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현대시

잠언시와 시조 1수

임기종 2017. 11. 28. 0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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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늙었을 때 -드류 레더

 

내가 늙었을 때 난 넥타이를 던져 버릴 거야.

양복도 벗어 던지고, 아침 여섯 시에 맞춰 놓은 시계도 꺼 버릴 거야.

아첨할 일도, 먹여 살릴 가족도, 화낼 일도 없을 거야.

 

더 이상 그런 일은 없을 거야.

내가 늙었을 때 난 들판으로 나가야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여기저기 돌아다닐 거야.

물가의 강아지풀도 건드려 보고

납작한 돌로 물수제비도 떠 봐야지.

소금쟁이들을 놀래키면서.

 

해질 무렵에는 서쪽으로 갈 거야.

노을이 내 딱딱해진 가슴을

수천 개의 반짝이는 조각들로 만드는 걸 느끼면서.

넘어지기도 하고

제비꽃들과 함께 웃기도 할 거야.

그리고 귀 기울여 듣는 산들에게

내 노래를 들려 줄 거야.

하지만 지금부터 조금씩 연습해야 할지도 몰라.

나를 아는 사람들이 놀라지 않도록.

내가 늙어서 넥타이를 벗어 던졌을 때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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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김 종

 

살다보면 바람 맛이 참 좋은 날이 있다

솔숲으로 들었다가 한 줄기 밀려오는

찡하게 가슴 하나 뚫리는 푸르고 서늘한 맛.

 

살다보면 달빛 맛도 참 좋은 날이 있다

하늘 깊이 솟았다가 은가루로 부서지는

뼈 속속 맑음으로 넘치는 정갈하고 산뜻한 맛.

 

살다보면 소리 맛도 참 좋은 날이 있다

풀벌레 작은 울음도 그리움이 되고 마는

열리는 화엄의 별천지 그윽하고 은은한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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