밤 새워 베틀 위에서 세월 짜던 손끝이여.

 

비 구름 갖은 고뇌 남 몰래 삭히시며

해맑은 웃음으로 이르신 고운 숨결

오늘도 귓전에 감돌아 핏줄 속에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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