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사랑 노래 -신경림-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소리도 그려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 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가난한 사랑 노래>(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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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황사 별곡/문곡 서 공 식
신들메 풀어 놓고 세상의 끝에 서면
달마산 오백나한 해거름 빛을 담아
소나무 가장귀 사이 금물결로 떠오르고,
동백꽃 숭어리에 겉 잠든 저 바다는
결 고운 마름질로 아련하게 섬을 품어
뎅그렁 범종 소리에 귀를 씻고 선에 드네.
저미는 속내 열어 삼배하고 참선 들면
묵정밭에 코 없는 소 잡풀 뜯다 자릴 뜨고
삼천불 참 말씀들이 꽃비 되어 내려온다.
느릿한 초승달이 대웅전에 스며들고
법당 뜰 쓸던 바람 탑머리에 숨 고르면
빈자리 성긴 별꽃이 새뜻하게 꿈을 잦네.
밤으로 업장 터는 소쩍새 소리 따라
길찬 숲 휘휘 도는 산바람 뒤를 따라
버리고 떠나 가야할, 그래서 비워가는…
-<신서정> 2006.제29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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