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현대시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임기종 2016. 8. 25. 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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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랑 노래 -신경림-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소리도 그려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 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가난한 사랑 노래>(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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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황사 별곡/문곡 서 공 식

 

신들메 풀어 놓고 세상의 끝에 서면

달마산 오백나한 해거름 빛을 담아

소나무 가장귀 사이 금물결로 떠오르고,

 

동백꽃 숭어리에 겉 잠든 저 바다는

결 고운 마름질로 아련하게 섬을 품어

뎅그렁 범종 소리에 귀를 씻고 선에 드네.

 

저미는 속내 열어 삼배하고 참선 들면

묵정밭에 코 없는 소 잡풀 뜯다 자릴 뜨고

삼천불 참 말씀들이 꽃비 되어 내려온다.

 

느릿한 초승달이 대웅전에 스며들고

법당 뜰 쓸던 바람 탑머리에 숨 고르면

빈자리 성긴 별꽃이 새뜻하게 꿈을 잦네.

 

밤으로 업장 터는 소쩍새 소리 따라

길찬 숲 휘휘 도는 산바람 뒤를 따라

버리고 떠나 가야할, 그래서 비워가는

 

-<신서정> 20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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