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현대시

잠언시와 시조 1수

임기종 2017. 11. 27.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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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계획 -글레디 로울러(63)

 

난 인생의 계획을 세웠다.

청춘의 희망으로 가득한 새벽빛 속에서

난 오직 행복한 시간들만을 꿈꾸었다.

내 계획서엔

화창한 날들만 있었다.

내가 바라보는 수평선엔 구름 한 점 없었으며

폭풍은 신께서 미리 알려 주시리라 믿었다.

 

슬픔을 위한 자리는 존재하지 않았다.

내 계획서에다

난 그런 것들을 마련해 놓지 않았다.

고통과 상실의 아픔이

길 저 아래쪽에서 기다리고 있는걸

난 내다볼 수 없었다.

 

내 계획서는 오직 성공을 위한 것이었으며

어떤 수첩에도 실패를 위한 페이지는 없었다.

손실 같은 건 생각지도 않았다.

난 오직 얻을 것만 계획했다.

비록 예기치 않은 비가 뿌릴지라도

곧 무지개가 뜰 거라고 난 믿었다.

 

인생이 내 계획서대로 되지 않았을 때

난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난 크게 실망했다.

 

하지만 인생은 나를 위해 또다른 계획서를 써 놓았다.

현명하게도 그것은

나한테 자신의 존재를 알리지 않았다.

내가 경솔함을 깨닫고

더 많은 걸 배울 필요가 있을 때까지.

 

이제 인생의 저무는 황혼 속에 앉아

난 안다, 인생이 얼마나 지혜롭게

나를 위한 계획서를 만들었나를.

그리고 이제 난 안다.

그 또다른 계획서가

나에게는 최상의 것이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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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촌 소묘 리 인 성

 

담쟁이 넝쿨 덮인 돌담길을 돌아가니

산기슭에 숨어있는 정감어린 초가 한 채

앞마당 모서리에는 접시꽃이 웃고 섰다.

 

뒷걸에 감나무는 팔을 벌려 인사하고

상큼한 솔향기는 가슴으로 반기는데

골자기 졸졸 물소리는 모든 잡념 담아간다.

 

저만치 오솔길에 노송들이 총총한데

고풍스런 나무하나 긴 그림자 들고 와서

지붕에 깔아 놓으니 번뇌하나 못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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