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현대시

잠언시와 시조 1수

임기종 2017. 10. 18. 0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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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셨을 때

-작자미상

 

내가 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셨을 때

난 당신이 내가 그린 최초의 그림을 냉장고에 붙여 놓는 걸 보았어요.

그래서 난 또 다른 그림을 그리고 싶었어요.

 

내가 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셨을 때

난 당신이 주인 없는 개를 보살펴 주는 걸 보았어요.

그래서 난 동물들을 잘 대해 주는 것이 좋은 일이란 걸 알았어요.

 

내가 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셨을 때

난 당신이 기도하는 소리를 들었어요.

그래서 난 신이 존재하며, 언제나 신과 대화할 수 있다는 걸 알았어요.

 

내가 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셨을 때

난 당신이 잠들어 있는 내게 입 맞추는 걸 보았어요.

난 내가 사랑받고 있다는 걸 알았어요.

 

내가 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셨을 때

난 당신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걸 보았어요.

그래서 난 때로는 인생이라는 것이 힘들며, 우는 것이 나쁜일이 아님을 알았어요.

 

내가 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셨을 때

난 당신이 날 염려하고 있는 걸 보았어요.

그래서 난 내가 원하는 모든 걸 꼭 이루고 싶어졌어요.

 

내가 보고 있지 않다고 당신이 생각하셨을 때

난 보고 있었어요.

그래서 내고 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셨을 때 내가 본 모든 것들에 대해

감사드리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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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감포 박 권 숙

 

슬픔을 들켜버린 노천 주막에 기댄 바다

한 생의 절반쯤은 썰물에 내어주고

바람에 뼈대를 쥐고 울음 참는 사내 같다.

 

목숨의 해안선을 다 돌아 나온 포구

해초 속보다 푸른 뒷모습 저리 환해

겨울도 감포에서는 쪽빛 물이 드는 갑다.

 

일어서기 위하여 먼저 무너지는 바다

몇 생을 더 건너야 저 울음 받아내고

소리와 빛을 다스린 빈 갯벌로 눕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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