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현대시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백수 정완영 선생님의 작품)

임기종 2016. 8. 31. 07:42
728x90



조국(祖國) - 정완영

 

행여나 다칠세라 너를 안고 줄 고르면

떨리는 열 손가락 마디마디 에인 사랑

손 닿자 애절히 우는 서러운 내 가얏고여.

 

둥기둥 줄이 울면 초가 삼간 달이 뜨고

흐느껴 목메이면 꽃잎도 떨리는데

푸른 물 흐르는 정에 눈물 비친 흰 옷자락

 

통곡도 다 못하여 하늘은 멍들어도

피맺힌 열두 줄은 굽이굽이 애정인데

청산아, 왜 말이 없이 학()처럼만 여위느냐.

 

 

호박꽃 바라보며 / 정완영

어머니 생각

 

분단장 모른 꽃이, 몸단장도 모른 꽃이,

한 여름 내도록을 뙤약볕에 타던 꽃이,

이 세상 젤 큰 열매 물려주고 갔습니다.

 

 

 

돌아온 뻐꾸기가

 

지난해 짓다가 만 집을 올해도 다 못 짓고

아까운 꽃 시절도 낙화시절도 보낸 채로

늘어진 여름 한 철을 또 맞고야 말았구나.

 

돌아온 뻐꾸기가 저도 보기 민망했던지

후박나무 이파리 같은 푸른 날의 목소리를

우리 집의 용마루 위에 업어다가 자꾸 보탠다.

 

그래도 봄은 오네

 

세상일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다지만

그래도 오는 봄을 막을 수야 없잖은가

찬바람 붕대를 푸는 꽃가지를 보더라도.

 

봄이 찾아왔다는데

 

경부선 고속열차 미역줄기 같은 바람

바람도 봄바람엔 철로길이 휜다는데

황악산 안 갈 수 있나 진초록이 핀다는데.

 

서울의 버들가지

 

서울의 버들가지는 몸 풀기가 그리 힘든다

목숨도 짐짝 같은 중량교 넘엇길에

상기도 어두운 가지를 드리우고 섰는 버들.

 

 

()과 바람

 

설사 진흙 바닥에 뿌리박고 산다 해도

우리들 얻은 백발도 연잎이라 생각하여

바람에 인경 소리를 실어 봄즉 하잖은가.

 

 

- 눈 내리는 밤

 

산과 들, 마을과 숲, 고목나무 가지까지

한 집안 식구 되어 한 이불 속 잠이 든다

한 밤 내 눈은 내리고 등불 혼자 타는 밤에

 

- 봄이 오고 있습니다

 

소리 소문도 없이 봄이 오고 있습니다.

하늘에 소복한 별 씨, 땅에는 숨 쉬는 꽃씨

새들도 이 마을 저 마을 등불 달러 다닙니다.

 

적막한 봄

산골짝 외딴집에 복사꽃 혼자 핀다

사람도 집 비우고 물소리도 골 비우고

구름도 제 풀에 지쳐 오도가도 못한다

 

봄날이 하도 고와 복사꽃 눈 멀겠다

저러다 저 꽃 지면 산도 골도 몸져눕고

꽃보다 어여쁜 적막을 누가 지고 갈 건가

 

 

- 을숙도

 

세월도 낙동강 따라 칠백 리 길 흘러와서

마지막 바다 가까운 하구에선 지쳤던가

을숙도 갈대밭 베고 질펀하게 누워있데.

 

그래서 목로주점엔 한낮에도 등을 달고

흔들리는 흰 술 한 잔을 落日 앞에 받아 놓으면

갈매기 울음소리가 술잔에 와 떨어지데.

 

백발이 갈대처럼 서걱이는 노사공도

강물만 강이 아니라 하루해도 강이라며

김해 벌 막막히 저무는 또 하나의 강을 보데.

 

-부자상(父子像)

 

사흘 와 계시다가 말없이 돌아가시는

아버님 모시 두루막 빛 바랜 흰 자락이

왠일로 제 가슴 속에 눈물로만 스밉니까.

 

어스름 짙어 오는 아버님 여일(餘日) 위에

꽃으로 비춰 드릴 제 마음 없사오며,

생각은 무지개 되어 고향길을 덮습니다.

 

손 내밀면 잡혀질 듯한 어릴 제 시절이온데

할아버님 닮아 가는 아버님의 모습 뒤에

저 또한 그 날 그 때의 아버님을 닮습니다.

 

 

-관악 봄

 

산은 늙었는데도 봄은 늘상 어린 걸까

숲 속에 들어서면 구슬 치는 산새소리

나무들 키 재는 소리도 내 귓속엔 들려온다.

 

-초봄

 

내가 입김을 불어 유리창을 닦아내면

새 한 마리 날아가며 하늘빛을 닦아낸다

내일은 목련 꽃도 찾아와 구름 빛도 닦으리

 

-분이네 살구나무

 

동네서

젤 작은 집

분이네 오막살이

 

동네서

젤 큰 나무

분이네 살구나무

 

밤 사이

활짝 펴올라

대궐보다 덩그렇다.

 


'한국현대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0) 2016.09.02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0) 2016.09.01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0) 2016.08.30
한국현대시와 시조 1수  (0) 2016.08.29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0) 2016.0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