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현대시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임기종 2016. 9. 1.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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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정 - 박목월 -


 


지상에는


아홉 켤레의 신발


아니 현관에는 아니 들깐에는


아니 어느 시인의 가정에는


알전등이 켜질 무렵을


문수가 다른 아홉 켤레의 신발을.


 


내 신발은


십 구문 반


눈과 얼음의 길을 걸어


그들 옆에 벗으면,


육문 삼의 코가 납짝한


귀염둥아 귀염둥아


우리 막내둥아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얼음과 눈으로 벽을 짜올린


여기는


지상


연민한 삶의 길이여


내 신발은 십구문 반.


 


아랫목에 모인


아홉 마리의 강아지야


강아지 같은 것들아


굴욕과 굶주림과 추운 길을 걸어


내가 왔다.


아버지가 왔다.


아니 십구문 반의 신발이 왔다.


아니 지상에는


아버지라는 어설픈 것이


존재한다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경상도의 가랑잎>(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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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날 / 김해석


 


비오는 날은 조용히


거울 앞에 앉아본다


 


엷은 분 은은한 향


연지도 살짝 발라


 


모처럼 평온한 마음


맑은 눈빛 훔친다.


 


부모님 따순 손길


끌어 안던 내 소우주


 


오색풍선 휘날리며


구름다리 건너뛰던


 


그 시절 주춧돌 딛고


나막신을 신어본다.


 


출전: 시조집<그 강물 나의 돛폭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