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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만대장경에 숨어 있는 100가지 이야기

임기종 2014. 5. 13.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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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만대장경에 숨어 있는

100가지 이야기

     : 진현종

  판 사 : 혜음

출판 년도 : 1997

 

   

 

 

 

 

 

 

 

 

 

 

 

 

 

 

 

 

추천의 글

  효봉 스님의 우뚝한 혜안에 수많은 사람들이 스님을 찾아와 시시비비의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스님이 조용히 말씀 하셨다.

 "너나 잘해라."  "..."

  부처님께서 이 사바세계에 계실 때에도 그러한 풍조가  전혀 없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그러나 부처님이 계시지 않는 이 시대에 우리가 의지해야 할 곳은 오직 부처님의 가르침뿐이다부처님의 원력은 자비무량이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자비의 방편으로 팔만사천의  법문을 설하였다. 중생 개개인의 마음씀씀이가 다르고 생각과 개인의 업이 다 달랐기 때문이다부처님의 가르침이 팔만사천의 법문으로 그대로 담겨  있는 팔만대장경은 우리 불교문화의 정수이다. 거기에는 이천 년을 우리 민족과 함께 한 불교 문화의 체온이 살아 숨쉬고 있다.

  팔만대장경에 쏟아부은 우리 선조들의 정성은 요즈음  사람들로서는 상상하기조차 힘든 일이다. 대장경을 만드는 데에 들인 정성과 한치의 어긋남도 허용하지 않은 그 엄정한 자세는  가히 경탄할 만한 일이다. 글자 하나를 새길 때마다 절을 하였다고 하니 팔만대장경의 완벽함은 그들의 정성으로 탄생한 것이 아닐런가.

  그러나 팔만대장경의 귀중함에도 불구하고 일반 대중들은 그 참된 소중함을 이해하고 같이 누리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무엇보다도 팔만대장경의 양 자체가 방대해서 쉽게 접근할  엄두가 나지 않고, 한문으로 씌어져 더욱 어렵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우리 중생들을 고의 바다에서 깨달음의 광명천지로 이끌어가는 부처님의 지혜가 이렇게 묵혀져 있는 것이 못내 안타까운 터였다.

  이에 <팔만대장경에 숨어 있는 108가지 이야기>를 시작으로 불교의 가르침을 '불전설화'를 통해 재조명하려는 뜻있는 작업이 시작됨을 알고 반가운 마음이 앞서지 않을 수 없었다. 불교설화는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이야기로 붓다의 말씀을 민중들에게 좀더 알기 쉽게 다가가게끔 하려는 노력의 소산이다. 근엄하게만 느껴졌던 고승들과 왕들, 그리고 온갖 인물군상이  등장하여 지혜로운 삶을 살기 위한 진리의 길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불교설화가 갖는 매력은 대단하다 할 수 있다이 책에 실린 이야기 하나하나는 바로 중생들을 깨우치기 위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좀더 쉽게 알리기 위해 씌어진 글이다. 마음을 닦고 진리의 깨우침을 얻기  위해 정진하는 중생들에게 이 책은 가장 줗은 안내서가 될 것이다. 여러분 가슴가슴에 부처님의 서광이 항상 함께 하실 것을 믿으며, 이 책이 일체 중생의 마음의 안식처가 되기를 간절히 발원한다.   불기 25411027일 통도사 청하 합장

 

    서문에 대신해서

  아마도 팔만대장경이 합천 해인사에 소장되어 있는 우리 민족의 소중한 보물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1995  유엔 교육과학문화기구인 유네스코에서 팔만대장경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이래 팔만대장경은 다시 전 국민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그러나 그토록 잘 알려진 팔만대장경이 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가를 분명히 알고있는 사람은 드물다. 또 알고 있다 해도 그저 700년에 걸친 완벽한 보존의 신비와 정교한 목판활자  그리고 편제의 우수성 등을 언급하는 것으로 그치기 일쑤이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바로 팔만대장경이 담고 있는  내용이다. 그것은 불교사 2,500년의 결집체이자 인간 사고의 모든 가능성과 깨달음의 영역을 보여주고 있는 한 편의 파노라마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아쉬운 점은, 이 파노라마의 자막이 고전 중국어 즉 한문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대중성을 쉽게 확보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물론 근래에는 팔만대장경에  속해 있는 거의 모든 경전들이 한글로 번역되어 그 아쉬움을 어느 정도 달래주고는  있지만 그 방대한 양으로 말미암아 또  다른 장애물이 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한민족의 보물인 팔만대장경은 민족의 성원에도 불구하고 그 전모를 한 눈에 보여줄 수 없었다.

  필자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팔만대장경에  관심을 가져왔다. 한마디로 말해서  그것이 왜 보물이고 또 어떤 보물인지가 궁금했던 것이다. 물론 국내 출판게에는 팔만대장경을 소개하고있는 책자가 몇몇 있었으나 지나치게 축약된 개론서 형태나 장황한 선집의 형태를 띠고 있어  필자의 정서에는 거부감을 느끼게 하였다.

  이에 나름대로 여러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며 고민한 결과가 바로 올해  부처님 오신 날을 즈음해서 출간한 <한 권으로 읽는 팔만대장경>이다. 팔만대장경이 담고 있는 내용을 일반인들이 보다 쉽게 한눈에 파악할 수있게 한다는 기획 의도는 적지않은 독자들의 호응을 얻을 수 있었고, 또 이러한 호응은 팔만대장경의 실체를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을 반증해주는 것이었다. 팔만대장경이라는 거대한 지혜의 바다를 헤쳐나가는 데 필요한 나침반과 지도를 바라던 독자들에게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었으리라 여긴다그러나 나침반과 지도가 있다고 해서 누구나 다 보물섬을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난해하고 심오한 불교사상이 항해를 방해하는 암초와 같아서 여러 독자들을 지레 겁먹게 하거나 주눅 들게 해서 더 이상의 전진을 포기하도록 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불교는 역시 어려운 종교라든지 불교사상은 너무 심오해서 일반인은 범접할 수 없다는 고정관념을 갖게 하였다.

  대부분의 경전들은 목숨을 건 구도행각을 벌이는 출가자, 즉 스님들이 중심이 되어 결집하고 또 전승해온 것이기 때문에 속세의 범부들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측면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팔만대장경의 주연이라고 할 수 있는 석가모니 붓다는 출가자들을 위한 어려운  이야기만을 고집한 분은 아니었다. 그것은 당시 붓다가 설법을 할 때 지식인들의 공통어인 산스크리트 어를 사용하지 않고 일반 대중들이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마가다국의 속어를 썼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다. 즉 붓다는 쉬운 말로 재미있는 이야기와 비유를 통해 모든 이들을 깨달음의 세계로 인도하는 것에  보다 관심이 많았다는 것이다. 실로 팔만대장경 곳곳에는 그러한 이야기가 많이 숨어 있다. 그러나 붓다는 단순히 웃자고 그러한 이야기를 했던 것은 아니다. 그 이야기 속에는 웃음을  통해 모든 이를 피안의 세계에 도달하게 하려는 번뜩이는 지혜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위의 작업을 진행하는 동안 재미있는 설화 형식의 이야기와 비유 등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들을 불교가 난해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해  쓸 작정을 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마침 <팔만대장경에 숨어 있는 108가지 이야기>를 엮음으로써 생각보다 빨리 독자들에게 선을 보이게 된 것이다팔만대장경 속에 들어 있는 모든 설화나 비유들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이것을 모두 엮는다면 그것만으로도 수십 권의 전집을 만들 수 있고 또 실제로  그런 전집이 몇 종류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불교의 설화 및 비유 문학의 3대 대작이라고 하는 <현우경>, <찬집백연경>, <잡보장경> 등 설화 형식으로 된 이야기들만을 독립적으로 모아놓은 적지않은 경전들이 있다필자는 이 책을 엮음에 있어 앞서 말한 유명 경전들을 집중적으로 소개하기보다는 팔만대장경 곳곳에 숨어있는 설화나 비유 중에서 그 재미나 주제성에 있어서 가장 완성도가 높다고 생각되는 108가지 이야기만을 추려냈다. 이러한 결과로 40여 개가 넘는 경전들이 이 책의 출전이 되고  있다. 이 책을 통해 다양한 형식의 설화나 비유를 될 수 있는대로 많은 경전들에 근거해서 보여주고 싶었다40여 개의 경전에서 뽑은 108가지의 이야기가 과연 팔만대장경 속에 숨어  있는 설화나 비유의 모든 것을 보여줄 수 있는지는 필자로서도 자신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이야기들을 읽어가노라면 이솝이야기나 아라비안나이트 심지어 우리 민족 고유 전래 동화라고 하는 것들이 대부분  불경 속에 있음을 보고 놀라는 독자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또한 독자들은 때론 진지한 감동을 주고 때론 배꼽을 잡고 웃을 정도의 재미를 주는 108가지의 이야기를 통해 깨달음으로 향하는 지혜의 편린을 조금이라도 맛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필자는 이 책을 엮으면서 지나치게 원문을 의식하지는 않았다. 도리어 현대의 독자들이 쉽게 읽을 수 있어야 한다는 점에 역점을 두고 본래의 취지를 잃지 않는 선에서 가필정정을 했음을 밝혀둔다끝으로 항상 필자의 불교 연구 작업을 후원해주시는 부천 서왕사의 영담 스님께 감사를 드린다. 스님은 근래 불교식 장례문화를 실험하시느라 무척 바쁜 와중에서도 이 책을 엮는 데 많은 도움을 주셨으니 이로써 필자는 두 번째 큰 빚을 진 셈이다그리고 추천사를 써주신 통도사의 청하 스님에게도 감사를드린다. 또한 무엇보다도 팔만대장경에  애정을 가지고 그것을 또  다른 새로운 형식으로 출간해보고자 노력을 기울인 도서출판 혜윰의 백운용 사장님께도 깊은 사의를 표한다아무쪼록 이 자그마한 책이 많은 독자들로 하여금 민족의 보물 팔만대장경을  보다 친숙하게 대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기 바라며 '팔만대장경에 새 생명을'이라는 캠페인 아래 20세기를 마감하는 대불사인 팔만대장경 전산화 작업에 힘쓰시는 관계자 여러분과 동참하신 모든 분들에게 부처님의 가피력이 항상 함께 하시기를 바라마지 않는다정축년 11. 15. 진현종

 

 

      1장 이것은 괴로움이다

    첫 번째 이야기-노인의 지혜

  아주 오랜 옛날 기로국이라는 나라가 있었다. 그런데 그 나라 법은 사람이 늙으면 멀리 내다버리도록 규정되어 있었다그 나라에는 효심이 깊은 한 대신이 있었다. 그의 아버지도  늙게 되자 어쩔 수 없이 국법에 따라 멀리 내다버려질 처지에 놓였다. 그러나 그 대신은 감히  아버지를 내다버릴 수 없었기 때문에 땅굴을 파 밀실을 만든 다음 아버지를 그곳에 모셔놓고 계속해서 봉양했다그러던 어느 날 한 천신이 똑같이 생긴 뱀 두 마리를 들고 궁궐에 나타나 국왕에게 말했다.

  "이 뱀들의 암수를 구별할 수 있다면 내가 너희 나라를 잘 보살필 것이요, 그렇지 못하면 일주일 내에 너희 나라를 멸하리라."

  이 말을 들은 국왕은 너무나도 두려워 여러 신하들과 상의를 해보았지만 천신이 낸 문제에 답할 자가 아무도 없었다. 그러자 국왕은 방을 내걸어 그 문제를  맞출 수 있는 사람에게는 큰 상을 내리겠노라고 발표했다.

  효심이 지극한 그 대신은 집에 돌아와  밀실에 있는 아버지를 찾아 뵙고 나라에  생긴 커다란 우환을 전했다. 그러자 대신의 아버지가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그것을 구별하는 것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란다아주 가늘고 부드러운 실을 뱀 위에 올려놓으면 조급하게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이 수놈이고, 가만히 있는 것은 암놈이란다."

  대신이 아버지의 말을 그대로 천신에게 하자 천신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나 천신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문제를 냈다.

  "어떤 이가 잠들어 있는 이 중에서  깨어난 자요, 또 어떤 이가  깨어난 이 중에서 잠들어 있는 자인가?"

  이번에도 국왕과 여러 신하들은 이  질문에 답할 수 없었다. 그래서  대신은 집에 돌아가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버지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것은 학인을 두고 하는 말이다. 학인은 범부에 비하자면 깨어난 사람이지만, 아라한에 비하자면 잠들어 있는 사람이란다."

  이렇게 해서 대신은 천신이 낸 두 번째 문제에 답할 수 있었다그랬더니 천신은 커다란 코끼리를 몰고 와서는 말했다.

  "이 코끼리의 무게는 얼마인가?"

  국왕에서 일개 백성에 이르기까지 온 나라 사람들은  이 문제에 속수무책이었다. 그래서 대신은 다시 아버지에게 답을 구했다.

  "코끼리를 배에 태우고 배가 가라앉은 만큼 배 옆에 선을 그은 다음 코끼리를 내리게 한다. 그리고 코끼리 대신 돌을 실어 배가 처음에 그었던 선만큼 가라앉으면 그 돌들을 들어내서 돌들의 무게를 합산하면 될 것이다. 그러면 바로 그게 코끼리의 무게가 된단다."

  천신의 질문은 계속되었다.

  "내 손 안에 있는 한 줌의 물은 저 바다의 물보다 많다. 이 말 속에 깃든 뜻을 알겠느냐?"

  국왕은 방방곡곡에 이 문제에 답할 수 있는 자를 찾아보았지만 허사였다. 그래서 대신은 또 아버지에게 사정을 말할 수 밖에 없었고, 이런 대답을 듣게 되었다.

  "별로 어려운 얘기는 아니구나. 어떤 이가 깨끗한 마음으로 한 줌의 물을 부처님이나 부모 또는  가난한 이 내지 병든 이에게 보시한다면 그 공덕은 수만 년이 지나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바닷물이 많기는 하지만 한 사람의 목숨도 구할 수 없으니, 이렇게  따진다면 한 줌의 물이 저 바닷물보다 천만 배는 많다고 할 수 있지."

  대신의 답을 들은 천신은 그 자리에서 피골이 상접한 사람으로 변신한 채 물었다.

  "이 세상에 나보다 더 배고프고 빈궁한 자가 있는가?"

  이번에도 대신은 아버지의 말을 듣고 와서 이렇게 대답했다.

  "욕심 많고 성격이 못된 탓에 부처님의 바른 법을 믿지 않고, 부모와 스승을 공경하지 않는 자가 있다면, 그 자는 장차 내세에 아귀로 태어날  것입니다. 그래서 수만 년 동안 먹을  것이라곤 구경도 못하게 될 것이오. 태산만한 몸뚱아리에 뱃속은 커다란 계곡처럼 텅 비어 있고, 목구멍은 바늘구멍만큼 작고 송곳처럼 날카로운 머리카락이 온몸을 칭칭 감아  조금이라도 움직이려 하면 마치 온몸에서  불꽃이 튀는 듯한 고통을 받게 될 것이오. 이런 사람은 당신에 비한다면 천만 배는 더 배고프고 빈궁한 사람이 아니겠소?"

  대신이 문제를 맞추자 천신은 다시 한 사람의 죄수로 변신했다. 그는 수갑과 족쇄를 차고 목덜미에는 칼을 두르고 있었다. 또 방금 화형이라도 당한  듯 온몸에 불에 그을린 흔적이 있었다그 천신이 물었다.

  "세상에 나보다 더 고통스러운 사람이 있는가?"

  대신은 또 집에 돌아가 아버지에게 물었고 아버지는 이렇게 대답했다.

  "부모에게 불효하고 스승을 공경하지 않으며 또 주인을 배반하고 부처님을 비방한 자는 죽은 후 칼산 지옥에 떨어져 온몸이 갈갈이 찢기고, 화탕 지옥에 들어가 온몸이 마치 석탄처럼 벌겋게 타오를 것이며, 똥물에 빠져 기약없이 무수한 고난을 당할 것이다. 그러한  자가 받는 고통은 죄수에 비한다면 천만 배나 더한 것이지."

  그러자 이번에 천신은 화려한 옷을  걸치고 이 세상에서 비할 바  없이 아름다운 여인으로 변신했다. 그리고 이렇게 물었다.

  "세상에 나처럼 아름다운 이가 있을까?"

  이번에도 대신은 아버지의 조언에 따라 대답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부모에게 효성하며 가난한 이들을 위해 집을  보시하고 굴욕을 참아내며 계율에 의지하여 일신을 잘 지키는 사람은 내세에 천상에 태어나 당신보다  훨씬 아름다운 모습을 지니게 될 것이오. 그 모습에 비한다면 당신은 애꾸눈 원숭이에 불과하오."

  천신은 상하가 똑같이 생긴 각목을 꺼내들고 또 하나의 수수께끼를 냈다.

  "어느 쪽이 머리인가?"

  간단한 것 같으면서도 실로 대답하기 어려운 문제였다대신을 또 아버지의 도움을 요청해서 천신에게 답했다.

  "각목을 물에 담그면 뿌리 쪽은 물밑으로 가라앉을 것이요, 머리 쪽은 물 위에 뜰 것이오."

  또 천신은 똑같이 생긴 백마 두 마리를 끌고와서 물었다.

  "어느 쪽이 어미 말이고, 또 어느 쪽이 새끼 말인가?"

  역시 궁궐 안에는 대답할 이가 없었다. 대신은 아버지에게 조언을 들은 후 천신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풀을 먹여보면 될 것이오. 어미 말은 반드시 풀을 새끼 말 쪽으로 밀어줄 터이오."

  이렇게 해서 대신은 천신이 낸 문제를 모두 맞힐  수 있었다. 천신은 매우 기뻐하며 국왕에게 수많은 보물을 주면서 말했다.

  "너희 나라 사람들은 정말로 총명하구나이후로 내가 너희 나라를  도와 아무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리라."

  이 말을 들은 국왕은 기뻐서 어쩔 줄 몰라했다. 그리고 국왕은 그 대신에게 이렇게 물었다.

  "경이 천신의 문제에 대답한 것은 스스로 생각해낸 것이요, 아니면 다른 사람이 가르쳐준 것이오? 어쨌든 경의 지혜 덕분에 우리 나라는 안녕을 누릴 수 있게 되었고, 또 많은 보물을 얻게 되었소. 이 일은 모두 경이 세운 공로라 할 수 있을 것이오."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저 스스로 생각해낸 것이 아닙니다. 제 죄를 용서해주신다면 감히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경이 세운 공로가 크니 설사 만 가지 죽을 죄를 저질렀다고 해도  용서할 생각이오. 그래, 어디 말해보시오."

  "우리 나라 법은 노인을 봉양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소신에게는 늙은 아버님이 계시는데 차마 내다버릴 수 없어서 국법을 무릅쓰고 땅굴에  아버님을 숨겨두고 봉양해왔습니다. 제가 천신의 물음에 답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제 아버님의  지혜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바로 아버님이 일러주신 대로 대답한 것입니다. 원컨대 대왕께서는 백성들로 하여금 노인을 봉양하게 하옵소서!"

  대신의 이야기를 들은 국왕은 매우 기뻐하며 대신의  아버지를 스승으로 삼았다. 그리고 국왕은 이렇게 포고령을 내렸다.

  "지금부터 절대로 노인을 버려서는 안 된다. 효순으로 노인을 봉양하고 그들이 편안한 만년을 보내도록 하라. 만일 부모에게 불효하고 노인을 버리며 스승을 공경하지 않는 자가 있다면 엄벌에 처하리라."  <잡보장경>

 

    두 번째이야기-하늘의 감동

  옛날에 한 국왕이 광활한 땅을 통치하고 있었다. 그에겐 모두 여섯 명의  왕자가 있었는데, 각각 그들에게 지역을 나누어 지키게 했다. 그때 라후구라는 대신이 있었는데, 그는 사람됨이 음험하고 야심 또한 대단했다. 대신은 갖가지 권모술수와 아첨을 통해 국왕의 신임을 얻었다그렇게 해서 암암리에 세력을 넓힌 라후구는 어느 날 반란을  일으켜 국왕과 다섯명의 왕자를 죽여버렸다마침 변방을 지키고 있던 막내 왕자는 수도에서 반란이 일어난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그러던 어느 날 막내 왕자가 집무실에서 일을 보다가  잠깐 잠이 들었는데, 한 귀신이 뛰어들어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라후구가 부왕과 당신의 다섯 형님을 모두 죽여버렸소. 이제 그는 당신의 목숨을 노리고 있소."

겁이 덜컥 난 왕자는 정신을 차린후 곧 집으로 돌아갔다. 왕자의 아내는 남편의 안색이 초췌한 것에 놀라 물었다.

  "어찌된 일입니까?"

  "남자의 일을 일개 부녀자에게 말할 수 없소이다."

  "저는 당신의 아내로 삶도 죽음도 함께 할 사람인데, 어찌 그리 무정한 말씀을 하십니까? 부디 숨기지 마시고 말씀해 주십시오."

  "글쎄, 잠이 들었는데 꿈에 한 귀신이 나타나서는  나라에 변이 생겨 부왕과 형님들이 모두 피살되고 이제는 내 차례라고 말하지 않겠소. 두렵고 겁이 나 어찌할 바를 모르겠소."

  "너무 심려하지 마세요. 당신이 요즘 일 때문에 과로하여 그런 꿈을 꾼 모양입니다."

  그때 한 병사가 황급히 뛰어들어와 알렸다.

  "보고드립니다. 일단의 군마가 이쪽으로 향하고 있다 하옵니다."

  왕자 부부는 꿈이 사실이었음을 알아차리고 즉시 다른  나라로 도망치기로 했다. 그들은 아이를 데리고 일주일치 양식을 짊어진 채 길을  떠났다. 양식은 이웃 나라까지 가는데  충분한 양이었으나, 마음이 급하고 경황이 없어 불행히 길을 잘못 들고 말았다. 그래서 십여 일이 지났건만 여전히 이웃 나라에 도착하지 못했다. 준비한 양식마저 떨어지자 굶주림에 지친 세 사람은 더 이상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었다. 이에 왕자는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생각했다.

  '이제 여기서 죽어야 하나보다. , 세 명이 모두 살 길이 없으니 한 사람을 죽여 두 사람이나마 살아보자.'

  생각 끝에 왕자는 아내를 죽이려고 검을 뽑아들었는데, 그 모습을 본 아이가 아버지를 향해 말했다.

  "제발 어머니를 죽이지 마세요. 차라리 저를 죽이세요."

  왕자는 자기 가족이 이렇게 처참한  지경에 빠진 것에 울컥 눈물이  치밀어 칼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러자 아이가 왕자 곁으로 와서 말했다.

  "아버지, 어머니 대신 저를 죽이세요. 그러나 목숨을 단번에 끊지는 마세요. 그렇게 되면 제 살이 금방 썩어 먹을 수 없게 됩니다. 차라리 매일 조금씩 베어먹다 보면 이웃 나라까지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왕자는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더 이상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자 눈물을 머금고 아이의 말대로 했다. 세 사람은 필사적으로 이웃나라를 향해 가다가  목이 마르면 길 옆에 있는 샘물에서  목을 축이고 배가 고프면 아이의 살점을 조금씩 베어 먹었다그렇게 며칠이 지났지만 아직 인가는 보이지  않았고 아이의 몸에는 살이 세 점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이때 아이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땅바닥에 쓰러진 채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아버지, 어머니. 저는 더 이상 움직일 수가 없으니  저를 버리고 가세요. 제 몸엔 이제 세 점의  살이 남아 있으니 두 점을 드시고 나머지 한 점은 저를 위해 남겨 주세요."

  왕자는 손을 부들부들 떨며 살점을 베어내고선 아이의 말대로 아내를 데리고 떠났다. 그때  제석천(제석천은 수미산의 꼭대기 도리천의 임금으로 사천왕과 32천을 통솔하며 불법과  불법에 귀의한 사람들을 보호하는 신이다)은 자기 궁전이 흔들리는 것을 느끼고 인간 세상을 내려다 보았다. 살점이라고는  거의 없는 한 아이가 풀밭에 버려져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그 아이의 지극한 효행 때문에 하늘이 감동한 것이었다. 이에 제석천은 한 마리 늑대로 변신하여 그 아이의 곁에 다가가서 말했다.

  "나는 배가 고파 죽겠다. 마음씨 좋은 아이야, 네 마지막 살점을 내게 주지않으련?"

  늑대의 말을 들은 아이가 생각했다.

  '나는 어차피 죽게 될 몸인데, 마지막 남은 살점을 저 늑대에게 줘서 늑대라도 살게 해야겠다.'  아이는 늑대에게 마지막 남은 살점을 주겠노라고 대답했다. 그런데도 늑대는 아이에게 달려들지 않았다. 그때 갑자기 땅이 진동하더니 늑대는 사라지고 한 사람이 나타나 말했다.

  "너는 네 몸의 살점을 부모에게 먹이고 이렇게 큰 고통을 받고 있으니 후회하지 않느냐?"

  "후회하지 않습니다."

  "난 믿지 못하겠다. 네 몸엔 피가 철철 흐르고 말로 다할 수 없는 고통을 받고 있는데, 어떻게 후회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이냐? 속으로는 분명히 후회하고 있을 것이다."

  이에 아이는 목소리를 높여 대답했다.

  "절대로 후회하지 않습니다. 하늘에 맹세하건대 후회하는 마음이 있으면 당장 이 자리에서 죽을 것이요, 그렇지 않다면 내 몸이 원래대로 회복될 것입니다."

  그 말을 듣자 그 사람은 소리내며 웃었다. 그러자  아이의 몸은 눈 깜짝할 사이에 원래대로 회복되었다. 그제서야 아이는 눈앞에 있는 사람이 제석천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제석천은 아이를 도와 그 부모를 다시 찾게 해주었다. 세 사람은 곧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하였다. 그 나라의 국왕은 왕자 식구들을 열렬하게 환영해 주었는데, 그 아이의 효행을 듣고 감탄하며 말했다.

  "이 아이의 효행은 그야말로 전대미문의 것이로구나!"

  그후 그 나라의 국왕은 왕자에게 군대를 빌려주었고, 왕자는 그 군대를 이끌고 본국으로 돌아가 라후구를 죽인 다음 나라를 되찾았다. 제석천의 도움으로 그 나라는 날로 강성해져 결국에는  염부제(염부제는 수미산을 중심으로 인간 세계를 동서남북 4주로 나눌 때 남주에 해당하는  곳으로 인도는 여기에 속한다)를 통일하였다.  <잡보장경>

 

    세 번째 이야기-물거품으로 만든 장신구

  옛날, 한 국왕에게 열댓 명의 왕자와 한 명의 공주가 있었다. 국왕은 공주를 특히 총애하여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곁에 있게 하였다. 그리고 공주가 갖고 싶다는 것은 무엇이든지 구해주었다그러던 어느 날 저녁 큰 비가 내려 빗물이 땅에  흥건히 고였다. 그 위에 빗물이 떨어지자 여러 모양의 물거품이 생겨났다. 물거품은 궁궐의 불빛을 받아 마치 휘황찬란한 보석처럼 보였다. 그 광경에 반한 공주가 국왕에게 말했다.

  "아버님, 저 물거품으로 장신구를 만들어 머리에 달면 정말 예쁘겠어요."

  국왕은 공주의 말을 듣고 웃으면서 대답했다.

  "얘야, 저 물거품은 손으로 잡을 수 없는 것인데, 어떻게 장신구를 만들 수 있겠느냐?"

  이에 공주가 말했다.

  "몰라요! 사람들을 시켜 만들어주시지 않으면, 죽어버리고 말 거예요."

  국왕은 공주의 성격을 잘 알고 있는 터라, 황급히 유명한 장인들을 불러모았다.

  "너희들은 솜씨가 매우 훌륭해서 만들지 못하는 것이 없다고 들었다. 지금 내 딸이 물거품으로 장신구를 만들어달라고 하니, 서둘러 만들도록 하라. 만일 만들어내지 못하면 죽은 목숨으로 생각하라!"

  장인들은 국왕의 말을 듣고 어처구니가 없는지라 서로  멍하니 얼굴만 쳐다보았다. 그리고 이내 물거품으로 장신구를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서둘러 말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한 늙은 장인이 나서서 충분히 만들어낼 수 있노라고 말했다국왕은 매우 기뻐하면서 그 사실을 공주에게 급히 전했다.

  "물거품으로 장신구를 만들 수 있다고 하는 사람이 있으니, 직접 와서 만나보도록 해라."

  그 소식을 들은 공주가 늙은 장인 앞에 나타나자, 그 늙은 장인은 공주에게 말했다.

  "공주님, 저는 하잘것없는 사람이라 아름다운 물거품을 분간해낼 수 없으니, 먼저 공주님께서 직접 물거품을 가지고 오시면 장신구를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그러자 공주는 물거품을 가지고 오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물거품은 손을 대기만 하면 이내 사라져버려 도저히 잡을 수가 없었다. 공주는  하루종일 애써보았지만 허리만 아플 뿐이었다지친 공주는 화를 내며 포기하고선 돌아서버렸다국왕은 공주가 돌아오는 모습을 보고 물었다.

  "그래, 물거품으로 만든 장신구가 완성되었느냐?"

  공주는 자기 볼을 치면서 대답했다.

  "전 물거품으로 만든 장신구 따위 필요없어요. 물거품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오랫동안 있는 것도 아니에요. 아버님께서 금으로 만든 장신구를 주신다면, 그것은 쉽게  부서지지 않을 테니 밤낮으로 머리에 꽂을 수 있을 거예요."  <출요경>

 

    네 번째 이야기-모두 다른 대답

  옛날 인도에 긴수라는 이름의 동물이  있었다. 그 동물의 모습을 무척  궁금해하던 한 남자는 긴수를 봤다고 하는 사람을 찾아가 물었다.

  "긴수를 아십니까?"

  "알죠."

  "어떻게 생겼습니까?"

  "화로의 받침 기둥처럼 생겼는데 온몸이 까만색이라오."

  대답한 이가 처음으로 긴수를 보았을 때 긴수는 까만색의  몸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그 남자는 그 대답에 만족할 수 없었다. 그는 다시 긴수를 봤다고 하는 또 다른 사람을 찾아갔다.

  "긴수를 본 적이 있습니까?"

  "있죠."

  "긴수는 어떻게 생긴 동물입니까?"

  "빨간색입니다. 그 모습은 마치 꽃이 활짝 폈을  때와 비슷해서 마치 고기를 자르는데 쓰는 도마처럼 평평하게 생겼습니다."

  이번에도 대답한 사람이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가  긴수를 봤을 때의 모습은 말한 그대로 빨간색 도마 같은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 남자는 믿음이  가질않아 긴수를 봤다고 하는 다른 사람을 찾아가 물었다.

  "듣자하니 긴수를 보셨다죠?"

  "그렇습니다."

  "긴수는 그 크기가 얼마나 됩니까?"

  "자귀나무의 열매만한 크기입니다."

  그 남자는 이 대답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긴수를 봤다고 하는 사람들을 찾아다녔다. 그러나 그 대답들은 모두 다른 것이었다. 긴수가  도대체 어떻게 생긴 동물인지 그  남자는 끝내 분명해 알 수 없었다.  <잡아함경>

 

    다섯 번째 이야기-원한 대 원한

  옛날 어느 집안에 한 딸아이가 태어났다. 그런데 그  아이는 열일곱이 되자 매우 화사한 용모를 가진 아리따운 처녀가 되었다. 노부부는 딸아이를 자신들의 목숨보다 귀중하게 여겼고딸아이 역시 일도 잘하고 성격도 쾌활해서 온 가족이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그녀는 어느 봄날 감기가 걸렸다. 노부부는 그저 지나가는 감기일 뿐이려니 하고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딸아이는 어렸을 적부터 웬만한 작은 병은 치료하지 않고도 나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사정이 달랐다. 회복할 기미가 보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병세는 갈수록 심해졌다.

  어느덧 낙엽 떨어지는 가을이 되자 노부부는 마음이  다급해졌다. 그들은 딸아이가 지는 낙엽처럼 세상을 떠나는 것이 아닌가해서 걱정이 태산 같았다노부부는 의원을 불러 진맥을 해보고 딸아이에게 약도  먹여보았지만 전혀 차도가 없었다. 이에 노부부는 용하다는 의원들을 모두 불러보았지만 허사였다. 딸아이의  병세는 날로 위중해져 몸이 마른 장작나무처럼 여위어갔다. 노부부는 입술이 바싹 탈 정도로 다급해졌으나 탄식하며 눈물만 흘릴 뿐 다른 방법이 없었다.

  온 집안 사람들이 거의 포기하려고 했을 때 어느 날 한 무당이 찾아와 자기는 귀신과 통하니 모든 액난을 소멸할 수 있다고 떠들어댔다. 노부부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무당에게 제발 딸아이의 목숨을 구해달라고 했다. 그리고 무당을 후하게 대접했다. 그러자  무당은 노부부에게 딸아이가 누워 있는 침상으로 안내해달라고 했다. 곧이어 그녀의  방으로 간 무당은 잠시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노부부가 무당 대신 침상의 휘장을 걷으려 하자 무당이 손을 저으며 말했다.

  "소용없는 일이오. 당신의 딸은 귀신에게 홀린 것이오. 이제 곧 죽을 것 같소."

  노부부는 무당의 말을 듣고 자리에 털썩 주저앉으며 눈물만 하염없이 흘렸다. 그리고 다시 불쌍한 딸아이를 살려달라고 무당에게 간절히 부탁했다. 이에 무당이 말했다.

  "내가 귀신과 말을 해보리다."

  무당이 눈을 감고 잠시 주문을 외자 귀신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무당은 그 귀신에게 물었다.

  "너는 무엇 때문에 이 여자에게 붙어 떠나지않느냐?"

  "이 여자는 전생의 오백세 동안 나를 죽여왔고, 나도 그 오백세 동안 이 여자를 죽였소. 우리 둘이 원한을 원한으로 갚는 일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소. 만일 이 여자가 다시는 원한을 갚기 위해 나를 죽이지 않겠다고 하면 나도 더 이상 이 여자를 죽일 마음이 없소. 당신이 내 말을 그녀에게 전해주시오."

  무당은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 여자에게 귀신의 말을 전했다. 그러자 그녀는 숨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다시는 앙심을 품지 않겠어요."

  무당은 그녀의 말을 귀신에게 전했지만 귀신은 쉽게  믿으려들지 않았다. 귀신이 자세히 그녀의 마음속을 살펴보자, 그녀가 아직 앙심을 버리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단지 지금 목숨을 잃을 것이 두려워 거짓말을 했던 것이다. 이에 귀신은 조금도 거리낌없이 그녀의 목숨을 끊어놓고 훌쩍 떠났다.  <아비달마대비바사론>

 

    여섯 번째 이야기-바닷가 사람들이 고동을 부는 이유

  히말라야 산 위에 한 호수가 있다. 그 호수는 영험하다고 소문이 나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소원을 빌곤 한다.

  전설에 따르면 이 호수 속에는 용왕이 살고 있었고, 그 호숫가에는 한 아라한(아라한은 보통 소승불교에서 최고의 깨달음을 얻은 이를 가리키는 말이다)이 살고 있었다 한다. 아라한은 평소 법술을  부려 호수 속의 용왕에게 자기를 공양하게끔 했다. 식사할 때가 되면 아라한은 깔고 앉아 있던 방석을 탄채 용왕이 사는 곳으로 날아갔다.

  그 아라한의 시봉을 들던 한 스님이 있었다. 그는  호기심이 많은 자라 방석 가장자리에 새끼줄을 달아 붙잡고선 아라한을 따라 용궁으로 갔다. 아라한은 뒤늦게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식사 시간이 되자 용왕은 천상의 음식으로 아라한을  접대하고, 스님에게는 사람들이 먹는 평범한 음식을 주었다. 아라한은 식사가 끝나자 용왕에게 여러 가지 설법을 해주었다. 스님은 평소처럼 스승인 아라한의 발우를 씻고 있었다. 그런데 그 발우 속에는 아라한이 먹다 남긴 음식이 조금 남아 있었다. 스님이 그 냄새를 한번 맡아보자 세상에 비할 데 없는  향긋한 향기가 코를 자극했다. 스님은 이런 맛난 음식을 대접하지 않은 용왕과 그 음식을 나눠주지도 않고  혼자 먹은 아라한에게 앙심을 품게 되었다. 그리고 주술을 써서 용왕을 죽이고 자기가 용왕이 되겠다는 맹세를 했다그날 저녁 스님은 아라한과 함께 호숫가로 돌아오자마자  용왕을 죽이려는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용왕은 갑자기 참을 수 없는 두통이 생겼다. 스님은 주문을  너무 열심히 외운 탓에 그만 그날 밤으로 목숨이 끊어져 곧이어 대룡으로 환생했다. 대룡은 즉시 호수 속의 용왕을 죽이고 용궁을 점거해버렸다. 그러고 나서 대룡은 스승이었던 아라한에게 보복하려고 했다대룡은 비바람을 일으켜 아라한이 살고있는 사원을 뒤집어버리려고 했다. 그때 그 사실을 알게 된 가니색가왕은 그 악룡을 물리치고자 아라한이 살고있는 사원에 백 척이 넘는 탑을 세우려고 했다. 그러나 한을 품은 악룡은 폭풍을 일으켜 탑을 여섯 번이나  무너뜨려버렸다. 왕은 크게 화를 내어 군사를 일으켜 호수를 메워버림으로써 악룡을 직접 징벌하고자했다.

  악룡은 자기가 살고 있는 호수가 메워지면 갈 곳이 없어지리라는 두려움  때문에 한 바라문으로 변신해서 왕을 찾아가 말했다.

  "대왕께서는 숙세에 많은 선업을 쌓으셨기에 그 복으로 지금 국왕이 되신 것입니다. 이 나라에는 감히 대왕을 거스르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일개 용과 싸우려 하십니까? 용은 그저 동물에 지나지않습니다. 그러나 그 힘은 막강하여 사람의 힘으로 이길 수 있다고 장담하기는 어렵습니다. 용은 하늘을 날 줄도 알고 잠수할 수도 있으나 사람은 그렇지  못합니다. 대왕께서 군사를 일으켜 설령 그 용을 이긴다해도 크게 득이 될 일이 없고, 만약 지기라도 하는 날에는 뭇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게 될 것입니다. 국왕을 위해서 드리는 말씀이니, 군사를 돌리십시오."

  그러나 가니색가왕은 그 말을 듣지 않고 계속해서 호수를  향해 진군해 갔다. 이에 악룡도 호수로 돌아갔다. 그리고 폭풍우를 일으켜 주먹만한 돌들을 병사들에게 날려보냈다. 천지가 밤처럼 어두워지고 뇌성벽력이 울리자 병사들은 겁을 먹었다. 가니색가왕은 군사들을 독려하며 부처님께 악룡을 이기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기도를 끝내자 가니색가왕의 양쪽 어깨에서  거대한 불기둥이 치솟아 악룡을 향해 날아갔다. 악룡은 불기둥을 견디지 못하고 물러갔다. 그러자 폭풍우가 그치고 다시 사방이 잠잠해졌다. 국왕은 병사들에게 명령해서 돌을 던져 호수를 메워버리게 했다악룡은 다시 바라문으로 변신해서 국왕에게 다가와 말했다.

  "제가 바로 저 호수에 살고 있는 용왕입니다. 저는 지금 국왕에게 항복하고자 하니 죄를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만일 국왕께서 저를 죽이신다면 또 다른 악연을 만드시는게 됩니다."

  가니색가왕은 용왕의 말을 들어주기로 하고 병사들에게  중지하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용왕의 다짐을 받아냈다. 이후에 다시 나쁜 짓을 한다면 다시는 용서받지 못하노라고. 그러자 용왕이 말했다.

  "용은 원래 성질이 흉악해서 종종 스스로도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대왕께서 탑을 세우고자 하시면 저는 다시는 방해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저의 나쁜 습성이  발동하는 것을 막기 위해 산 정상에 파수꾼을 배치하여 호수에 검은 구름이 감도는 모습을 보면 큰 소리로 고동을 불게 하십시오. 그러면 제가 그 소리를 듣고 왕과의 약속을 상기해서 스스로를 제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탑을 완성하게 된 가니색가왕은 산 정상에 파수꾼을 배치하여  호수에 이상한 일이 생기면 곧 고동을 불게 했다그때의 일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바닷가 사람들이 고동을 불게 된 것이라고 한다.  <대당서역기>

 

 

    일곱 번째 이야기-어쩔 수 없는 살인

  부처님이 하루는 제자들에게 살신하여 인명을 구한 한 고승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정광불(정광불은 연등불이라고도 하며 아주 오랜 옛날에 출현하여 석가모니에게 미래에 반드시 성불하여 수많은 중생을 제도하리라는 수기를  주신 부처님이다)이 이 세상에 출현했던  아주 먼 옛날 오백 명의 상인들이 보물을 찾아 바다로 나갔다. 그런데 그 상인들 중 한 사람은 다른 상인들이 보물을 캐내면 그후 모조리 죽여버리고 독차지하려는 악한 마음을 품고 있었다그 당시 '대애'라는 고승이 있었는데, 그는 지혜가  출중하고 덕이 높아 가히 사람과 하늘의 도사라고 불릴 만했다. 한번은 꿈에 해신이 나타나 대애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오백 명의 상인이 보물을 캐러 바다에 나갔는데, 그 중 간악한 한 사람이 동료들을 모두 죽이고 보물을 독차지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의 음모가 실현되면 그는 지옥에 떨어져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할 것입니다. 도사님께서 지혜를 써서 오백 명의 상인이  졸지에 비참하게 죽는 것을 막으신다면 그 간악한 자가 큰 죄를 지어 지옥에 떨어지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대애는 상황이 급박한 것을 알고 칠일 밤낮을  생각해보았으나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결국 이렇게 결정했다.

  '그 간악한 상인을 죽이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구나.'

  그러나 다른 상인들에게 그 사정을 알린다면 모두 격분해서 그를 쳐 죽일 게 당연했다. 그러면 그 상인들 역시 지옥에 떨어지는 일을 피할 수 없었다.

  '내가 직접 그를 죽인다면 살생의 업보로 수천 겁 동안 고난을 겪게 되겠지만, 오백 명의 상인들이 전부 죽는 일을 막을 수 있고, 또 그 간악한 상인이 지옥에 떨어지는 일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그가 끝내 지옥에 떨어진다면,   역시 그때는 지옥에 있을  터이므로 그에게 불법을 가르쳐 인과응보의 법칙을 깨닫게 하여 영원히 죄를 짓지 않고 고해에서 탈출할 수 있게 하리라.'

  생각을 마친 대애는 밤에 작은 배를 타고 오백 명의 상인이 타고 있는 커다란 배에 접근했다. 그리고 야음을 틈타 그 배에 올라 조용히 그 간악한 상인이 자고 있는 선실로 들어가 그를 죽여버렸다. 대애는 그 간악한 상인의 음모를 편지로  써서 책상 위에 남겨두었다. 그리고  그것을 보게될 상인들에게 나쁜 마음을 먹지 말고 재물 때문에 인명을 해치면 안 되니 서로 협조하여 무사히 고향으로 돌아가라는 말을 남겼다.

  아침이 되자 어떤 상인이 죽은  자 옆에 있던 편지를 발견하고선  동료들에게 알렸다. 사람들은 죽은 자가 근래 행동이 수상했었다는 사실을 그제서야 깨닫게 되었고, 자기들을 죽음에서 구해준 대애도사를 추모했다."

  부처님은 이 이야기를 들려주신 후 덧붙이셨다.

  "대애는 자비심에서 오백 명의 상인을 구하고자 방편을 써서 자기가 직접 살인을 한 것이니라. 그러나 대애는 비록 살인을 저지르기는 했지만 수명이 다한 후 지옥에 떨어지기는커녕, 오백 명의 상인들을 구한 공덕으로 제12광음천(광음천은 색계 제2선천 중의 제3이 하늘에 사는 중생은 음성이 없고  말할 때 빛을 내어 의사소통을 한다)에 태어나게 되었느니라.

  제자들아, 마땅히 알라. 그때의 대애가 바로 지금의 나이니라. 나는 그때 방편을 써서 뭇 상인의 생명을 구한 공덕으로 생사윤회의 고통을 넘어서게 된 것이다그때에 타고 있던 오백 명의 상인들은 바로 현겁 중에 출현한 오백 명의 부처님이시다."  <혜상보살문대선권경>

 

  여덟 번째 이야기-도의 이치

  부처님께서 사문(사문은 범어 'sramana'의 음역으로 출가자를 총칭하는 말이다. 불교 이외  외도의 출가자도 사문이라고 부른다)들에게 물었다.

  "사람의 목숨은 얼마 만큼의 시간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느냐?"

  한 사문이 대답했다.

  "며칠 사이에 달려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덧붙이셨다.

  "너는 아직 도를 모르는구나."

  이에 또 다른 사문이 말했다.

  "한끼 밥을 먹는 사이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너도 아직 도를 깨닫지 못했구나."

  그러자 마지막 사문이 말했다.

  "제 생각으론 사람의 목숨은 한 호흡 사이에 달려 있는 듯합니다."

  "정말로 그렇도다. 너야말로 도의 이치를 깨달았구나."  <사십이장경>

 

    아홉번째 이야기-자신의 시체를 때린 귀신

  옛날에 한 귀신이 사람으로 변해 한 시체를 부여잡고  채찍으로 때리고 있었다. 이를 본 이웃 사람이 그 사람에게 물었다.

  "이 사람은 이미 죽었는데, 당신은 무슨 원한을 졌길래 그렇게 몰인정하게 시체를 때리는 것이오?"

  "이 시체는 사실 나라오. 생전의 나는 항상 나쁜 짓을 일삼고 부처님의 정법을 믿지 않은 채 다른 사람의 물건을 훔치고, 사기를 치고, 부녀자를 겁탈했으며 부모형제에게 불순하고 재물에 인색해서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지 않았소. 그 결과 죽은 후 지옥에 떨어져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받게 되었단 말이오. 생전에 그렇게 악행을 많이 저질렀던 내 몸이 너무도 원망스러워서 이렇게 채찍으로 사정없이 두들겨 패고 있는 것이오."  <경율이상>

 

    열번째 이야기-스님을 쫓아다닌 여인

  부처님이 사위국 기원정사에 계실 때의 일이다. 그때 아난은 걸식을 하러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한여인이 우물에서 물을 긷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때마침 갈증이 나서 여인에게 물을 좀 달라고 했다. 그 여인은 아난을 처음 본 순간 첫눈에 반해버리고 말았다. 물을 주고  나서 아난의 뒤를 밟아 그가 살고 있는 곳을 알아두었다.

  그 일이 일어난 그날로 여인은 상사병으로 몸져 누워버렸다. 이에 어머니 마등은 딸에게 도대체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다.

  "어머니, 오늘 우물가에서 아난이라는 스님을 만났는데 저는 그분에게  시집가고 싶어요. 다른 사람에게는 절대로 시집가지 않겠어요."

  "아난은 스님이라고 했는데 어떻게 네 남편이 될 수 있단 말이냐?"

  그러나 딸은 계속 울기만 하다가 마침내 식음도 전폐했다. 그러자 마등은 주술을 사용해서 아난을 식사에 초대했다. 딸은 뛸 듯이 기뻐했다.

  식사를 마치자 마등은 아난에게 물었다.

  "제 딸년이 스님에게 시집가고자 하는데, 스님의 의향은 어떠신지요?"

  "저는 불제자로 계를 지키는 사람이라 결혼을 할 수 없습니다."

  "제 딸은 스님에게 시집가지 못하면 자살하고 말겠다니 이 일을 어찌하면 좋습니까?"

  "다시 말하지만 저는 불제자라 여인과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마등이 딸에게 가서 아난의 입장을 전하자 딸은 울면서 졸라댔다.

  "그럼 문을 닫아걸고 아난을 나가지 못하게 하세요. 밤이 되면 제 남편이 될 수도 있을 거예요."

  마등은 딸의 소원을 들어줘야 하겠기에 그녀의  말대로 문을 닫아걸고 주술을 써서  아난을 꼼짝하지 못하게 했다. 이윽고 저녁때가 되자 마등은 딸을 위해 신방을 차려주었다딸은 기뻐하며 몸치장을 했다. 그러나 아난은 절대로 신방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자 마등은 뜰에 불을 피워놓고 아난의 옷을 끌어 당기며 협박했다.

  "당신이 끝내 내 딸년의 소청을 들어주지 않겠다면, 당신을 저 불속에 집어던질 수밖에 없습니다."

  아난은 그때부터 부처님께 기원하기 시작했다. 부처님은 곧 아난이 처한 위기를 파악하시고 신통력을 써서 아난을 구출해냈다. 아난은 부처님에게 전후사정을 자세히 알려드렸다.

  아난이 탈출한 사실을 알게 된 마등의 딸이 다시 울어대자 마등이 말했다.

  "그는 불제자라 나의 주술로도 어쩔 수가 없구나."

  마등의 딸은 계속 아난만 생각하다가  급기야 아난의 뒤를 졸졸 따라  다니기 시작했다. 아난은 애써 피해다녔지만 그녀는 지칠 줄 모르고 따라다니기를 그치지  않았다. 아난이 부처님 계시는 곳으로 돌아가버리자 그녀는 문 앞에서 마냥 기다리고 있었다. 아난이  다시는 문 밖으로 나오지 않자 그녀는 그제서야 울면서 자리를 떴다.

  그때 아난이 부처님께 말했다.

  "마등의 딸이 오늘 저를 따라왔습니다."

  그러자 부처님은 마등의 딸을 불러오게 해서 물었다.

  "너는 왜 아난의 뒤를 따라다녔느냐?"

  "저는 아난의 아내가 되고 싶습니다."

  "아난은 사문이라 삭발을 했다. 너도 삭발을 한다면 아난을 남편으로 맞게 해주겠다."

  "그렇다면 저도 머리를 깎겠습니다."

  "그러면 집으로 돌아가 네 어머니에게 알리고 삭발을 한 후 다시 오너라."

  마등의 딸은 어머니에게 부처님이 한 말씀을 전했다. 이에 마등이 말했다.

  "나는 너를 낳아 기른 어미다. 그런데 너는 스님의 아내가 되고자 삭발하고 속세와 인연을 끊을  참이냐? 마음을 고쳐먹고 성안의 큰 부자와 혼인을 하도록 하여라."

  "저는 죽는 한이 있어도 아난의 아내가 되겠어요."

  "너는 어찌 우리 가문을 욕되게 하려고 하느냐?"

  "어머니, 저를 사랑하신다면 제 소원을 들어주세요."

  마등은 딸의 마음을 돌리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마침내 출가를 허락하였다. 딸은 곧 부처님이 계시는 곳으로 와서 말했다.

  "제가 머리를 자르고 왔습니다."

  "너는 아난의 어디를 사랑하느냐?"

  "저는 아난의 눈, , , 귀 그리고 목소리, 심지어 걸음걸이까지 사랑합니다."

  "눈 속에는 눈물이 있고, 코 속에는 콧물이 있고, 입 속에는 침이 있다. 또 귀속에는 더러운 때가 들어 있으며 몸 속에는 오줌과 똥같이 더럽고 냄새나는 것이  들어 있다. 또 남녀가 부부관계를 맺으면 자식을 보게 되고, 자식이 생기면 죽음이 있고, 죽음이  있으면 슬픔을 피할 수 없는 법이다. 그런데도 이러한 몸에 집착할 게 뭐가 있단 말이냐?"

  마등의 딸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비로소 깨달은 바가 있어 아라한의 도를 이루게 되었다. 부처님께서는 그 사실을 아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일어나 아난이 있는 곳에 가보도록 하라."

  그녀는 부끄러움에 고개를 숙이고 부처님 앞에 무릎을 꿇고 말했다.

  "어리석은 탓에 앞 뒤 모르고 아난을 쫓아다녔습니다그러나 이제는 마음이 열려 마치 어둠 속에서 등불을 만난 것 같고, 배를 타고 평안한 섬이 이르게 된 것 같습니다. 또 시각장애인이 부축해주는 사람을 만난 것 같고, 노인이 지팡이를 얻게 된 것과도 같습니다. 바로  부처님께서 저에게 가르침을 주셔서 마음이 열린 것입니다."

  이때 여러 비구들이 부처님에게 여쭈었다.

  "이 여인의 어머니는 주술을 행하는 사악한 사람입니다그런데 어찌 그 딸이 아라한의 지위를 얻게 된 것입니까?"

  "비구들아, 마등의 딸은 오백세에 걸쳐 아난의 아내였다. 그들은 그  오백세 동안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는 부부였다. 그 인연으로 오늘 내 가르침 안에서 도를 깨닫게 된 것이다이제 옛날의 그 부부가 다시 만나 형제같이 되었으니, 이런 불도를 어찌 닦지 않겠느냐?"

  부처님의 말씀을 들은 비구들은 모두 기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불설마등녀경>

 

    열한번째 이야기-도둑도 도둑 나름

  아주 먼 옛날에 한 삼촌과 영리한 조카가 함께 살고 있었다. 그들은 밤낮으로 아름다운 천을 짜서 국왕에게 바치는 일을 업으로 삼는 직공들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그들의 생활이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두 사람은 국왕의 창고에 주단을 바치러 갔다가, 그곳에 온갖 보물이 산처럼 쌓인 것을 보게 되었다. 집으로 돌아온 후, 두 사람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국왕의 창고에는 저렇게 보물이 많구나. 우리가 한 목숨 부지하려고 이렇게 애쓰느니, 차라리 보물을 훔쳐 사람답게 한번 살아보자."

  의기투합한 삼촌과 조카는 사람이 없는 틈을 노려 땅굴을 파두었다가 국왕의 창고에 몰래 숨어들어가 수많은 보물을 훔쳐내는 데 성공했다다음날 아침, 창고지기는 보물이 없어진 사실을 알고 황급히 국왕에게  보고했다. 그러자 국왕은 이렇게 말했다.

  "너는 도둑맞은 사실을 떠벌리고 다니지 말라. 그렇게 하면 도둑은 우리들이 공사다망해서 아직 그 사실을 모르는 줄 알고 반드시 다시  보물을 훔치러 올 게 분명하다너희들은 창고 속에 숨어서 그들이 다시 오기를 기다렸다가, 일망타진해서 한 놈도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창고지기는 왕의 명령대로 했다며칠이 지나도 궁궐이 조용하자, 삼촌과 조카는 다시 도둑질할 기회를 노리게 되었다. 그때 조카가 삼촌에게 말했다.

  "삼촌은 연세도 많고, 몸도 허약하시니 만일  창고지기에게 들키기라도 하면 도망치기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안심하십시오. 만약 삼촌이 그들에게 잡히기라도 하면 젊고 힘센 제가 반드시 복수할 테니까요."

  그렇게 해서 삼촌이 먼저 앞장서서 땅굴로 들어갔다가  매복해 있던 병사들에게 잡히고 말았다. 뒤에 있던 조카는 일이 잘못된 것을  눈치채고 '걸음아 나 살려라'하고  도망쳐버렸다. 병사들은 고함을 쳐서 창고지기를 불렀지만, 조카는 이미 흔적도 없이 도망가버린 후였다. 창고지기는  도둑 한명이 달아난 사실을 국왕이 알면 벌을 받을까 두려워 삼촌 도둑을 죽여 입을 막기로 했다그 다음날 아침, 창고지기는 삼촌 도둑의 머리를 국왕에게 바쳤다. 그러나 국왕은 일개 늙은이가 감히 혼자서 그 많은 보물을 훔쳤을 리 없으므로 반드시  일당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국왕은 삼촌 도둑의 시체를 사거리에 내놓고 뭇 사람들에게 보이라고 명령하였다.

  "병사들을 보내 몰래 지키고 있다가, 울면서 시체를 수습하려는 자가 나타나면 같은 패가 분명하니 잡아오도록 하라."

  병사들은 하루 동안 사거리를 지켰지만, 아무런  낌새도 눈치챌 수 없었다. 그런데  저녁 무렵이 되자 먼 곳에서 온 상인들이 마차에 화물을 가득 싣고  줄줄이 성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때 반대 방향에서도 여러 대의 마차가 들이닥쳐 그만 사거리는 북새통을 이루게 되었다. 양쪽의 상인들은 서로 양보하지 않으려고 소란을 피우다가 급기야 싸움이 벌어졌다.   와중에 볏짚을 가득 실은 두 대의 마차가 쓰러지자 도둑의 시체는 볏짚 속에 보기 좋게 묻히게 되었다다음날, 병사들은 전날의 사건을 국왕에게 보고했다. 이에 국왕은 시체를  지키던 병사들에게 모두 철수할 것을 명령하고 유능한 정탐꾼을 보내 비밀리에 지키고 있다가 볏짚에 불을 놓으려고 하는 자가 나타나면 잡아오도록 했다이번에 조카 도둑은 다른 방법을 생각해냈다. 그는 몇몇의 사람들을 데리고 불춤을 추는 것처럼 위장하여 성안으로 들어왔다. 그들이 불춤을 추는 모습은 갈수록 흥겨워져 수많은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려고 몰려들었다. 국왕이 보낸 정탐꾼마저 자기 임무를 잊어버린 채 불춤을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조카는 사람들이 불춤에 넋이 빠져 있는  동안 마치 실수인 것 마냥  볏짚 위로 불을 던져버렸다. 볏짚은 삽시간에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고, 구경꾼들은 놀라서 일시에 흩어지기 시작했다. 정탐꾼이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불춤을 추던 사람들은 이미 자취를 감춘 뒤였다정탐꾼이 황급히 국왕에게 달려가 이  사실을 보고하자, 국왕은 불같이  화를 내면서 더 많은 사람을 보냈다. 그리고 타고 남은 뼈를 수습하러 오는 자가 있는지 지키게 했다국왕은 분하다는 듯이 덧붙였다.

  "뼈를 수습하러 오는 자는 계책에 아주 능한자가 분명하니 잡기만 하면 결코 용서하지 않으리라."

  그날 저녁 조카 도둑은 좋은 술을 많이 챙겨 성안으로 들어갔다. 뼈를 지키고 있던 사람들은 이미 며칠 동안 계속해서 근무를 했던 터라  피로해 있었다. 그래서 좋은 술을  보자 군침이 돌아 그만 도둑을 잡아야 한다는 생각도 잊고 말았다. 그들은 모두 대취해서 동서를 분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조카 도둑은 인사불성이 된 사람들을 모두 묶어놓고  빈 술병에 삼촌의 뼈를 담아가지고 유유히  성을 빠져 나왔다다음날 보고를 받은 국왕은 화가 나서 길길이 날뛰었다.

  "그 도둑은 정말 교활한 놈이구나! 내가 그 놈을 잡지 못하면 사람이 아니다.!"

  국왕은 마침내 기막힌 꾀를 생각해냈다. 그는 강변의  정원에 아름다운 신방을 꾸며놓고 수많은 병사들로 하여금 그 주위에 매복하게 한 다음 절세미인이라고 소문이 자자한 자기의 딸을 곱게 단장시켜 신방에 머무르게 했다. 그리고 공주에게 말했다.

  "누구든지 신방에 들어오면 손을 잡고 놓지 말아라. 그리고 비명을 지르도록 해라. 이번에는 틀림없이 그 도둑을 잡을 수 있을 게야."

  국왕은 속으로 자신만만하게 생각했다.

  '내 딸이 절세미인이니, 그 도둑놈은 분명히 걸려들고 말리라.'

  과연 며칠 후 한밤중에 조카 도둑이 그 부근에 나타났다. 먼저 그는 강의 상류에서 커다란 통나무 하나를 물에 띄워 보냈다. 파수를 보고 있던 병사들은 강에 이상한 물체가  보이자 불을 비추어 보았으나, 그저 통나무에 지나지 않자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이렇게 몇 차례 똑같은 일이 벌어지자 병사들은 그저 그러려니 하다가 잠이 들고 말았다. 그제서야 조카 도둑은 통나무 옆에 붙어 강을 내려와 신방 안으로 잠입하는데 성공했다공주가 자다가 깨보니 옆에 생면부지의 남자가 누워 있었다공주는 황급히 그 남자의 옷을 잡고 비명을 질러댔다. 그러자 조카 도둑이 웃으면서 말했다.

  "내 옷을 잡아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소? 손목을 잡아야 도망가지 못할 것 아니오?"

  그 말을 들은 공주는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서 옷 대신 조카 도둑의 손목을 잡았다. 그러나 그는 이미 죽은 사람의 손목을 준비해 간 터라 공주는 그것을 잡고  있는 꼴이 되고 말았다. 그는 공주가 죽은 사람의 손목을 꽉 잡고 놓지 않자 슬그머니 자신의 손을 뺀 다음 창문을 통해 밖으로 빠져나가 강 속으로 뛰어들었다. 파수를 보던 병사들이 공주의 비명을 듣고 달려왔으나, 이미 조카 도둑은 사라지고 난 뒤였다날이 밝은 후, 공주와 병사들은 간밤에 있었던 일을 국왕에게 보고했다. 국왕은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 놈은 정말 영리해서 세상에 대적할 자가 없구나!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도 잡을 수가 없으니 이 일을 어쩐단 말인가?"

  그 사건이 일어난 지 오래지 않아 공주는 자신이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열 달이 차자 희고 통통한 사내아이가 태어났다. 이에 국왕은 또  계책을 꾸며 유모에게 아이를 안고 성안의 이곳저곳을 왔다갔다 하라고 명령하면서 말했다.

  "이 아이에게 입맞추려고 하는 자가 있으면 붙잡도록 하라."

  유모는 국왕의 명령대로 아이를 안고 성안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해가 저물었지만 아이에게 입맞추려고 하는 자는 보이지 않았다. 하루종일 먹을 것을 변변히 먹지 못한 아이가 큰 소리로 울면서 보채는데, 마침 근처에 우유 장수가 있었다. 그는  다름아닌 조카 도둑이었다. 우유 장수는 아이에게 우유를 건네주면서 자연스럽게 아이의 볼에 입맞추었다유모는 궁궐로 돌아와 국왕에게 말했다.

  "어제 하루 종일 성안을 돌아다녔지만 아이에게 입맞추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다만 우유를 살 때 우유 장수가 아이에게 입맞추었을 뿐입니다."

  국왕이 물었다.

  "그 우유 장수를 잡아오지 않고 뭘 했나?"

  유모가 대답했다.

  "아이가 배가 고파 울어대서 우유를 사러갔던 것입니다. 우유 장수들은 우유를 팔 때 아이들에게 습관처럼 입을 맞추곤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무조건 잡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국왕도 대답할 말이 없었다. 국왕은 유모에게  계속 성안을 돌아다니도록 하고 여러 사람들로 하여금 그 뒤를 따르게 했다.

  "누구를 막론하고 아이에게 접근하는 자는 잡아오도록 하라."

  이번에 조카 도둑은 몇 병의 맛좋은 술을 가지고 갔다. 그는 유모와 그 뒤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술을 권했다. 유모와 그 일행들은 조카 도둑의 감언이설과 맛좋은 술의 향기에 혹해서 너 한잔 나 한잔 하면서 술을 마셔대다가 곧 흠뻑 취하고 말았다. 조카 도둑은 그틈을 타서  아이를 안고 도망가버렸다. 깨어난 후 아이가 없어진 사실을 안 유모와 그 일행은 서로 멍하니 얼굴만  쳐다보다가 안색이 흙빛이 되어 황급히 국왕에게 달려가 알렸다. 국왕은 화가 나다 못해 말도 나오지 안았다조카 도둑은 아들을 데리고 이웃 나라의 수도로 가서  그 나라 왕을 알현하기를 요청했다. 왕은 조카 도둑을 접견하고 나서 그가 천문지리를 비롯해 모르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왕은 그의 박식함에 감탄하여 그를 대신에 임명했다. 그러던 어느날 왕이 말했다.

  "우리 나라에 자네만큼 총명한 사람도 없는 듯하니, 내 딸자식을  시집보내려고 하네. 이 어찌 경사스러운 일이 아니겠는가!"

  이에 조카 도둑은 급히 대답했다.

  "대왕께서 이렇게 저를 아껴주시니 무척 송구스럽습니다만, 저는 감당할  수 없나이다. 만일 대왕께서 저를 가련히 여기신다면 이웃 나라의 공주와 결혼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왕은 이를 허락하고 사신을 조카 도둑의 본국에 보냈다. 그러고는 자신의 태자가 귀국의 아름다운 공주와 결혼하기를 바란다고 전하게 했다국왕은 이웃 나라의 사신을 맞이하여 전언을 듣고 곧 혼사를 승낙했다. 하지만 속셈은 달랐다.

  '이 도둑놈이 정말로 교활하구나. 이번에도 술책을 꾸며 내 딸아이마저 빼돌리려고?'

  국왕은 곧 사자를 이웃 나라에 급히 파견해서 이렇게 요구했다.

  "귀국의 태자가 내 딸아이를 아내로 맞고자 한다면, 반드시 직접 오셔야 합니다."

  그리고 국왕은 병사들에게 만반의 준비를 갖추게 하고서는 구혼자가 오기만을 기다렸다조카 도둑은 그 소식을 듣고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직접 간다면, 국왕이 알아차리고 당장 잡으려 들 텐데, 이 일을 어찌하면 좋을까?'

  그는 이 생각 저 생각 끝에 자신을 비호해주는 왕에게 달려가 말했다.

  "대왕께서 저를 직접 보내시려면, 부디 오백 명의 정예 기병을  대동하게 하셔서, 우리 나라의 위풍당당함을 보이게 하소서. 그래야만 제가 갈 수 있나이다."

  왕은 조카도둑의 요구를 들어주기로 했다결혼식 날이 되자, 조카 도둑은 예복을 차려입고 이백오십 명의 기병을 선두에 두고 나머지 이백오십 명의 기병은 후위에 배치한 채  위풍당당하게 본국으로 돌아왔다. 궁궐 앞에  이르자 그는 말을 세우고 꼼짝하지 않았다. 공주의 아버지가 궁 밖으로 나와 조카 도둑을 자세히 살펴보니 비범한 재능이 엿보여 속으로 은근히 감탄하였다. 국왕은 직접 말 앞으로 다가와 그의 손을 잡고 물었다.

  "내게 사실을 말해주게나. 내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잡으려고 했던 도둑이 바로 자네 맞지?"

  조카도둑은 말 위에서 웃으며 예를 표했다.

  "맞습니다. 바로 접니다!"

  국왕은 한숨을 길게 내쉬며 말했다.

  "천하에 자네의 총명함을 따를 자가 없네그려. 좋네! 내 딸아이를 자네에게 주겠네."

  이렇게 해서 조카 도둑과 공주는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았다고 한다.  <생경>

 

    열두번째 이야기-천금보다 나은 한 마디 말

  먼 옛날의 일이다. 만물이 풍요로워 곡물과 과일이 넘쳐나고 온갖  재보가 가득하여, 태평성대를 구가하는 나라가 있었다. 상업 역시 번성하여 부족한 물건이라고는 없었지만  국왕은 이에 만족하지 않았다. 어느날 그는 대신에게 말했다.

  "유능한 사신을 뽑아 외국에 보내 우리나라에 없는 물건을 사오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소?"

  이렇게 해서 사신 한 사람이 외국으로 떠났다외국에 도착한 사신은 시장에 나가보았으나 살 만한 물건이 없었다. 눈에 보이는 것이라곤 모두 자기 나라에도 있는 물건들이었다. 실망한 사신은 자기 나라로 돌아갈 생각을 하다가 시장 구석에 한 노인이 빈 손으로 앉아 있는 모습을 보았다. 이상하게 여긴 사신이 그 노인에게 다가가 물었다.

  "물건도 팔지 않으면서, 빈 손으로 이곳에 앉아 무얼 하고 있는 겁니까?"

  노인은 웃으면서 대답했다.

  "장사를 하고 있는 중이오."

  더욱 이상한 생각이 든 사신은 노인의 주위를 자세히 둘러보았으나 팔 만한 물건은 보이지 않았다.

  "무엇으로 장사를 하는 겁니까?"

  노인이 대답했다.

  "나는 이곳에서 지혜를 팔고 있다네."

  "노인장이 팔고 있다는 지혜가 도대체 무엇입니까? 또 값은 얼마입니까?"

  노인은 사신을 한번 훑어보고선 태연하게 말했다.

  "나의 지혜는 오백 냥이나 한다오. 먼저 돈을 내면 지혜를 알려주겠네."

  사신은 지혜를 팔다니 참 희한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  나라 시장에서는 본 일이 없으므로 사 가지고 돌아가도 괜찮으리라고 생각한 사신은 오백  냥을 냈다. 곧 그 노인은  지혜를 알려주었다. 지혜의 내용은 바로 다음과 같았다.

  "일을 당하면 여러 번 생각하고, 되도록 화를 내지 말라. 오늘 비록  쓰지 않는다고 해도 유용할 때가 있으리."

  사신은 오백 냥을 낭비했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어쨌든  거래는 이루어진 것이라 그 말을 깊이 새기고 본국으로 돌아갔다본국으로 돌아온 사신은 자기 집에 들렀다. 그때는 한밤중이라 모든 식구들이 잠들어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 달빛을 빌어 얼핏보니 아내의 침실 앞에 신발이  네 짝 놓여 있었다. 사신은 자기가 없는 틈을 타서 아내가 간통을 저질렀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화가  치밀었다. 그러나 사실 아내는 간통을 한 게 아니라 그날 몸이 아파 어머니가 곁에서 간호를 해 주다가 함께 잠든 것이었다. 침상 앞의 신발은 바로 어머니의 것이었다이 사정을 알 리 없는 사신은 분기탱천했으나 문득 외국에서 만난 노인이 일러준 지혜의 말이 생각났다. 그래서 그 말을 되뇌이며 분노를 삭이고 있었다. 그때 인기척을 느낀  어머니가 자리에서 일어나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중얼거렸다.

  "내 아들이 돌아온 게 아닐까?"

  그제서야 사신은 자기 아내와 어머니가  함께 잠자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방 밖으로 뛰어나가 펄펄 뛰며 외쳤다.

  "정말 싸다! 정말 싸구나!"

  의아하게 생각한 어머니가 물었다.

  "외국에 무언가 사러 간다더니, 싸다고 하는 말은 또 무슨 말이냐?"

  사신은 다시 방으로 돌아와 어머니의 손을 잡고 기뻐하며 말했다.

  "내 아내와 어머니는 만 냥을 준다 해도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데, 단돈 오백 냥 어치 지혜의 말로 두 분을 지키게 되었으니 이 어찌 싼 게 아니란 말입니까?"  <천존설아육왕비유경>

 

    열세번째 이야기-아름다움의 허상

  옛날 부처님이 라열기국기사굴산에 계실 때였다그때 성안에는 연화라는 이름의 한  음녀가 있었다. 그녀는 얼굴과 몸매가 아름답기로 나라 안에 견줄 사람이 없었으므로 대신의  자제들이 모두 찾을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그러던 어느 날 연화는 문득 세상을 버리고 비구니가  될 작정을 했다. 그래서 부처님이 계시는 곳으로 가려고 길을 떠났다가 도중에 어떤 샘물앞에 이르게  되었다. 연화는 물을 마시고 손을 씻다가 샘물 위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운 것을 보고 생각을 바꿨다.

  '이렇게 아름다운 얼굴을 가졌는데, 왜 세상을 버리고 사문이 되겠는가? 젊은것도 한때인데 마음껏 즐겨야지.'

  그때 부처님은 연화가 제도될 인연이 있다는 것을 아시고 부인의 모습으로 변했다. 그 부인의 모습은 우아하고 아름답기 그지없어 연화보다 천만 배는 뛰어났다부인의 모습으로 변한 부처님은 연화가 돌아오고 있는 길을 거슬러 올라갔다. 연화는 그 부인의 아름다운 모습에 자못 친근감을 느껴 물었다.

  "어디에서 오시는 길입니까? 남편이나 아이들  그리고 시종들은 어디에 두고 홀로  길을 걷고 계십니까?"

  "성안에서 나와 집으로 가는 길입니다. 우리는 서로 모르는 사이지만 저기 있는 샘물에 가서 잠시  쉬면서 이야기나 나누는 게 어떨까요?"

  "좋습니다."

  그렇게 해서 두 여인은 샘물가로 가서 서로 정겹게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그러던 중 그 부인은 잠시 연화의 무릎을 베고 누웠는데 이내 자는 듯 숨이 끊어지고 말았다. 그러자 순식간에 얼굴이 문드러지면서 악취가 나고 배가 터져  벌레들이 기어나왔다. 또 이빨이 빠지고 머리털이 흩어져 사지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그 모양을 본 연화는 놀랍고도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아름다운 부인이 어떻게 갑자기 죽을 수 있을까? 이런 부인의 목숨도 무상한 것인데, 어찌 나의 수명을 장담할 수 있을까? , 역시 부처님에게 가야겠구나.'

  이윽고 부처님이 계시는 곳에 도착한 연화는 절을 하고  나서 좀전에 당한 일을 말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연화에게 말했다.

  "사람으로서 믿지 못할 네 가지 일이 있느니라. 첫째, 젊음은 반드시 늙음으로 돌아가는 것이요둘째는 건강한 것도 끝내는 죽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셋째는 부모 형제와 친척들이 모여 화목하게 산다 해도 결국은 헤어져야 하는 법이며, 넷째는 아무리 재산을 쌓아둔다 해도 마침내는 흩어지고 마는 법이다."

  그리고 부처님은 다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늙으면 몸이 쇠약해지고

  젊어도 병들면 몸이 무너져

  썩고 허물어져 가나니

  죽음도 결국은 그러한 것이리라.

 

  이 몸을 어디에 쓰랴

  온갖 더러움이 새어나는 곳이거늘

  병이 들면 괴롭고

  늙음과 죽음의 근심이 떠나지 않는다네.

 

  쾌락만 쫓다가

  못된 짓만 하면서

  큰 변이 일어날 것을 알지 못하지만

  목숨은 무상한 것이라네.

 

  자식도 믿을 바 못 되고

  부모형제도 마찬가지리

  죽음이 임박하면

  아무리 친한 어버이도 의지할 수 없다네."

  부처님의 설법을 들은 연화는 신체란 좀전에 본 부인의 목숨처럼 영원한 것이 아니며 오직 도덕과 열반만이 영원한 안락처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곧 부처님에게 비구니가 되겠다고 말했다. 부처님이 칭찬하시자 연화의 머리카락이 저절로 떨어져 비구니의 모습이  되었다. 그리하여 곧 깨달음을 얻어 아라한이 되었다.  <법구비유경>

 

    열네번째 이야기-아이를 잡아먹는 귀신

  귀자모는 반사가라는 귀신왕의 아내이다. 그녀에게는 모두 합해 일만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그 하나하나가 모두 신체 건강한 장사들이었다그 중 막내의 이름은 빈가라로  영리하고 총명한 탓에 귀자모가 특히 아끼는 아들이었다귀자모는 성질이 잔악하고 난폭해서  사람의 아이들을 잡아먹는 일을  제일 좋아했다. 그녀는 수시로 인간들이 사는 곳에 가서 아이들을 잡아 산 채로  집어삼켜버리곤 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이 받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갖은 방법을 다  동원해서 아이들을 숨겨두어도 귀자모의 끔찍한 손길은 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사람들은 부처님을 찾아가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부처님은 그 상황을 이미 알고 있던 터라 법력을 써서 빈가라를 잡은 다음 발우 속에 숨겨두었다귀자모는 사랑스러운 아들 빈가라가 보이지 않는 탓에  마음이 몹시 다급해졌다. 그녀는 하늘 끝에서 땅끝까지 사방을 칠일 밤낮 동안 두루 찾아다녀 보았으나, 그 그림자도 볼  수 없었다. 귀자모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잠도 못 이루며  하루종일 울고 다녔는데 그 모습은  흡사 미치광이와도 같았다. 그러자 반사가가 그녀에게 말했다.

  "듣자하니 부처님은 세상에서 가장 총명하셔서 모르는 것이  없고 또 도와주지 않는 일이 없다 하오. 울고불고 해도 소용없으니 이제 부처님에게 가서 도움을 청해보는 것이 좋을 듯하오."

  귀자모는 부처님이 계시는 곳에 가서 무릎을 꿇고 합장한 다음 빈가라가  있는 곳을 가르쳐달라고 부탁했다.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귀자모야, 네겐 아들이 일만 명이나 되는데, 그 중 하나를 잃었다고 해서 그렇게 상심하고 찾아 다니는 이유가 무엇이냐? 사람들은 고작해야 서너 명의 자식밖에 없고 또 자식이 하나뿐인 사람도 있다. 그런데도 너는 아이들을 잡아먹는 것을  즐기지 않았더냐? 귀자모야, 자식  잃은 부모의 심정이 어떠한지 이제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겠느냐?"

  귀자모는 부처님의 충고에 문득 깨닫는 바가 있어 부끄러워하며 대답했다.

  "진정으로 참회하나이다, 부처님. 저는 벌을 받아 마땅합니다. 이번에  빈가라만 찾을 수 있다면, 다시는 사람의 아이들을 잡아먹지 않겠습니다."

  부처님은 발우를 들어올려 빈가라를 귀자모에게 돌려보냈다그후로 귀자모는 다시는 아이들을 잡아먹지 않았고, 사람들은 자식 잃는 공포에서 해방되어 부처님을 찬양했다고 한다.  <잡보장경>

 

    열다섯번째 이야기-호리병 속의 미녀

  옛날에 궁중의 여자들을 매우 엄격하게 단속하는 한  국왕이 있었다. 어느날 정부인이 태자에게 말했다.

  "나는 네 어머니잖니? 그런데 나는  일생동안 궁궐 밖을 나가보지  못했단다. 이제는 세상 구경도 좀 하고 싶으니 네가 부왕에게 말해주렴."

  정부인이 세 번 말하고 태자가 부왕에게 세 번 간청한 다음에야 국왕은 그 청을 들어주었다그렇게해서 왕자가 직접 마차를 몰고  외출하게 되었는데, 여러 신하들이 길가에  늘어서서 환송했다. 정부인은 손으로 마차의 휘장을 걷어 뭇 사람들에게 얼굴을 보였다. 태자는 모친의 행동에 품위가 없다고 생각하자 갑자기 배가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궁궐로 돌아와버렸다. 그러자 정부인이 말했다.

  "궁 밖에 나가자마자 돌아왔으니, 재미있는 것은 하나도 못 보았구나."

  그 말을 들은 태자는 속으로 생각했다.

  '어머니는 정부인임에도 이러한데, 나머지 궁녀들이 밖에 나간다면 화를 불러일으킬  게 별을 보듯 뻔하구나.'

  태자는 밤이 되자 궁궐을 나와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버렸다그 산 속에 난 오솔길 옆에는 커다란 나무가 있었고  그 아래에는 맑은 샘물이 흘렀다. 태자는 한 수행자가 오는 모습을 보고 그 나무 위로 올라갔다. 수행자가 샘물로 세수를 한 후 음식을 풀어놓고 도술을 부리자 입에서 호리병 하나가 튀어나왔다. 그리고 그 호리병속에서 한 아리따운 여인이 나타났다. 그들은 나무를 병풍삼아 마치 방안에 있는 것처럼 함께 드러누웠다.

  잠시후, 수행자가 잠이 들자 그 여인은 도술을 부려 입에서 호리병을 토해냈는데그 안에서 젊은 남자가 나타났다. 여인은 그 젊은 남자와  함께 즐기다가 다시 호리병 속에  그 남자가 들어가게 한 다음 호리병을 삼켜버렸다얼마 후 잠에서 깬 수행자는 그  여인을 호리병 속에 들어가게 한 다음  호리병을 삼키고선 지팡이를 들고 길을 떠났다그 모습을 끝까지 지켜본 태자는 궁궐로 돌아와서 국왕에게 말했다.

  "수행자를 초대해서 공양하고자 하니 음식 삼인분을 차리도록 해주십시오."

  초대를 받고 온 수행자는 혼자 중얼거렸다.

  "한 사람을 초대해놓고 음식은 삼인분을 차리다니..."

  그러자 태자가 말했다.

  "수행자여, 당신 호리병 속에 있는 그 미녀를 불러내셔야죠."

  수행자는 할 수 없이 호리병 속의 미녀를 불러냈다. 태자는 또 그 미녀에게 말했다.

  "당신 호리병 속에 있는 젊은 남자도 불러내서 같이 식사를 하도록 하죠."

  미녀도 어쩔 수 없이 자신의 호리병 속에 있는 그 젊은 남자를 불러냈다.

  그들이 공양을 끝내고 돌아가기를 기다렸다가 국왕이 태자에게 물었다.

  "너는 어떻게 수행자의 비밀을 알게 되었느냐?"

  "어머니가 외출하실 때 제가 직접 마차를 몰았습니다. 그때 어머니는 마차의 휘장을 걷어 뭇 사람들에게 얼굴을 내보였습니다. 저는 여인들이란  호기심이 많은 존재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그래서 배가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곧바로 궁궐로 돌아와버렸습니다. 그리고  밤이 되자 산 속으로 들어갔는데 그곳에서 아까 그 수행자가 호리병 속에서 미녀를 불러내어 함께 즐기는 모습을 보게되었습니다. 그런데 수행자가 잠이 들자 미녀 또한  젊은 남자를 호리병 속에서 불러내  정을 통하는 것이었습니다. 보아하니 남녀가 서로에게 이끌리는 것은 사람의 힘으로는 막을 수 없는 일인가 보옵니다. 원컨대 부왕께서는 궁녀들에게 관대함을 베풀어 그녀들이 원하는 대로 바깥 출입을 할 수 있게 하옵소서."

  태자의 말을 듣고난 국왕은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여 궁녀들이 자기 뜻에 따라 바깥  출입을 할 수 있게 허락했다고 한다.  <구잡비유경>

 

    열여섯번째 이야기-염라대왕에게 뇌물을 주다

  아들 하나만을 바라보며 어렵게 살아가는 한 과부가  있었다. 모자는 독실한 불교신자로서 매일 불경을 외워 적지않은 지혜와 덕을 쌓아가고 있었다그런데 그들이 살던 나라는 그 꼴이 엉망이었다고 한다국왕은 백성들이 도탄에 빠진 것을 전혀 생각지 않고 정사도 돌보지 않으면서 머릿속에는 그저  재물과 여색을 탐하는 욕심으로 가득했다. 그러면서도 국왕은 한편으로 죽음을 꽤나 두려워하여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내가 죄를 많이 지었으니 죽으면 지옥에 떨어져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받을 게 뻔하다. 이를 모면할 방법이 없을까그래, 한량없는 재보를 염라대왕에게 바치면 죄를 면제받을 수 있으리라.'

  이렇게 생각한 국왕은 전국의 황금을 모두 회수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단 한 냥의 황금이라도 숨겨두는 자가 있다면 사형을 면치 못하리라."

  무려  삼년에 걸쳐 민간에 있는 황금을 모두 거두어들이자 백성들은 모두  너나할것없이 거지꼴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국왕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더욱 욕심을 부려 다음과 같은 방을 전국에 돌렸다.

  "한 냥의 금이라도 더 가져오는 자가 있으면, 대신의 자리를 주고 또 부마로 삼겠노라."

  어느 날 과부의 아들은 이 방을 보고 혼자 골똘히 생각하다가 어머니에게 말했다.

  "어머니, 지금 이 나라는 망국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저는 이 모습을  그대로 보고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국왕이 어리석기 그지없으나, 제게 국왕을 설득할 만한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아버님이 돌아가실 때 우리가 아버님의 입에 물려둔 황금이 있지 않습니까? 저승에서 필요한 일이  있을 때를 대비해서 마련해드린 황금 말입니다. 제가 그 황금을 가지고 가서 왕에게 직언을 해볼 작정이니 허락해주십시오."

  어머니가 아들의 말에 동의하자 아들은 무덤을 판 후 아버지의 입에  물려있던 황금을 빼내가지고 왕궁으로 갔다국왕은 황금을 가지고 온 사내를 보자 한편으로 놀라고 또 한편으로 기뻐하며 물었다.

  "이 황금을 어디서 얻었느냐?"

  "이 황금은 저희 아버님이 돌아가실 때 저승에서 필요한 일이 있으면 쓰시라고 저희 모자가 마련해드렸던 것입니다. 대왕께서 황금과 대신의 직위를 바꾸시겠다고 한 말씀을 듣고 제가 아버님 무덤을 파서 황금을 꺼내온 것입니다."

  "너희 부친이 죽은 지는 얼마나 되었느냐?"

  "올해로 십일년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너희 부친은 저승에서 그 황금을 쓰지 않았더란 말이냐?"

  "대왕이시여, 저는 부처님의 정법을 믿는 사람입니다부처님께서는 선인선과 악인악과를 말씀하셨습니다. 길흉화복은 마치 그림자와도 같은 것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몸을 빠르게 움직인다고 해도 제 그림자를 떼어버릴 수 있겠습니까?"

  "그건 안 되는일이지."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사람의 몸은 지수화풍의 4대 원소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일단 죽으면 이 4대 원소는 흩어져버리고 맙니다. 인간의 영혼 또한 영원한 것이 아닌데 어찌하여 대왕께서는 염라대왕에게 뇌물을 주어 죄를  사면받겠다는 생각을 하십니까? 대왕께서는 전세에  보시를 많이 한 공덕으로 당세에 국왕이 되신 것입니다. 비록 깨달음을 얻지 못했다 할지라도 자비로운 마음으로 보시하고 도덕을 숭상한다면 내세에 다시 국왕이 되실 것입니다."

  사내의 말을 들은 국왕은 자기가 우매해서 수많은 악행을 저질렀던 것을  후회하고 감옥문을 열어 죄없는 죄수들을 모두 풀어주었다. 또 더 이상 금은보화를 수탈하는 짓도 하지 않게 되었다.  <육도집경>

 

    열일곱번째 이야기-공양의 진실

  깊은 산속에서 소나무와 대나무를 벗삼아 수도에 정진하고  있던 한 보살이 있었다. 그는 대자대비심으로 일체중생의 생사고뇌를 해결하고자 밤낮없이 깨달음을 추구했다. 그런데 이러한 보살의 수도를 방해하는 한 미물이 있었으니, 그것은 다름아닌 한 마리 ''였다이는 보살의 옷 속에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보살은 이가  배고플 때마다 피를 빠는 통에 부동심의 경지에 들어갈 수 없었다. 그래서 보살은 그 놈의 이를 잡기로 작정했다.

  옷을 한참 뒤져 결국 이를 붙잡은 보살은 그  이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바라보았다. 아무리 미물이라 할지라도 생명의 소중함을 알고 있는  보살은 차마 이를 죽이지 못하고 썩은  뼈다귀 위에 올려놓았다.

  이는 그 뼈다귀에 붙어 있는 살점에서 남은 피를 빨아먹으며 칠일을 살았으나, 더 이상 먹을 것이 없게 되자 결국 죽고 말았다. 그리고 그 이는 오랜 세월 동안 생사의 바다를 전전하였다보살은 뼈를 깎는 수도 끝에 마침내 깨달음을 얻어  석가모니 부처님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폭설이 길을 덮어버려 사람들이 나다닐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이때 한 부자가 선근을 심고자 하는 뜻에서 부처님과 수천 명의 제자들을 초청해 칠일 동안 정성을 다해 공양을 베풀었다그런데 칠일이 지나도 폭설이 그치지 않아 길은 여전히 사람들이 나다니기 쉽지 않은 상태였다. 그때 부처님은 아난과 기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사원으로 돌아가는 것이 좋겠구나."

  그러자 아난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황급히 말했다.

  "그 부자가 정성을 다해 칠일 동안 부처님과 저희들에게 공양을 했으니, 며칠 더 공양을 베풀어달라고 하면 좋지 않겠습니까? 눈이 갈수록 많이 오니이대로 사원으로 돌아간다면 당분간은 걸식할 곳도 없을 듯합니다."

  "그 부자는 이제 더 이상의  호의를 베풀지 않을 것이다. 그는  다시는 우리에게 공양하지 않을 것이다."

  말씀을 마친 부처님은 제자들을 거느리고 사원으로 돌아가셨다다음날 부처님은 아난을 불러놓고 말씀하셨다.

  "네가 그 부잣집에 가서 걸식을 해보도록 하라."

  아난은 부처님의 분부에 따라 그 부잣집 앞에 가서  발우를 들고 서 있었다. 그러나 문지기는 아난이 걸식하러 온 모습을 보고서도 주인에게 가서 알리지도 않고, 아무 말도 건네지  않았다. 아난은 잠시 기다렸다가 그 부자가 보시를 베풀 뜻이 없음을 알고 사원으로 돌아와  전후의 사정을 부처님에게 말씀드렸다.

  "부처님, 어떻게 어제와 오늘의 태도가 그렇게 확연하게 다를 수 있는 것입니까?"

  그러자 부처님은 먼 과거세에 자신이 보살로 수행하고 있을 때 한 마리 이와 있었던 인연을 상세하게 설명해주었다. 그러고는 이렇게 덧붙였다.

  "아난아, 나는 자비심에서 그 이의 목숨을 구해주고 썩은 뼈다귀 위에 놓아주었다. 그 이는 그 때문에 칠일 동안 생명을 더 연장할 수  있었다. 그 이가 이번 세상에서  부자로 환생하여 그때의 인연을 내게 칠일 동안 각종 산해진미로 공양해 갚은 것이다이제 칠일이 지났으니, 그 부자의 정성도 다했으리라. 이제 그 이유를 알겠느냐?"  <육도집경>

 

    열여덟번째 이야기-나무 위의 여자

  옛날에 한 바라문이 있었는데, 그 아내의 이름은 연화였다. 그녀는 그림 같은  눈매에 복숭아 꽃 같은 얼굴을 가진 천하절색의 미인이었다. 그뿐 아니라 그녀는 마음씨가 곱고 슬기로웠으며 예의를 알았다그런데 남편인 바라문은 싫증을 잘 내는 사람이었다그는 완벽한 미인인 연화보다는 조금은 천박해 보이는 계집종에게 마음을 두고 있었다. 그는 온종일 계집종과 더불어 희희낙락했으며, 계집종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들어주었다. 그러다가 결국 바라문은 계집종에게  눈이 먼 나머지 연화를 집에서 쫓아내기로 작정했다.

  어느 날 바라문은 연화에게 소풍을 가자고 했다. 연화는  남편의 마음이 돌아선 줄 알고 기뻐하며 남편과 함께 집을 나섰다. 그들은 한 동산에  올라 열매가 가득 열려 있는 나무를  보게 되었다. 바라문은 나무 위로 올라가 잘 익은 열매를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덜  익은 열매를 연화에게 던져주었다. 그러자 연화가 말했다.

  "여보, 당신은 잘 익은 열매를 드시면서 왜 저에게는 덜 익은 열매를 주시는 거죠?"

  "잘 익은 열매를 먹고 싶으면 직접 나무 위로 올라와보시오."

  "정 그러시다면 제가 직접 올라가겠어요."

  바라문은 연화가 나무 위로 올라오자 기회가 왔다고  생각하여 얼른 나무 밑으로 뛰어내렸다. 그러고는 가시덩굴을 잔뜩 가져다가 나무 밑에 깔아놓았다. 당황한 연화는 남편에게 얘기했다.

  "여보, 지금 무슨 일을 하시는 거죠? 그렇게 하면 제가 나무에서 내려갈 수 없잖아요?"

  그러나 바라문은 들은 체도 하지 않고 가시덩굴로 나무 밑을 발디딜 틈도 없이 에워싸는 일을 계속했다. 그리고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렇게 하면 나무 위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죽겠지? 이제서야 눈엣가시를 뽑겠구나.'

  연화는 나무 위에서 남편이 사라지는 모습을 그저  안타깝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며 천지신명에게 기도를 했지만 헛일이었다그때 수많은 신하들을 거느리고 사냥을 나왔던  그 나라의 국왕이 우연히 그 나무  밑을 지나게 되었다. 국왕은 나무 위에서 웬 여인이 울고 있는 것을 보고 의아하게 생각하며 발을 멈추었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니 그 여인의 자태는 마치 하늘에서 금방 내려온 선녀와 같았다.

  국왕은 말을 몰아 나무 근처로 다가가 연화에게 물었다.

  "그대는 도대체 누구인가? 무슨 일로 나무 위에서 울고 있는 것인가? 그리고 누가 이 나무 밑에 가시덩굴을 깔아놓았는가?"

  연화는 울먹이며 계집종에게 홀린  남편이 자기를 그렇게 만든  사정을 소상히 이야기했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난 국왕은 속으로 생각했다.

  '이 여자는 정말 선녀와 같은데, 그 남편이라는 작자가 도리어 죽이려  들다니? 천하의 보배를 몰라보는 그 자는 정녕 어리석은 자임에 틀림없다!'

  국왕은 신하들을 시켜 가시덩굴을 치우고 연화를 나무에서 내려주었다. 연화는 자신을 구해준 국왕과 신하들에게 예를 갖추어 감사를 표시했다국왕은 연화가 미모 뿐만 아니라  예절까지 갖춘 것을 보고 궁궐로 데려가 후궁으로 삼았다연화가 그곳에 온 이후 궁궐 내에는 연화의 지혜와 재치를 당할 자가 없었다. 특히 그녀는 도박을 무척 잘했다. 그녀와 도박을 해본 사람들은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고 급기야 연화의 미모와 신기한 도박 기술에 관한 소문이 궁 밖까지 나돌기 시작했다연화의 전 남편이었던 바라문 역시 그 소문을 접하게 되었다. 그러고는 생각했다.

  '미모가 출중하고 도박 기술이 신기에 가깝다? 그러면 그 후궁은 혹시 전처 연화가 아닐까?'

  그 바라문 역시 도박에는 정통했으므로 후궁을 찾아가 한 판 겨뤄보고  소문에 대한 궁금증을 풀고자 집을 나섰다궁궐을 지키고 있던 병사는 후궁을 만나겠다고 찾아온 바라문을 살펴 본 후 연화에게 가서 그 생김새를 보고하였다. 그녀는 그 얘기를 듣자 그가 곧 자신의 전 남편임을 알 수 있었다후궁과 도박을 겨루어보겠다고 기다리던 바라문은 후궁이 나오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후궁은 역시 짐작한 대로 전처 연화였던 것이다. 바라문은 당황한 기색을 애써 감추며 침착하게 말했다.

  "본 지도 한참 되었구려. 당신은 정말 갈수록 아름다워지고, 도박 기술도 훨씬 나아졌다고 들었소나는 당신이 과거지사를 모두 잊지 않았으리라고 생각하오."

  "과거의 일은 모두 잊어버렸지만, 나무 위에서 있었던 일은 영원히  잊지 못할 거예요. 이제 당신과의 인연은 이미 다했으니, 나는 나 당신은 당신일 뿐이에요. 그리고 더 이상 나눌만한 이야기도 없는 것 같군요."

  바라문은 부끄러워 얼굴을 들지 못한  채 궁궐을 나왔다. 이제 와서  후회한다고 해도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생경>

 

    열아홉번째 이야기-살을 베어 원숭이와 바꾸다

  숲속에서 사자와 원숭이가 무척 사이좋게 살고 있었다원숭이는 사자를 매우 신임했기 때문에 먹이를 구하러 나갈 때 종종 새끼원숭이 두 마리를 사자에게 맡기곤 했다어느 날 굶주린 독수리가 새끼 원숭이들을 발견하고는 사자가 잠든 사이에 발톱으로 나꿔채서 나무위로 날아올라갔다. 얼마 후 잠에서  깬 사자는 사방을 둘러보아도 새끼  원숭이들이 보이지 않자 마음이 무척 다급해졌다. 사방을 둘러 찾아보다가  독수리가 새끼 원숭이들을 붙잡은 채  나무 위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았다. 이에 사자는 간곡하게 부탁했다.

  "그 새끼 원숭이들은 내가 친구 원숭이의 부탁을  받고 돌봐주고 있던 참이었는데, 잠시 잠든 사이에 네가 잡아가버렸구나. 친구의 신임을 저버리게 되었으니 이 일을 어쩐단 말이냐. 나는 백수의 왕이고 너는 뭇 새들의 왕이니 내 체면을 봐서라도 새끼 원숭이들을 돌려다오."

  그러자 독수리가 말했다.

  "사자야,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냐. 나는 지금 지친 데다가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라 이 새끼원숭이들을 잡아먹을 참이다. 너의 지위와 체면은 나와 상관없다."

  사자는 독수리가 흉폭해서 순순히 새끼 원숭이들을 돌려주지 않으리라 생각하고 자신의 살을 한 움큼 베어주기로 결심했다. 자신의 아픔을 감수하며 새끼 원숭이를 돌려받은 사자는 친구의 신뢰를 저버리지 않게 되었다.

  <대지도론>

 

    스무번째 이야기-자연의 이치

  옛날에 사이좋은 젊은 부부가 있었다. 그 부부는 둘  다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의 외모를 갖춘 선남선녀였다. 그들은 서로 너무도 사랑하는 사이여서 상대에게 싫증을 낼 줄 몰랐다그러던 어느 날 그 부부는 그만 둘 다 실명하고 말았다. 앞을 못 보게 된 부부는 다른 사람에게 속게 될까봐 걱정했고, 부인은 남편을 잃을까봐 시름에 잠겼다. 그래서 그들은 항상 손을 잡고 다니며 잠시도 떨어져 있지 않았다.

  오랜 세월이 지난 그 부부의  친척이 유명한 의원을 데려와서  그들을 치료해주자, 부부는 다시 앞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먼저 눈을 뜬 남편이 옆에 웬 늙은 할머니가 앉아 있자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

  "당신은 누구요? 분명 누군가 내 부인을 바꿔치기해서 데려갔군."

  그때 눈을 뜨게 된 부인 역시 옆에 한 할아버지가 앉아 있는 모습을 보고 기겁하며 비명을 질렀다

  "누가 내 남편을 바꿔치기했단 말이오?"

  두 사람은 이내 소리높여 울기 시작했다. 의원을 소개한 친척은 부부의 행동에 어리둥절해 있다가 이내 그들에게 차근차근하게 설명해주었다.

  "자네들이 젊었을 때 실명한 이래 서로를 볼 수 없어서 이런 일이 생겼구먼. 사람이란 나이가 들면 쇠약해지고 얼굴에 주름살이 생기는 것은 자연의 이치라 피할 수가 없다네. 늙어서도 젊었을 때의 어여쁜 얼굴을 바라는 것은 마치 얼음  속에서 불을 구하려는 것과 마찬가지라네도대체 왜 우는 것인가? 두 사람 다 지나간 세월이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게."  <출요경>

 

    스물한번째 이야기-태워야 할 것

  옛날에 한 비구니가 사가라국에 포교하러 가는 길에 한  바라문을 만났다. 그 바라문은 다섯 가지 열로 몸을 달구고 있었는데, 이마에서 땀이 줄줄 흘러 가슴과 옆구리가 온통  젖어 있었다. 또 머리카락은 바싹 타고 입술도 말라 갈라졌는데, 사방에 놓인 불은 쇠라도 녹일 지경이었다근처에는 한 그루 나무도 없었고, 때는 한여름이라 그 바라문의 몸은 말라 비틀어져 있었다. 게다가 남루한 옷을 입고 하루 종일 열로 몸을 달구는 고행을 하고 있었기에 사람들은 그를 '남루한 옷을 입고 불을 쬐는 고행자'라고 불렀다.

  비구니는 그 모습을 보고 바라문에게 말했다.

"태워야 할 것은 태우지 않고, 태우지 않아야 할 것을 도리어 태우고 있으니 정말 바보 같은 짓을  하고 있구려!"

  바라문은 그 말에 불같이 화를 냈다.

  "도대체 태워야 할 것이 뭐란 말이오?"

  "마땅히 태워야 할 것은 바로 당신의 그 분노하는 마음이오. 그 마음을 태워버리면 진정 태운다고  할 수 있을 것이오. 이것은 소가 수레를 끄는 것과 같아 수레가 움직이지 않으면 마땅히 소를 때려야지 수레를 때려봐야 아무 소용이 없는 것과 같은 이치요몸은 수레에 그리고 마음은 소에 해당되니 마땅히마음을 다스리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이오. 그렇지 않고 몸만 괴롭히는 것은 부질없는 짓으로, 도를 이루는 데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하오."  <대장엄론경>

 

    스물두번째 이야기-제바보살과 바라문의 대화

  인도어로 '하늘'이라는 뜻을 가진 제바라는  이름의 보살이 남인도에 살고  있었다. 그는 지식이 매우 높고 슬기로운 학승으로 여러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한번은 제바보살이 한 사원에 머무르게 되었다그때 근처에 살고 있던 한  바라문이 그에게 논쟁을 걸어왔다. 그는  논쟁이라면 지금까지 져본 적이 없을 정도로 대단한 언변의 소유자였다. 그는 명칭에  근거해서 사물의 실제를 탐구하는 방법으로 상대방에게 질문을 퍼부어 끝내 대답을 하지 못하게 하는 방법을 잘 쓰곤 했다. 그는 제바보살의 명성을 한번 꺾어보겠다는 생각에 보살의 이름인 '하늘'을 가지고 물었다.

  바라문: "당신의 이름은 무엇인가?"

  제바: "하늘이다."

  바라문: "하늘은 누구인가?"

  제바: "바로나다."

  바라문: "나는 누구인가?"

  제바: "개다."

  바라문: "개는 누구인가?"

  제바: "당신이다."

  바라문: "당신은 누구인가?"

  제바: "하늘이다."

  바라문: "하늘은 누구인가?"

  제바: "바로 나다."

  바라문: "나는 누구인가?"

  제바: "개다."

  바라문: "개는 누구인가?"

  제바: "바로 당신이다."

  바라문: "당신은 누구인가?"

  제바: "하늘이다."

  이렇게 끊임없이 문답이 이어졌지만 바라문은 시종 유리한  입장을 점할 수 없었다. 그때서야 바라문은 제바보살의 지식이 높을 뿐만 아니라 재치 또한 대단함을 알고 패배를 인정하였다.  <대당서역기>

 

    스물세번째 이야기-백 개의 손가락

  사위성에 지식이 아주 높은 한 바라문이 오백 명의  제자를 거느리고 있었다. 그 중 수제자 앙굴마는 성품이 어질고 지혜가 뛰어난 자였는데, 특히 외모가 무척 수려하여 뭇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바라문의 아내는 평소 수제자 앙굴마를 연모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바라문이 외출하자 살며시 앙굴마에게 다가가 유혹했다. 그러자 앙굴마는 무릎을 꿇고 바라문의 아내에게 말했다.

  "스승이 아버지면 그 부인은 바로 제 어머니이십니다그런데 어찌 사람으로서 도리가 아닌 일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러자 바라문의 아내가 말했다.

  "굶주린 사람에게 양식을 주고 목마른 이에게 물을 주는 것이 왜 도가 아니라고 하는가?"

  "스승의 부인과 정을 통하는 것은 마치 독사를 몸에 두르는 것과 같습니다."

  바라문의 아내가 앙굴마가 끝까지 말을 들어주지 않자  앙심을 품었다. 그래서 바라문이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오늘 당신의 수제자 앙굴마가 당신이 외출한 틈을 타서 저를 겁탈하려고 했습니다."

  이에 머리끝까지 화가 난 바라문은 앙굴마에게 복수하고자 마음먹었다.

  '저 녀석에게 잘못된 가르침을 내려 살인을 저지르게 해서 이승에서는 국법에 따라 처형을 받고 내생에서는 지옥에 떨어지게 하리라.'

  생각을 마친 바라문은 앙굴마를 불러 말했다.

  "너의 지혜는 이미 높은 경지에 이르렀으나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이 하나 있다. 이 칼을 네게 주리니 사거리에 가서 지나가는 사람 백 명을 죽이거라. 그리고  손가락 하나씩을 베어 백 개의 손가락으로 된 목걸이를 만들면 마침내 도를 완성하게 될 것이다."

  앙굴마는 스승의 말에 당황했다.

  ', 스승님은 왜 그렇게 어렵고도 무서운 가르침을 내리신 것일까? 그렇다고 스승의 가름침을 어기는 것 역시 제자의 도리가 아니지 않는가?'

  앙굴마는 괴로워하면서 길을 걷다가 어느새 사거리에 이르렀다. 그때 그는 그만 이성을 잃고 마치 저승사자처럼 닥치는 대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칼로 찔러 죽이고서는  손가락을 베어 목걸이를 만들었다. 사거리에는 곧 시체가 산더미같이 쌓이고 피가 강물처럼 흘렀으며 온 시내에  비명과 통곡 소리가 가득했다. 그때 이 소식을 전해들은 부처님은 직접 앙굴마를 제도하기 위해 사거리  쪽으로 갔다. 도중에 만난 사람들이 부처님을 말리며 이렇게 말했다.

  "부처님, 이 길로 가시면 안 됩니다. 그곳에는 살인마가 있어 사람을 마구 죽이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이들이 내게 덤빈다 해도 두렵지 않거늘, 일개 범부 때문에 발걸음을 돌릴 수 는 없느니라."

  앙굴마는 아흔아홉 개의 손가락으로 목걸이를 만들고는 마지막 한 개를 채우려고 지나가는 사람이 없나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그때 앙굴마의 어머니가 저쪽에서 점심을 가지고  사거리로 오고 있었다. 실성한 앙굴마는 자기 어머니마저 몰라보고 어머니를 죽여 손가락 백 개를 채우려고 했다. 때마침 사거리에 도착한 부처님이 앙굴마를 제지하자 그는 부처님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 그러나 아무리 칼을 휘둘러도 부처님의 그림자에도 미치지못했다. 앙굴마는 소리쳤다.

  "출가자여, 거기 서라."

  "나는 이미 여기 멈춰선 지 오래인데, 미쳐 날뛰고 있는 것은 도리어 그대가 아닌가?"

  부처님의 이 말씀에 앙굴마는 제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앙굴마는 곧 칼을 버리고 털썩 무릎을 꿇고 부처님께 절을 하며 말했다.

  "제가 미혹하여 이루 말할 수 없는 큰 죄를 저질렀습니다. 부디 부처님께서는 이러한 저를 제도해주십시오."

  그래서 부처님은 앙굴마를 데리고  기수급고독원으로 돌아오셨다. 부처님께  제도받은 앙굴마는 얼마 안 있어 아라한과를 얻게 되었다그때쯤 살인마가 사거리에 나타나 백성을 마구  죽이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파사닉왕은  직접 군대를 이끌고 앙굴마를 잡으러 왔다. 그러나 이미 불문에 귀의해 스님이 된 앙굴마를 보고 이렇게 생각했다.

  '저런 극악무도한 자마저 당장 교화할 수 있는 부처님의 능력은 정말 크고도 높은 것이로구나.'

  파사닉왕은 도리어 앙굴마에게 예를 갖추고 돌아갔다. 한편  스님이 된 앙굴마는 시내에 걸식을 하러 나갔다.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앙굴마를 그냥 두지 않았다. 부모형제와 친구를 잃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앙굴마를 순식간에 피투성이로 만들어놓고 말았다. 그러나 앙굴마는 자신의 죄를 참회하며 조금도 억울하다는 생각을 갖지 않았다. 도리어 자기가 저지른 악행의 과보라고 생각하면서 그 고통을 의연하게 받아들였다.  <불설앙굴마경>

 

    스물네번째 이야기-왕의 환생

  아주 오랜 옛날 설두라건녕이라는 왕이 대국을 다스리고  있었다. 그는 팔만사천의 소국과 팔십억 개에 이르는 마을을 통치하였으며, 이만 명의 부인과 시녀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그는 자비심으로 모든 백성들을 보살피는 어진 왕이었다. 백성들 역시 그러한 왕을 마치 친아버지처럼 따르고 존경했다그러던 어느 날 하늘에 혜성이 출현하자 천문관이 국왕을 찾아와 말했다.

  "옛부터 혜성이 출현하면 십이년 간 큰 가뭄이 든다고 하는데, 이 일을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천문관의 보고를 받은 국왕은 수심에 잠겼다.

  '정말 그렇게 큰 가뭄이 들면 어쩌나? 그렇게 되면 수많은 백성들이 굶주려 죽을 텐데...'

  곧이어 국왕은 여러 대신들을 소집하여 대책을 세웠다. 그때 회의에 참석한 한 대신이 이렇게 말했다.  "대왕이시여, 우선 시급히 전국의 인구와 비축되어 있는 양식의 양이 얼마나 되는지 조사해봐야 합니다 .그래야 얼마나 버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국왕은 그 대신의 말에 따라 조사를 진행시켰다.   결과 아무리 최소 수준으로 배급량을 줄인다 할지라도 몇 년 버티지 못한다는 참담한 계산이 나왔다얼마 지나지않아 천문관의 예측대로 전국은 큰 가뭄에 시달리게 되었다. 이어 몇 년이 흐르자 마을마다 굶어죽은 백성의 시체가 산더미를  이루었다. 평소에 백성들을 끔찍히 아끼던  국왕은 이 일로 잠을 편히 이룰 수 없었다그러던 어느 날 국왕은 수심에 잠긴 마음을 조금이나마 달래보려고 부인과  몇몇 시녀들을 데리고 근처에 있는 강을 찾았다. 국왕은 그녀들과 함께 강변을 거닐다가 홀로 조용한 곳을 찾아 생각에 잠겼다.  '백성들이 제 명대로 살지 못하고, 이다지도 참담한 지경에 이른 것은 모두 내가 부덕한 탓이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더 이상 가뭄에 희생되는 백성이 없도록 해야 한다.'

  생각을 마친 국왕은 강변의 한 언덕 위로 올라가 천지신명에게 기원했다.

  "만 백성이 굶주려 죽는 모습을 차마 눈 뜨고  지켜볼 수가 없습니다. 이제 제 몸을 버리나니 원컨대 커다란 물고기로 다시 태어나 그 살로 굶주리는 백성들의 배를 채워주게 하소서."

  국왕은 기원을 끝내자 시퍼런 강물로 뛰어들었다. 잠시  후 국왕은 커다란 물고기로 환생하게 되었는데, 그 길이는 무려 오백 유순(유순은 인도의 거리 개념으로 멍에를 황소 수레에 걸고 하루에 갈 수  있는 거리를 말한다)이나 되었다. 그때 나무껍질을 벗겨 주린 배를 채우고 있던 다섯 사람이  물을 마시기 위해 강변으로 왔다가 큰 물고기를 보게 되었다. 큰 물고기는 그들에게 말했다.

  "배가 고프면 어서 내 살을 먹도록 하시오그리고 살을 베어 집으로 가지고 돌아가 다른이들에게도 나누어주도록 하시오. 또 이이야기를 뭇 사람들에게 알려 배고픈 자는 모두 내게 오도록 하시오."  다섯 사람은 큰 물고기의 말을 듣고  무척 기뻐하며 허겁지겁 배를 채우고선 각기  물고기의 살을 한 덩이씩 가지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그 이야기를 전했다이윽고 소문은 급속도로 퍼져 그 나라 모든 백성들이 큰 물고기의 살을 먹고 부지하게 되었다. 이 물고기의 살은 신기하게도 한 덩이를 베어내면 금방 다시 새 살이 돋아났다. 큰 물고기는 살점이 뜯겨나가 피를 흘리는 고통 속에서 가뭄이 끝날 때까지 계속해서 굶주린 백성들의 유일한 먹거리가 돼주었다곤경에 처한 백성들을 차마 그냥두고 볼  수 없어 자신의 몸을 버리면서 까지  커다란 서원을 세웠던 설두라건녕왕, 그의 환생인 그 신비롭고 커다란 물고기를 먹은 백성들은 마침내 천수를 다한 뒤에도 천상에 태어나는 복을 얻었다.  <현우경>

 

    스물다섯번째 이야기-뱃속의 아이

  부처님이 여러 대중들에게 설법하고 계실 때였다. 그때 부처님의 정법을 믿지 않고 외도(외도란  불교를 내도라고 부를 때 대칭되는 말로 불교 이외의  가르침을 말한다. 부처님 당시에는 많은 외도가 있었는데 그 중에서 제일 유명한 여섯사람을 육사외도라고 부른다)를 따르는 한 여인이 있었는데, 그녀의 이름은 전차녀였다. 그녀는 자기 스승보다 부처님이 수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걸 시샘하여 모종의 계략을 꾸며 부처님을 욕보이려고 했다. 그녀는 옷 속에  나무로 된 발우를 숨겨 배가 불룩하게 튀어나오게 하였다. 그리고 부처님이 설법하고 있는 곳으로 가 사람들 앞에서 외쳤다.

  "지금 말하고 있는 이 사람은 위선자입니다. 이 사람은 이미 나와 정을  통한 적이 있단 말이에요. 제 배를 보세요. 이 뱃속에는 바로 저 사람의 아이가 들어 있답니다."

  전차녀의 폭탄선언에 설법장은 이내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그럴 리가 없다고 굳게 믿는 사람도 많았지만, 금방 신심이 무너져 부처님을 비방하며 수군거리는 자도 있었다그때 그 자리에서 설법을 듣고 있던 제석천이 생쥐로 변신하여 전차녀의 옷 속으로 들어가 발우를 붙들어매고 있던 끈을 갉아서 끊어버렸다. 그러자  탁하는 소리와 함께 발우가 땅에  떨어졌다. 곁에 있던 사람이 그 발우를 집어들고 전차녀에게 말했다.

  "이게 바로 당신이 말한 그 아이요?"

  전차녀는 자신의 계략이 탄로나자 얼굴이 벌개진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때 갑자기 땅이 갈라지더니 전차녀를 삼켜버렸다.  <대당서역기>

 

    스물여섯번째 이야기-왕후가 된 계집종

  옛날 사위성에 야야달이라는 바라문이 살고있었다. 이 바라문은 수많은 금은보화와 여러 전원을 가진 부자였다. 그의 여러 전원중에는 미라원이라는 곳이 있었는데, 그곳은  야야달의 계집종 '황두'가 관리하고 있었다. 그녀는 별로 할 일이 없어 심심할 때면 언제나 멍한 표정을 짓고 이렇게 생각하곤 했다.

  '천한 계집종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는 내 신세, 언제나 이 처지를 면할 날이 올까?'

  그러나 매일 그런 생각을 해봐도  막상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 황두는  항상 이마를 찡그리고 한숨만 푹푹 쉬며 세월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야야달은 사람을 시켜 그녀에게  아침밥을 보냈다. 그때 부처님은 일반 비구승으로 변신하여 사위성에 탁발하러 왔는데, 그 모습이 멀리있는 황두의 두 눈에 들어왔다. 평소 마음속에 생각했던 바가 있던 황두는 갑자기 영감이 떠올랐다.

  '차라리 이 아침밥을 저 비구승에게 보시한다면 혹시 계집종의 처지를 벗어날 수 있는 일이 생길지도 몰라.'

  그래서 그녀는 조금도 아까워하는 마음없이 자신의 아침밥을 그 비구승에게 보시해버렸다. 이에 비구승은 그녀에게 인자한 미소를 짓고 합장하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몸을 돌려 비구승은 떠났다. 황두는 그후 미라원으로 돌아와 일을 했다. 이때 국왕인 파사닉왕이 시종들을 거느리고 사냥을 나왔다. 국왕의 시종들은 사슴떼를 앞서  나갔고, 파사닉왕은 홀로 마차를몰고서 미라원으로 왔다. 그날은 몹시 더웠는데, 파사닉왕은 미라원 안에  있는 커다란 종려나무가 잎이 무성한 것을 보자 곧 마차를 세우고 그 안으로 들어왔다그때 황두는 미라원의 과일나무들을 돌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낯선 사람이 느긋하게 걸어들어오는 모습을 보았다. 그녀는 그 사람이 화려한 옷을 입고  용모도 비범했으므로 분명 보통 사람은 아닐 것이라 생각해서 곧 다가가 친절하게 말했다.

  "이곳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얼른 자리를 잡고 앉아서 쉬도록 하십시오."

  황두는 그렇게 말하고는 입고  있던 겉옷을 벗어 파사닉왕이  깔고 앉도록 만들어주었다. 파사닉왕이 자리에 앉자 황두가 다시 말했다.

  "혹시 발을 씻어드려도 될까요?"

  "그렇게 하라."

  황두는 곧 시원한 물과 수건을 준비해 와선 파사닉왕의  발을 씻고 닦아주었다. 그러고 나서 또 물었다.

  "세수도 하시겠습니까?"

  파사닉왕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다시 물을 길어왔다. 그리고 세수가 끝나기를 기다려 말했다.

  "혹시 목이 마르실지 모르니 마실 물을 갖다 드리겠습니다."

  황두는 고운 목소리로 말하며 연못으로 가서 물을 떠다가 파사닉왕에게 바쳤다. 파사닉왕은 사냥하러 나온 지가 오래되어 몹시 갈증을 느끼고 있던 차였다. 그래서 얼른 그  물을 받아마셨는데, 물맛이 달콤하기 그지없었다. 황두는 물었다.

  "피곤하실지도 모르니 잠시 누워서 쉬도록 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그러고는 또 옷을 하나 벗어 왕이 누울 자리를  마련해주었다. 파사닉왕이 자리에 눕자 황두는 그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안마를 해주었다. 그녀는 다리  안마부터 시작해서 몸 전체를 주물러서 왕의 피로를 풀어주었다. 이때 파사닉왕의 눈에 황두는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처럼 아름답게 보였다. 그리고 그는 이런 생각을 했다.

  '이렇게 영리하고 착한 여자는 생전 처음 본다해야 할 일을 이렇게 척척 알아서  하는 여자는 정말 얻기 어려우리라.'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왕은 그녀에게 물었다.

  "당신은 어느 집안의 아가씨요?"

  "저는 야야달 바라문 집안의 계집종으로 이 미라원을 지키는 일을 맡고 있습니다."

  그녀가 대답을 막 마치자 왕의 시종들이 미라원 밖에 마차를 멈추고 재빨리 안으로 들어와선 왕의 주위에 늘어섰다. 그러자 왕은 한 시종을 보내 야야달 바라문을 불러오게 했다. 바라문은 국왕이 부른다는 말을 듣고 황급히 뛰어왔다. 국왕은 그에게 물었다.

  "이 황두라는 아가씨가 당신의 계집종 맞소?"

  "그렇습니다, 대왕이시여. 무슨 분부를 내리시려 합니까?"

  "난 이 아가씨를 처로 삼을 생각인데, 그대 생각은 어떻소?"

  "아니! 대왕이시여, 황두는 계집종에 불과한데 어찌 왕후로 삼겠다는 것입니까?"

  "그런 것은 상관없소. 내 마음은 이미 정해졌으니 값을 불러보도록 하시오."

  야야달은 국왕의 마음이 확고부동함을 알자 한 밑천 챙길 수 있다는 생각에 무슨 소리냐는 듯이 말했다.

  "값을 말하자면 천 냥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찌 감히 국왕과 흥정을 하겠습니까? 저는 조금도 아까워하는 마음 없이 그녀를 국왕에게 드리겠습니다."

  그러나 파사닉왕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안 되오, 안 돼! 내가 이미 당신의 종을 왕후로 삼겠다고 했는데, 왜 돈을 내지 않는단 말이오?"

  파사닉왕은 천 냥을 내어 야야달에게 주었다. 셈을 치른  후 파사닉왕은 기쁜 듯이 황두의 손을 잡고 마차에 올라 궁으로 돌아왔다. 이렇게 해서 미라원을 지키던 계집종 황두는 하루 아침에 출세하여 미라부인이 되었다. 국왕은 그녀를 무척 사랑해서 후에 정궁왕후로 삼았다황두는 화려한 궁전에서 기쁜 나날을 보내며 종종 이렇게 생각하곤 했다.

  '마침내 종의 신분을 벗어나 왕족이 되었구나. 그때 비구승에게 아침밥을  보시했던 것이 오늘날 나의 인생을 이렇게 변화시켰구나.'  <사분율>

 

    스물일곱번째 이야기-아내를 남에게 주다

  부처님이 이 세상에 계실 때 욱가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는 매우 부자여서 천하절색의 처첩들을 여럿 거느리고 날이면 날마다 술과 여색에 빠져 살았다어느 날 욱가는 처첩들을 데리고 비사리 태자 소유의 숲에 가서 음주가무를 즐기다가 술을 많이 마신탓에 나무 아래 누워 깜빡 잠이 들고 말았다그때 부처님은 길을 지나가다가 그 모습을 보고 욱가를 제도할 인연이 있음을 알고 그곳에서 멀지 않은 나무 아래로 가서 가부좌를 한 채 광명선정에  들었다. 그러자 부처님의 몸에서 황금색의 찬란한 빛이 방출돼 욱가를 비추는 것이었다그때 욱가는 마치 더없이 감미로운  감로수를 마신 것처럼 단번에 술이 깨버렸다. 술이 깬 욱가는 그 빛을 따라 자기도 모르게 부처님에게 다가가 예배를 드렸다.

  그러자 부처님은 광명선정에서 나와 욱가에게 미소를 지어보이며 사성제(사성제는 네 개의 가장 훌륭한 진리라는 뜻으로 가장 기본적인  불교 교설인 고, , 도를이르는 말이다)의 이치를 가르치셨다. 부처님의 설법을 들은 욱가는 매우 기뻐하며 다시 부처님께 절하며 말했다.

  "위대하신 부처님에게 귀의합니다. 저는 앞으로 오계(오계는 재가 불자가 지켜야 할 다섯 가지 계율이다. 첫째 산 목숨을 죽이지 말라. 둘째 도둑질 하지  말라. 셋째 음행하지 말라. 넷째 거짓말 하지 말라. 다섯째 술 마시지 말라)를 받아지녀 진정한 거사(거사는 보통  출가하지 않고 집에 있으면서 불교에 귀의한 남자를 말한다)가 되겠습니다."

  부처님은 욱가의 서원에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후  욱가거사는 집으로 돌아와 여러 처첩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미 부처님 앞에서 계율을  지키기로 서원을 세웠고, 구분의 가르침을  받들기로 했다. 너희들 중에 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나와 함께 수행과 보시에 힘써 복을 쌓도록 하자. 원하지 않는 사람은 강요하지 않을 테니 본가로 돌아가도록 하라."

  그때 욱가거사의 첫째 부인은 마음속에 두고 있는 남자가 있어 이렇게 말했다.

  "그렇다면 제가 남의 부인이 되는 것도 허락하시겠습니까?"

  이에 욱가거사는 그 사람을 오라고 한 후 말했다.

  "이제 내 부인을 당신이 데리고 가도록 하시오."

  그러자 그 사람은 못 믿겠다는 듯이 도리어 겁을 먹은 채 말했다.

  "욱가거사, 지금은 이렇게 말해놓고 혹시 나중에 나를 죽이려 하는 게 아니오?"

  "그럴 리가 있겠소? 나는 이미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수행을 하려고 결심했소. 부인과 당신은 이미 서로 좋아하는 사이니, 앞으로 좋은 부부의 연을 맺도록 하시오. 그리고 이  일에 대해 결코 후회하거나 번복하는 일이 없을 터이니 안심하시오."  <중아함경>

 

2장 이것은 괴로움의 원인이다

    스물여덟번째 이야기-나는 누구인가

  옛날에 왕의 명령을 받은 사신이 먼 지방에 다녀오게 되었다밤이 되자 그는 어느 빈 집에 묵게 되었다. 밤이 깊어지자 어디선가 한 귀신이 시체 하나를 메고 그 집으로 들어왔다. 곧이어 또 하나의 귀신이 들어오더니 먼저 온 귀신에게 욕을 해대는 것이었다.

  "이 시체는 내 것인데, 왜 네가 둘러메고 가느냐?"

  두 귀신은 시체를 놓고 티격태격 싸우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먼저 온 귀신이 말했다.

  "이 집에 우리말고 한 사람이 더 있으니, 그 사람에게 이 시체의 임자가 누구인지 물어보도록 하자."

  그 말을 엿들은 사신은 덜덜 떨며 생각했다.

  '지금 두 귀신이 모두 흥분해 있으니 사실대로 이야기해도  죽을 것이고 거짓말을 해도 죽을 것이 눈에 보듯 뻔하다. 이 일을 어쩌면 좋단 말이냐?'

  망설이던 그 사람은 넌지시 이야기했다.

  "이 시체는 먼저 온 귀신의 것이오."

  뒤에 온 귀신은 그 말을 듣자마자 화를 벌컥 내며 그 사람의 팔을 뜯어 내버렸다. 그러자 먼저 온 귀신이 시체의 팔을 뜯어 그 사람에게 붙여주었다이와 같은 일이 반복되어 뒤에 온  귀신이 다리, 머리 등을 뜯어내면 곧 먼저 온 귀신이 시체에서 해당되는  부분을 뜯어 그 사람에게 붙여 주었다. 그러다가 두 귀신은 싸움에 지친 듯 시체의 나머지 부분을 먹고는 그 집을 떠나버렸다빈 집에 홀로 남겨진 그 사람은 번뇌에 빠졌다.

  '부모님이 낳아주신 내 몸은 이미 귀신들이 다 먹어버렸고, 나는 생면부지의 다른  사람 몸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나는 존재하는 것일까? 존재한다고 말하면 생면부지의 몸이 있을 뿐이고,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면 지금 여기에 있는 몸은 무엇으로 설명한단 말인가?'

  그 사람은 괴로워하다가 잠이 들었다. 다음날 그는 길을 가다가 한 절을 지나게 되었다. 그는 절로 들어가서 스님들에게 자신이 겪은 일을 설명하며 자신의 존재 여부를 물었다그러자 스님들이 물었다.

  "당신은 자신이 누구라고 생각하오?"

  "저도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스님들이 말했다.

  "당신은 무아의 도리를 너무도 쉽게 깨달았구료."  <잡비유경>

 

    스물아홉번째 이야기-미녀에게 현혹된 왕

  우전왕은 대단한 호색한이었다. 그런데 출세에 눈이 먼 어떤 사람이 우전왕의 그런 점을 알고선 비위를 맞추고자 천하절색의 미녀를 구해다가 바쳤다그녀는 얼굴이 얼마나 예쁜지 날아가는 새들도 그녀의  미모를 흠모할 정도였다. 우전왕은 그런 그녀에게 빠져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 미녀가 우전왕의  총애를 받는 바람에 미녀의 아버지는 하루 아침에 대신이 되었고, 미녀를 데려온 그 사람은 한 재산을  모았을 뿐만 아니라 가장 총애 받는 신하가 되었다. 우전왕은 미녀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들어주었고, 새로운 궁전을 지어 수많은 몸종을 딸려주었다. 또 일천 명의 가무 악대를 만들어 미녀가 언제나  감미로운 음악과 춤을 즐기게 해주었다. 그는 미녀에게 완전히 빠져 그녀를 왕비로 삼을 생각을 했다그러자 지금의 왕비가 점점 눈엣가시처럼 보이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독화살로 왕비를 죽일 작정을 하였다.

  왕비는 독실한 불교신자로 여러 해에 걸친 수행으로 수다원의 경지에 이르렀기 때문에 칼과 창으로도죽일 수 없는 존재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우전왕은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어느날 그는 왕비가 산책을 나가자 독화살을 준비하고 산책로 근처에 숨어 있었다. 이윽고 왕비가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오자 우전왕은 독화살을 날렸다. 독화살이 막 왕비의 등에 명중되려고 하는 순간 마치 마술처럼 독화살은 왕비의 몸을 세 바퀴 돌고선  도리어 우전왕의 얼굴 앞에 떨어지는 것이었다. 우전왕은 갖고 있는 독화살을 모두 쏘았지만 그 결과는  매 한 가지였다. 왕비는 우전왕이 독화살로 자기를 죽이려 하는 모습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지만 화를 내지 않고 도리어  입으로는 염불을 하며 그를 향해 미소를 지어보였다. 이에 우전왕은 왕비의 법력에 깜짝 놀라 급히 독화살을 내던졌다. 그는 미녀에게 넋을 잃고 방탕한 생활을 했던 일을 왕비 앞에서 참회했다그후 우전왕은 부처님을 찾아가 계를 받고  자신의 잘못을 용서해달라고 하기 위해서  코끼리가 끄는 수레를 타고 궁을 나섰다. 부처님이 계신 곳에 온 우전왕은 부처님께 에배를 드린 후 고개 숙여 참회했다.

  "제가 커다란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미녀에게 현혹되어  방탕한 생활을 일삼았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부처님의 제자인 왕비를 죽이려고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왕비는 도리어  무량한 자비심으로 저의 죄를 뉘우치게 만들었습니다. 이제 저는 부처님의 높고 높은 법력을 믿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원컨대 부처님께 귀의하오니, 대자대비하신 부처님이시여, 제가 과거를 뉘우치고 새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불설우전왕경>

 

    서른번째 이야기-아들을 낳으려면

  옛날에 아들 하나를 둔 어떤 부인이 있었다. 그 부인은  또 아들을 낳고 싶어 주위 사람들에게 그 방법을 물었다.

  "다시 아들을 낳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러자 한 할머니가 말했다.

  "하늘에 정성껏 제사를 올리면 아들을 낳을 수 있네."

  "그렇다면 제물로는 뭘 바쳐야 하죠?"

  "자네 아들을 죽여 그 피를 희생물로 바치면 반드시 더 많은 아들을 낳을 수 있을 것이네."

  할머니의 말을 들은 그 부인은 집으로 돌아와 외아들을  죽으려 들었다. 그때 곁에 있던 한 지혜로운 사람이 비웃으며 꾸짖었다.

  "어찌 이다지도 어리석을 수 있단 말인가? 아직 낳지도 않은 아들을 얻으려고 지금 살아 숨쉬고 있는 외아들을 죽이려 하다니."  <백유경>

 

    서른한번째 이야기-판관의 양심

  옛날에 두 형제가 있었는데, 형의 이름은  단야세질이었고, 아우는 시라세질이었다. 단야세질은 그 사람됨이 믿음직스럽고 보시하기를 좋아하여 항상 힘닿는 대로 가난한 사람을 도왔다. 그래서 그 나라 사람치고 단야세질을 칭찬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이 소문이 임금의 귀에까지 들어가 급기야 왕은 단야세질을 판관에 임명하여 모든 소송 사건을 담당하게 했다. 그런데 당시 그 나라 법은 돈을 빌리고자 할 때에는 따로 차용증을 쓰는 것이 아니라 판관 앞에서 구두로 계약을 하고 판관이  그 계약의 증인이 되었다.

  그때 한 상인이 외국으로 장사를 하러 나가려던 참에 밑천이 달려 시라세질에게 돈을 빌리고자 했다. 이에 시라세질은 나이 어린 아들을 대동하고 그 상인과 함께 형이자  판관인 단야세질을 찾아가 이렇게 말했다.

  "형님, 제가 오늘 이 상인에게 돈을 빌려주려고 하는데, 증인이 되어 주시기 바랍니다. 만약 이 상인이 외국에서 돌아와 돈을 갚기 전에 제가 죽기라도 한다면 아들이 대신 그 돈을 받게 해 주십시오."

  단야세질은 계약의 증인이 되었다. 그런데 그 일이 있은 몇 년 후  시라세질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에게서 돈을 빌린 상인은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갔다가 그만 폭풍우에 휘말려 선적했던 물건을 몽땅 잃고 간신히 목숨만 부지한 채 본국으로 돌아왔다. 빈털터리가 되어 거지꼴로 돌아온 상인을 만난 시라세질의 아들은 이렇게 생각했다.

  '아버지에게 돈을 빌려갔던 저 상인이 불행히도 폭풍우에 모든 물건을  잃고 거지꼴이 되었는데, 지금 돈을 돌려달라고 재촉하는 것은 사람의 도리가 아니다. 설령 재촉한다고 해도 저 상인이 무슨 방법으로 돈을 갚겠는가? 언젠가 반드시 돈을 돌려받을 수 있는 날이 오겠지.'

  이렇게 해서 시라세질의 아들은 그 상인에게 위로의 말만  하고 돈 이야기는 꺼내지도 않았다. 그 후 그 상인은 다시 동분서주하여 밑천을  마련한 다음 해외로 나갔다. 이번에  그는 크게 성공해서 수많은 금은 보화를 가지고 귀국했다. 그러나 부자가 된 상인은 금세 마음이 변했다.

  '지난번 시라세질의 아들이 내게 돈을 돌려달라고 하지 않았던  것은 그 당시 그가 너무 어려서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아니면 그때 내 처지를 이해해서 그랬던 것일까? 어쨌든 한번 시험해보기로 하자.'

  상인은 곧 화려한 옷을 입고 비싼 말에 올라탄 채 시내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그 모습을 본 시라세질의 아들은 그 상인이 이제는 돈을 벌었으므로  옛날에 빌려주었던 돈을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시라세질의 아들은 상인 곁에 다가가 이렇게 말했다.

  "큰 부자가 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저희 아버님에게서 빌려갔던 돈을 기억하시겠죠? 이제 돌려주셨으면 합니다."

  그러자 상인이 대답했다.

  "그렇게 하고말고."

  그러나 상인은 돌려줄 원금보다 이자가 많다는 데 생각이 미치자 딴 마음을 품게 되었다. 그는 곧 보배 구슬 하나를 챙겨 판관의 부인을 찾아가 말했다.

  "저는 시라세질에게 약간의 돈만 빌렸을 뿐인데, 오늘날 그 아들이 이자까지 붙여 터무니없이 많은 돈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부인,   보배구슬은 십만 냥도 더 나가는  아주 값진 것입니다. 부인이 나서서 일을 좀 처리해주십시오. 그저 판관 어르신께서 모르는 척만 하신다면..."

  값진 보배 구슬에 넋을 잃은 판관의 부인은 탐욕스럽게 그것을 치마폭에 감추며 말했다.

  "당신의 정성이 이러한데, 내 어찌 모르는 척하겠소. 힘써 보리다."

  그날 밤 부인은 판관이 침실에 들자 상인의 부탁을 관철시키려고 갖은  수단을 다 동원해서 남편에게 아양을 떨었다. 부인이 사정 이야기를 하자, 이를 들은 판관은 화를 벌컥 내며 말했다.

  "어떻게 그러 수 있단 말이오? 대왕께서 나를 철저히 신임하여 판관에 임명하신 것인데, 도리어 거짓말을 하라니... 절대로 그렇게 할 수는 없소."

  다음날 부인은 상인이 찾아오자 보배구슬을 돌려주며 사정을 설명했다. 상인은 포기하지 않고 오히려 이십만 냥의 가치를 지닌 보배 구슬을 내보이며 말했다.

  "부인, 다시 한 번만 판관 어르신께 잘 말씀드려 보십시오. 일이 잘되기만  하면 삼십만 냥 어치의 보배 구슬이 저절로 생기는 것 아닙니까? 시라세질의  아들이 비록 조카라고는 하지만, 그가 돈을 돌려받는다고 해서 부인께 득될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이십만 냥 어치의 보배 구슬에 입이 딱 벌어진 부인은 그날 저녁 다시 단야세질에게 말했다.

  "여보, 제가 어제 말씀드린 그 일은 별로 큰일도 아니잖아요? 제발 한번만 제 말씀 좀 들어주세요."

  "당신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오?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오. 판관된 자가 거짓말을 하면 앞으로 모든 사람들이 믿지 않게 될 뿐만 아니라, 내세에는  지옥에 떨어져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게 될 것이오."

  그러자 부인은 침대 곁에 누워 있던 어린 아들을 얼싸안고 저만치 떨어져 눈물을 흘리며 판관을 위협했다.

  "제가 당신의 처로 살면서 이렇게 아들까지 낳아주었는데, 그 조그마한 부탁 하나 들어줄 수 없단  말이에요? 만일 당신이 고집대로 하신다면, 전 이 아이를 죽이고 나서 자살해버릴 거예요."

  단야세질은 깜짝 놀라며 속으로 생각했다.

  '어렵게 얻은 외아들인데 죽이겠다는 말을 함부로 하다니... 아들이 죽기라도 한다면 대가 끊어지고 말 것이다. 그렇다고 아내의 말을 따르면 살아서는 뭇 사람들의 신임을 얻지 못할 것이요, 죽어서는 지옥에 떨어질 터인데, 이 일을 어쩐다?'

  단야세질은 어찌할 줄 모르고 한동안 멍하니 서있다가 급기야 부인의 청을 들어주겠노라 대답하고 말았다. 그러자 부인은 뛸 듯이 기뻐하며 아들을 내려놓았다그 다음날 부인은 다시 방문한 상인에게 말했다.

  "판관 어른께서 당신 말대로 하시겠다고 했소."

  상인은 역시 돈으로 안 되는  일은 없다고 생각하면서 춤을 덩실덩실  추며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칠보로 장식한 커다란 코끼리가 끄는  수레를 타고 온 시내를 거들먹거리며  돌아다녔다. 그 모습을 본 시라세질의 아들은 이제 그 상인에게서 돈을  돌려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기뻐하면서  다가가 말했다.

  "저번에 저희 아버님께 빌린 돈을 주신다고 하셨는데 언제쯤 주실 수 있을까요?"

  그러자 그 상인은 시치미를 떼며 말했다.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게요? 내가 돈을 빌리다니? 증인이라도 있소?"

  "아버님 생전에 판관 앞에서 계약을 맺지 않았습니까? 바로 판관 어르신이 증인입니다."

  "기억나는 바가 없으니, 정 그렇다면 판관 어르신을 찾아가 물어보도록 합시다."

  그렇게 해서 두 사람은 판관을 만나러 갔다. 시라세질의 아들이 먼저 말했다.

  "이 상인이 저희 아버님께 돈을 빌렸을 때 백부님이 증인이 되셨지 않습니까? 저는 그때 나이가 어리긴 했지만 똑똑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단야세질은 조카의 초롱초롱한 눈동자를 애써 외면하며 말했다.

  "그런일 없다."

  "백부님, 그때 그 자리에 분명히 계셔놓고 어떻게 지금 그리 말씀하실 수가 있습니까? 혹시 뇌물이라도 받은 게 아닙니까?"

  "그게 무슨 소리냐? 그런  없다."

  "평소 백부님이 충직한 탓에 국왕께서 판관으로 임명하셨고, 모든 백성들이 그런 백부님을 신임해왔습니다. 저는 백부님의 조카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억울한 일을 당하고 있으니, 다른 사람들은 앞으로 어떻겠습니까? 백부님이 지금 커다란  잘못을 범하고 있다는 사실은  나중에 스스로 깨닫게  되실 것입니다."

  조카의 이야기를 들은 단야세질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스스로 판관의 옷을 벗어버렸다.  <현우경>

 

    서른두번째 이야기-질투의 결과

  비마질다는 아주 오랜 옛날 겁초에 태어나 뒤에 천신이 되었다. 어느 날 그는 다른 여러 천신들과 함께 물놀이를 했다. 그런데 파도가 몸을 자극하자 그만 정액이 흘러나와 저절로 알의 모습으로 잉태되었다. 그 알은 물속에서 부화하여 피부가 거무스름한 한 여자 아이가 탄생하였다이 아이는 물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어른이 된 뒤에도 항상 물속에서 놀며 지냈다어느 날 성숙한 여인이 된 그녀는 물속에서 천지의  정기를 받아들여 자기도 모르는 새 임신을 했다. 오래지 않아 그녀는 한 남자 아이를 낳았다. 그 아이는  매우  기괴하게 생겨 아홉 개의 머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 각각의 머리에는 천 개의 눈이 달렸으며 입에서는 맹렬한 불꽃을  내뿜었다. 또 구백구십 개의 손과 여덟 개의 다리를 가지고 있었다. 이 아이는 바다에 살면서 진흙으로 연명하다가 나중에 뭇 아수라의 왕이 되었다아수라왕은 향산에 사는 건달바의 딸을 아내로 삼았는데그녀는 얼굴이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피부는 마치 백옥처럼 희었다. 나중에 그 둘  사이에 딸아이가 태어났는데, 그 아이는 세상  누구도 비할 수 없을 만큼 예뻤다이에 제석천은 사자를 아수라왕에게 보내 사위가 되고  싶다는 말을 전하게 했다. 그러자 아수라왕이 말했다.

  "네 주인이 나를 칠보궁전에 모신다면, 딸아이를 주겠노라."

  제석천은 그 말을 듣고 보관을 벗어 아수라왕에게 준  다음 칠보 궁전에 모셨다. 그리고 제석천은 아수라왕의 딸을 데려와 아내로 삼고 그 이름을 '열의'라고 지어주었다. 제석천의 총애가 계속되자 그녀는 기고만장해져 이기적인 성격을 갖게 되었다. 그러자 제석천도  점점 그런 그녀에게 싫증을 내기 시작했다.

  어느 날 제석천은 천녀들을 데리고 물놀이를 가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그 모습을 본 열의는 그만 질투심이 생겨 몰래 야차(야차는 불전에 자주 등장하는 귀졸의 일종이다)를 아버지에게 보내 제석천이 자기를 버리고 다른 천녀들과 즐긴다고 전했다. 아수라왕은 야차가 전한 말을 듣고 불같이 화를 냈다곧이어 아수라왕은 귀신 병사들을 이끌고 제석천을 치러갔다. 그는 대해 한가운데 딱 버티고 서서 수미산(수미산은 고대 인도의 세계관에서 볼 때 이 세계의 한 중앙에 있다고 하는 거대한 산이다) 정상을 노려보았다. 그러고는 구백구십 개의 손을 동시에 써서 수미산을 뒤흔들어놓았다. 그러자 삽시간에 사해의 파도가 하늘까지 출렁거리면서 천지가 어두워지고 뇌성벽력이 떨어졌다. 제석천은 너무나 두려워 어디로 도망가야 할지 모를 정도였다그때 한 천신이 제석천에게 급히 말했다.

  "부처님께서는 전에 반야바라밀다 주문을 외면 능히 요마를 항복시킬 수  있다고 말하신 적이 있습니다 .지금 그 주문을 외우시면 귀신 병사들은 혼비백산하여 스스로 물러날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 제석천은 곧 여러 천신 무리들을 소집하여 선법전에서 향을 사르고 부처님께 예배한 후 서원을 세웠다. 그리고 여러 천신 무리들과 함께 목청껏 반야바라밀다심경을 독송했다. 그러자 하늘에서 톱니바퀴처럼 생긴 커다란 네 개의 칼이 쏜살같이  달려들어 아수라왕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아수라왕의 코와 손 그리고 발이  몸에서 떨어져나가 피가 솟구치기 시작하더니  바닷물이 온통 핏빛으로 물들어버렸다. 그 모습을 본 귀신 병사들은 모두 몸을 부르르 떨며 앞다투어 도망쳤다. 아수라왕은 갈팡질팡 어쩔 줄을 몰라하다가 연뿌리 구멍 속으로 도망쳐 겨우 목숨만 부지했다열의는 아버지 아수라왕이 처참한 꼴을 당하자 그때서야  후회가 막급했다. 그녀는 결국 질투 때문에 아버지를 망치고 자신의 행복마저 잃었던 것이다.  <불설관불삼매해경>

 

    서른세번째 이야기-전생의 약속

  반제라는 나라에 우달나라는 왕이 있었다. 그 나라는 매우 풍요로워 백성들은 왕의 선정을 칭송해 마지않았다. 우달나왕은 이만 명의 부인을 거느리고 있었는데, 그 첫째 부인의 이름은 월명이었다우달나왕은 특히 월명부인을 몹시 사랑하여 때때로 잔치를 베풀어 음악을 연주하게 하고는 그녀의 춤을 바라보는 것을 최고의 즐거움으로 삼았다. 그녀가 가장 좋은 옷을 입고 여러 가지 보석으로 만든 장신구를 달고 춤을 추면 마치 천녀가 하강한 듯해서 뭇 사람들이 넋을 잃고 지켜보곤 했다평소 왕은 관상을 잘 보았는데, 어느 날 월명부인의 관상을  보자 죽을 날이 멀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기껏해야 육 개월 정도 살 운명이었던 것이다. 왕은 사랑하는 사람이  곧 죽으리라는 사실에 마음이 아파 월명부인을 보지 않고 애써  피하려 했다. 그녀는 갑자기 변한  왕의 태도를 의아하게 여겨 그 이유를 물었으나 왕은 대답해주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가 끈질기게  묻자 왕은 입을 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대의 관상을 보니 죽을 날이 멀지 않았소.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질 것이 가슴 아파 애써 피하려 했던 것이오."

  "대왕이시여, 생명 있는 자가 죽게 되는 것은 우주의 원리인데 어찌 가슴 아파 하시는 것입니까? 대왕께서 저를 정말 사랑하신다면 죽기 전에 제가 출가수도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부인이 출가수도하면 비록 도를 깨닫지 못한다고 해도 그 공덕으로 반드시 천상에 태어나게 될 것이오. 천상에 태어나게 되면 다시 내게로 돌아온다고 약속하시오. 그러면 출가를 허락하리다."

  월명부인은 우달나왕과 약속을 했다. 그러고는 곧 출가수행에 들어갔다. 일국의 왕비가 욕심을 버리고 출가했다는 소식을 듣자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그  공덕을 칭송했다. 그러나 월명부인은 그것이 수행생활에 도리어 방해가 됨을 알고 그들을 피해  이곳저곳으로 돌아다니며 수행을 게속했다. 그러기를 육 개월 만에 그녀는 아나함과(아나함과는 소승 4과 중의 제3과로 아나함이란 욕계에서 죽어 색계무색계에 나고는 번뇌가 없어져서 다시 이 세상에 돌아오지 않는다는 뜻이다)를 얻을 수 있었다얼마 후 그녀는 수명을 마치고 색계(색계는 정묘한 물질로 이루어진 세계로 사선을 닦은 사람이 사후 태어나는 천계이다)의 하늘에 태어났다그녀는 우달나왕과의 약속을 기억하고  왕을 찾아가기로 했다. 그러나 그때 왕은 여러 가지 욕망에 빠져 진리의 가르침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그녀는 생각 끝에 무서운 나찰(나찰은 악귀를 일컫는 말로서 남자 나찰은 추하고 여자 나찰은 아름답게 생겼으며 언제나 사람의 혈육을 먹는다고 한다)  변신하에 왕의 침상 곁에 홀연히 나타났다그때 잠에서 깬 왕은 나찰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러자 나찰이 말했다.

  "네 아무리 수많은 백성을 가지고 있다 해도 네 목숨은 이제 내 손안에 있다. 죽음이 임박했으니 무슨 인연으로 살아 남겠는가?"

  "나는 특별한 인연은 없고 그저 과거에 지은 선업으로 천상에 태어날 수 있다고 믿는 바이오."

  "그러한 인연만이 의지할 만한 것이고, 다른 이치는 없노라."

  "그런데 당신은 도대체 무슨 신이길래 나를 이처럼 놀라게 하는 것이오?"

  "대왕이시여, 저는 원래 월명입니다. 전생에 왕과 했던 약속 때문에 오늘 이렇게 찾아온 것입니다."

  "무서운 나찰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어찌 그 말을 믿을 수 있겠소본래의 월명부인 모습을 다시 보여준다면 믿겠소."

  그러자 나찰은 곧 생전의 아름다운  월명부인의 모습으로 변해 왕의 옆에  섰다. 왕은 그 사랑스러운 모습에 월명부인을 껴안으려고 했다. 그녀는 왕이 아직  애욕을 버리지 못했음을 안타깝게 생각하며 몸을 허공으로 띄운 다음 말했다.

  "대왕이시여, 육신은 무상한 것으로 눈 깜짝 할 사이도 지탱하기  어렵습니다. 마치 아침 이슬이 해가 뜨면 사라지고 마는 것과 같이 덧없는 것인데어찌 대왕께서는 육신을 탐하는 것입니까? 젊음과 건강함도 늙음으로 인해 멸하고, 모든 감각기능이 둔해져 눈이 있어도 잘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잘 듣지 못하게 됩니다. 또 형상이 무너지고 살이 썩으면 아무런 가치도  없으니 마치 술을 빚고 난 후 그 찌꺼기가 아무 쓸모없는 것과 같습니다. 대왕의 육신도 이젠 늙었으니 즐길 만한 것은 남아 있지 않고 오직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아무리  아직 육신이 살아 있다고 해도  항상 죽음의 그림자는 같이 있는 것입니다. 대왕께서는 보지 못하셨습니까? 어머니 탯속에서 죽는 이도 있고, 태어나자마자 죽는 이도 있습니다. 또 젊어서 요절하는 이도 있고, 늙어서 죽는 이도 있습니다. 이처럼 육신은 약하고 위태로운 것으로 죽음이라는 도둑이 항상 따르는 이상 잠시라도 믿을 수 없습니다. 그렇건만 대왕께서는 아직도 제 몸을 탐하시는 것입니까? 수많은 궁녀와 여러가지  욕망, 나라와 재물 그리고 처자식 모두가 ''의 것은 아닙니다. 그러한 것들 중에서 죽은 후에도  ''를 따르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자기 몸도 예외일 수없습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이들은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계속해서 생사의 바다를 전전하고 있습니다. 대왕께서는 본래 지혜로운 분이신데 어찌 출가수도할 생각을 하지 않으십니까?"

  우달나왕은 월명부인의 가르침을 듣고 출가수도하기로 결심했다이에 월명부인은 마지막 당부를 남기고 떠나갔다.

  "출가수도하시려면 반드시 좋은 스승을 만나 진리의 가르침을 받도록 하세요. 그리고 그 가르침을 밤낮없이 잘 받들어 행하시기 바랍니다."

  다음날 아침 우달나왕은 마침내 출가를 단행했다. 그러다가 마가다국에 이르러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아라한의 지위를 얻게 되었다어느 날 그는 왕사성에 들어가 음식을 구걸한 다음  숲속으로 돌아와 먹고 있었다. 그때 병사왕이 그 모습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그대는 원래 왕으로 얼마나 큰 부귀영화를 누렸었는가? 그런데 이제  거지꼴로 걸식을 하니 무슨 즐거움이 있겠는가? 만약 지금이라도 수행을 포기하면 그대에게 이 나라의 절반을 통치하게 하리라."

  "나는 출가하기 전에 큰 나라의 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것을 버렸는데, 이제 어찌 작은  것을 다시 취할 마음이 있겠는가?"

  "그대가 왕이었을 때에는 아름다운 접시에 담긴 산해진미를 먹었을텐데 이제  질그릇 발우에 남이 먹다 남긴 밥을 먹으려 하니 어찌 목에 넘어가겠는가? 또 외출할 때에는  수많은 병사들이 호위했을 텐데 지금은 혼자 돌아다니려니 어찌 두렵지  않겠는가? 그리고 궁전에 있으면 수많은  궁녀들에게 둘러싸여 그녀들의 재롱을 즐기며 편히 잤겠거늘 지금은 홀로 풀위에 드러누워 잠을 자야 하니 어찌 괴롭지 않겠는가?"

  "나는 지금의 상태로도 만족하며 더 이상의 쾌락을 탐하지 않소."

  "그대는 정말 불쌍한 사람이오."

  "정말 불쌍한 사람은 바로 당신이오. 그대는 아직도 여러 가지 욕망에 쫓겨 자유롭지 못하나 나는  이제 모든 욕심으로부터 자유로워졌으니, 이 어찌 기쁜 일이 아니겠소?"

  병사왕은 우달나왕의 말을 듣고 아무 대꾸도 하지 못한 채 돌아갔다.  <불설잡장경>

 

    서른네번째 이야기-못생긴 여자의 기적

  부처님이 사위국의 기수급고독원에 계실 때의 일이다. 그때 파사닉왕과 마리부인 사이에 딸아이가 태어났는데, 그 모습이 얼마나 추한지 피부는 흡사 뱀껍질 같고 머리칼은 마치 말꼬리마냥 억세기만 했다. 딸아이 때문에 걱정이 태산 같던 파사닉왕은 다른 이들이 딸아이를 보지 못하게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한편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딸아이가 마치 사람같지 않은 추한 모습을 지니고 있으나  마리부인의 소생인 만큼 잘 길러야 할 것이다.'

  딸이 커서 시집갈 나이가 되자 왕은 매일 근심에 싸여 있다가 한 신하에게 말했다.

  "경이 사윗감을 구해보도록 하구려. 본래 호족 가문이지만 지금은 빈곤하여 재산이 없는 자라면 가능하지 않겠소?"

  왕명을 받은 신하는 널리 사람을 구하다가 이윽고 한 빈곤한 호족의  아들을 찾아내 파사닉왕에게 데리고 갔다. 왕은 그 사내를 밀실로 데리고 가 은밀하게 사정을 이야기했다.

  "자네가 본래 호족 출신이지만 지금은 매우 빈곤하다는 사실을 들어알고 있네. 내 딸이 비록 추한  용모를 가졌지만 자네가 거절하지 말고 내 딸을 받아주었으면 하네."

  그 사내는 파사닉왕 앞에 무릎을 꿇고 말했다.

  "마땅히 대왕의 분부에 따르겠습니다. 설사 개를 하사하신다 할지라도  저는 거역하지 않겠사온데, 하물며 마리부인의 소생을 제가 어찌 거절하겠습니까?"

  이에 왕은 그 빈곤한 사내에게 집을 마련해주고 자신의 딸을 아내로 삼게 했다. 그리고 그 집에 일곱 겹의 대문을 설치하고 나서 사위에게 부탁했다.

  "외출할 때면 자네만이 문을 열고 닫아 다른이들이 내 딸의 추한 모습을 보지 못하도록 하게그리고 항상 문을 닫아걸고 딸아이를 절대 집밖으로 내보내지 말아야 하네."

  왕은 딸과 사위에게 넘치도록 물건을 하사하고 또 얼마 후에는 사위를  대신의 자리에 임명하여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게 하였다그러던 중 다른 호족들과 함께  모임을 가질 때마다 모두들  부부 동반으로 참석하여 즐기는데, 유독 왕의 사위인 대신만은 늘상 혼자라 뭇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였다.

'저 대신의 부인이야말로 정말 아름답지  않을까? 오늘은 계략을 꾸며서라도  저 대신의 부인을 한번 봐야겠구나.'

  이렇게 의기투합한 호족들은 작당하여 대신에게 술을 자꾸 권해 대취하게 만들었다. 그러고는 대신이 차고 있던 열쇠를 풀어낸 다음 다섯 사람을 대신의 집으로  보내 그 부인을 보고 오게 했다. 마침 그때 대신의 부인은 자신의 외모에 대해 몹시 괴로워하며 자책하고 있었다.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항상  어두운 방에 갇혀 해와 달도  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도 만날 수 없는 것일까? , 지금 세상에 계시는 부처님은 항상 자비심으로 중생들을 관찰해서 고난 속에 헤매고 있는 사람을 보면 곧 제도하신다고 들었는데...'

  그러고 나서 그 부인은 멀리 부처님을 향해 예배하면서 간절하게 기도했다.

  '부처님이시여, 잠시라도 오셔서 제게 가르침을 베풀어주소서.'

  부처님은 그 부인의 신심이 돈독함을 아시고 그 집에 도착하여 땅속에서 솟아나 그녀 앞에 검푸른 머리칼을 보이셨다. 그녀가 고개를 들어  부처님의 머리칼을 보니 마음 가득히  기쁨에 넘쳐 신심이 더욱 돈독해졌다. 그러자 그녀의 머리칼은 자연스럽게 윤기가 흐르며 검푸른 색을  띠었다. 부처님이 점차 얼굴을 내보이시자 그녀는 그 모습을  보고 기뻐했고, 동시에 그녀의  얼굴은 단정하게 변해 뱀껍질 같은 피부도 온데간데 없어졌다. 계속해서 부처님이 금빛 찬란한  몸을 보이시자 그 모습을 바라보는 그녀의 기쁨은 비할 바 없었고, 마치 천녀와도 같이 우아한 몸매로 변하였다부처님이 그녀를 위해 여러 가지 법을 설하시자 그녀는 마음과 뜻이 열려 수다원과를 얻게 되어 하늘을 날 듯이 기뻐했다. 부처님이 본래 거처로 돌아가시고  나서 대신의 집으로 보내진 다섯 사람이 문을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부인이 홀로  앉아 있었다. 사람들은 의아해하며 서로 말했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아름다운 부인을 모임에 데려오지 않은 것일까?"

  그들은 문을 닫고 서둘러 돌아와서 열쇠를 제자리에 돌려놓았다. 모임이 끝나고 술이 쌘 대신이 집에 돌아오자 매우 아름다운 여인이 있었다. 놀란 대신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당신은 도대체 누구십니까?"

  "저는 당신의 아내입니다."

  "그전에 그렇게도 못생겼던 당신이 무슨 인연으로 이렇게 아름답게 변했단 말이오?"

  부인은 부처님의 은덕을 입어 이렇게 변했노라고 설명하고 부왕을 만나고 싶으니 그 뜻을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이에 대신은 왕에게 달려가서 말했다.

  "제 아내가 대왕을 뵙고자 합니다."

  "그런 말 하지 말게. 빨리 가서 문을 굳게 잠그고 나오지 못하게 하라."

  "대왕마마, 아내는 부처님의 위신력에 힘입어 천녀처럼 아름답게 변했습니다."

  "정말인가? 그렇다면 빨리 가서 데리고 오도록 하게."

  파사닉왕은 이윽고 화려한 마차를 타고 왕궁에 들어온 딸이 천하절색으로 변한  모습을 보고 너무 기뻐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리고 곧 명령을 내려 마차를 장엄하게 꾸민 다음 딸과 함께 부처님이 계시는 곳으로 가 예배드리고 한쪽으로 물러나 무릎을 꿇은 채 말했다.

  "부처님이시여, 제 딸이 도대체 전생에 무슨 복덕을 지었길래 왕가에  태어났으며, 또 무슨 악업을 저질렀길래 짐승과도 같은 추악한 모습으로 태어났던 것입니까? 원컨대 그 연유를 알려주소서."

  "이제 대왕을 위해 그 연유를 설명할테니 잘  들으시오. 셀 수 없는 과거세에 바라나국이라는 나라가 있었는데, 그곳에는 한량없는 재보를 가진 한 장자가 살고 있었소. 그 장자는  가족들과 함께 벽지불 한 분을 꾸준히 공양해왔는데, 그 분은 차마 볼 수 없을 정도로 추악한 용모를 가지고 있었다오. 그런데 장자의 한 딸아이가 벽지불이 오는 모습을 보고 나쁜 마음을 먹고 건방을 떨며 이렇게 모욕했소.

  "어쩌면 얼굴이 저리 추하고 피부는 말라비틀어져 역겨울 정도일까?"

  그러나 벽지불은 그 장자의 집에 드나들며  공양을 받아온 지 오래 되었기에 열반에  들려고 할 무렵 신통력을 발휘하였소. 허공에 몸을 솟구쳐  불과 물을 뿜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며 허공을 자유로이 왕래하는 모습을 장자의 가족들이 모두 보게 한다음 다시 장자의 집으로 내려왔다오. 장자는 그 모습을 보고 기뻐 어쩔 줄 몰라했고, 딸아이도 자기의 잘못을 뉘우쳤소.

  '원컨대 자비로운 마음으로 용서해주소서. 과거에 지은 모든 죄를 참회하오니 부디 용서해주소서.'

  대왕이여, 기억해두시오. 당시 장자의 딸아이는 벽지불을 모욕했던 악업을  저질렀기에 후생에 그렇게 추한 몸을 받게 된 것이라오. 그러나 나중에 벽지불의  신통력을 보고 참회했기에 세상에서 비할 바 없는 아름다움을 얻게 된 것이오또 벽지불에게 공양한 인연으로 항상  부유하고 귀한 가정에 태어나게 되었소. 그리고 다시 나를 만나서 그 고뇌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 것이오."

  파사닉왕과 여러 대신들은 부처님이 들려주신 인과응보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마음과 뜻이 열렸으며, 여러 비구들도 기뻐하면서 받들어 행하였다.  <찬집백연경>

 

    서른다섯번째 이야기-향기로운 남자

  부처님이 마가다국에 계실 때의  일이다. 부처님이 여러 비구들과  함께 유행하시다가 갠지스 강가에 이르러 오래된 탑을 보게 되었다. 그 탑은 이미 훼손되고 무너진 지 오래였지만 그대로 방치된 채 있었다. 그때 여러 비구들이 부처님에게 물었다.

  "부처님이시여, 이 탑은 무슨 탑이길래 이렇게 무너져도 수리하는 사람이 없는 것입니까?"

  "비구들아, 귀 기울여 들어라. 내 이제 너희들을 위해 설명해주리니, 이 현겁 중에 바라나국이  있었는데, 그 국왕의 이름은 범마달다였다. 그는 바른 법으로 나라를 다스려 백성들의 생활은 풍요로웠고 전쟁과 재난 그리고 질병이 없었다. 또 코끼리, , 양 들이 번성했으며 수만 가지  보물로 가득 넘쳐났다. 그러나 국왕에게는 유일한 걱정이 있었는데 그것은 자식이 없는  것이었다. 그는 천지신명에게 기도하여 자식을 얻으려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궁궐 안 연못에 아름다운 연꽃이 피었는데 그 봉오리 속에 한 어린아이가 결가부좌를 하고 앉아 있었다. 그 아이는 신체가 매우 단정하고 입에서는 꽃향기가 났으며 모공에서 갖가지 향내가 피어났다. 이 모습을 지켜본 연못 관리인은 왕에게 달려가 본 대로 보고했다. 그러자 국왕은 몹시 기뻐하며 후비와  함께 정원으로 달려가 그 아이를 본 후 너무 기쁜 나머지 끌어안으려고 했다. 그때 그 아이가 왕을 향해 계송을 읊었다.

  "대왕께서 마땅히 바라던 대로

  왕의 소원이 이루어지리니

  자식이 없는 것을 보고

  오늘 왕자가 되려고 이렇게 왔다네."

  국왕과 후비 그리고 궁녀들은 이 말을  듣고 몹시 기뻐하며 아이를 얼싸안고 궁  안으로 데려가 키웠다. 그 아이가 자라면서 걸음을 딛는 곳마다 연꽃이 피어나고 모공에서는 전단향을 풍기므로 그 이름을 전단향이라 불렀다. 그런데 전단향은 돌아 다니는 곳마다 피어났던 연꽃들이 처음에는 생생하다가도 오래지 않아 시드는 모습을 보고 생각에 잠겼다.

  '내 몸도 반드시 저렇게 시들고 말리라.'

  그러던 중 전단향은 마음에 깊이 깨닫는 바가 있어 곧 벽지불의 경지를 이루고 허공에 솟아올라 열여덟 가지 신통력을 보이고는 곧 열반에 들었다. 그러자 그 모습을 본 국왕과 후비 그리고 궁녀들은 모두 대성통곡하면서 벽지불의 시신을 수습하여 화장한 후 남은 사리들을 모아 탑을 세우고 안치했다. 그 탑이 바로 지금 눈앞에 있는 저 탑이니라."

  부처님의 설명을 들은 비구들이 다시 물었다.

  "그 벽지불은 과거에 무슨 복덕을 심었기에 그러한 과보를 받게  된 것입니까? 원컨대 자세히 설명해주십시오."

  "셀 수 없는 오랜 세월 전 바라나국에  부처님이 출현하셨는데 그 명호를 가라가손타라고 했다. 그때 한량없는 재보를 지닌 어느 장자가 있었는데, 그가 죽자 그 아들과 어머니는 각기 따로 살게 되었다. 아들은 여색을 무척 밝혀 자기 구미에  맞는 창녀를 보기만 하면 하룻밤에 백  냥씩을 줘서라도 잠자리를 같이하는 방탕한 생활을 수년간 계속하다가  급기야 재산을 탕진했다. 더 이상  창녀에게 줄 돈이 없게 되자 장자의 아들은 더 이상 창녀와 잠자리를 같이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장자의 아들이 한 창녀에게 끈질기게 단 하룻밤만이라도 같이 잠자리를 할 것을 부탁하자 창녀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아름다운 꽃을 구해와서 내게 준다면 하룻밤을 같이 보내겠어요."

  그 말을 들은 장자의 아들은 생각에 잠겼다.

  ', 이제는 창녀에게 꽃 한 송이 사줄 만한 돈도 수중에 남아 있지 않구나. 하지만 왕탑 속에는 분명히 아름다운 꽃이 있을 테니, 그 꽃을 훔쳐내서라도 저 창녀와 하룻밤을 보내야겠다.'

  탑에는 관리인이 지키고 있어 정문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그는 옆구멍으로 기어들어가 기어코 꽃을 훔쳐 창녀에게 주고서는 하룻밤을 같이 보냈다. 그런데 날이 밝자 그의 몸뚱아리에는 온갖 종기가 돋아 그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그가 의원을 찾아가 치료할 약을 묻자의원은 이렇게 대답했다.

  "반드시 우두전단을 그 종기 위에 발라야만 나을 것이오."

  그는 이리저리 궁리해도 방법이 없자 결국  집을 팔아 돈 육십만 냥을 마련해서  우두전단 여섯 냥을 구했다. 의원이 우두전단을 종기 위에 바르려고 할 때 장자의 아들은 문득 깨닫는 바가 있어 말했다.

  "내 병은 바로 마음에서 일어난 것이니 당신이 그 바깥 쪽을 치료한다고 해도 무슨 차도가 있겠소?"

  말을 마친 장자의 아들은 집을 팔아 마련한 우두전단을 들고 꽃을 훔쳐냈던 왕탑 속에 들어가 커다란 서원을 세웠다.

  "부처님께서는 먼 옛날부터 여러 가지 고행을 하면서 고통에 허덕이는 중생들을 구제하겠다는 서원을 세우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타락하여 제 몸뚱아리마저 온전히 보존하지 못하게 되었으니, 원컨대 부처님이시여, 가엾고 불쌍하게 여기사 제 병을 고쳐주옵소서."

  서원을 마친 장자의 아들은 우두전단 두 냥으로 훔친 꽃값을 갚고 또 두  냥으로 지성을 다해 부처님을 공양하고 나머지 두 냥으로 지극한 참회를 했다. 그러자 어느새 종기는 사라지고 모공에서는 전단향이 풍겨났다. 향내를 맡은 장자의 아들은 기뻐서 어쩔 줄 모르며 부처님에게 감사를 드린 후 탑에서 나왔다. 이러한 공덕으로인해 그는 아귀, 축생, 지옥에 떨어지지 않고 천상이나 인간세상에 태어나게 되었다. 또 다니는 곳마다 아름다운 연꽃이  피어나고 모공에서는 항상 향내를 풍기게  된 것이니라. 비구들아, 그때 우두전단을 탑에 바친 장자의 아들이 바로 그 벽지불이었음을 알라."

  갠지스 강가의 허물어진 탑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비구들은 기뻐하면서 받들어 행하였다.  <찬집백연경>

 

    서른여섯번째 이야기-제타 숲의 아귀

  부처님이 왕사성 가란다 죽림에 계실 때였다. 그때 존자 나라달다는 발우를 들고 성에 들어가 걸식을 한 다음 죽림으로 돌아와 공양을 마쳤다. 그런데 저 멀리 제타 숲에 핏빛이 감도는 모양을 보게 되었다. 괴이하게 여긴 나라달다가 직접 가보니, 어떤 아귀가 몸이 다 녹아내려 뼈만 앙상한 채 하루 밤낮 동안 오백 명의 자식을 낳는대로 다 잡아 먹었으나 여전히  허기진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에 나라달다가 아귀에게 다가가 물었다.

  "너는 무슨 업연으로 인해 이렇게 고통스러운 과보를 받고 있는게냐?"

  "직접 부처님께 여쭤보면 말씀해주시리다."

  그래서 나라달다는 부처님이 계시는 곳으로 가서 예배하고 한쪽에 물러나 앉아  자신이 본 광경을 이야기했다.

  "저는 걸식을 나갔다가 돌아온 후 어떤 아귀가 오백 명의 자식을  낳는대로 다 잡아먹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부처님이시여, 저 아귀는 무슨 업연으로 인해 저렇게 고통스러운 과보를 받게 된 것입니까?"

  "나라달다여, 그것을 알고자 한다면 귀 기울여 열심히 듣도록 하라. 내 너를위해 설명해주리라.

  이 현겁 중에 바라나국이 있었다. 그 나라에는 금은보화는  말할 것도 없고 수많은 종복과 가축을 거느린 장자가 있었다. 그런데 그 장자에게는 자식이 없는 것이 유일한 걱정이라 천지신명에게 기도를 해보았으나 소용이 없었다. 그래서 장자는 족성가의 딸을 아내로 맞아들였는데, 얼마 후 그녀는 임신을 하게 되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큰 부인은 질투심이  생긴 나머지 작은 부인에게 은밀히 독약을 먹여 낙태를 시켜버리고 말았다. 차후에 이 일을 알게 된 식구들이 큰 부인과 싸움을 벌여 뭇매를 때리면서 그 진위를 따졌다. 큰 부인은 사실대로 말하자니  맞아죽을 것 같고, 거짓말을 하자니  뭇매를 맞는 고통을 언제까지 참아야 할지 몰라 급한 김에 이렇게 맹세해버리고 말았다.

  "만일 내가 낙태시킨 것이 사실이라면 죽은 후에 아귀로 환생해서 하루  밤낮 동안 오백 명의 자식을 낳는 대로 다 잡아먹어도 허기를 면치 못하게 하옵소서."

  큰부인은 그렇게 맹세를 하고 난 뒤에야 풀려날 수 있었다.

  나라달다여, 그때의 큰 부인은 질투심 때문에 작은  부인의 자식을 낙태시키고도 도리어 망령되게 거짓 맹세를 한 과보로 아귀가 되었다. 그리고 저렇게 끔찍스런 일을 당하게 된 것이니라."

  이때 여러 비구들은 질투심이 많은 중생은 삼악도(삼악도는 죄악을 범한 결과로 태어나는 지옥, 아귀, 축생을 동시에 일컫는다)에 떨어져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게 된다는 부처님의 이야기를 듣고 몸서리치며 모든 질투심을 버리고 기뻐하면서 받들어 행하였다.  <찬집백연경>

 

    서른일곱번째 이야기-천상 사람들은 눈 깜박이는 것이 더디다

  부처님이 비사리의 중각 강당에 계실 때의 이야기다.   나라에는 탐욕에 눈이 멀어 남의 물건을 감쪽같이 훔치는 도둑이 살고 있었다. 그곳 백성들은 깊은 불심으로 풍요로운 생활을 하고 있었으므로 그 자가 도둑이라는 사실을 모두 소문으로 알고 있었다어느 날 그는 승방에 좋은 구리 항아리가 있다는  말을 듣고 동료들과 함께 몰래 숨어들었다. 그러나 구리 항아리는 끝내 훔치지 못하고 비구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게 되었다.

  "천상 사람들은 눈 깜박이는 것이 매우 더디고, 인간들은 눈 깜박이는 것이 매우 빠르다."

  그 도둑은 이 말은 마음 깊이 새기며 승방을 빠져나왔다.

  그후 다른 나라에서 온 상인이 귀중한 마니보주를 국왕에게 상납하였다. 구슬을 받은 왕은 곧 사람을 보내 그것을 탑머리에 걸어두게 했다. 도둑은 이 소식을 듣고 그 구슬을 훔쳐 숨겨두었다. 나중에 그 사실을 안 왕은 크게 화를 내었다.

  "그 구슬을 훔쳐간 자를 내게 알린다면 내 후한 상을 내리리라."

  그러나 상당한 시일이 흘러도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왕은 뾰족한 대책이 없어 그저 도둑을 원망하고만 있었다. 그때 한 슬기로운 신하가 왕에게 진언했다.

  "지금 우리 나라는 매우 풍요로워 도둑이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유독 한 사람만이 도둑질을 생업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 구슬도 바로 그 자가 훔친 것이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잡아들여 다그친다 해도 실토하지 않을 게 분명하니 왕께서는 계책을 꾸며 그 진실을 알아내셔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계책이 좋겠소?"

  "몰래 사람을 보내 그 자를 초대하여 모두 함께 술을 권해 취하게 하는 겁니다. 그런 다음 궁궐로 옮겨놓고 술이 깨기 전에 궁궐을 화려하게 꾸미고선 기녀들로 하여금 노래와 춤을 곁들이게 합니다. 그러다가 그 자가 음악 소리에 놀라 일어나면  기녀를 시켜 이렇게 말하게 합니다. '당신이  세상에 있을 때 탑에 걸려있던 구슬을 훔친 인연으로 이 도리천(도리천은 욕계 6천의 제2천으로 수미산 꼭대기에  있다. 이 하늘에는 제석천이 살고 있다고 한다)에 다시 태어나신 것입니다. 우리들은 당신을 위해 음악을 연주하고 있는 것이니 사실대로 말씀해보세요.' 이렇게 하면 그 자가 술김에 사실대로 말하지 않겠습니까?"  왕은 슬기로운 신하의 계책대로 일을 꾸몄다. 그 도둑은  술에 취한 채 기녀들의 질문에 어떻게 대답할 지 망설였다.

  '사실대로 말하자니 두렵고, 거짓말을 한다면 천녀들이 못살게 굴 텐데...'

  그때 그 자는 지난날 승방에 구리  항아리를 훔치러 들어갔다가 비구들에게서 엿들었던  말이 생각났다. 그래서 가만히 천녀들이 눈 깜박이는  모습을 지켜보았더니 그 속도가 빨랐다도둑은 이 천녀들이 진짜가 아니라는 사실을 눈치채고 끝내 훔쳤다는 자백을 하지 않았다. 왕도 더 이상 어쩔 수 없었다. 그 자는 죄가 없음을 인정받고 목숨을 부지한 채 자리를 벗어날 수 있었다. 이에 슬기로운 신하는 다른 계책을 꾸며 그를 잡아들이자고 왕에게 말했다.

  "대왕께서 친히 그를 불러 대신의 자리를 주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창고에 있는 물건들을 몰래 조사한 다음 그에게 창고 관리를 맡기십시오. 차후에 대왕께서는  그 자에게 부드러운 말로 이렇게 격려하십시오. '이제 경처럼 친한 이가 없으니 아무쪼록 창고를 잘 지켜 잃어버리는  물건이 없도록 하시오.' 그 말을 들으면 그 자는 분명 기뻐할 것입니다. 그때 대왕께서는 다시 이렇게 묻도록 하십시오. '일전에 탑머리에 마니보주를 걸어둔 일이 있었는데, 경은 아는 바가 없는가?' 이렇게 하시면 그 자는 분명히 사실대로 말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자는 대왕이 자기를  신임해서 모든 보물을 다 맡겼다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왕은 그 신하의 말대로 했다. 그랬더니 과연 그 도둑은 사실을 실토했다.

  "제가 바로 그 구슬을 훔친 놈입니다만, 지금껏 두려워서 감히 내놓지 못했습니다."

  "경은 일전에 내가 궁전에서 연극을 꾸며 기녀들로 하여금 자네가 도둑인지  묻게 하였을 때 왜 사실대로 말하지 않았는가?"

  "지난날 제가 승방에 구리 항아리를 훔치러 들어갔다가 비구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천상 사람들은 눈 깜박이는 것이 매우 더디고, 인간들은 눈 깜박이는 것이 매우 빠르다.' 그때 그 말이 떠올라 천녀들이 가짜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구슬을 다시 얻게 된 왕은 매우 기뻐하며 그 도둑의  죄를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껏 맡겼던 일도 그대로 계속하도록 했다.

  "국왕이시여, 원컨대 제 죄를 용서하사 출가하도록 허락해주십시오."

  "경은 지금 높은 지위에 있어 온갖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는데, 무엇 때문에 출가하려고 하는가?"

  "제가 예전에 비구들이 말한 바를 잠깐 들은  덕분에 이렇게 목숨을 부지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많은 경전을 듣고 익히고 수행하여 진정한 삶에 눈뜨고 싶습니다. 그래서 출가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마침내 그 도둑은 출가하여 열심히 수행한 덕으로 아라한과를 얻게 되었다.  <찬집백연경>

 

    서른여덟번째 이야기-죽어도 죽지 않는 사람

  부처님이 바라나국 녹야원에 계실 때였다. 그 나라 재상은 큰 부자였으나 슬하에 자식이 없었다. 그때 항가 강가에 마니발타라는 천신의 사당이  있었는데, 그 나라 백성들은  모두 그곳에 와서 소원을 빌고 치성을 들였다. 그래서 그 재상도 사당에 와서 이렇게 기원을 했다.

  "제가 자식이 없습니다. 듣건대 천신의 공덕이 커서 뭇 중생들을 구제하신다고 하니 저의 소원을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소원대로 아들을 점지해주신다면 천신상에 금도금을 하고, 사당에는 이름난 향료를 바르겠습니다. 그러나 만약 제 소원을 들어주시지 않는다면  사당을 부수고 천신상에는 똥칠을 할 작정입니다."

  재상의 기원을 들은 천신은 생각했다.

  '이 사람은 부자인 데다가 권력도 막강하니 보통 아들을 구하는 게 아님이  분명하다. 나로선 이 사람의 기원을 들어줄 능력이 없고, 또 들어주지 않는다면 사당이 헐리게 될 판이니 이 일을 어찌하면 좋을까?'

  대상은 계속 사당에 와서 기원을 드렸다. 마니발타 천신은 자신의 능력으로는 안 되는 일인 줄알기에 비사문왕(비사문왕은 4천왕 가운데 비사문천의 왕이며 불교를  보호하고 복을 베푸는 천신이다)에게 가서 사실대로 고했다. 비사문왕이 대답했다.

  "내 힘으로도 그 재상의 소원을 들어줄 수 없노라."

  그리고 비사문왕은 직접 제석천을 찾아가 부탁했다.

  "제 신하인 마니발타 천신이 제게 와서 말하기를, 일전에 바라나국의 재상이 사당에 와서 아들을 기원하더랍니다. 그런데 그 소원을 들어주면 갑절로 공양하겠으나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사당을 부숴버리겠노라고 했다 합니다. 그 재상은 흉악하므로 반드시 말대로 실천할 인물입니다. 그러하오니 제석천왕께서는 그 재상에게 아들을 점지해주시기 바랍니다."

  "그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인연을 찾아보도록 하자."

  그때 한 천인이 수명이 다하려고 하자 제석천이 그에게 말했다.

  "자네는 이제 수명이 다했으니 저 재상의 집에 환생하는 것이 어떠한가?"

  "저는 환생하면 출가수도하고자 하는데 저런 부잣집에 태어나면  욕심을 버리기가 어려우므로 중류의 가정에 태어나 소원을 이루고자 합니다."

  "네가 저 재상의 집에 태어나면 출가수도하고자 할 때 내가 직접 도와주겠노라."

  그렇게 해서 그 천인은 재상의 집에 태어나게 되었는데, 그 용모가 뛰어나게 단정하였다. 재상은 관상쟁이를 불러 아들의 이름을 짓게 했다. 관상쟁이가 물었다.

  "어떻게 해서 이 아이를 얻게 되었습니까?"

  "항가 강가에 있는 사당에 가서 기원을 드려 이 아이를 얻게 되었다네."

  이야기를들은 관상쟁이는 그 아이의  이름을 항가달이라고 지어주었다항가달이 장성하여 부모에게 출가할 뜻을 비추자 재상이 말했다.

  "우리 집은 부유하고 벌여놓은 사업도 많다. 너는  외아들이니 마땅히 가업을 이어야 하지 않겠느냐?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너의 출가를 허락할 수 없다."

  그러나 항가달은 출가할 뜻을 버리지 않고 이렇게 생각했다.

  '이 몸을 버려 다시 평범한 가정에 태어날 수 있다면 쉽게 출가할 수 있으리라.'

  죽을 결심을 한 항가달은 몰래 집을 빠져나가 절벽에서 몸을 던졌으나 조금도 다치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강에 몸을 던졌지만 여전히 빠져죽지  않았다. 또 독약도 먹어보았지만 역시  통하지 않았다. 이에 항가달은 국법을 어겨 처형당하리라고 결심했다그는 왕비와 궁녀들이 목욕을 하는 연못으로 갔다. 그리고 여자들이 벗어놓은 옷들을 뒤져 패물을 훔치려다가 한 관리에게 들켰다. 그 관리가 아사세왕에게 보고하자  왕은 크게 화를 내어 직접 활을 들고 항가달을 쏴죽이려고 했다. 그러나 화살은 도리어 왕을 향해 돌아왔다이러하기를 세 번이나 반복하자 왕은 겁이 나서 항가달에게 물었다.

  "그대는 신인가, 용인가, 아니면 귀신인가?"

  "제 소원을 을어주신다면 사실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러겠노라."

  "저는 신도 용도 귀신도 아닙니다. 저는 이 나라 재상의 아들로 출가하고자 했으나 부모가 끝내  허락해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자살하고자 절벽에서 떨어져보고  강에 빠지기도 하고 독약도 먹어보았지만 죽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국법을 어겨 처형당하려고 했으나 보시다시피 그것도 제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원컨대 대왕께서는 저를 가엾게 여겨 출가하도록 선처해주시기 바랍니다."

  "네 청을 들어 출가하도록 해주마."

  아사세왕은 항가달을 데리고 부처님이 계시는 곳으로 가서 지금까지의 일을 아뢰었다. 부처님이 항가달의 출가를 허락하시자 그는 갑자기 몸에 법복이 입혀져 비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그리고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난 항가달은  즉시 마음이 열려 아라한과를 얻게  되었다. 그때 아사세왕이 부처님에게 물었다.

  "부처님, 항가달은 전생에 무슨 복덕을 심었기에 일부러 죽으려고 기를 써도 죽을 수 없는 것입니까? 또 무슨 인연으로 부처님을 만나 생사를 넘어서는 경지를 이룰 수 있게 된 것입니까?"

  "대왕이여, 셀 수 없는 과거세에 바라나국의 범마달다왕이 있었소. 왕은  어느 날 궁녀들을 데리고 숲으로 놀러간 적이 있는데, 그때 궁녀들이 소리 높여 노래를 부르자 마침 지나가던 어떤 이가 숲 밖에서 노래를 불러 화답했다오. 이에 화가 난 왕은 그 자를 잡아와 죽이려고 했소. 그때 한 대신이 그 자가 죽게 된 모습을 보고 사정을 알아본 다음 잠시 처형을 미루라 하고 왕에게 간언을 했다오.  "저 사람의 죄는 크지 않은데, 왜 죽이려고 하십니까? 비록 노래를 불러 화답했지만 궁녀들의 얼굴을 본 것도 아니고 간통을 한 것도 아닙니다. 목숨을 불쌍히 여겨 용서해주옵소서."

  대신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왕은 그 사내를 용서해주었소. 죽음에서 벗어난 그 사내는 대신을 수년간 정성껏 모시다가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오.  '음욕이란 예리한 칼보다 사람을 더 해치는 것이다. 내가 그때 곤란에 처하게 된 것도 다 음욕에서 비롯된 일이다.'  생각을 마친 그 사내는 대신에게 출가수도할 뜻을 비추었소. 그러자 대신이 대답했소.

  "그렇다면 출가해서 도를 이루면 그때 다시 만나도록 하세."

  그 사내는 곧 산속으로 들어가 오로지 수도에만 힘쓰다가 마침내 깨달음을 얻어 벽지불이 되었소. 벽지불이 된 사내는 대신을 찾아갔고, 그 모습을 본 대신은 무척 기뻐하며  정성껏 공양했다오. 그러자 벽지불은 공중으로 날아올라 몸에서 불과 물을 뿜는 등 각종 신통력을 보여주었소. 이에 대신은 한량없이 기뻐하며 이렇게 서원을 세웠다오. '내 은혜로 목숨을  보전하게 되었으니, 원컨대 제가 나는 곳마다 부귀와 장수를 누리고 또 뛰어난 지혜와 복덕을 모두 갖추게 하옵소서.'  대왕이여, 그때 왕에게 간언해서 한 사람의 목숨을 구했던 이가 바로 지금의  저 항가달이오. 그런 인연으로 태어나는 곳마다 요절하는 법이 없고 또 나를 만나 이렇게 아라한과를 얻게 된 것이오."

  부처님이 이야기를 마치자 듣고 있던 이들은 모두 기뻐하면서 받들어 행하였다.  <찬집백연경>

 

    서른아홉번째 이야기-죄의 근원은 남근이다

  부처님이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서 여러 천인들과 사부대중(사부대중은 출가한 비구와 비구니, 집에서 불교를 믿는 남자와 여자를 함께 일컫는 말이다)에게 설법하고 계실 때의 일이다그때 한 젊은 비구가 있었는데, 그는 성격이 완고하고 어리석어 도를 알지  못했다. 그리고 항상 탐욕을 떨치지 못했고 또 양기가 왕성하여  주체할 줄 몰랐다. 이 때문에  늘 번뇌에 시달려 깨달음을 얻지 못하자 그는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남근을 끊어버리면 청정한 마음을 얻어 도의 흔적이나마 얻을 수 있을 게다.'

  마침내 그는 한 시주의 집에 가서 도끼를 빌려왔다. 그리고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 나무 판자 위에 앉아 남근을 끊으려 하면서 생각했다.  '이 남근 때문에 나는 무수한 세월 동안 생사를 전전해 왔다. 삼도(삼도는 지옥, 아귀, 축생을 말한다)와 육취(육취는 중생이 업 때문에 윤회하는 여섯 가지 세계로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인간, 천상을 말한다)는 모두 색욕에서 비롯된 것이다. 남근을 자르지 않는다면 도를 깨닫지 못하리라.'

  그때 부처님은 그 어리석은 비구의 마음을 꿰뚫어보시고 이렇게 생각했다.

  '어리석기 그지없구나. 도는 마음을 제어하는 데에서  얻어지므로 마음이 바로 도의 근원이다. 그런데 스스로 몸을 해쳐 죄에 떨어져 오랫동안 고통을 받으려 하다니...'

  부처님은 그 비구의 방으로 들어가 물었다.

  "너는 지금 무엇을 하려고 하느냐?"

  비구는 도끼를 내려놓고 옷을 걸친 후 부처님에게 예배하고 나서 대답했다.

  "도를 배운 지 이미 오래이나 아직 법문에 들어서지조차 못했습니다. 좌선을 할 때에는 곧 도를  얻을 것도 같다가 양기가 일어나 음욕이 생기면 앞뒤를  분간하지 못하나이다. 그래서 스스로 반성해보니 이 모든 일이 바로 남근 때문이라 도끼를 빌려 자르려고 하는 것입니다."  "너는 정말 어리석어 도를 모르는구나. 도를 얻으려면 먼저 그 어리석음을 끊고 마음을 제어해야 하는 법이다. 마음이 바로 모든 선악의 근본이다. 음욕을 끊고자 하면 먼저 그 마음을 제어해야 하느니라. 마음이 안정되고 뜻이 열린 뒤에야 도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부처님은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먼저 그 근본 없애는 것을 배워라

  임금이 그저 두 신하만 거느리고

  나머지 시종들을 모두 없애버리면

  그게 바로 최상의 도인일세."

  계속해서 부처님은 그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십이인연(십이인연이란 범부로서의 유정의 생존이  12가지 조건에 의해 성립되어  있는 것을 말하며 12라 함은 무명, , , 명색, 육처, , , , , , , 사이다)의 근본은 바로 어리석음이다. 그리고 어리석음은 뭇 죄의 근본이니라. 지혜는 온갖 행의 근본이다. 먼저  어리석음을 끊어야만 마음이 안정되리라."

  그러자 그 비구는 몹시 부끄러워하며 자책했다.

  "제가 어리석고 미혹하여 오랫동안 고전의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하여 이렇게 되었나이다. 지금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은 정말 미묘합니다."

  그는 올바른 선정에 들어 뜻을 지키고 마음을 제어하여 부처님앞에서 곧 아라한이 되었다.  <법구비유경>

 

    마흔번째 이야기-환난으로 들어가는 문

  부처님께서 사위국의 기원정사에서 천인과 용 그리고 귀신들을  위해 설법하고 계셨다. 그때 그 나라에는 무수한 재물을 가진 한 장자가 있었는데, 그에게는 아들이 한 명 있었다그 아들이 십이삼 세 쯤 되었을 때 그만 장자와 그 부인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장자의 아들은 아직 나이가 어려 집안을 다스리는 일을 알지 못했다. 당연히 몇 해 못가 유산을  모두 탕진하고 구걸로 연명하며 제 몸 하나도 건사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아이의 아버지 친구로서 역시 큰 부자였던 한 장자가 있었다. 그는 친구 아들이 거지가 된 모습을 보고 그 이유를 물었다. 친구의 아들을 가엾게 여긴 그는 자신의 딸을 아내로 삼게 한 후 여러 가지 재물을 주고 살림을 차리게 했다. 그러나 그 거지였던  사내는 게으른 데다가 계획조차 없이 생활하는 바람에 얼마 못 가 또 재산을 모두 탕진하고 말았다그래도 장자는 딸을 이미 시집보낸 터라 여러 번  도와주었지만 그 사내의 처지는 나아질 줄 몰랐다. 그래서 장자는 더 이상 가망이 없음을  알고 딸을 데리고 와 다른 집에  출가시키려고 친족들과 의논을 했다그 이야기를 우연히 엿들은 장자의 딸은 남편에게 가서 말했다.

  "우리 집의 권세가 대단하니 반드시 저를 데려갈 것입니다. 이 일은 다 당신이 가정을 제대로  영위하지 못한 탓이니, 이제 어찌 하시렵니까?"

  아내의 말을 들은 남편은 부끄러워하며 혼자 생각해보았다.

  '나는 박복한 탓에 어려서 부모를 잃고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다. 이제 아내를 빼앗기고 또다시 길거리에 나앉게 되었구나. 하지만 이미  아내와 정이 든 지 오래인데어떻게 생이별을 하겠는가?'

  남편은 마침내 독한 마음을 먹고 아내를 방안으로 데리고 가서 함께 죽자며 칼로 아내를 찌르고 자신도 자결해버렸다그 광경을 본 하녀가 대경실색하여 장자에게 달려가 알렸다. 깜짝 놀란 장자의 가족들이 달려와 보니 이미 두 부부가 죽었기에 시체를 수습하여 관에 넣고  장사를 치렀다. 그러나 장자의 가족들은 차마 딸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그러던 중 장자는 부처님이 세상에 나서 중생들을  교화시키고 설법하고 계시는데, 부처님을 만난 사람들은 모두 근심 걱정을 떨치게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에 장자는 가족들을 데리고 부처님이 계시는 곳으로 가서 예배를 드리고 한쪽으로 물러나 앉았다부처님께서 장자에게 물었다.

  "어디서 오는 길인가? 왜 얼굴에 근심이 가득 차 있는가?"

  "전 복이 없는 사람인가 봅니다. 출가한 딸이  무능한 남편을 만나 고생이 심하기에 도로 데려오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위가 아내를 빼앗기기  싫어 딸을 죽이고 자기도 자결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장사를 치르고 이렇게 와서 부처님을 뵙는 것입니다."

  "탐욕과 분노는 세상에 항상 존재하는 병이니라. 또 어리석음과 무지는 환난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삼계와 오도에 떨어져 무수한 세월 동안 생사를 전전하며 갖가지 고통을 받게 되는 것이니라. 그러면서도 뉘우칠 줄 모르니  하물며 어리석은 사람이 어떻게  그것을 알겠는가? 탐욕의 독은 일신과 가족을 망치게 하고 중생들까지 해치는데 하물며 그 부부라고 예외이겠는가?"

  계속해서 부처님은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이 탐욕으로 몸을 묶어

  피안으로 건너가지 않으려 한다.

  재물과 애정에 눈 멀어

  남도 해치고 자신도 해친다네.

 

  애욕의 마음을 밭으로 삼고

  음욕과 분노, 어리석음을 종자로 삼는다네.

  그러므로 생사를 넘어선 이에게 보시하면

  무량한 복덕을 얻으리.

 

  동료가 적은데 재물이 많으면

  대상들은 두려워한다.

  탐욕이란 도적은 목숨을 해치나니

  지혜로운 이는 욕심을 버린다네."

  부처님의 설법을 들은 장자는 기쁜 마음이 일어 근심 걱정을 떨치고 깨우침을 얻었다.  <법구비유경>

 

    마흔한번째 이야기-윤회전생의 비유

  나선은 유명한 학승으로 당시 인도에 침입한 그리스계 미란타왕에게 여러 가지 비유로 불교의 지혜를 가르쳐준 것으로 유명하다그는 어느 날 미란타왕과 윤회전생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던 중 미란타왕이 나선 비구에게 물었다.

  "존자여, 다시 태어난 자와 죽어 없어진 자는 동일한 것입니까, 아니면 다른 것입니까?"

  나선비구가 대답했다.

  "동일한 것도, 다른 것도 아닙니다."

  "비유를 들어 설명해주십시오."

  "어떤 사람이 남의 오이밭에 들어가 오이를  훔치려다가 주인에게 들켜 관아에 끌려왔습니다. 오이밭 주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자는 오이 도둑입니다. 오늘 내 오이를 훔치려다 붙들렸으니 처벌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러자 오이 도둑이 말했습니다. '나리, 저는 정말 억울합니다저는 저 사람의 오이를 훔친 것이 아닙니다. 저 사람은 오이씨를 심었던 것이지 오이를 심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 제가 저 사람의 오이를 훔쳤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나리, 잘 살펴주십시오. 저는 죄가 없습니다.' 대왕이시여, 어느 쪽의 말이 옳다고 생각하십니까?"

  미란타왕이 대답했다.

  "당연히 오이를 심은 사람의 말이 옳지요."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오이 도둑이 말한 것처럼 오이밭 주인이 오이씨를 뿌렸습니다. 그런데 오이씨를 뿌리지 않았다면 어이가 자랄 수 있었겠습니까? 도둑이 훔치려고 했던 오이는 오이씨가  자라난 결과물이므로 오이 도둑은 유죄입니다."

  "이번에는 다른 비유를 하나 들겠습니다. 어떤 이가 밤에 불을  밝혀 벽에 걸어두고 밥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벽이 나무로 되어 있던 탓에 불이 옮겨 붙어 방을 모조리 태우고  옆집으로 번지더니 급기야 성안에 있는 모든 집을 태우고 말았습니다 .성안에 살고  있던 사람들은 처음 불을 밝혔던 사람에게 책임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너는 왜 성안의 모든 집을 잿더미로 만들었는냐?' 그러자 그 사람이 대답했습니다. '웃기는 소리마시오. 나는 그저 밥을 먹으려고 불을 밝혔을 뿐이오. 그런데 불이 저절로 번져서 그렇게 된 것이므로 나와는 상관이 없는 일이오.' 이렇게 해서 언쟁이 그치지 않자 그들은 관아에 가서 시비를 가리기로 했습니다. 대왕이시여, 어느 쪽이 옳다고 보십니까?"

  "물을 필요도 없이 처음 불을 밝혔던 자가 유죄입니다. 그가 밥을 먹은 후 불을 껐더라면 성이 잿더미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대화재의 원인은 그 작은 부에 있었던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또하나의 비유를 들겠습니다. 어떤 이가 목장에 가서 우유를  샀습니다. 우유를 산 후 그는 갑자기 급한 일이 생각나서 그  우유를 목장에 맡겨두고 일을 보러  갔습니다. 그 다음날 그가 와서 맡긴 우유를 찾고 보니 우유는 이미 발효한 탓으로 맛이 식초처럼 변해버렸습니다. 그러자 그가 말했습니다. '나는 우유를 사서 맡겼는데 왜 식초를 내게 주는 것이오?' 목장 주인이 대답했습니다. '잘못된 게 아니오. 당신이 원래 샀던 우유가 저절로 발효해서 맛이 식초처럼 변한 것이오.' 그들은 서로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다 법의 심판을 받기로 했습니다. 대왕이시여, 어느 쪽이 옳다고 보십니까?"

  "목장 주인입니다. 우유를 샀던 사람이 우유를 맡긴 후 그 다음날 찾으러 간 사이 우유가 저절로 발효해서 식초처럼 맛이 변했기 때문입니다."

  나선비구는 이렇게 세 가지 비유로 미란타왕의 질문에 대답하였다.  <나선비구경>

 

    마흔두번째 이야기-두 명의 수행자

  옛날에 두 명의 수행자가 살고 있었는데한 사람의 이름은 나뢰였고, 다른  사람의 이름은 제기라였다. 그들은 깨달음을 얻겠다는 서원을 세우고 속세를 떠나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다. 춘하추동을 막론하고 그들은 동굴 속에서 잠자고 풀로 만든 옷을 입고 살았다. 배가 고프면 열매를 따먹고 목마르면 샘물을 마시면서 조용하게 수행에 전력했다오랜 세월이 흐르자 그들은 속세의 유혹을 물리칠 수 있었고, 다섯 가지의  신통력을 얻게 되었다. 그 첫째는 천안통으로 이 세상에서 보이지 않는 것까지 볼  수 있는 능력이고, 둘째는 천이통으로 그 어떤 소리라도 들을 수 있는 능력이다. 셋째는 비행통으로 공중을 자유롭게 날 수  있는 능력이며, 넷째는 타심통으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이다. 마지막으로 예지력까지  갖춰 미래를 예측할 수 있었다.

  어느 날 밤 제기라는 경전을 독송하다가 피곤해서 자리에  누웠다. 그때 나뢰 역시 독송을 하고 있었는데, 동굴 안이 너무 좁아 그만 실수로 제기라의 머리를 발로 차게 되었다. 그러자 제기라가 벌떡 일어서며 말했다.

  "내 머리를 걷어찬 자는 내일 아침 해가 대나무 키만큼 떠올랐을 때 머리가 일곱 조각 나리라."

  그 말을 들은 나뢰 역시 화를 내며 대꾸했다.

  "내가 실수로 자네의 머리를 걷어찬 것인데, 어찌 그리 심한 저주를 할 수 있는가? 물건을 함께 두어도 부딪히는 일이 비일비재한데, 하물며 이 작은 동굴 안에 두 사람이 살면서 어찌 뜻밖의 실수가 없겠는가? 어쨌든 자네가 이미 그렇게 말해버렸으니, 나는 내일 태양이 떠오르지 못하게 할 것이네."

  나뢰가 신통력을 쓰자 과연 그 다음날 해가 떠오르지 않았다.

  계속해서 오일 동안 해가 떠오르지 않고  세상이 암흑천지가 되자 위로는 왕에서부터  아래로는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모두 두려움에 떨게 되었다. 이에 국왕은 한 도사를 불러다가  그 연유를 물었다. 잠시 후 도사가 국왕에게 대답했다.

  "대왕이시여, 제가 점을 쳐보니 이일은 산속에 살고 있는 두 사람의 수행자가 다투는 바람에 생긴  일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대왕이시여, 서두르지 마십시오. 내일 아침 일찍 국왕께서 남녀노소를  막론한 모든 백성들을 데리고 수행자들이 머물고 있는 곳으로 가서 두 분이  화해를 해달라고 간절하게 부탁하십시오. 그들은 자비로운 수행자들이므로 백성들의 안녕을 위해서라면 결국엔 화해를 할 것입니다."

  국왕은 다음날 도사가 말한 대로 모든 백성들을 거느리고 산으로 갔다. 국왕은 먼저 나뢰를 발견하자 무릎을 꿇고 간절하게 말했다.

  "우리 나라가 풍요롭고 백성들이 편안하게 살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두분 도인들의 덕택이었습니다. 지금 두 분이 다투는 바람에 해가 뜨지  않는 변고가 생긴 것은 모두 제가 부족한  탓이지 백성들은 아무 죄가 없습니다. 바라건대 백성들의 안녕을 위해서라도 화해를 하십시오."

  그러자 나뢰가 대답했다.

  "나도 화해할 생각은 있습니다. 만일 제기라도  화해를 바란다면 당장이라도 해가 떠오르게 하겠습니다."

  이에 국왕은 곧장 제기라에게 달려가서 나뢰의 뜻을 전했다. 그러자 제기라가 말했다.

  "저도 딴 마음은 없습니다. 하지만 해가 떠오르기 전 진흙으로 나뢰의 머리를 일곱 개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국왕은 서둘러 제기라가 시키는 대로했다. 곧이어 해가  떠올라 사방을 환하게 비추자 모든 백성들은 환호성을 치며 좋아했다. 그리고 해의 높이가 대나무 키  정도가 되자 진흙으로 만든 일곱 개의 머리가 단숨에 갈라져버렸다. 그러나 나뢰의 머리는 말짱했다. 그후 두 수행자는  국왕을 도와 나라를 잘다스렸다.

  그런데 사실 이 사건은 두 수행자가 일부러 계획한 것이었다. 국왕과 백성들이 부처님의 인과법을 믿지 않는 것을 가엾게 여긴 수행자들은 이 일을 통해 그들을 교화하려고 했던 것이다.  <육도집경>

 

    마흔세번째 이야기-코 이야기

  수려한 용모의 아름다운 부인을 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유독 부인의 코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남편은 길을 가다가 아름다운 코를 가진 여인을 만나자 이렇게 생각했다.

  '저 여자의 코를 베어다가 내 아내에게 달아주면 금상첨화가 아닐까?'

  그래서 남편은 그 여자의 코를 칼로 베어가지고서는 집으로 달려와 아내를 불렀다.

  "어서 나와 보시오. 내가 당신을 위해 보기 좋은 코를 가지고 왔으니 어서 이것을 달아보시오."

  아내가 나오자, 남편은 칼로 아내의 코를 잘라버리고는 그 위에 자기가 갖고 온 보기 좋은 코를 붙이려고 했다. 그러나 코가 붙을 리 있겠는가? 아내는 도리어  본래의 코를 잃고 심한 아픔을 겪어야만 했다.  <백유경>

 

    마흔네번째 이야기-이 떡은 내 것

  내기를 좋아하는 부부가 있었는데 어느 날 맛좋은 떡 세 덩어리를 얻게 되었다. 그들은 떡 한 덩어리씩을 나누어 먹고 나서, 나머지 한 덩어리를 놓고 내기를 했다.

  "먼저 말하는 사람이 지는 것으로 하는 게 어떻소?"

  "좋습니다."

  부부는 서로 떡을 차지하기 위해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떡만 지켜보고 있었다. 그때 도둑이 담을 넘어 들어와 집에 돈 될 만한 것은 모두 챙겼다그러나 부부는 내기에 서로 지지 않으려고 도둑을 눈앞에 두고서도 노려보기만 할 뿐 소리를 지르지 않고 있었다도둑은 부부가 아뭇 소리 못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배짱이 생겨  남편의 면전에서 아내를 겁탈하려고  했다. 남편은 그 모습을 보고도 묵묵부답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다급해진 아내가 먼저 말을 하고 말았다.

  "이 어리석은 사람 같으니라구. 한덩어리  떡 때문에 도둑이 나를  겁탈하려 하는데도 소리치지 않다니?"

  그러자 남편은 도리어 박수를 치고 웃으면서 말했다.

  "멍청이, 네가 졌지? 이 떡은 이제 내 거야."

  나중에 이 이야기를 들은 주위 사람들 중에는 웃지 않는 이가 없었다.  <백유경>

 

    마흔다섯번째 이야기-음탕한 아내

  옛날에 아내를 무척이나 아끼는 한 남편이 있었다. 그는 행여나 남들이 자기 아내를 볼까 두려워하여 밖에 나다니지 못하게 하고 하루종일 방안에만 있게 했다. 오랫동안 그렇게 지낸 아내는 답답함을 참지 못하여 몰래 땅굴을 파서 바깥 출입을 했다그러던 어느 날 아내는 땅굴을 통해 밖에 나왔다가 한 세공장이를 알게 돼 정을 통하였다. 우연히 땅굴을 발견한 남편은 아내에게 다그쳐 물었다.

  "이 땅굴은 뭐 때문에 판 게요? 혹시 딴 남자와 몰래 만난 게 아니오?"

  아내는 깜짝 놀라기는 했지만 남편이 정확한 사정을 알리 없다고 생각해서 말했다.

  "무슨 말을 그리 심하게 하세요? 제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데 그런  짓을 하겠어요? 이 땅굴은 하도 심심해서 그냥 파본 것이에요."

  아내의 말이 앞뒤가 맞지 않긴 했지만 특별한 증거도 없었기에 남편은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 나와 함께 사당에 가서 신 앞에 맹세할 수 있겠소?"

  아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남편은 사당에 갈 준비를 하느라 목욕재계를 하고 있었다그 틈을 타서 아내는 황급히 정부에게 달려가 말했다.

  "남편이 저를 의심하고 있어요. 얼마 후면 저를 데리고 사당에 가서 신  앞에 맹세를 하게 할 거예요. 그러니 당신이 시장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미친 척하고 저를 끌어안고 놓지 마세요."

  얼마 후 남편은 아내를 데리고 사당으로 가려했다. 그러자 아내는 남편에게 간절하게 부탁했다.

  "당신을 만난 이래 시장에 가본 적이 없어요. 사당에 가는 길에 저를 데리고 가서 시장 구경 좀 시켜주세요."

  그렇게 해서 남편과 아내가 시장을 둘러보고 있는데 갑자기 세공장이가 튀어나와 아내를 끌어안았다. 그러자 아내가 찢어지는 비명을 질러댔다.

  "으악! 이런 쳐죽일 놈이 있나?"

  남편이 발로 세공장이를 차서 떨구자 아내가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왜 남이 저를 껴안도록 내버려둔 거죠?"

  "저 사람은 미치광이요. 내가 일부러 시켰겠소?"

  마침내 부부는 사당에 도착했다. 아내는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제가 평생 부정한 일을 저지른 적이 없었으나 다만 시장에서 한  미치광이가 저를 껴안은 적이 있나이다."

  아내가 맹세하는 것을 들은 남편은 아내를 지켜주지 못한 것 때문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음탕한 아내는 이렇게 해서 남편을 보기 좋게 속일 수 있었다.  <구잡비유경>

 

    마흔여섯번째 이야기-미녀들을 걸고 한 내기

  부처님이 천 명의 아라한과 오백 명의 보살들과 함께 구류국 분유달수원에 계실 때였다. 그때 성안에는 마하밀이라는 바라문이 살고 있었다. 그는 인색하고 욕심이 많았으며 불법을 믿지 않았다. 그러나 아주 큰 부자로 수많은 재보를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지혜가 출중해서 그 나라의 스승이 되니 따르는 제자가 오백명이나 되었고 국왕과 대신까지도 그를 존경하게 되었다바라문에게는 일곱 명의 딸이 있었는데 모두 하나같이  절세미인일 뿐만 아니라 지혜도 뛰어났다. 그러나 그녀들은 사치스러워서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금은보화로 치장을 하고 수시로  옷을 갈아입으며 항상 오백 명 의 시녀들을 거느린 채 교만을  떨었다. 게다가 그녀들은 말재주가 상당해서 구류국 안에는 상대할 사람이 없을 지경이었다그때 분유달이라는 사내가 그녀들에 관한 소문을 듣고 그 바라문의 집에 찾아와 말했다.

  "당신의 따님들이 절세미인이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내기를  한 번 하면 어떨까요? 뭇 사람들에게 따님들을 보여 혹시 그 아름다움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당신이 내게 오백 냥을 주고, 그런 사람이 없으면 제가 오백 냥을 드리도록 하죠."

  바라문은 자신만만했으므로 그 사내의 말대로 내기를 했다. 그런데 석 달 동안 국내를 두루 돌아다녔으나 그녀들을 아름답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 약속대로 그 사내는 바라문에게 오백 냥을 주었다. 그리고 분유달은 다시 바라문에게 말했다.

  "지금 부처님께서 기수원에 계신다고 합니다. 부처님은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일을 다 아시는 분이니 거짓말을 하실 리 없습니다. 그러니 이번에는 따님들을 부처님께 보여드리면 어떻겠습니까?"

  바라문은 좋다고 하면서 오백 명의 권속과 오백 명의 시녀들을 대동하고  딸들과 함께 부처님이 계시는 곳으로 갔다. 그때 부처님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설법을 하고 계셨다. 그들은  각각 부처님에게 절을 한 후 한쪽에 가서 앉았다. 이윽고 바라문이 부처님에게 말했다.

  "부처님께서는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혹시 제 딸들보다 더 아름다운 여인네를 보신 적이 있습니까?"

  부처님은 그 말에 바라문을 꾸짖으셨다.

  "이 여자들은 모두 추할 뿐 예쁜 곳이라고는 한군데도 없구나."

  "어찌 유독 부처님께서만 이 아이들이 추하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나라 사람 중에 이 아이들을 밉다고 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자고로 아름다움이란 눈으로 색을 탐하지 않고, 귀로는 나쁜 소리를 듣지 않는 것이다. 또 코로 향기를 맡지 않고 입으로는 좋은 맛을 탐하지 않는  것이 또한 아름다움이다. 몸으로 부드러움을 탐하지 않으며 악한 생각을 품지 않는 것 역시 아름다움이다. 손으로는 남의 물건을 훔치지 않고 입으로 남을 험담하지 않는 것이 아름다움이다. 교만하지 않고 거짓말을 하지  않으며 나고 죽는 이치를 아는 것이 아름다움이다. 보시한 후에 복이 다름을 믿고 불, , 승 삼보를 믿는  것이 아름다움이다. 그저 얼굴이 아름답다고 해서 진정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몸이나 옷의 아름다움 역시 마찬가지다. 이간하는 말과 거짓말 역시 아름다움이 아니며 바른 마음과 생각이 곧 진정한 아름다움이다."

  부처님이 말씀을 마치자 분유달은 바라문에게서 다시  오백 냥을 돌려 받았을 뿐만  아니라 내기에서 결국 이기게 되었다.  <불설칠녀경>

 

    마흔일곱번째 이야기-두려움의 원인

  부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사미승이 스승과 함께 길을 가다가 땅에 금덩이가 떨어져 있는  것을 보고 슬며시 자신의 품에 넣었다. 그러고 나서 그 사미승은 스승에게 말했다.

  "스승님, 빨리 가시죠. 이곳은 사람들이 없는 곳이라 무서운 생각이 듭니다."

  그러자 스승이 말했다.

  "네가 금덩이를 숨기고 있기 때문에 무서운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 금덩이를 버리면 무서운 생각이 들지 않을 게다."

  사미승은 금덩이를 버리고 난 후 스승에게 절을 하며 말했다.

  "제가 어리석었습니다. 스승님 말대로 금덩이를  버리고 나니 더 이상  무섭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제자들아, 학인이 도를 탐하길 그 사미승이 금덩이를 탐하듯 하면 어찌 도를 얻지 못하겠느냐?"  <불설처처경>

 

    마흔여덟번째 이야기-다섯 왕의 대화

  옛날에 다섯 나라의 왕이 서로 사이좋게 살고 있었다그들의 나라는 서로 인접해 있었기 때문에 서로 자주 왕래하며 친하게 지냈다. 그 중에서 가장 큰 나라의 왕은  보안왕이었는데, 그는 보살행을 실천하는 자비롭고 지혜로운 사람이었다. 나머지 네 명의 왕은 보안왕과는 달리 온갖 사악한 행위를 다하는 사람들이었다.

  보안왕은 그들을 가엾게 여겨 교화할 생각을 하였다. 보안왕은 곧 자신의 궁전에 그들을 초청하여 이레 동안의 잔치를 벌였다. 다섯 왕은 꼬박 이레 동안 매일 음주가무를 즐기며 보냈다. 이레가 지나자 네 명의 왕은 보안왕에게 자신들의  나라에 처리할 일이 많으므로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보안왕은 그들을 화려한 마차에 태우고 여러 신하들과 백성들로 하여금 가두에서 환송하게 했다보안왕은 반드시 그들을 교화하리라는 생각에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들은 각자 무엇을 가장 좋아하는지 이야기해보시오."

  그러자 각각의 왕들이 돌아가며 말했다.

  "저는 꽃 피고 새우는 춘삼월 호시절에 들판으로 소풍가는 것을 좋아합니다."

  "저는 훌륭한 말과 화려한 옷과 궁전을 갖추고 여러 신하들의 시중과 백성들의 존경을 받고 싶습니다. 그래서 궁 밖 출입을 할 때 풍악을 울리며 뭇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것입니다."

  "천하절색의 아내와 자식들과 함께 마음껏 즐기며 사는 게 제 바람입니다."

  "부모형제가 모두 무고하고 호의호식하며 그들과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노는 것입니다."

  각기 말을 마친 네 왕은 같은 질문을 보안왕에게 했다.

  "그러면 대왕께서 좋아하시는 일은 무엇입니까?"

  "먼저 여러분이 말씀한 바를 제 입장에서  이야기해보고 나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처음 분이 말씀하신 춘삼월 호시절의 아름다운 꽃과 나무도 가을이 되면 시들고 말 것이니 이는 영원한 즐거움은 아닙니다. 또 한 분이 말씀하신 국왕의 즐거움도 마찬가지입니다. 옛날의 여러 왕들도 그 국왕됨을 즐겼으나 복이 다하면 이웃 나라의 침공을 받아 망해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했습니다. 그러니 이 또한 영원한 즐거움은 못 됩니다. 그 다음 분은 좋은 처자와  함께 즐기겠다고 했는데, 그들이 만약 병이라도  들면 그 근심과 걱정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 되니, 그 또한 영원한 즐거움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마지막 분은 부모형제가 무고하고 그들과 함께 호의호식하며 지내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하지만 세상 일은 알 수 없는 바 그들이 국법이라도 어겨 옥에 갇힌다면 왕이라고 해도 쉽게 구해낼 수 없는 것이니, 이것 역시 영원한 즐거움은 아닙니다. 나는 불생, 불사, 불고, 불뇌, 불기, 불갈불한, 불열 그리고 존망자재 하기를 바랍니다."

  "대왕의 그러한 바람을 해결해주실 수 있는 훌륭한 스승이 계십니까?"

  "그 분은 바로 부처님이십니다. 지금 기원정사에 와 계신답니다."

  보안왕의 대답을 들은 왕들은 기뻐하며 그와 함께 부처님이 계시는 곳으로 가서 예배하고 말했다.

  "저희들이 둔하고 미련한 탓에 세속의 쾌락에만 탐착할 뿐 죄와 복이 무엇인지 모르고 지냈습니다. 원컨대 부처님께서는 저희들을 위해 가르침을 베풀어주시기 바랍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여러 왕들은 들으시오. 사람이 이 세상을 살아나가는 동안 만나는  괴로움은 한량없는 것이오. 그 괴로움을 크게 대별해서 팔고라고 부르오. 그러면 팔고에 대해 간단하게  말해드리리다. 먼저 태어나는 괴로움과 늙는 괴로움, 병드는 괴로움그리고 죽는 괴로움이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괴로움과 원하는 바를 얻지 못하는 괴로움 그리고 미운사람과 만나는  괴로움과 슬픔, 근심 등의 여러 가지 번뇌 때문에 당하는 괴로움이오. 이것들을 일컬어 팔고라고 하는 것이오."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네 왕은 자신들의 욕심이 모두 부질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불설오왕경>

 

    마흔아홉번째 이야기-목수와 화가

  북인도에 손재주가 아주 좋은 목수가 있었다. 그는 나무를 깎아 여인의 조각을 만들었는데 그 모습이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목수가 그 나무  여인에게 옷을 입히고 머리에 장식을  달아주니 마치 살아 있는 사람과 다름없었다. 나무 여인은 신기하게 움직일 수도 있었고 손님의 술시중도 들 수 있었으나, 아쉽게도 말은 할 수 없었다.

  그때 남인도에는 신기에 가까운 그림 솜씨를 가진 화가가  있었다. 목수는 그 소문을 듣자 좋은 술과 안주를 준비해서 남인도의 화가를 초청했다. 화가가 오자  목수는 나무 여인으로 하여금 술시중을 들게 했다. 화가는 나무 여인이 진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몰랐기에 아름다운 그녀를 좋아하게 되었다밤이 되자 목수는 자기 침실로 돌아가면서 일부러 나무 여인을 화가의 방에 남겨두며 말했다.

  "시녀더러 여기에 남아있으라고 할 테니, 시키실 일이 있으면 시키도록 하시오."

  화가는 무척 좋아하며 목수가 나가기를 기다렸다가 나무 여인을 불렀다. 그러나 나무 여인이 한 마디 말도 없자, 그는 부끄러워서 그러는 줄 알고 그녀의 손목을 끌어당겨 안았다순간 목수는 그녀가 사람이 아니라 나무 인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화가는 그제서야 목수의 장난에 속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정말 바보였구나. 목수의 장난질에 속아넘어가다니... 그렇다고 가만 있을 내가 아니지."

  화가는 목수의 장난을 되받아칠 꾀를  생각해냈다. 벽에 목을 메고 죽은  자신의 모습을 그려 목수를 놀래켜줄 생각이었다. 역시 신기를 가진 화가답게 그 그림은 마치 죽은 사람 같았다. 그림을 다 그린 화가는 방문을 닫고 침상 밑에 들어가 숨었다다음날 아침 목수는 창문을 통해 방안을 들여다보고는 깜짝 놀라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목수는 화가가 목을 메고 죽은 것으로 알고  다급히 칼로 줄을 끊으려고 했다그때 줄이 맥없이 찢어지자 목수는 그것이 그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침상 밑에 숨어 있던 화가가 그제서야 웃으면서 기어나왔다. 목수는 속았다는 생각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이에 화가가 말했다.

  "당신이 나무 여인으로 나를 속였기에, 나도 그림으로 당신을 놀려본 것 뿐이니 너무 노여워 마오."

  화가와 목수는 자신들의 장난을 통해 세상 만사가 모두 같은 이치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더 이상 환영이 판치는 세상에 남아있고 싶은 생각이 없어져  마침내 출가하기로 마음먹고 길을 떠났다.  <잡비유경>

 

    쉰번째 이야기-파계승과 귀신

  불교의 계율을 범해 절에서 쫓겨난  한 비구가 있었다. 그는 자신을  자책하며 괴로운 마음으로 길을 가고 있었다. 그때 파계승은 한 귀신을 만나게 되었다. 그 귀신 역시  법을 어겨 비사문천왕의 천궁에서 쫓겨난 처지였다. 귀신이 먼저 파계승에게 물었다.

  "당신은 무슨 괴로운 일이 있길래 그리도 표정이 어둡소?"

  "나는 계율을 어겨 절에서 쫓겨난 몸이라오. 이런 이유로 시주들은 나에게 전혀 보시를 베풀지 않는다오. 게다가 나를 둘러싼 나쁜 소문까지 퍼져 모두들 나를 외면하니 이 어찌 슬픈 일이 아니겠소?"

  "내가 당신이 오명을 벗고 보시도 많이 받을 수 있게 해주겠소. 내가 날 수 있으니 내 왼쪽 어깨에 올라타고 다니면 다른 사람들은 나를 보지 못하므로 당신이  하늘을 날아 다니는 것으로 알 게요. 그러면 사람들은 당신을 신선으로 알고 많은 보시를 베풀 것이오만약 일이 잘되어 많은 보시물을 받게 되면 나와 조금 나누어 가지는 조건으로 말이오."

  그렇게 해서 귀신은 파계승을 어깨에 태우고 한 마을을 지나게 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파계승이 하늘을 나는 모습을 보고 너무 놀라 이렇게 말했다.

  "절에 있는 스님들이 잘못 생각한 거야. 저 스님은 신선의 경지를 이룩한 것이 틀림없는데 무고한  사람을 쫓아내다니..."

  이에 마을 사람들은 절로 달려가 파계승을 쫓아낸 다른 스님들에게 항의하고  파계승을 절 안으로 모셨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파계승에게 많은 보시를 베풀었다. 파계승은  귀신과의 약속대로 보시물 중의 일부를 귀신에게 나누어주었다며칠 후 귀신은 또 파계승을 어깨 위에 태우고 공중을 날아가다가 비사문천왕의 부하를 보자 깜짝 놀라며 부리나케 도망갔다. 이 와중에 이유도 모른 채  갑자기 땅에 떨어진 파계승은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고 말았다.  <잡비유경>

 

    쉰한번째 이야기-단맛

  우유를 팔아 생계를 유지하던 한 노파가 있었다. 어느  날 노파는 우유 항아리를 둘러메고 시장에 내다팔려고 길을 나섰다. 도중에 노파는 암마륵나무에  열매가 가득 열려 있는 것을  보고 몇 개 딴 다음 나무 아래 앉아서 열매를 먹었다그 열매가 매우 달아 노파는 물을  먹기 위해 근처에 있는 우물로  갔다. 거기에는 한 젊은이가 물을 긷고 있어서 노파는 그 젊은이에게 물을 조금 얻어 마셨다그런데 입 안에 남아 있는 단맛 때문에 물 맛이 마치 꿀맛 같았다. 신기하게 생각한 노파가 물었다.

  "어떻게 우물 물이 이렇게 달 수 있을까? 마치 꿀 맛 같네그려."

  "그렇습니까?"

  "저기 있는 내 우유 한 항아리와 당신이 뜬 우물 물 한 항아리를 바꾸면 어떻겠소?"

  그 젊은이는 속으로 얼씨구나 하면서 얼른 노파의  말대로 우유와 물을 바꾸고는 사라져버렸다. 노파 역시 매우 좋아라 하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암마륵나무 열매의 단맛은 입 속에 남아 있지 않았다.

  노파는 집으로 돌아와 항아리 속에서 물을 한 사발  떠서 마셨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물은 아무런 단맛도 나지 않았다. 노파는 이상하다고 생각해서 이웃집 사람을 불러 물 맛을  보게 했다. 물을 마시고 난 이웃집 사람이 말했다.

  "이 물에서는 나뭇잎 썩은 냄새가 나서 도저히 마실 수가 없소. 왜 이물을 맛보라는 거요?"  그 말을 듣고 노파는 다시 물을 떠서 맛보았다. 그랬더니 과연 나뭇잎 썩은 냄새가 났다.  "아이고, 내가 정말 바보 같은 일을 저질렀구나. 우유를 이런 악취나는 물과 바꾸다니..."  <대장 엄론경>

 

    쉰두번째 이야기-분노라는 가시

  한 수도자가 사람들이 지나 다니는 길가에서 고행을 하고 있었다. 보는 사람이 있으면 그는 가시나무 위에 눕고, 보는 사람이 없으면 나무 그늘에 앉아 쉬곤 했다. 그 사실을  눈치챈 어떤 이가 참지 못하고 그 사람을 비웃었다.  "그렇게 고행을 하면 가시가 살을 파고들어 얼마나 아프겠소가시를 훑어버리고 그 위에 누우면 설사 구른다 해도 하나도 아프지 않을 것이오."

  고행자는 그 말을 듣자 화가 나서  참을 수 없었다. 그는 갑자기  가시나무 위에 누워 이전보다 더욱 세차게 몸을 굴렸다. 그때 한 불제자가  그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고행자는 자기를 지켜보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자 더욱 세차게 몸을 굴렸다. 그러자 불제자가 고행자에게 다가와 조용하게 말했다.

  "당신은 이전에도 가시로 몸을 괴롭히더니 이제는 분노하는 마음 때문에 더욱 자신을 해치고 있구려. 가시는 그저 피부를 상하게 할 뿐이지만 분노는 정신을  멍들게 하는 것이오. 가시 때문에 생기는 상처는 나아서 없어질 수도 있지만 분노로 인해 멍든 정신은  언제 다시 회복될지 알 수 없소. 그러니 분노라고 하는 독의 가시를 빨리 뽑아버리는 것이 옳을 것이오."  <대장엄론경>

 

    쉰세번째이야기-아이들을 구한 장자의 지혜

  옛날에 수많은 재보를 가진 나이 많은 장자가 있었다. 그는 매우 큰 저택에 살고 있었는데, 그 저택에는 출입문이 한 군데밖에 없었다. 어느 날 장자는  볼일을 보러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자신의 저택에 불이 난 것을 보게 되었다. 그 순간 장자는 집 안에서 놀고 있던  아들들이 떠올랐다. 그들은 나이도 어린데다가 노는 일에만 정신이 팔려 불이 난 것도 모르고 있을 것이 틀림없었다. 단숨에 집 앞까지 뛰어온 장자는 목청껏 소리쳤다.

  "얘들아, 집에 불이 났으니 빨리 뛰어나오너라."

  그러나 아이들은 계속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장난만 칠 뿐 도통 장자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이에 장자는 생각했다.

  '이제 불길이 더 거세져 잠시라도 지체하면  아이들이 다 타죽고 말리라. 그렇다고  내가 직접 들어가 아이들을 등에 업고 나오자니 그 수가 많아 시간이  허락지 않겠구나. 이제 꾀를 내어 아이들을 구하는 수밖에 없으리.'

  생각을 마친 장자는 다시 목청껏 소리쳤다.

  "얘들아, 여기에 너희들이 좋아하는 장난감이 있다. 지금 당장 나와서  갖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할 것이다. 양이 끄는 수레, 사슴이 끄는 수레 그리고 소가 끄는 수레가 여기 밖에 있으니 어서 나와 타고 놀아라."

  정신없이 놀고 있던 아이들은 장자가 장난감을 준다고 하는 말에 귀가 솔깃해져 모두 앞다투어 불 타는 집에서 달려나왔다. 장자는 그 모습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아이들은 장자에게 장난감을 달라고 졸라댔다. 장자는 아이들이 살아난 것이 너무 기뻐 큰  돈을 들여 그 모든 아이들에게 소가 끄는 수레를 사주었다.  <묘법연화경>

 

 

      3장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이다

    쉰네번째 이야기-벽지불의 유래

  바라나국의 국왕이 하루는 찌는 듯이 날씨가 무덥자 높은 누각에서 더위를 싹 가시게 하는 진귀한 약을 궁녀를 시켜 자신의 몸에 바르게 했다. 그 일을 담당한 궁녀의 팔에는 형형색색의 팔찌가 끼워져 있었다. 그녀가 국왕의 몸에 약을 바르기 시작하자 팔찌들이 좌우로 끊임없이 움직이면서 서로 부딪혀 시끄러운 소리를 냈다. 국왕은 그 소리가 너무나 듣기  싫어 궁녀에게 차고 있는 팔찌들을 모조리 바닥에 내려놓으라고 했다.

  그 팔찌들은 모두 금이나 옥으로  만든 것이라 바닥에 하나씩 내려놓을  때마다 소리가 났다. 그런데 궁녀가 마지막 옥팔찌를 바닥에 내려놓을 때에는 신기하게도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았다.

  "이 옥팔찌도 본래 바닥과 부딪히면 소리가 나야 하는 법인데뜻밖에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는구나. 조정의 신하와 만 백성 그리고 궁녀들도 평소에 불편한 심정을 가질 수 있는데, 그들이 할 말이 있어도 하지 못하게 한다면 옥팔찌가 소리나야 하는 원리를 억지로 막는 것과 다를 바가 없지 않는가?"

  국왕은 생각하면 할수록 미묘한 이치를 깨달을 수 있을 것 같아 홀로 앉아 사색에 잠겼다. 그러고 있는 사이 국왕의 머리카락이 어느새 모두 빠지고, 입고 있던 옷은 풀로 변해  있었다. 그 뿐만 아니라 어느새 국왕은 누각에서 내려와 있었는데 온몸에서는 힘이 철철 넘쳐흘렀다. 국왕은 내친 김에 궁을 떠나 산속으로 들어가버렸다.

  그때 아직 부처님이 이 세상에 나오지 않았기에  홀로 출가수도한 국왕은 '벽지불'이 되었다. 그 당시 수행하는데 적합한 신심을 갖춘 적지 않은 사람들이 좋은 결과를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아직 그때는 부처님이 세상에 나오지 않았던 때였기에 그렇게  속세를 버리고 출가하여 깨달음을 얻은  사람들은 모두 '벽지불'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좌선삼매경>

 

    쉰다섯번째 이야기-출가의 공덕

  어느 날 부처님은 제자 아난과 함께 비사리성에 들어가 발우를 들고 차례로 여러 집들을 돌며 걸식을 했다. 비사리성에는 비라이나왕자가 살고 있었는데, 그는 그날 여러 궁녀들과  함께 높은 누각에서 음주가무를 즐기고 있었다. 그때 그 모습을 본 부처님은 아난에게 말했다.

  "저 왕자는 칠일 후 반드시  죽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지금  출가하지 않는다면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들은 아난은 왕자에게 달려가 부처님의 예언을 전했다. 왕자는 비통한 표정을 짓다가 지옥에 떨어지고 싶지는 않으니 출가하겠노라고 말했다. 그로부터 엿새 동안 왕자는 인간이 즐길 수 있는 모든 쾌락을 마음껏 다 맛보았다. 그리고 이레째 되는 날 아침 부처님을 찾아가 출가하기를 청했다.

  출가한 비라이나왕자는 하룻밤 하루낮 동안 계율을 지키며 수행하다가 마침내  숨을 거두고 사천왕천에 태어났다. 그리고 사천왕천에서의 수명이 끝나자 북천왕  비사문의 아들로 태어나 여러 천녀들과 함께 갖가지 쾌락을 즐겼는데, 그곳에서의 수명은 오백 세였다. 그후 다시 제석천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그때의 수명은 일천 세였다. 그리고 다시 염마천의 왕자로 태어나서는 이천 세를 살았다. 이처럼 비라이나왕자는 단 하루 출가한 공덕으로도 무려 이십 겁 동안이나 지옥에 떨어지지 않고 천상에 태어나 행복한 생활을 누릴 수 있었다.

  또 어떤 이는 집이 부유해서 갖추고 있지 않은 것이 없었지만 어느덧 장년을  거쳐 노년이 되자 세속을 싫어하게 돼 출가수도를 했다. 그는 계속해서 열심히 수행한 탓에 비류제리라는 이름을 가진 벽지불이 되어 천하의 중생을 구제하니 그 공덕의 무량함은 가히 그 끝을 알 수 없는 대해와도 같았다만약 만 천하의 사람들이 모두 아라한이 된다면 모든 이들의 수명은 일백 세가 될 것이며, 살아 있을 때 정성을 다해 삼보를 공양한다면 분명히 사리탑에 모셔질 수 있다세상 사람들이 갖가지 향과 꽃으로 삼보를 공양함으로써 쌓은 공덕은 열반을  구함에 있어 하룻밤 하루낮 동안 계를 지키며 출가한 공덕과  다르지 않다. 따라서 진짜 출가하면  그 존귀함이 이루 말할 수 없는데 세상 사람들은 사소한 재물과 여색 등을 탐하여 사후에 육도를 윤회하며 갖은 고생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불설출가공덕경>

 

    쉰여섯번째 이야기-인약왕자 이야기

  먼 옛날 동방의 염부제에 한 나라가 있었는데, 그곳엔  큰 병이 돌아 수많은 백성들이 극심한 고통을 당하고 있었다. 그 나라 왕의 이름은 마혜사나 였는데, 그는 팔만사천 개의  커다란 고을을 다스릴 정도로 위세가 대단했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마혜사나왕의 왕후가 임신을  한 후 그녀의 손을 만진 병든 이들은 모두 기적같이 병이 나았다그로부터 열 달 후 왕후는 사내 아이를 낳았다그런데 그 사내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놀랍게도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사람들의 병을 치료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아이가 태어날 때 염부제의 모든 신들은 다같이 입을 모아 이렇게 말했다.

  "지금 태어난 국왕의 아들이 바로 인약이오."

  그 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그 나라  사람치고 듣지 못한 자가 없었고이에 국왕은 그 아이의 이름을 인약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후 수많은 병든 백성들이  인약왕자를 만나 병을 치료받기를 바라며 무리지어 몰려드었다. 인약왕자가 병든 이들을 손으로 만지면 곧 그들의 병은 씻은 듯이 나았다. 인약왕자는 본래 자기 수명인 천 살까지  내내 병든 이들을 치료해 고통을  벗어나게 해주었다. 인약왕자가 수명을 다 마친후에 그를 찾아온 병든 백성들은 가슴을 쥐어짜며 울먹였다.

  "이 세상에 인약왕자가 없다면 누가 우리들의 병고를 해결해줄 수 있으리요?"

  그리고 그들은 분분히 물었다.

  "인약왕자의 시신은 어디에서 화장했습니까?"

  이윽고 병든 백성들은 인약왕자를 화장한 곳에 우르르 몰려갔다. 그리고 그 유골을 수습한 후 가루로 만들어 온몸에 바르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그들의 몸은 기적처럼 단숨에 회복되었다인약왕자의 유골 가루가 다 없어진 후에도 그 화장터에 서 있던 병든 백성들은 모두 이전의 건강을 되찾을 수 있었다부처님은 이 이야기를 끝내시며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때의 인약왕자는 바로 나의 전신이었느니라."  <보살장경>

 

    쉰일곱번째 이야기-죽었다가 살아난 사람

  멀고 먼 옛날 어떤 사내가 불교를 믿지 않고  외도의 사설을 믿고 있었다. 그러다가 나중에서야 외도를 버리고 불교에 귀의했다. 그때부터는 철저히 오계를 지키며 날마다 불경을 읽고 항상 스님들에게 보시하며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 공덕을 많이 쌓았다그런데 불행하게도 그는 갑자기 큰 병에 걸려 여러 가지 약을 다 써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날로 쇠약해져가는 아들의 모습에 부모는 눈물지으며 병수발을 들었다어느 날 그 사내는 곧 죽음이 임박함을 느끼고 곁에 있던 부모에게 말했다.

  "제가 죽더라도 칠일내에는 매장하지 마십시오."

  말을 마친 사내는 이내 숨을 거두었다. 부모는 대성통곡하며 밤낮으로 아들의 시신 곁에서 울며 자리를 지켰다. 그리고 눈 깜짝 할 새 칠일이 지났다. 팔일째 되던 날 아침이 되자 친척들은 그 모습을 보다 못 해 이제는 빨리 장례를 치르고 몸을 추스리라고  죽은 사내의 부모에게 말했다. 그러나 부모는 아들이 마지막 남긴 말을 기억하고 이렇게 말했다.

  "아직 시신이 전혀 부패하지도 않았고, 얼굴도 마치 살아 있는 사람같으니 며칠만이라도 더 기다려보도록 하세."

  그때 관 속에 누워 있던 사내가 갑자기 눈을 떴다. 그러나 몸을 움직이거나 말을 하지는 못했다. 부모는 아들이 다시 살아났다고 생각해서 기뻐 날뛰며 밤낮으로  그 곁을 떠나지 않았다. 십일째가 되자 사내는 일어나 앉아 말을 할 수  있었다. 부모는 십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한 그에게 미음을 끓여주어 원기를 회복하도록 한 다음 도대체 그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물어보았다. 이에 아들은 자기가 겪은 일을 천천히 부모에게 들려주었다.

  "내 혼이 몸 을막 떠나려고 할 무렵 귀졸들이 나를 잡더니 으시시하게 보이는 어떤 성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성문 앞에는 두 명의 귀졸이 파수를 서고 있었고, 성안에는 커다란 감옥이 있었습니다. 그 감옥의 사면은 모두 철판으로 만들어졌으며 사방에서 불이 맹렬하게 타오르고 있었습니다감옥 안으로 들어서자 어떤 사람이 불 속에서 비명을  지르는 모습이 보였고, 또 귀졸들이 나무에 묶인 어떤 사람의 살을 도려내는 것도 보았습니다. 실로 그 모습은 공포스럽기 그지없었습니다. 그때 귀졸들은 저를 어느 대전으로 데리고 들어갔습니다그곳에는 염라대왕이 무시무시한 귀신들에게 둘러싸인 채 일을 보고 있었습니다. 이윽고 염라대왕이 제게 물었습니다."

  "너는 누구냐? 무슨 죄를 지었길래 이곳에 온 게냐? 이곳은 특히 세상에서 불충불효했던 자들을 다스리는 곳이다."

  저는 매우 공손하게 대답했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나쁜 사람들의 꾐에 빠져 그만 외도를 믿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술을 마시고  짐승을 죽여 하늘에 제사를 지내기도 했으며 시장에서 보는 눈이 없으면 물건을 훔치기도 했습니다. 그때 저지른 죄가 얼마나 무거운지는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그러나 나중에 불문에 귀의한 뒤로는 지금까지 오계를 지키며 부처님 가르침대로 성실하게 살아왔습니다. 대왕께서는 부디 저를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하는 말을 듣고 염라대왕은 저를 자세히 들여다보고는 말했습니다.

  "불교를 믿는 사람이라면 죽을 때 혼이 천상으로 가는 법이다. 그리고 다시 인간으로 태어난다고 해도 부귀한 집안의 자식이 되는 법인데..."

  그리고 염라대왕은 저를 잡아온 귀졸들을 불러 물었습니다.

  "저 자가 불제자라고 하는데 너희들은 왜 저자를 이곳으로 데려왔느냐?"

  "대왕께서는 모르시고 하는 소리입니다. 세상에는 저 자 같은 사람이 무척 많은데 모두 왕법을 두려워하지 않고 또 행동거지도 일정하지 않습니다. 저 자의 스승되는 스님은 삭발한 머리에 너덜너덜한 가사를 걸치고 있는데 지저분하기 그지없으며 매우 독선적인데도 불구하고 사방팔방에서  널리 제자들을 불러모으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벌을 받아 마땅합니다."

  "불문에 귀의한 사람은 세상 사람들을 대할 때  부귀빈천을 따지지 않고 동일하게 대한다. 또 스님이 왕법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출가자이기 때문이다. 무릇 불법을 믿는 자는 부귀가 무한하게 되고, 믿지 않는 자는 지옥에 떨어져 고통을 받게 마련이다. 너희들은  빨리 가서 장부를 자세히 살펴보고 이 사람의 수명이 정말로 끝났는지 확인해보도록 하라."

  귀졸들은 황급히 장부를 들춰보고 나서 염라대왕에게 말했습니다.

  "저 자는 아직 이십여 년의 수명이 남아있습니다. 저희들이 착오를 일으킨 것은 저 자가 어렸을 때 저지른 죄 때문입니다."

  "부처님은 대자대비로 모든 중생들을 제도하시고 일체의 생명있는 것들을 가엾게 여기신다. 그래서 천지의 모든 신들과 귀신들마저 부처님께 경배를 드린다. 부처님의 법력은 무한하고, 그 은덕은 사해의 바닷물보다 더 많아 결코 없어지지 않는 법이다. 나도  부처님을 믿지 않았던 탓에 이곳에 떨어져 염라대왕이 되었다. 이 사람은 이미 불문에 귀의했고, 또 어렸을 때 죄를  참회했으니 남아있는 수명을 누리게 하라."

  "분부대로 하겠나이다."

  그리고 귀졸들은 저를 성밖으로 데리고 나와 어느  절벽에 이르더니 나를 밀어버렸습니다. 저는 비명을 지르며 떨어지다가 눈을 떠보니 다시 살아난 것이었습니다."

  부모는 아들의 이야기를 듣고 매우 기뻐하며 부처님의 보살핌에 끝없는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제자사부생경>

 

    쉰여덟번째 이야기-비구와 주모

  옛날 마투라국에 사는 한 남자가 세속을 싫어하여  불제자 우파급다를 스승으로 모시고 출가했다. 이렇게 해서 비구가 된 그 남자는 우파급다에게 부정관을 전수받아 번뇌를 끊고자 했다. 부정관이란 인간의 육체가 추하고 더러운 것임을 관찰하여 탐욕의 번뇌를 없애는 관법이다. 그런데 그 비구는 부정관을 완전히 다 익히기도 전에 이미 번뇌를 모두 멸했다고 자신하였다. 그래서 스승 우파급다를 찾아가 말했다.

  "저는 이미 부정관을 통해 모든 번뇌를 멸했습니다."

  우파급다는 이 비구가 비록 바탕이 총명하기는 하나 모든 일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이렇게 말했다.

  "어찌 한두 번 부정관을 수행했다고 해서 번뇌가 끊어지랴? 게으름  피우지 말고 더욱 열심히 노력하거라."

  "스승님, 저는 정말 아라한의 경지에 이른 것 같습니다."

  "너는 건타라국에 사는 주모 이야기를 듣지 못했느냐? 그녀는 재가 신자인데, 마치 너처럼 충분한 수행을 다 하지도 않은 채 아라한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주장하는 여자다. 수많은 번뇌의 고통 없이 해탈을 얻을 수는 없는 법이다. 어쨌든 정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건타라국에 가서 그 주모를 만나보고 오너라."

  비구는 스승의 말에 따라 행장을 챙겨 건타라국으로  떠났다. 이윽고 건타라국에 도착한 비구는 토석사라는 절에 묵게 되었다. 다음날 아침 탁발을 나간 비구는 사람들에게 그 주모가 살고 있는 곳을 물어보았다. 그 주모는 대단히 유명했던지 사람들은 즉시 그 거처를 알려주었다.

  비구가 그 집으로 찾아갔더니 한 여자가 마당에서 바삐  움직이며 일을 하고 있었다. 주모는 한 비구가 문 앞에 와 있는 것을 보고는 보시할 음식을  준비해 가지고 나왔다. 그 순간 비구의 눈은 휘둥그레졌다. 주모는 날씬한 몸매에 아주 아름다운 얼굴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구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욕정이 솟아오름을 느꼈다.

  또 이미 아라한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스스로 말하는 주모 역시 비교적 잘생긴 편에 속한 비구를 보자 마음이 흔들려 그만 욕정을 느끼고 말았다. 주모는 백옥처럼 흰 치아를 드러내며 미소짓고는 비구의 발우를 받아들려고 했다. 그러다가 두 사람의 손이 서로 부딪혔다이때 비구는 갑자기 스승 우파급다가 생각났다. 그리고  자기 마음속에 음욕이 완전히 제거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아직 번뇌를 다 끊지도 못했는데 아라한의 경지를 얻었다고 하는 것은 그야말로 어불성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주모  역시 아라한의 경지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음을 비구는 알아차릴 수 있었다. 비구는 부정관을 사용하여 주모의 아름다운 육체 역시 본질적으로는 더럽고 추한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재차 확인하고서야 음욕을 제어할 수 있었다. 그때서야 비구는 스승 우파급다 앞에서 자만했던 자신이 무척 부끄럽게 생각되었다나중에 그는 마투라국으로 돌아와 다시 열심히 수행해서 마침내 아라한의 지위를 얻었다.  <아육왕경>

 

    쉰아홉번째 이야기-하늘이 내려준 아들

  옛날에 선시라는 장자가 살고 있었다. 그는 평소 보시하기를 좋아하고 삼보를 받들어 뭇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선시에게는 매우 예쁘고 영리한 딸이 하나 있었는데, 나이는 찼지만  아직 시집을 가지 않고 있었다.

  어느 날 집에 불이 났는데 갑자기  따뜻한 기운이 장자의 딸아이 몸 안으로  들어가더니 그만 임신이 되고 말았다장자 부부는 딸이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자 깜짝 놀라  언성을 높여 딸을 추궁했다. 그녀는 자기도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모르겠다고 사실대로  말했다. 그러나 장자 부부는 딸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여겨 매를 휘두르면서 이실직고하라고 했다. 그녀는 아파서 죽을 지경이었지만 끝까지 자기도 영문을 모르는 일이라고 말했다.

  장자 부부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국왕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국왕은 장자의 딸에게 불미스러운일이 있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울먹이며 집에 불이 난 후 자신도 모르게 임신하게 된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어떻게 국왕이 그 말을 믿겠는가? 국왕 역시 그녀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 나머지 화가 나서 사형을 언도했다. 그러자 그녀는 대성통곡하며 말했다.

  "결코 저는 불미스러운 일을 저지른 적이 없는데 죽이시겠다니, 이 억울함은 부처님만이 아실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국왕은 마음이  변해서 그녀에게 확실히 억울한 사정이  있으리라 생각했다. 또 연약한 여자를 죽이고 싶은 마음도 없어서 국왕은 선시 장자에게 그녀를 아내로 삼겠다고 했다. 그녀가 아름다웠을 뿐만 아니라 그녀의 말이 사실이라면 뱃속에 있는 아이는 분명 하늘이 내리신 아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에 장자 부부는 매우 기뻐하면서 딸을 국왕에게 시집보냈다이렇게 해서 국왕의 부인이 된 장자의 딸은 어느덧  달이 차자 아들을 낳았는데, 그 모습이 단정하고 총명하기 그지없었다. 아들은 나이가 들어서도 천진하고 순박한 마음씨를 그대로 유지했다. 나중에 그는 출가해서 오래지 않아 아라한의 경지를 이루었다. 그후 그는 자신의  부모를 제도했는데, 어머니는 매우 기뻐하며 불법을 믿게 되었다. 그리고 국왕과 여러 대신들도 전부 삼보를 공경하며 선행을 쌓았다.  <분별공덕론>

 

    예순번째 이야기-귀신을 잡은 서생

  안양성 남쪽에 한 사원이 있었는데, 그곳에는 귀신들이 들끓어 감히 그 안으로 들어가려는 사람이 없었다. 간혹 귀신 따위는 믿지 않는다는 간  큰 사람들이 그 사원 안에 들어갔다그러나 다음날 살아서 걸어나온 자가 없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귀신이 실제로 있다고 굳게 믿었다그러던 어느 날 과거를 보러가던 한 서생이 그  사원에서 하룻밤 묵어가려고 했다. 이에 마을 사람들은 그 서생에게 그간의 사정을 말하며 극구 말렸다. 그러나 서생은 코방귀를  뀌었다. 세상에 귀신이 어디 있으며, 자기는 미신 따위는  믿지 않는다며 큰소리를 치고선  말리는 마을 사람들을 뒤로하고 사원 안으로 들어갔다.

  저녁이 되자 서생은 촛불을 켜놓고 책을 읽다가 밤이  이슥해지자 불을 끄고 잠을 자려고 했다. 침대 위에 누운 그는 갑자기 낮에 사람들이 말했던 귀신  이야기가 생각났다. 비록 귀신 따위는 믿지 않지만 아무래도 꺼림칙한 면이 있어 몸을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자정이 지나 막 잠이 들려고 하는데, 사람 그림자 같은 것이 창 밖에서 어른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깜짝 놀란 서생은 잠이 싹 달아나고 말았다. 그래서 자세히 쳐다보니 검은 옷을 입은 자가 창 밖에서 왔다갔다 하다가 한 곳에 멈추더니 조용히 말하는 것이었다.

  "주인님! 주인님!"

  그러자 어두컴컴한 곳에서 답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

  "사원 안에 사람이 있습니까?"

  "낮에 서생 한 사람이 들어와 방금 전까지  책을 읽다가 막 자리에 누웠는데 겁에  질려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네."

  검은 옷을 입은 자는 후유 하고 한숨을 쉬더니  곧 가버렸다. 서생은 너무 두려운 나머지 숨소리조차 낼 수 없었다. 잠시 후 붉은 옷을 입고 붉은 모자를 쓴 자가 창 밖에서 왔다갔다 하였다. 그러고는 앞의 검은옷을 입은 자가 섰던 곳에 멈추더니 조용히 말했다.

  "주인님! 주인님!"

  또 그 어두컴컴한 곳에서 답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

  "사원 안에 사람이 있습니까?"

  "서생 한 사람이 막 잠자리에 들었는데, 아직 잠을 이루지 못한 것 같네."

  붉은 옷을 입은 자 역시 후유  하고 한숨을 쉬더니 가버렸다. 이제  서생은 거의 정신이 나갈 정도로 겁이 났다. 그러나 한참이 지나도록 아무런 움직임이 없자 서생은 용기를 냈다. 몸을 일으켜 앞의 두 사람이 서 있던 곳으로 가서 그들의 목소리를 흉내내며 조용히 말했다.

  "주인님! 주인님!"

  그러자 과연 답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

  "사원 안에 사람이 있습니까?"

  "서생 한 사람이 막 잠자리에 들었는데, 아직 잠을 못 이루고 있지."

  "그런데 아까 그 검은 옷을 입은 자는 누구입니까?"

  "북당에 사는 암퇘지라네."

  "붉은 옷을 입고 붉은 모자를 쓴 자는 누구입니까?"

  "그건 서당에 사는 수탉이라네."

  "그러면 주인님은 누구십니까?"

  "나는 땅속에 사는 전갈이지."

  서생은 앞 뒤 사정을 눈치채고선 조용히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와 다시 촛불을  켜고 날이 밝을 때까지 책을 읽었다. 날이 밝자 마을 사람들은 서생이  분명히 죽었을 것이라고 떠들어대며 사원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그가 여전히 살아 있는 모습을 보고 기겁했다. 서생은 마을 사람들에게 말했다.

  "빨리 가서 호미와 올가미를 가지고 오시오. 나와 함께 귀신들을 잡으러 갑시다."

  곧이어 호미와 올가미를 가지고 온 마을 사람들은 서생 뒤를 졸졸  따라가서 어젯밤 소리가 들려왔던 곳을 파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거대한 전갈이 떡 버티고 앉아 있는데, 몸통이 비파만 하고 독침이 수 척에 이르는 정말 무섭게 생긴 놈이었다. 그러고 나서  서당에 가보니 역시 요물스럽게 생긴 수탉이 있었다. 또 북당에 가보자 과연 요괴처럼 생긴  암퇘지가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힘을 합쳐  그 세 요물들을 그 자리에서 죽였다 이후로 그 사원에는 귀신이 나온다는 말이 없어졌다고 한다.  <법원주림>

 

 

    예순한번째 이야기-충격 요법

  옛날에 병을 잘 치료하기로 소문난 의사가 있었다. 그에게는 아들이 여러 명  있었다. 한번은 그가 외국에 볼일을 보고 집에 돌아오니 아들들이 집에 있는 독약을 먹고 발작하며 방바닥에 뒹굴고 있었다의사는 그 모습을 보고 대경실색했다. 중독된 아이들 중에서  그나마 제 정신이 남아 있던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했다.

  "다녀오셨습니까? 아버지. 저희들이 미련하여 독약을 먹는 바람에 이렇게 되었습니다."

  의사는 곧 여러 가지 약재를 꺼내와 해독제를 만들어 아들들에게 주면서 말했다.

  "이 약만 복용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게다."

  그러나 제 정신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던 아들들은 곧 그 해독제를 먹고 완쾌되었으나, 심하게 중독된 아들들은 아버지도 몰라보며 해독제를 도통 먹으려 하지 않았다. 이에 의사는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내서 아들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제 늙어 죽을 때가 가까워졌다. 여기 해독제를 두고 다시 볼일을  보러 갈 것이니, 너희가 이 해독제를 먹으면 반드시 완쾌될 것이다."

  그리고 의사는 외국에 나가 다른 사람을 보내 자신이  객사했다는 말을 전하게 했다. 그 소식을 전해들은 아들들은 비통해하면서 탄식했다.

  "아버지가 계시면 언제나 우리를 보살펴주실 텐데, 이제 돌아가셨으니 우리는 누구를 의지하고 살아야 한단 말인가?"

  실성할 정도로 상태가 나빴던 아들들도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리에 그만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아버지가 남기고 간 해독제를 먹고 모두 완쾌되었다. 그제서야 의사는 집에 돌아와 아들들에게 자신이 건재하게 살아 있음을 보여주었다.  <묘법연화경>

 

예순두번째이야기-달에 간 토끼

한 숲속에서 여우와 원숭이 그리고 토끼가 사이좋게 살고 있었다. 그때 천제가 그들의 덕행을 시험해보고자 노인으로 변해 동물들에게 물었다.

  "너희들은 사이좋게 잘 지내고 있느냐?"

  세 동물은 입을 모아 말했다.

  "우리는 맛있는 풀이 자라는 초원에서 자유롭게 뛰어다닙니다. 그리고 숲속에서 다른 짐승들과 재미있게 놀며 편안히 지내고 있습니다."

  "듣자하니 너희들의 우애가 대단하다고 해서 늙은 몸을 이끌고 이렇게 먼 길을 왔단다. 지금 나는  무척 배가 고픈데, 너희들이 먹을 것을 좀 갖다주지 않으련?"

  "여기서 잠깐 기다리고 계시면, 저희들이 먹을 것을 찾아다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세 동물들은 각자 먹을 것을 찾아나섰다. 여우는 강가로 가서 잉어  한 마리를 잡아왔고, 원숭이는 숲속에서 여러 가지 과일을 따서 노인에게 주었다그러나 토끼만은 먹을 것을 찾지 못해 빈손으로 돌아왔다.

  그러자 노인이 말했다.

  "너희들 마음이 한결같지는 않은 모양이구나. 여우와 원숭이는 말한대로  먹을 것을 가져왔는데, 토끼는 그냥 빈손으로 돌아왔구나."

  노인의 말을 들은 토끼는 매우 부끄러워하며 여우와 원숭이에게 말했다.

  "너희들이 가서 땔나무를 구해오렴. 그러면 노인에게 아주 맛있는 음식을 마련해 드릴 수 있어."

  잠시 후 여우와 원숭이는 땔나무를 잔뜩 구해가지고  돌아왔다. 그것들을 쌓아놓고 불을 붙이자 이내 땔나무는 맹렬한 기세로 타올랐다그때 토끼가 말했다.

  "인자한 노인이시여, 저는 당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못했습니다. 이에 이 비천한 몸을 바쳐 노인장에게 공양하려고 합니다."

  토끼는 말을 마치자마자 불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러자  노인은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 불속에서 토끼의 뼈를 꺼내들고는 무척 감격해하며 여우와 원숭이에게 말했다.

  "토끼의 행동은 정말 감동적인것이었다. 나는 토끼를 데리고 달로 가서 인간들이 영원히 토끼의 공덕을 기리게 할 참이다."

  그래서 달에는 한 마리의 토끼가 살게 되었다고 한다.  <대당서역기>

 

    예순세번째 이야기-화살의 비유

  부처님이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실 때였다그때 마라구마라 존자는 조용한 곳에서 번뇌에 빠져 있었다.

  '이 세계는 영원한 것인가, 아닌가? 영혼과 몸은 같은 것인가, 다른 것인가? 사람이 죽으면 내생이 있는가, 없는가? 부처님께서는 이러한 문제에 대해 단언을 내리신 적이 없다나는 이러한 문제가 궁금해 참지 못하겠다. 부처님께 직접 가서 물어보자. 만일 부처님께서 이에 대한 답을 해주시면 수행을 계속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수행을 단념하리라.'  마라구마라 존자는 부처님이 계시는 곳으로 가서  예배를 드리고 조용히 물러앉은 후  자기가 생각한 문제를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이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마라구마라여, 비유를 들어 말하겠다. 어떤 사람이 전쟁터에 나가서 독화살을 맞았다고 하자. 이제 그 사람의 목숨은 경각에 달려 있다. 그런데 전우들이 바로 독화살을 뽑을 생각은 않고, 이 독화살을 쏜 사람이 누구인지, 이 독화살의 독은 무슨 종류인지, 또 독화살의 재료가 무엇인지를 알기 전에는 독화살을 뽑을 수 없다고 한다. 그러면 독화살을 맞은 사람은 그 사이에 죽고 말  것이다. 네가 말한 질문에 어떤 대답을 한다 해도 현실의 생로병사를 막을 수 없는 법이다. 마라구마라여, 나는  말해야 할 것을 말하고 말해서는 안될 것을 말하지 않는다. 네가 제기한 문제는 인간의 인식의 범위를 넘어선 것이다. 그러기에 어떤 방식으로도 논증할 수 없으므로 참된 의미를 갖지 못한 것이며, 또 수행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다. 그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평생을 보낸다면 저 독화살을 맞은 사람처럼 끝내 치료를 하지 못하고 죽음을 맞는것과 같다. 나의 가르침은 현실의 생로병사를 제거하기 위함이지, 어떤 말에 대한 해답을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다."

  부처님께서 말씀을 마치자 마라구마라 존자는 진심으로 기뻐하며 수행의 길을 계속 가게 되었다.  <불설전유경>

 

    예순네번째 이야기-바라나왕자

  아주 먼 옛날 바라나를 국호로 하는 큰 나라가 있었는데, 그 나라  국왕의 이름은 바라마달이었다. 그에게는 왕자가 두 명 있었는데, 모두 신체가 건장하고  얼굴 또한 무척 잘생겨서 국왕은 그들을 끔찍이 사랑했다.

  그런데 왕자들 중 작은 왕자는 항시 이런 생각을 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마땅히 형이 왕위를 계승하리라. 세상에 태어나 왕이  되지 못하면 차라리 도를 닦는 것이 더 나으리라.'

  이에 작은 왕자는 부왕에게 가서 말했다.

  "저는 깊은 산속에 들어가 신선의 도를 구하려 하오니, 원컨대 허락해 주십시오."

  바라마달왕은 처음에는 들은 체도 하지 않다가 작은 왕자의 뜻을 절대 꺾을 수 없음을 깨닫고 마침내 승낙했다.

  몇 년 후, 국왕이 서거하자 형이 왕위를 계승했다. 그러나 형은 왕이 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몹쓸 병을 얻어 세상을 뜨고 말았다. 형에게는 왕위를 이어받을 자식도 없었다. 이에  여러 신하들이 모여 의논을 했다. 그때 한 나이 든 대신이 말했다.

  "작은 왕자님이 산에 들어가 수도하고 있으니 마땅히 그 분을 모셔와 왕위를 이어야 하오."

  그러자 모두들 그 의견에 동의했다. 신하들을 대표한 대신이 산속에서 수도를 하고 있는 작은 왕자를 찾아가 왕위를 계승해달라고 부탁했다. 이에 작은 왕자가 말했다.

  "그것은 두려운 일이오. 나는 이곳에서 아무런 걱정 없이 조용하게  살고 있는데, 세상은 흉악하여 서로 죽이고 해치기를 좋아하오. 내가 왕이 되면 역시 그런 일을 당하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소. 나는 왕이 될 생각이 없으니 이만 돌아가시오."

  그러자 대신이 말했다.

  "국왕이 서거하시고 그 뒤를 이을 적자가 없나이다. 오직 왕자님만이 선왕의 혈통을 잇고 계실 따름입니다. 지금 이 나라 백성은 주인을 잃고 헤매는 소떼와 같습니다. 원컨대  그들을 가엾게 여기사 왕위를 계승해주십시오."

  작은 왕자는 대신이 간곡히 부탁하자 어쩔 수없이 궁궐로 돌아와 왕위를 계승했다. 그런데 작은 왕자는 어려서 입산했기 때문에 여자를  가까이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다가  궁궐에 있는 수많은 궁녀들을 보자 자제할 줄 몰랐다. 급기야 작은 왕자는 여색에 빠져 방탕한 생활을 하였다. 심지어 작은 왕자는 이런 칙령을 내리기도 했다.

  "이제부터 처녀가 시집을 가고자 하면, 먼저 짐의 숙소에서 하룻밤  지내고, 남편 될 사람에게 돌아가야 한다."

  그렇게 해서 시집가는 처녀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먼저 첫날밤을 작은 왕자와 함께 보내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처녀가 대로변에서 옷을 몽땅 벗고 서서 소변을 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깜짝 놀라 그 처녀에게 말했다.

  "너는 부끄럽지도 않으냐? 어떻게 여자가 이럴 수가 있느냐?"

  그러자 그 처녀가 대답했다.

  "모두가 여자인데 그 앞에서 옷을 벗고 소변을 본 게 무엇이 부끄럽다는 것입니까?"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여기에는 남자들도 많은데..."

  "아닙니다. 이 나라에 남자는 왕 한 사람밖에 없습니다. 이 나라의 모든 여자들은 왕의 노리갯감이 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진정한 남자라면 어떻게 그냥 두고 볼 수만 있단 말입니까?"

  처녀의 말을 듣고 부끄럽다 못 해 얼굴이 빨개진 남자들은 그 말이 백번  옳다고 생각해서 몰래 백성들의 뜻을 모아 왕을 없애고자 했다. 왕이 성밖에 있는 맑고 깨끗한 연못에 자주 목욕하러 온다는 것을 알게 된 신하와 백성들은 미리 그곳에 잠복해서 왕을 기다리고 있었다이윽고 왕이 연못에 이르자 뭇 사람들이 손에 무기를 들고 나타나 왕을 죽이려고 했다. 깜짝 놀란 왕이 물었다.

  "너희들은 도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 게냐?"

  그러자 사람들이 입을 모아 말했다.

  "당신은 정사에는 관심없이 오로지 여색에만 탐닉하여 풍습을 망치고 온 백성들을 욕보였소. 이제 우리들도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어 당신을 없애고 새로운 왕을 세우려고 하는 것이오."

  이리하여 바라나왕자는 백성들에게 원성을 사서 죽임을 당하였다.  <현우경>

 

    예순다섯번째 이야기-사람보다 옷이 먼저

  먼 옛날의 일이다계빈국에 홀로 열심히 수행하여 경전에 통달한 스님이 있었다어느 날 그 스님이 커다란 사원을 방문하였는데, 마침 그곳에서는 성대한 제사가 열리고 있었다. 그런데 스님의 옷이 무척 남루한 모습을 본 사원의  문지기가 문을 가로막고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스님의 행색을 보고 업신여긴 문지기가 스님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는 바람에 결국  그 스님은 사원에 들어갈 수 없었다이에 스님은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냈다친구 집에 가서 좋은 옷  한 벌을 빌어 행색을 그럴듯하게 꾸미고서 다시 사원으로 간 것이다. 이번에는 문지기가 스님을 막아서기는커녕 굽신거리며 안으로 안내했다사원안에 있던 사람들은 스님에게 여러 가지 맛있는 음식을 권했다. 그런데 스님은 앞에 차려진 진수성찬을 먼저 자신의 옷에 바르고 있지 않은가? 그 모습을 의아하게 여긴 사람들이 물었다.

  "맛있는 음식을 드렸더니, 어찌 옷에 바르십니까?"

  그러자 스님은 조용히 미소지은 뒤 대답했다.

  "사실은 제가 예전에 이곳을 찾았으나, 문지기가 제 옷이 무척 남루한 걸 보고 문조차 열어주지  않습디다그려. 그래서 좋은 옷을 빌어 입고 나서야 이 자리에 앉아 여러 가지 맛난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좋은 옷 때문에 생긴 복이라, 먼저 옷에게 음식 맛을 보게 하려는 것이오."  <대지도론>

 

    예순여섯번째 이야기-지식과 지혜의 차이

  옛날에 신심이 두터운 두 형제가 있었다그들은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장사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들은 나인국에 물건을 팔러가게 되었다길을 가면서 동생이 형에게 말했다.

  "형님, 듣자 하니 나인국은 아직 문명화된 나라가 아니라 그곳  사람들은 알몸으로 지내고, 또 풍습도 우리들과는 완전히 다르다고 합니다. 그들의 풍습에 따라 알몸을 드러낸 채 아무런 옷도 걸치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네 정서로는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만일 옷을  입은채 나인국에 들어간다면 그곳 사람들은 우리들을 괴물 바라보듯 하고, 상대하려들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제 생각엔 그들의 풍습에 따라 알몸으로 장사를 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동생의 말을 들은 형은 동의할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어떤 곳을 간다 해도, 설사 그곳이 제일 야만스러운 곳이라 해도 예의와 도덕을 어길 수는 없는 법이다. 알몸으로 장사하러 가는 것은 분명 예의와 도덕에 크게 어긋나는 일이다."

  동생은 계속해서 형을 설득했다.

  "옛날부터 현자들은 수행할 때 겉모습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고 합니다. 심지어 수행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몸도 돌보지 않았다고 하니, 그것을 일러 '몸은 버리되  수행은 버리지 않았다'라고 합니다. 이것은 계율이 허락하는 바입니다."

  형은 동생과 언쟁을 하고 싶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그렇다면 네가 먼저 나인국에 가서 상황을 살펴본 후, 사람을 보내 알리도록 해라."

  이렇게 해서 먼저 나인국에 들어간 동생은 십여 일이 지나자 형에게 사람들 보내 그들의 풍습을 따라 장사하면 크게 성공할 수 있으리라는 말을 전했다. 그 말을 들은 형은 크게 화를 냈다.

  "아무리 장사를 한다고 해도 짐승처럼 알몸을 드러내는 것은 사람의 할 일이 아니다. 나는 절대로  너처럼 할 수 없다."

  나인국의 풍습에 따르면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축제를 벌였다. 사람들은 축제날 밤이 되면 얼굴에 기름을 바르고 온몸에는 백토로 갖가지  무늬를 그린 다음 머리에는 동물의  뼈로 만든 장신구를 달았다. 그리고 돌로 만든 악기를 두드리며 남녀노소가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놀았다동생은 그들의 모습을 흉내낸 채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즐겁게 놀았다. 나인국 사람들은 위로는 왕에서부터 아래로는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동생을 좋아하지  않는자가 없었다. 나인국 국왕은 동생이 가지고 온 물건들을 충분한 값을 치르고 모조리 사들였다.

  형은 마차를 타고 나인국에 들어왔다그는 옷을 단정히 입고 엄한  어조로 나인국 사람들의 풍습은 인의도덕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자 국왕과 백성들은  모두 크게 화를 내며 한꺼번에 달려들어 형이 가지고 온 물건들을 빼앗고 뭇매를 때렸다. 그때 동생이 달려나와 만류하자 나인국 사람들은 그제서야 겨우 형을 풀어주었다형과 동생이 나인국을 떠날 때가  되었다. 그러자 나인국 사람들은 모두  몰려나와 동생을 둘러싼 채 칭찬을 하며 환송했고, 형에게는 욕을 했다. 형은 부끄러워 어쩔 줄을 몰라했다.  <육도집경>

 

    예순일곱번째 이야기-죽음을 벗어날 수 있는 곳

  옛날 부처님이 왕사성의 죽원에서 설법하고 계셨다. 그때 네 명의 바라문 형제가 있었다. 그들은 신통력을 가지고 있어서 칠일 후에 자신들의 목숨이 다할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함께 모여 의논했다.

  "우리는 신통력으로 하늘과 땅을 뒤엎고 해와 달을 만지고 산을 옮기고 강을 막는 일도 할 수 있는데, 어찌 죽음을 피할 수 없겠는가?"

  그러고는 한 사람씩 돌아가며 말했다.

  "나는 큰 바다 속에 숨어 나오지 않을 것이다아무리 죽음의 귀신이라고 해도 내가 있는 곳을 어찌 알겠는가?"

  "나는 수미산을 가르고 그 속에 들어가 숨을 작정이다."

  "나는 넓디넓은 허공 속에 숨으련다."

  "나는 큰 시장 한복판에 숨을 것이다. 죽음의  귀신이 와서 나를 잡으려고 할 때,   많은 사람 중에 나를 어찌 알아보겠는가?"

  의논을 마친 네 형제는 왕에게 가 자신들이 나눈 이야기를 알리며  죽음에서 벗어난 후 돌아오겠다고 했다. 그러고 나서 그들은 각기 말한 대로 흩어졌다. 그러나 그들은 마치  과일이 익으면 떨어지듯이 칠일이 지나자 모두 죽고 말았다시장을 감독하던 관리가 왕에게 말했다.

  "어떤 바라문이 시장 한복판에서 죽었습니다."

  왕은 곧 그 죽은 자가 네 명의 바라문 형제 중 한 사람임을 알고 말했다.

  "네 사람이 죽음을 피해 갔는데 이미 그 중 한 사람이 죽었다. 나머지 세사람이라고 어찌 죽음을 면할 수 있겠는가?"

  왕은 곧 화려한 마차를 타고 부처님이 계시는 곳으로 가서 예배를 드린 다음 말했다.

  "근래 신통력을 가진 네 명의 바라문 형제가 자신들의 죽음이 임박한 사실을 미리 알고, 모두  죽음을 피해 떠났습니다. 부처님, 그들은 과연 죽음을 피할 수 있을까요?"

  "대왕이여, 사람으로서 벗어날 수 없는 네 가지 일이 있소첫째는 중음(중음은 죽은 뒤 다음의 생을 받아 태어날 때까지의 존재를 가리키는 말이다)으로 있으면서  생을 받지 않을 수 없는 것이고둘째는 한번 나면 늙지 않을 수 없는 것이오. 그리고 셋째는 늙으면 병들이 않을  수 없는 것이고, 넷째는 병들면 죽지 않을 수 없는 것이오."

  계속해서 부처님은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허공도 아니고 바다도 아니어라

  산속도 아닌

  죽음을 벗어날 수 있는 곳

  그 어디에도 없어라.

 

  이 일은 내가 할 일이니

  반드시 성취해야 한다고

  사람들이 제아무리 초조해 한다고 해도

  늙음과 죽음의 근심은 짓밟고 다니리.

 

  이러한 사실을 알아 스스로 고요하고

  그렇게 생이 끝난다는 것을 보면

  비구는 악마의 병사를 싫어하여

  비로소 생사를 넘어서게 되리."

  왕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감탄하면서 말했다.

  "훌륭하십니다. 정말로 부처님 가르침대로입니다. 네 사람이 죽음을 피해 떠났지만 이미 한 사람이 죽었습니다. 목숨은 한정된 것이니 나머지 사람들도 역시 죽음을 피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옆에 있던 신하와 관리들도 부처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가 없었다.  <법구비유경>

 

    예순여덟번째 이야기-지금은 너무 바쁘니 다음에 오라

  옛날에 부처님이 사위국에 계실 때의 일이다. 그때 성안에는  팔십 세쯤 된 한 바라문이 있었는데 재물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그 바라문은 사람됨이  완고하고 미련하며 또 인색하고도 욕심이 많아 교화하기가 어려웠다. 그는 도덕의 가치를 모르고 인생의 무상함도 생각지 않는 사람이었다그는 집짓기를 즐겼다. 그의 집 앞으로는 사랑채가 있고 뒤로는 별당이 있으며 시원한 누각과 따뜻한 방도 있었다. 그리고 동서로 수십 칸의 작은 방이 있었다. 다만 뒤쪽 별당의 차양만은 아직 완성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바라문은 항상 직접 나서서 집짓는 일을 감독했다부처님은 천안으로 그 바라문이 그 날을 넘기지 못하고 죽게 될 것을 알았다. 그러나 사실을 알리 없는 그 바라문은 바삐 돌아다니며 일을 하고 있었다. 그의 몸은 수척하고 힘이 빠져 정신에는 복이 하나도 없었으니 참 가련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부처님은 제자 아난을  데리고 그 집에 가서 바라문에게 물었다.

  "한창 바쁘구나. 그런데 이 집을 어디에 쓰려고 짓고 있느냐?"

  "앞 사랑채는 손님 접대를 위해서 그리고 뒷 별당에는 제가 살려고 합니다. 또 동서의 여러 작은 방은 아이들과 종복 그리고 재물을 보관하는데 쓰려고 합니다여름에는 시원한 누각에 오르고 겨울에는 따뜻한 방안에서 지낼 참입니다."

  "네가 전생에 쌓은 복덕이 많은 줄은 알고 있었으나 만나서 이야기 하는 게 늦었구나. 마침 생사에 관계되는 중요한 게송이 있어 알려주려고하는데 잠시 일을 멈추고 같이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게 어떻겠느냐?"

  "지금은 너무 바빠 앉아서 이야기 할  틈이 없습니다. 후일 다시 오시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다만 그 중요한 게송이나 말씀해주십시오."

  이에 부처님은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자식과 재물 때문에

  어리석은 자는 허덕이누나

  ''''가 아니거늘

  자식과 재물을 걱정해서 무엇하랴.

 

  더울 때에는 여기서 살리라

  추울 때에는 저기서 살리라

  어리석은 이는 미리 걱정도 많건만

  닥쳐올 변고도 알지 못하네.

 

  어리석은 이 어리석기 짝이 없어

  스스로 지혜롭다고 하나

  어리석은 자가 지혜롭다 하면

  그야말로 더없는 어리석음이라."

  부처님의 게송을 들은 바라문이 말했다.

  "그 게송은 참으로 훌륭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니 나중에 다시 오셔서 이야기 하십시오."

  부처님은 그 바라문을 가엾게 여기면서 자리를 떠났다. 그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바라문은 서까래를 직접 올리다가 놓치는 바람에 그것이  머리에 떨어져 즉사하고 말았다. 갑자기  초상을 당한 그 집안의 통곡 소리가 사방에 가득하였다. 부처님이 아직 멀리 가시기도 전에 그런 변고가 생겼던 것이다계속해서 길을 가고 있던 부처님은 마을 입구에서  수십 명의 바라문들을 만났다. 그들은 부처님에게 다가와 물었다.

  "어디에서 오시는 길입니까?"

  "저 죽은 바라문의 집에 가서 그를 위해 설법했지만 그는 내 말을 믿지않았다. 또 인생의 무상함을 생각지도 않다가 지금 갑자기 목숨이 끊어졌느니라."

  부처님은 이미 말했던 게송을 다시 바라문들을 위해 들려주셨다. 그들은 그 게송을 듣고 매우 기뻐하여 곧 도의 자취를 얻게 되었다.

  그때 부처님은 다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이가 지혜로운 이와 친하다고 해도

  마치 국자가 국맛을 보는 것 같아서

  비록 오래 사귀었다 해도

  법을 알지 못하리.

 

  현명한 이가 지혜로운 이와 친하면

  마치 혀가 음식 맛을 보는 것 같아서

  비록 잠깐 사귀었다 해도

  곧 도의 요체를 알게 되리.

 

  어리석은 이의 행동은

  자신의 몸에 우환을 부르나니

  즐거운 마음으로 악을 행하다가

  커다란 재앙에 빠지게 되는 법

 

  악한 일을 행한 후에

  물러나 뉘우치고 후회하며

  눈물을 흘리나니

  이 응보는 과거의 업에서 오는 것이리."

  이 게송을 들은 바라문들은 더욱 믿음이 돈독해져 부처님께 예배하고 기뻐하면서 받들어 행하였다.  <법구비유경>

 

    예순아홉번째 이야기-구두쇠 이리사

  옛날에 이리사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대단히 큰 부자였다그러나 그는 지독한 구두쇠라서 남에게 조그만한 물건도 보시하는 법이 없었다. 뿐만 아니라 자기가 먹는 것도 거의 맨밥에 가까웠고 옷도 다 낡은 옷만 입었다.

  반면 이리사의 이웃집 사람은 그렇게 부자가 아닌데도 매일 밥먹을 때마다 고기와 생선이 끊이질않았다. 그 모습을 본 이리사는 생각했다.

  '나는 저 사람보다 훨씬 부자인데 도리어 더 불쌍하게 사는구나.'

  이리사는 마음을 독하게 먹고 닭 한 마리를 잡은 다음 백미 한 됫박을 챙겨 마차를 타고 아무도 없는 벌판으로 나갔다. 그곳에서 그는 닭을 굽고 밥을 해서 혼자서만 배불리 먹으려 했다이리사가 구두쇠인 것을 알고 있던 제석천은 그 우매함을 깨우쳐 주려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한 마리 개로 변신해서 이리사의 주위를 얼쩡거렸다. 그는 닭 뼈다귀까지 꿀꺽 삼켜 개가 먹을 것이라곤 조금도 주지 않았다. 그러나 그 개는 계속해서 꼬리를 흔들며 입에는 침을 잔뜩 물고 있었다그 모습을 본 이리사가 말했다.

  "네가 네 발을 하늘로 향한 채 공중에 뜰 수 있다면 한 점 주마."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개는 이리사의 말대로 공중에 떴다. 그는 깜짝 놀라긴 했지만, 닭고기를 주는 게 아까워 닭껍질을 조금 떼어주었다. 그러나 그 개는 닭껍질을 먹지 않았다. 그러자 이리사가 말했다.  "그렇다면 좋다. 네가 네 눈을 뽑아 준다면 닭고기를 조금 주지."

  곧이어 탁탁 소리가 들리더니 어느새 개 눈이 땅바닥에 떨어졌다. 이리사는 매우 기뻐하며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잘됐다. 이제 저 놈의 개가 눈도 없으니 따라오지 못하겠지? 이제 이 어른께서는 조용히 음식맛을 즐기겠다.'

  이리사는 재빨리 음식을 챙긴 다음 자리를 옮겨 천천히 음미하기 시작했다이리사가 멀리 가기를 기다린 제석천은 이리사의 모습으로 변신하여 마차를 타고 이리사의 집으로 갔다. 집으로 들어서자마자 그는 문지기에게 명령했다.

  "누가 집에 들어오려고 하거든 누구를 막론하고 매를 때려 쫓아내도록 하라."

  그리고 이리사로 변신한 제석천은 집안에 있던 모든 재물을 가난한 이들에게 보시해버렸다한편 자리를 옮겨 음식을 다  먹은 이리사는 마차가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마차는 온데간데 없었다. 그래서 씩씩거리며 집에 도착해서 문을 들어서려 하는데 문지기가 무조건 몽둥이를 휘둘러대는 게 아닌가? 화가 머리끝가지 난 이리사가 소리쳤다.

  "아니, 감히 나를 때리려 한단 말이냐?"

  문지기는 조금도 봐줄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우리 주인 마님께서 누구를 막론하고 집에 못 들이게 하셨소."

  "내가 바로 너희 주인인데 어느 주인 마님이 그랬다는 게냐?"

  "뭐라고? 정말 참지 못하겠군. 내 너를 때려 죽이리라."

  문지기로부터 뭇매를 맞은 이리사는 넋을 잃고 주저앉았다그런데 먼 발치에서 집 안을 들여다보니 온갖 재물은 간 곳이 없고 집 안이 텅텅 비어  있었다. 마음이 다급해진 이리사는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그때 제석천이 수행승의 모습으로 변신해서 이리사 앞에 나타나 합장을 한 다음 물었다.

  "시주께선 무슨 일로 그리 슬피 울고 있는 것입니까?"

  "어떤 놈의 농간으로 가산을 탕진하게 되었다오."

  "시주, 잘 들으시오. 재물이 많으면 번뇌와 화가 따르는 법이오. 당신처럼 돈을 목숨처럼 여겨  제대로 먹지도 않고, 가난한 이들에게 보시도 하지 않으면 죽어서 아귀의 몸을 받게  될 것이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설사 아귀의 몸을 벗어나 인간으로 태어난다고 해도  항상 천한 사람이 될 것이니, 잘 생각해보시오."

  수행승의 말을 들은 이리사는 갑자기 깨닫는 바가  있었다. 그는 개과천선하여 보시행을 즐기는 사람이 되었다.

  <구잡비유경>

 

    일흔번째 이야기-꼭두각시

  옛날에 한 솜씨 좋은 목수가 살았다. 그는 솜씨를  부려 만든 물건을 사람들에게 구경시켜 벌은 돈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여러나라를 돌아다니던 중 한 나라에  잠시 머물렀는데 그 나라의 왕은 신기한 물건을 매우 좋아했다. 그래서 목수는 나무로 꼭두각시 하나를  만들어 그 내부에 여러 가지 장치를 달았다. 꼭두각시의 얼굴은 매우 잘생긴 데다가 정밀하여 진짜 사람과 구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사람과 똑같이 행동하고 노래하며 춤추는 모습을 보면 도저히  꼭두각시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목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이 아이는 내 아들이오."

  그 나라 백성들은 꼭두각시를 무척 좋아해서 여러 가지 재물을 서슴없이 내놓았다. 그 이야기를 전해 들은 국왕은 그들을 초청해서 노래와 춤을 추도록 했다. 국왕과 왕비가 누각에  올라 구경을 하는데, 목수의 '아들'이 노래하고 춤추는 모습은  신기하기 그지없어 진짜 사람도  따르지 못할 정도였다. 국왕과 왕비는 구경을 하며 너무나 좋아했다그때 목수의 '아들'이 춤을 추며 곁눈질로 왕비를 훔쳐보았다. 그 모습을 본 국왕은 대단히 화가 났다.

  "너는 왜 곁눈질로 내 부인을 훔쳐보는 게냐? 이 호색한 같은 놈아!"

  이렇게 말한 국왕은 주위에 있던 병사들에게 명령했다.

  "당장 저 놈의 목을 쳐라!"

  깜짝 놀란 목수는 눈물을 흘리며 국왕 앞에 무릎을 꿇고 말했다.

  "저는 자식이라고는 이 아이밖에 없어서 무척 아끼는 바입니다. 이 아이를 보고 있노라면 모든 걱정이 사라집니다. 이 아이가 그런 실수를 하리라곤 조금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대왕께서 굳이 이 아이를 죽이시겠다면, 저도 함께 죽을 작정입니다. 대왕이시오, 부디 이 아이의 죄를 용서해주십시오."

  그러나 국왕은 목수의 간절한 부탁을 전혀 들어줄 태세가 아니었다. 목수가 다시 국왕에게 말했다.

  "정녕 죽이시겠다면 제가 직접 죽이겠습니다. 다른 사람을 시키지 말아 주십시오."

  그 말에는 국왕도 동의했다. 목수가 '아들'의 어깨에서 조그만 막대 하나를 뽑아내자 '아들'의 몸은  금방 분해되었다. 땅바닥에 나뭇조각들이 여기저기 흩어진 모습을 본 국왕은 깜짝 놀라며 말했다.  "아니, 내가 나무토막을 보고 화를 냈단 말이냐? 이 목수의 솜씨는  그야말로 천하 제일이다. 그가 만든 꼭두각시는 수백 개의 나무토막으로 만든 것임에도 사람보다 행동이 더 자연스럽구나."

  감탄한 국왕은 그 목수에게 억만 냥의 황금을 주었고목수는 그 돈을 받아 고향으로 돌아가 부모형제들과 일생 동안 편안하게 살았다.  <생경>

 

    일흔한번째 이야기-독을 쓰는 집안

  옛날의 일이다. 독을 사용하여 사람을 죽이는 일로 돈을 번 한 집안이 있었다. 일단 중독이 되면 특별한 해독약이 없었기 때문에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다. 그 집안 사람들은 중독된 사람들이 죽음을 당하더라도 상관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 나라 백성들은 모두  그 집안을 두려워하여 감히 왕래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그러던 차에 그 집안의 아들이 장성하여 결혼할 나이가  되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그 집에 딸자식을 주려 하지 않았다.

  "그 집안은 세상에서 가장 나쁜 집안이다. 만약 그 집안과 사돈을 맺게 되면 틀림없이 호랑이를 제 집에 끌어들이는 꼴이다. 그들은 가리지 않고 독을 쓰기 때문에 언제 어떻게 될는지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니까 마치 도적을 대하는 것처럼 멀리해야 할 것이다. 따지고 보면  그 집안 사람들은 도적보다 더 나쁘다. 도적을 만나더라도 운이 좋으면 살아나는 경우도 있지만, 그들의 독수에 걸리는 날엔 빠져나올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집안의 아들은 아무리 해도 신부감을 구할 수 없었다. 급기야 그 집안은 먼 외국에서 신부감을 찾기에 이르렀다. 마침내 아주 가난한 이가 그 집안의 재물이 많은 것을 보고 딸을 주기로 하였다. 신부는 비록 가난한 집안 출신이었지만 얼굴도 예쁘고 부지런하며 예절에도 밝았다결혼 때문에 막대한 비용을 치른 그 집안은 다시 독을 쓰는 일을 계속하여 큰 재산을 모으고자 했다. 어느 날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불러 이렇게 말했다.

  "독을 써서 사람을 죽이는 것은 우리집의 가업이니, 너도 지금부터 배우도록 해라."

  그러나 며느리는 단호하게 말했다.

  "어머니, 저희 친정집 사람들은 선량해서 지금껏 다른 사람들을 해친 적이 없습니다. 사람을 독살하다니 말도 안 됩니다. 죽는 한이 있어도 저는 할 수 없습니다."

  시어머니가 꾸중을 하고 협박을 해도 며느리는 끝내  말을 듣지 않았다. 그러자 시어머니는 독신에게 기도하며 말했다.

  "시집 온 며느리가 독 쓰는 일을 하지 않으려 하니, 이 일을 어쩌면 좋겠습니까?"

  독신이 그 기도에 응답했다.

  "내가 알아서 할 터이니 아무 걱정 말라."

  그러고 나서 독신은 한 마리 독사로 변신한 다음 며느리를 쫓아다녔다. 그 독사는 안 가는 데가 없어 어느 때는 며느리의 이마 위에 나타났다가, 밥 먹을 때는 얼굴 앞에 있기도  하고, 물을 마시려 하면 그릇 속에서 나타나고, 밤에는 침상 옆에 또아리를 틀고 있었다. 며느리는 너무나 무서워 잠도 못 자고 밥도 먹지 못해 어느덧 뼈만 앙상히 남아 가련한 몰골이 되었다. 그때 독신은 그녀에게 말했다.

  "독 쓰는 일을 하겠다고 하면 너를 놓아주리라."

  며느리는 어쩔 수 없어 그러마고 대답했다.

  그러던 어느 날 며느리 친정집의 이웃에 사는 사람이  이 나라에 왔다가 그녀의 집에 들렀다. 그녀는 탐스럽고 예쁘던 얼굴이 말이 아니게 상하여 초췌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는 의아해하면서 물었다.

  "무슨 일로 이렇게 몰골이 말이 아니게 변했느냐?"

  며느리는 그 사람에게 자기 사정을 알리고 이렇게 말했다.

  "저희 친정집에 가셔서 이 일을 알려 빨리 저를 데려가도록 해주세요. 그렇지않으면 저는 죽고 말  거예요."

  그 사람이 돌아가서 그녀의 부모에게 사실을 알리자, 부모는 딸이 걱정스러워서 어쩔 줄 몰라했다. 그래서 아버지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마차를 달려 마침내 딸이 사는 집에 도착해서 그 시어머니에게 말했다.

  "어미가 딸이 보고 싶어 밤낮으로 우는데 차마 지켜볼 수가 없어 왔습니다. 딸을 며칠간 친정에  데리고 있다가 오래지 않아 돌려보내겠습니다."

  시어머니도 사돈의 말을 거절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해서 아버지는 딸을  집으로 데려온 후 사람을 시켜 그 집안에 말을 전했다.

  "당신네가 원래 독을 쓰는 집안이었음을 알았다면 내 딸자식을 시집보내지 않았을 것이오. 내 이제 딸을 데려왔으니 다시는 돌려보내지 않을 작정이오. 만약 이  일로 찾아와 시끄럽게 군다면 나는 당장 관아에 고발할 것이오. 그러면 당신 집안은 멸문지화를 당할 것이오. 하지만 개과천선하여 다시는 독을 쓰지 않겠다고 하면 딸을 돌려보낼 수도 있소."

  그 말을 들은 시아버지와 시어머니는 상의를 했다. 며느리는 천하에 보기 드물게 품행이 방정한 여인이었으므로 그들은 차라리 가업을 포기할지언정 며느리는 포기할  수 없다고 결론을 지었다. 또 사돈의 말대로 관아에 알려지기라도 하면 국법을 어긴 죄로 엄한 벌을 받으리라는 생각도 한몫했다. 그래서 그들은 독을 포기하기로 맹세하고 다시는 그 일을 하지 않았다. 또 더 이상 독신을 섬기지 않음으로써 온 가족이 행복하게 살았다.  <생경>

 

    일흔두번째재 이야기-여우가 비웃다

  옛날에 돈을 아주 많이 가진 여자가 있었다. 어느 날  그녀는 한 사내를 알게 되어 가지고 있던 금은보화를 모조리 챙켜 그 사내를 따라나섰다. 한참 길을  가다가 급류를 만나자 사내가 그 여자에게 말했다.

  "몸에 지니고 있는 금은보화를 모두 내게 주면 그것들을 저 건너편에 내려놓고 다시 헤엄쳐와서 당신을 건네주겠소."

  사내의 말을 믿은 그녀는 가지고 있던 금은보화를 몽땅 넘겨주었다. 사내는 그 물건들을 가지고 저쪽 강가에 도착하자마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줄행랑을 쳐버렸다그녀는 넋을 잃은 채 멍하니 강가에 홀로 앉아 있었다그때 여우 한 마리가 매를 노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막 매를 잡으려던 여우는 강 속에서 헤엄치고 있는 물고기에  주의를 돌렸다. 그러고는 매를 쫓다 말고 물고기를 잡으러 갔다. 그 사이 매는 날아가버리고, 물고기도 숨어버렸다. 그 모습을 본 그녀는 박장대소하며 여우에게 말했다.

  "넌 참 어리석구나. 한꺼번에 두 먹이를 쫓다가 둘 다 놓쳐버렸으니 말짱 헛일이다."

  그러자 여우가 그녀를 비웃으며 대답했다.

  "남 이야기 하지 마시오. 자기 재물을 몽땅 남에게 줘버린 당신보다 멍청한 사람이 또 있을까?"  <구잡비유경>

 

    일흔세번째 이야기-교행 육 년의 인연

  불심이 깊어 계율을 잘 지키며 선정을 베푼 한  국왕이 있었다. 백성들은 인자한 국왕 덕에 태평성세를 구가하였다. 그때 한 수행자가 속세와 인연을 끊고 산속에 살면서 수도생활을 하고 있었다어느 날 그는 걸식을 하러 나왔다가 몹시 목이 말라 연못물을 한 모금 마셨다. 그러고는 고개를 들어 연못 속에 연꽃이 여러 송이 피어 있는 모습을 보았다. 수행자는 이내 후회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아차, 내가 잘못을 저질렀구나. 연못 주인이 연꽃을  심어 기른 후 부처님에게 공양하려고 했을 터인데, 내가 주인에게는 한마디 말도 없이 연꽃이 취할 물을 마시고 말았구나도둑질한 죄를 지으면 내생에 축생으로 태어나 갖은 고생을 다할 것이고, 사람으로  태어난다 해도 노비가 되어 등이 휘어지게 일을 해야 할 것이다. 정말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구나. 당장 죄를 자백하고 용서를 구해 내생에 그와 같은 과보를 받지 않아야겠구나.'

  이렇게 생각한 수행자는 서둘러 국왕을 만나러 갔다.

  "대왕이시여, 저는 다른 사람의 물건을  훔쳤으니 법대로 처벌해주십시오. 저는 이  세상에서 그 죄의 대가를 치름으로써 내세에는 또다시 죄과를 받지 않으려 합니다."

  국왕은 자리에 앉아 수행자가 하는 말을 처음부터 끝까지 자세히 듣고 나서 박장대소하며 말했다.

  "수행자여, 당신은 왜 그렇게 세상 물정에 어두운 것이오당신이 마신 물은 하늘이 준 자연의 물이오. 그리고 그것은 보물도 아니니 죄를 범했다고 할 수 없는 것이오."

  "대왕이시여, 그렇지 않습니다. 집 안에 있는 우물이나 밭에 있는 채소를 그 주인에게 알리지 않고 마시거나 먹는 것이 바로 도둑질입니다. 원컨대 대왕께서는 부디 저를 처벌해주십시오."

  "지금은 처리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 바쁘니, 정녕 그대의 뜻이 그러하다면 후원에 가서 기다리고  있으시오. 내가 사람을 보내 다시 부르리다."

  그러자 옆에 있던 태자가 왕의 말에 따라 그 수행자를 데리고 후원으로 안내했다그런데 국왕은 국사가 너무 바쁜 바람에  수행자가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러다가 칠일째 되는 날 아침 국왕은 갑자기 그 일이 생각나서 곁에 있던 신하에게 급히 물었다.

  "그 수행자가 아직도 후원에 있는가? 있다면 어서 데리고 오도록 하라."

  수행자는 후원에서 육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 왕이 다시 불러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국왕을 다시 만나게 된 수행자는 몸이 극도로 쇠약해져서 그만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그 모습을 본 국왕은 자책하지 않을 수 없었다.

  ", 모든 게 나의 잘못이다."

  국왕은 곧 신하들에게 명하여 그 수행자에게 진수성찬을 대접했다. 그러고는 수행자에게 고개를 숙여 참회했다.

  "나는 일국의 왕이오. 백성이 굶주리면 나도  밥이 넘어가지 않고, 또 백성이 헐벗고  있으면 나 또한 마음이 편치 못한 법이오. 그런데도 지금  나는 악행을 저질러 수행자를 괴롭게  만들었소. 내가 이전에 아무리 좋은 일을 했다고 해도 이 죄 피할 수는  없을 것이오. 국가가 평안하고 백성들이 잘 먹고 잘살 수 있는 것은 모두 왕의 덕행에 기인하는 것이오. 주인에게 알리지 않고 물 한 모금 마신 것이 죄가 된다면, 내가 수행자를 기다리게 한 것은 더욱 중한 죄임에 틀림없소. 수행자여, 당신의 죄는 내가 용서할 테니 앞으로 그 일은 잊어버리도록 하시오."

  "대왕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더욱 열심히 수행해서 대왕의 은덕에 보답하겠습니다."

  수행자는 말을 끝내고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수행에 더욱 힘썼다.

  그 이후 국왕은 생사의 바다를 윤회하면서 끊임없이 계속 불도를 닦은 덕에 마침내 깨달음을 얻었다. 그러나 그 옛날 수행자를 육일 동안 고생시킨 죄과로 육 년 동안 제대로  먹지도 마시지도 못한 수행의 과정을 치르고 나서야 성불할 수 있었다.  <육도집경>

 

    일흔네번째 이야기-착한 사람

  아주 오랜 옛날 범마달이라는 왕이 바라나국을 다스릴 때의 일이다. 그 나라에는 마음씨 착한 늑나사야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그는 숲속을  산책하다가 한 사내가 비통하게 울면서 나무에 목을 매는 광경을 보게 되었다. 그 모습을 본 늑나사야는 재빨리 달려가 그 사내를 말리며 물었다.  "도대체 왜 죽으려 드는 것이오? 사람의 몸으로 태어나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데,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하다니..."

  늑나사야는 좋은 말로 그 사내를 달래며 새끼줄을 버리게  해다. 그러자 그 사내는 자신의 가련한 처지를 한탄했다.

  "내가 지지리도 복이 없어 가난하게 살다보니, 어느덧 태산 같은 빚을 지게 되었다오. 쥐구멍에 볕 들 날이 있다고는 하지만 이 복  없는 놈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말인가  보오. 빚쟁이들이 밤낮없이 찾아와 괴롭히니 잠시라도 편안한 날이 없다오. 세상이 넓다 해도 변변히 의지할 곳도 없으니 이 한 목숨 끊어 빚쟁이들이 없는 저 세상으로 가려하오. 당신이 날 말리는 것은 고마우나 나는 차라리 죽는 편이 낫소."

  그 사내의 말을 듣고 동정심을 느낀 늑나사야는 그만 착한 마음으로 이렇게 말하고 말았다.

  "죽지 않겠다고 하면, 내가 당신이 진 빚을 대신 갚아드리리다."

  사내는 만면에 함박 웃음을 띠고 좋아라 하면서 늑나사야를 따라 성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곧 빚쟁이들을 모두 오라했고, 늑나사야는 가산을 털어 그 사내의 빚을 갚아주었다. 그러나 빚쟁이들이 끝없이 찾아오는 바람에 늑나사야는 눈 깜짝할 사이에 빈털터리가  되었다. 이런 늑나사야 때문에 그의 가족들은 하루아침에 거지꼴이 되어 길에 나앉고  말았다. 그 소식을 들은 늑나사야의  친척들은 모두 입을 모아 말했다.

  "늑나사야가 미쳤구먼. 자기와 상관없는 일로 가산을 탕진하다니..."

  그때 늑나사야의 자애로움에 감동한 한 상인이 그에게 같이 배를 타고  외국으로 나가 장사를 하자고 권했다 .그러자 늑나사야가 말했다.

  "당신 말대로 하자면 장사 밑천이 있어야 하는데, 이제 난 한푼도 없는 거지꼴이오. 그러니 어떻게 당신을 따라갈 수 있단 말이오?"

  상인은 늑나사야의 처지를 딱하게 여겨 말했다.

  "이번에 장사하러 같이 갈 사람은 무려 오백 명이나 되오. 내가 그들에게 부탁해서 모든 돈을  당신에게 빌려주도록 하겠소."

  이렇게 해서 삼천 냥을 빌린 늑나사야는 천 냥은 가족들에게 생활비로 주고, 나머지 돈으로는 외국에 가지고 가서 팔 물건을 구입했다. 그리고 늑나사야는 뱃사람  다섯 명을 모아 여러 상인들과 함께 커다란 상선에 올랐다.

  상선은 망망대해를 항해하다가 어느 날 그만 폭풍우에  휘말리고 말았다. 집채만한 파도에 마치 장난감처럼 기우뚱거리던 상선은 이윽고 암초에 걸려 부서졌다다행히 부낭을 챙겼던 사람들은 살아 남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허우적거리다가 물에 빠져죽어갔다. 늑나사야 역시 부낭이 없는 바람에 허우적거리고 있는데, 그가 고용했던 뱃사람 다섯 명이 헤엄쳐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당신만 믿고 배를 탔는데 이렇게 죽게 되었으니, 이를 어쩐단 말입니까?"

  늑나사야는 뱃사람들의 말에 죄책감이 들어 어찌할 바를  몰랐다. 마음씨 착한 늑나사야는 이내 결심한 듯 말했다.

  "내가 들은 바에 의하면 바다는 시체를 좋아하지 않아서 해변으로 밀어낸다고 하오. 이제 여러분들은 내 몸을 꼭 잡고 있으시오. 내가 당신들을 구해주리다."

  말을 마친 늑나사야는 다른 사람들이 말릴 틈도 주지  않고 혀를 깨물어 자결하였다. 이 모습을 지켜본 해신은 늑나사야의 자비심에 감동되어 바람을 일으켜  시신을 해변으로 떠밀었다. 그 바람에 늑나사야의 시신을 꼭 잡고 있던 뱃사람들은 모두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현우경>

 

    일흔다섯번째 이야기-생사의 비유

  부처님이 기수급고독원에 계실 때였다. 그때 부처님은 설법을 듣는 무리들 가운데에 있던 승광왕에게 말씀하셨다.

  "대왕이여, 잘 들으시오. 이제 대왕을 위해 생사가 도대체 무엇인지 비유를 들어 간략하게 설명해드리리다.

  아주 오랜 옛날 한 사람이 들에 놀러 나갔다가 그만 사나운 코끼리에게 쫓기게 되었소. 겁에 질린 그 사람이 정신없이 뛰다가 보니 우물 하나가 있고 그  옆에 나무 뿌리가 드리워져 있는게 눈에 들어왔소. 그 사람은 다급한 나머지 나무 뿌리를 잡고 우물 속으로  들어가 몸을 숨겼다오. 그런데 검은 쥐 한 마리와 흰 쥐 한 마리가 나타나 나무 뿌리를 갉아먹는 것이 아니겠소? 게다가 우물 속 사방에는 독사들이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채 그 사내를  물려고 들었소. 또 아래를 내려다  보니 독룡이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오. 혀를 낼름거리는 뱀도 무서웠지만 나무 뿌리가 끊어지면 독룡의 밥이 되리라 생각한 그 사내는 두려워서 넋이 빠질 정도였소. 그런데 그때 나무 위에 있던 벌집에서 흘러나온 벌꿀 다섯 방울이 뿌리를 타고 그 사람 입으로 흘러드는 것이었소. 또 그  사람이 나무 뿌리를 잡고 매달려 있는 바람에 나무가 흔들리자 벌들이 날아와 사정없이 그 사람을 쏘았소설상가상으로 들에 불이 나 그 나무마저 태우고 있었다오."

  부처님이 말한 생사의 비유를 들은 승광왕이 입을 열었다.

  "부처님, 그 사람은 그렇게 위급한 상황에서도 꿀 맛을 탐할 수 있었을까요?"

  "대왕이여, 그 이야기 속의 들이란 길고도 긴 무명의 밤을 뜻하고 우물에 빠진 사람은 바로 중생을 가리킨다오. 또 코끼리는 무상이고, 우물은 생사를 비유한 것이오. 나무 뿌리는 사람의 목숨을, 검고 흰 두 마리의 쥐는 시간을 가리키는 것이오. 그 쥐들이 나무 뿌리를 갉아먹는다는 것은 바로 순간순간 사람의 수명이 줄어드는 모습을 비유한 것이며, 네 마리 독사는 지, , , 풍의 사대를 뜻하는 것이오. 그리고 다섯 방울의 벌꿀은 다섯 가지 쾌락의 비유요, 사정없이 쏘아대는  벌은 사견을 가리킨다오. 마지막으로 독룡은 바로 죽음을 비유한 것이오. 그러므로 대왕은  생로병사가 얼마나 두려워해야 할 것인가를 마땅히 알아야 하오. 항상 그것을 명심하고 오욕에 빠지지 말아야 할 것이오."

  승광왕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생사에 대해 깊이 깨닫는 바가 있었다. 그는 부처님께 합장하며 말했다.

  "부처님이시여, 부처님께서 저를 위해 미묘한 설법을 해주셨으니 저는 정성을 다해 그 가르침을 지키겠습니다."

  <불설비유경>

 

    일흔여섯번째 이야기-뻔한 거짓말

  옛날에 어떤 사내가 검은 말을 타고 전쟁터에 나갔다. 그러나 그 사내는 워낙 겁이 많았다. 적군이 두려워 감히 싸워볼 엄두가 나지 않아 얼굴에 다른 사람의 피를 바르고 죽은  시늉을 한 채 시체더미속에 누워 있었다. 그가 타고 갔던 말은 적군이 전리품으로 챙겨가 버렸다적군이 철수하자 그 사내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집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겁쟁이라는 말을 듣기는 싫어 근처에 있던 죽은 말의 꼬리를 베어냈다자신이 타고 온 말과는 다른 흰 말의 꼬리라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서는 말이다집으로 돌아오자 마을 사람들이 물었다.

  "자네가 타고 갔던 말은 어찌하고 걸어서 돌아왔는가?"

  그러자 그 사내가 대답했다.

  "내 말은 용감히 싸우다가 죽었소. 그걸 기념하기 위해 이렇게 말꼬리를 베어온 것이오."

  "자네가 타고 갔던 말은 검은 말이었는데, 어떻게 그 말꼬리는 희단 말인가?"

  사내는 할 말을 잃고 하늘만 쳐다볼 뿐이었다. 이에 마을 사람들은 그 사내를 손가락질하며 비웃었다.  <백유경>

 

    일흔일곱번째 이야기-오백명의 궁녀

  비로택가왕은 사위국의 국왕이 된 후  석가족을 치기 위해 군사를 일으켰다그때 한 불제자가 길을 가다가 비로택가왕의 군사를 만나 사정을 알게 되자 급히 부처님께 달려가 알렸다. 이에 부처님은 말라죽은 나무아래 앉아서 왕의 군사들을 기다렸다이윽고 비로택가왕이 군사를 이끌고 지나가다가 부처님을 보자 코끼리에서 내려 말했다.

  "부처님, 왜 나뭇잎이 풍성한 나무 아래 앉아 계시지 않고 하필이면 말라죽은 나무 아래 앉아  계시는 것입니까?"

  "내 종족이 곧 이 나무와 같은 처지가 될 것을 생각하고 있었소."

  비로택가왕은 부처님이 자신의 종족의 안위를 걱정하고 계심을 알아차리고 군사를 돌렸다. 그후 왕은 오백 명의 여자들을 골라 궁녀를 삼았다. 궁녀가 된 여자들은 왕을 몹시 원망하며 그를 '종의 자식'이라고 욕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왕은 크게 화를 내며 그 궁녀들을  모두 죽이라고 명을 내렸다. 병사들은 궁녀들의 손발을 자른 후 고랑  속에 던져버렸다. 그때 궁녀들은 고랑  속에서 고통을 참으며 부처님을 생각했다.

  이에 부처님은 제자를 보내 궁녀들을 위해 마지막  설법을 전했다. 궁녀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해듣고 모두 죽은 후 천상에 태어났다. 제석천은  바라문으로 변신하여 궁녀들의 시신을 수습해서 화장했다.

  그 일이 있은 후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말했다.

  "비로택가왕은 끔찍한 일을 저질렀기에 칠일 후 불에 타 죽을 것이다."

  이 말을 전해들은 왕은 너무나  두려웠다. 마침내 칠일째가 되자 그는  불을 피하고자 궁녀들과 함께 호숫가에 가서 술을 마시면서 즐겼다. 그러다가 배를 탔는데  갑자기 돌풍이 불더니 그만 배에 불이 나서 맹렬한 기세로 번지기 시작했다. 비로택가왕은 미처 호수로  뛰어들기 전에 배 위에서 불에 타 죽고 말았다.  <대당서역기>

 

    일흔여덟번째 이야기-무언은 복이다

  사위성 사자장군은 부인이 임신을 하자 뛸  듯이 기뻐하며 자식이 태어날 날만을  학수고대하고 있었다.

  이윽고 달이 차서 아이가 막 태어나려고 할 때, 하늘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자장군, 마음을 조급히 먹지 마시오. 당신의  아들은 지금 사유법경을 읽고 있는데, 그것은  인간의 일이 아니오. 이 아이는 항상 세상에 나는 법을 낭독하는 일을 맡아 입이 무겁고 신중하여 말하는 일이 거의 없소. 당신은 보통 인간의 척도로 당신  아이를 재려고 하면 안 될 것이오그 아이는 어디까지나 교의를 따를 뿐이오."

  그리고 그 목소리는 갑자기 멎었다. 장군은 급히  내실로 뛰어들어가 태어난 아이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그랬더니 이상스럽게도 아이의 입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고, 생김새도 갓난아이처럼 보이지 않았다.

  칠일 후, 아이의 얼굴은 마치 사과처럼 불그스레해져서 보는 이마다  좋아했다. 사자장군은 천신의 말을 들은 탓에 그 모습을 보고  아이가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루는 궁궐로 가고 있는데 친구들이 그에게 말했다.

  "사자장군, 당신의 아이는 상서롭지 못한 것 같소. 다른 곳으로 입양시키는 것이 어떻겠소?"

  "그 아이가 비록 말을 못 하기는 하지만 바탕은 더없이 훌륭하오. 그것은 복덕을 갖춘 모습이지  이상스러운 것은 아니외다. 두고 보시오. 그 아이는 나중에 반드시 큰 인물이 될 터이니."

  사자장군은 자신있게 말했다. 그러자 친구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그럴 수도 있는 법이오. 우리도 꼭 그렇게 되기를 바라오."

  궁에서 돌아온 후 사자장군은 부인과 함께 아이의 이름을 지어주려고 의논을 했다. 반나절쯤 지나 장군은 아이의 이름을 '무언'이라고 지었다이에 부인이 주저하며 말했다.

  "무언이라면 말을 못한다는 뜻이지 않습니까? 이 아이가 나중에도 정말  말을 못하게 되는 것이 두렵지 않습니까?"

  "무언은 복이오. 여하간 나는 그렇게 부를 작정이오."

  그후 무언은 점점 자라나 어느덧 여덟 살이 되었다. 무언은 당당하게 보이는 외모에 마음까지 인자해서 성안 사람치고 그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사자장군 부부는 모두 마음속으로 기뻐했다당시 성안에는 설법을 하는 장소가 있었는데, 무언은  항시 기뻐하며 달려가 흥미진진하게 설법을 들었다. 그러나 여전히 한 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한번은 무언이 부모 및 친척들과 함께 부처님과 시방의  여러 보살들을 보고 크게 기뻐했다. 그때 사리불이 부처님께 물었다.

  "부처님이시여, 사자장군의 아들은 신체와 마음이 모두 건강한데 말을 할  수 없으니, 도대체 무슨 연고로 그렇게 된 것입니까?"

  "그 아이를 얕보지 말라. 왜냐하면 무언은 이미  무수한 부처님 앞에서 커다란 서원을 세우고 갖가지 선근을 심어왔기 때문이니라. 그리고 그는 이미 불퇴전의 보리심을 얻었느니라. 이 아이가 출생할 때 각 방향에서 수많은 보살들이 내게로 와서 계를 받고 공덕을  쌓았으며, 이 아이 역시 나를 따라 묵념함으로써 이미 사선을 얻었다. 그는 지금 같은 몸으로 이미 수많은 중생들을 제도할 수 있었느니라."

  부처님의 말씀을 들은 사자장군 부부와 청중들은 그때서야  모든 의구심이 풀렸다. 이때 무언은 신통력을 발휘하여 그 자리에 모여 있던 사람들 각각의 오른손바닥 위에 커다란 연꽃이 피게 했다. 그 모습과 향내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황홀했다. 이에 뭇 사람들은 모두 놀라며 말했다.

  "원래 사자장군의 아이는 대보살이었구나. 이것은 정말 보기 드문 일이다."  <대방등대집경>

 

    일흔아홉번째 이야기-여우와 싸운 효자

  진나라 해서공 때 한 가난한 효자가 있었다. 그는  모친상을 당했으나 돈이 없어 다른 사람들을 불러 장례식을 치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스스로 모친의 관을 메고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다. 그는 상복을 입고 무덤을 판 다음 관을 묻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지키고 있었다그런데 어느 날 저녁 한 부인네가 어린아이를 안고 지나가다가 하룻밤 묵고 가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자정이 지나도록 효자는 어머니 무덤곁에서 꼼짝하지 않고 졸지도  않은 채 지키고 앉아 있었다. 그 부인네는 정말 피곤했던지 불옆에서 자고 있었다. 그 바람에 원래의 모습이 드러났는데, 그 부인은 다름아닌 여우였고 안고 있는 아이는 까마귀였다. 효자는 즉시 그들을 때려죽인 후 고랑에 내다버렸다.

  다음날 웬 사내 하나가 효자에게 와서 한 모자가 이 길을 지나가는 것을 보지 못했느냐고 물었다. 어제 저녁 분명히 이 길로 갔는데 아직도 돌아오지않아 찾아 나선 것이라고 했다. 이에 효자가 대답했다.  "봤소. 그 모자는 사람이 아니었소. 바로 여우와 까마귀가 둔갑한 것이었단 말이오. 그래서 내가  때려죽였소."

  "미친 소리! 네가 내 아내와 자식을 죽여놓고 도리어 허황된 말만 늘어놓는구나. 네 말대로 여우가 둔갑한 것이라면 어디 그 시체를 한번 보러가자."

  효자는 그 사내를 데리고 어제  저녁 그 시체를 버린 고랑으로  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여우는 사람의 모습을 한 채 죽어 있었다. 순간  효자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내는 효자를 포박해서 관아로 끌고가 처형해줄 것을 요구했다. 효자는 그 사내의 눈을 피해 현령에게 말했다.

  "이 사내는 여우가 둔갑한 것입니다. 사냥개를 풀어 물어뜯게 하면 본 모습을 드러낼 것입니다."

  며칠 후 그 사내는 현령을 다시 찾아와 빨리  처형하라고 졸랐다. 이에 현령은 슬그머니 그 사내에게 사냥개에 대해 잘 아는 바가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 사내가 대답했다.

  "저는 어려서부터 개를 무서워했기 때문에, 사냥개에 대해서는 잘 아는 바가 없습니다."

  이 말을 듣고 현령은 매우 좋아하면서 당장 사냥개를 풀었다. 그 사내는 개를 보자 즉시 늙은 여우로 변해 사방으로 날뛰었다. 현령은 활을 꺼내 그 여우를 쏘아죽였다. 그리고 효자와  함께 그 고랑으로 가 보았더니 죽인 부인 역시 여우로 변해 있었다.  <법원주림>

 

    여든번째 이야기-고깃덩어리로 태어난 아이들

  옛날 바라나국의 국왕은 수많은 부인을 거느리고 있었다. 그 중 한 부인이 자기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고 매우 기뻐하며 당장 국왕에게  달려가 알렸다. 국왕도 몹시 기뻐하며  그 부인을 극진히 모시라고 신하들에게 명령했다이윽고 열 달이 지난 어느 날 부인은 산기를 느끼고 자리에 누웠다. 그러나 그녀가 낳은 것은 응애응애 하고 울어대는 갓난아이가 아니라 한덩이의 고깃덩어리였다. 마치 빨간 꽃처럼 생긴 그것을 보고 부인은 속으로 생각했다.

  '다른 부인들이 낳은 아이들은 모두 건강하고 잘생겼는데, 내가 낳은  것은 사지마저 없는 고깃덩어리이니 국왕이 보면 실망하실 게 분명하다.'

  그녀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걱정이 되어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나무로  된 상자 하나를 가져다가 그 고깃덩어리를 집어넣고는 겉에 '바라나 국왕 부인의 소생'이라고 쓴 다음 봉인했다. 그러고는 사람을 시켜 그 상자를 강에 내다버리게 했다상자는 강을 따라 하류로 흘러갔다. 여러 귀신들의 도움을  받은 탓인지 그 상자는 풍랑을 만나도 가라앉지 않은 채 계속 흘러가 한 도사와 여러 목동들이 사는 마을 강변에 도착했다.

  그때 강변에 세수하러 왔던 도사가 그 상자를 발견하고는 집으로 가져갔다. 도사가 그 상자를 자세히 살펴보니 상당히 고급스러운 것으로 조금도 부숴진 곳이 없었다. 게다가 그 위에는 '바라나 국왕 부인의 소생'이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봉인이 그대로인 것을 보면 아무도 그 상자를 열어본 적이 없는 게 확실했다. 도사는 이 상자가 왕가의 물건임이 확실하다고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열어보았다. 그랬더니 그 안에는 신선한 고깃덩어리가 들어 있지 않은가? 이에 도사는 생각했다.

  '만약 죽은 고깃덩어리라면 강을 타고  흘러내려오는 동안 썩고 말았으리라. 그런데  이 고깃덩어리는 아직도 신선하니 분명 무언가 비밀이 있을 것이다.'

  그로부터 보름이 지나자 고깃덩어리는 여전히 신선했지만 어느새  두덩이로 나뉘어 있었다. 또 한 달이 지나자 두덩이의 고기는 각각 여자아이와 남자아이로  변했다. 남자아이는 피부가 황금빛을 띠고 있었고 귀가 커다란 게 틀림없는 복상이었다. 여자아이도 백옥 같은 피부에 달덩이같이 예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도사는 그 아이들을 보고 몹시 기뻐하며 마치 친자식처럼  애지중지 키웠다. 그는 남자아이에게 이차자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도사는 이른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 마을 저 마을 돌아다니며 탁발을  해서 어린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마련해주기를 쉬지 않고 계속했다. 도사가 아이들을 기르느라고  고생하는 모습을 본 이웃 목동이 어느 날 그에게 말했다.

  "당신은 품행이 방정한 사람이오. 그런데 출가자가 당연히 해야 할  것은 수도인데, 두 아이를 기르자면 방해가 되지 않겠소? 그 아이들을 내게 맡기면 잘 길러볼 참이오. 그러면 서로 좋은 것 아니오?"

  "그게 좋겠소"

  다음날 목동은 아이들을 데리러 왔다. 도사는 매우 서운해하며 목동에게 당부했다.

  "이 아이들은 복덕이 대단하오. 부디 좋은 우유와 신선한 과일  등을 먹이며 부족함 없이 길러주시오. 그리고 두 아이가 크면 서로 부부가 되게 하시오. 그후  넓고 평탄한 곳을 찾아 집을 지어주어 같이 살게 하시오. 그렇게 하면 남자아이는 대왕이 되고 여자아이는 왕비가 될 것이오."

  말을 마친 도사는 눈물을 글썽이며 목동이 아이들을 데려가는 모습을 언제까지나 바라보고 있었다목동의 보호 아래 두 아이는 날로 커서 여자아이는 아름다운 처녀가 되었고, 남자아이는 영준한 청년이 되었다. 그들이 십육 세가 되자 목동은 넓고 평탄한 곳을 골라 그 한가운데 집을 지어주었다. 그리고 두 사람을 결혼시켜 그곳에 살게 했다얼마간의 시간이 흐르자 그들은 남녀 쌍둥이를 낳았다.   쌍둥이가 십육 세가 되자 역시 결혼을 시켰다. 이러기를 몇 차례 하자 왕족의 수는 끊임없이 증가했다. 그래서 목동은 집을 확장해서 삼십이명은 족히 살수 있게 했다. 나중에 그들이 자리잡고 살던 곳은 번화해져 비사리라는 이름을 얻었다.  <선견률비바사>

 

      4장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

    여든한번째 이야기-금 가락지

  옛날에 한 부인이 늘 다른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나는 절대로 물건을 잃어버리는 일이 없다."

  평소에 그 부인의 말을 믿지 않은 그녀의 아들이 꾀를 생각해내었다. 그 부인의 금 가락지를 몰래 빼다가 강에 던져버리고 돌아와 시치미를 뚝 떼고 말했다.

  "어머니, 금 가락지를 어디 두셨습니까?"

  그 부인은 여전히 이렇게 말했다.

  "나는 절대로 물건을 잃어버리는 일이 없다."

  며칠 후 그 부인은 부처님의 십대제자 중에서 목건련, 아나율 그리고 대가섭을 초청하여 공양을 하고자 했다. 때는 물고기가 제 맛일 계절이라  그 부인은 사람을 장에 보내 물고기를  사오도록 했다. 사온 물고기의 배를 가르자 아들이 몰래 강에 버린 금 가락지가  휘황찬란하게 빛을 내뿜고 있지 않은가! 그 부인은 금 가락지를 집어들고 아들에게 보여주면서 말했다.

  "나는 절대로 물건을 잃어버리는 일이 없다."

  아들은 너무나도 신기해서 부처님이 계시는 곳으로 가서 물었다.

  "부처님, 제어머니는 무슨 인연으로 절대 물건을 잃어버리지 않는 복을 타고난 것입니까?"

  "옛날에 어떤 산의 북쪽에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겨울이 되자 마을 사람들은 따뜻한 곳을 찾아  산의 남쪽으로 이사가게 되었다. 그러나 한 노부인은 집도 가난하고  몸 또한 허약해 다른 사람들을 따라 이사갈 수없었다. 홀로 산의 북쪽에 남은 노부인은 사람들이 미처 챙기지 못하고 간 물건들을 모아 잘 간수해 두었다. 봄이 와서 마을 사람들이 돌아오자 그 노부인은 챙겨두었던 물건들을 원래 주인들에게 모두 돌려주었다. 새까맣게 잊고 있던 물건들을 돌려받은  사람들은 무척 기뻐하며 노부인의 착한 마음씨를 칭찬해 마지않았다. 그때의 노부인이 바로 지금의 네 어머니이니라. 다른 사람들이 두고 간 물건들을 보고도 탐심을 일으키지 않은 인연으로, 네 어머니는 절대로  물건을 잃어버리지 않는 복을 타고 난 것이니라."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난 아들은 어머니를 공경하며 더욱 정성껏 모시게 되었다.  <구잡비유경>

 

    여든두번째 이야기-용시녀의 출가기

  옛날에 수복이라는 장자가 있었는데, 그에게는 용시라는 딸이 하나 있었다. 용시는 어려서부터 총명해서 온 집안 식구들의 사랑을 받았으며, 유복한 가정 환경 속에서 아무 걱정 없이 자라났다용시가 십사 세가 되던 어느 날 저녁 그녀는 집 안에 있는 목욕탕에서 몸을  씻고 향을 바른 다음 옷을 입기 시작했다. 그녀가 막 옷을 다 입었을 때 부처님과 제자들이 그녀의  집 대문 밖에 오셨다. 그때 부처님의 양미간에서는 눈부신 불광이 뿜어져 수복 장자의  온 집안을 대낮같이 환하게 비추었다. 용시 역시 햇빛보다 강한 빛을 보고는 보통 빛이 아니라고 생각했다그녀는 흥분하고 긴장된 나머지 그 빛을 좀더 확실히  보기 위해 칠 층으로 올라갔다. 그곳에서 사방을 둘러본 용시는 부처님이 자기집 앞에서 계시는 것을 보고 매우 기뻐했다. 그녀는 부처님과 제자들이 배가 고플 것이라고 생각하며 혼잣말을 했다.

  "오늘 부처님과 제자들에게 공양을 해서 보살행을 닦아 마침내 성불하고 말리라."

  이때 용시가 성불하겠다는 서원을 세우고 있는 모습을 본 마왕은 심기가  불편해져 어떻게 해서든 저지하려고 마음먹었다. 그녀가 부처님과 제자들에게 공양하겠다는 생각을 버리게 할 작정으로 마왕은 수복 장자의 모습으로 변신해서 용시에게 말했다.

  "용시야, 내가 보건대 네 생각은 정말로 천진난만하구나. 네가 세운  서원은 현실적으로 이룰 수 없는 것이란다. 부처님의 경지는 실로 이루기 어려운  것이다. 그저 오늘 부처님을 본  것을 행운으로 여기고 아라한의 경지만 이루어도 충분할 것이다. 부처와 아라한의 최후 목적은 모두 열반 경계에 들어가는 것이므로 다를 것이 하나도 없단다."

  그러나 도리어 용시는 더욱 굳게 말했다.

  "아버님이 하신 말씀은 옳지 않습니다. 부처님의 지혜는 광대무변하며 그 자비심 역시 무한한 것입니다. 부처님과 비교해볼 때 아라한의 지혜는 태산의 먼지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대지혜를 구하지 않고 소지혜에 만족해서 즐기려고 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용시의 굳은 결심에 마왕은 속이 뜨끔했지만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체하며 다시 말했다.

  "나는 아직까지 여자가 군주가 되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는데, 어찌 성불을 할 수 있겠느냐? 그것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한일이다. 일찌감치 아라한의 경지를 구해 열반 경계에 들어가는 것만 못하다."

  그러나 용시는 여전히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저도 아버님이 하신 말씀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해 선을 닦고 악을 끊으면 수행과정을 통해  여인의 몸이 남자의 몸으로 변할 것입니다. 듣건대 보살행을 실천하는 사람이 영원히 게으르지 않고 수행할 자세가 되어  있다면 단 하루만에라도 성불할 수 있다고 합니다. 저는 이미 마음을 굳게 먹었으니 반드시 열심히 수행해서 성불하려고 합니다."

  마왕은 용시의 마음을 돌려놓기 힘들다는 사실을 알자 이번에는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협박했다.

  "네가 진정 보살행을 하고자 하면 세속에  관한 일체의 탐심을 끊어야하고 자기의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 심지어 자신의 생명까지도 아까워하지 말아야 하는 법이다. 네가 그렇게  할 수 있겠니? 그렇다면 여기 칠층에서 뛰어내려보아라. 그러면 네가 한 결심이 그저 말 뿐이 아닌 진심이라고 생각하마. 그리고 그럴정도로 결심이 대단하면 아마도 성불할 수 있겠지."

  이에 용시는 생각했다.

  '오늘 다행스럽게도 부처님을 만나 보살행을 하고자 하는 결심을 했는데아버지께서는 또 어떻게 노력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시는구나. 몸을 버려 성불할 수  있다면 이까짓 목숨을 무엇 때문에 아까워하리요?'

  생각을 마친 용시는 난간 위로 올라서서 부처님을 향해 외쳤다.

  "저는 기꺼이 목숨을 버려 보살행을 하고자 합니다. 이제 부처님께 이 몸을 바치리니, 마치 천녀가 뿌리는 꽃처럼 땅바닥에 떨어지려고 합니다."

  용시는 말을 마치자마자 아래로 뛰어내렸다. 그런데 그녀는 이상하게도 곧바로 땅에 떨어지지않고, 공중에 있는 동안 남자의 모습으로 변하더니 사뿐하게  땅바닥에 내려서는 것이었다. 땅바닥에 내려선 용시는 남자의 모습으로 변한 자기 몸을 보고 기쁨에 가득 찼다이에 부처님이 미소 지으니, 입 속에서 눈부시게 아름다운 오색광이  뿜어나왔다. 그 오색광은 대천세계를 환하게 비춘 후 부처님의 몸을  세 바퀴 돌고 나서 부처님의  정수리를 통해 몸 안으로 들어갔다. 이때 부처님이 여러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여자는 보통의 여자가 아니다. 용시는 전세에 이미 수많은 부처님들을 모셔 한량없는 공덕을 쌓았느니라. 앞으로 칠억 육천만 겁이 지나면 용시는 명상이라는 이름을 가진 부처님이  될 것이다. 명상 부처님의 수명은 일겁이며 그가 열반에 든 후에도 그 세상엔 일겁동안 명상 부처님의 가르침이 성행할 것이다."

  용시는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뛸 듯이 기뻐했다. 이에 용시는 부모님에게 달려가 간절하게 말했다.

  "저는 출가수도하고자 불문에 귀의하렵니다. 원컨대 부모님께서는 제가 비구가 되는 것을 허락해주십시오."

  수복 장자 부부는 용시의 간청을 허락해주었다. 나중에 용시의 가족은 모두 부처님께 귀의한 후 수행을 계속해 깨달음을 얻었다.  <불성용시녀경>

 

    여든세번째 이야기-향로의 그림자

  비숭선은 송나라 때 사람으로 어릴 적부터 불교에 무척  흥미가 많았다. 그는 항상 어른들을 따라 절에 가서 설법을 듣고 각종 불사에 참여했다. 그는  비록 나이는 어렸지만 소란을 피우기는 커녕 귀기울여 설법을 듣곤 했다. 그 모습을 본 어른들은 이 아이가 상당히 비범하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비숭선은 십삼 세가 될 때까지 홀로 열심히 수행했다. 그러다가 태시 삼 년이 되자 그는  보살계(보살계는 대승 보살들이 받아 지니는 계율이다)  받았다. 이십사 일의 재계(재계에서 재는  정오가 지나면 먹지 않는 것이며 계는 불살생등의 계율을 지키는 것으로 팔재계의 준말이다. 또는 식사와 몸가짐, 마음가짐을 조심하고 삼가는 것을 말한다)를 함에 있어서 그는 조금도 게으름을 피우지않고 자기 무릎 앞의 상위에 향로를 두고 설법을 들었다삼일째 되는 날 저녁 그는 비범하게 생긴 사람이 그의 앞에 불쑥 나타나 한 마디도 하지 않고 향로를 들고 가버리는 모습을 보았다. 비숭선이 놀라 다시 쳐다보니  무릎 앞에 있는 향로는 전과 다름없이 연기가 계속 피어오르고있었다. 비숭선은 예의 그 사람을 자세히 생각해보았는데그 사람이 향로를 들었던 것 또한 분명했던 것 같았다. 이때  비숭선은 갑자기 깨닫는 바가 있었다. 향로를  들었던 그 사람은 신인인 것이 분명했다.

  비숭선이 황급히 자신을 둘러보자 입고 있던 옷은 새로 빤 탓에 매우 깨끗했지만 주위를 살펴보니 침을 뱉는 통이 더러운 것을 보고는 얼른 치웠다. 잠시  후 그는 그 신인이 향로를 제자리에 다시 갖다놓는 모습을 보았다. 그것은 마치 두 개의 향로가 포개져서 하나의 향로가 되는 것처럼 보였다. 이에 비숭선은 속으로 생각했다.

  '그렇다면 그 신인이 들었던 것은 향로의 그림자였단 말인가?'

  비숭선은 일찍이 다른 사람들에게서 복원사에는 흠니라는 스님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 스님은 수행에 전념한 탓에 깨달음을 얻었다고 했다비숭선은 오래 전부터 그 스님을 만나 인사를 드리고 싶었지만 기회가 없었다.

  어느 말 밤 삼경 쯤 되었을 때 또다시 그  신인이 불쑥 나타났다. 그 사람은 용모가 단정했는데 갈색 가사를 걸친 채 우뚝 서서 비숭선을 바라보는 것이었다비숭선이 재계를 마치자 그 사람은 다시는 보이지 않았다.

  나중에 비숭선은 복원사에 스님을 만나러 갔을  때 비로소 그날 저녁 향로를 들었던  신인을 만날 수 있었다. 바로 그가 인사를 드리고 싶어하던 흠니대사였던 것이다.  <불설사자월불본생경>

 

    여든네번째 이야기-용기있는 자만이 산다

  한 상인이 하인들을 거느리고 먼 나라로 장사를 떠났다. 어느 날 그들은  매우 황량한 곳을 지나갔다. 그때 갑자기 거대한 나찰귀가입에서 피를뚝뚝 흘리며  그들 앞을 딱 가로막은 채  무시무시한 목소리로 말했다.

  "꼼짝마라!"

  이때 상인은 어떻게 해서든지  이 상황을 극복하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오른손으로 나찰귀를 쳤다. 그런데 어찌된일인지 나찰귀는 말짱했고 도리어 상인의 오른손이 나찰귀의 몸에 딱 달라붙어 떼려고 해도 떼지지 않는 것이었다. 상인은 이번에는 왼손으로 나찰귀를 쳤는데 왼손 역시 나찰귀의 몸에 붙어버렸다. 다급해진 상인은 양 다리와 머리로 나찰귀를 공격했지만 그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상인은 계속해서 필사적으로 반항을 했다. 이에 나찰귀는 실실 웃으면서 말했다.

  "너 지금 뭐하는 거냐? 더 이상 반항하지 말고 순순히 내 밥이 되거라."

  그러나 상인은 지지않고 더욱 소리 높여 말했다.

  "내 사지와 머리가 네 몸에 붙어 꼼짝달싹할 수 없지만 결코 이대로 네 밥이 될 수는 없다. 나는 계속해서 너와 싸울 참이다."

  상인의 당당한 말에 나찰귀는 속으로 생각했다.

  '세상 사람들은 나를 보자마자 기절해버리는 게 보통인데, 이 상인은 아주 대담하구나. 잡아먹기 아까우니 풀어주는게 좋겠다.'

  생각을 마친 나찰귀는 상인에게 말했다.

  "네 용기에 탄복했다. 너를 잡아먹지 않고 풀어주마."

  그리고 나찰귀는 연기처럼 사라져버렸다.

  세상 사람들이여, 위험과 곤란에 처했다고 해서 결코 용기를 잃어서는 안 된다. 도리어 운명을 하늘에 맡기고 최후의 일각까지 용기를 내 상황을 극복하고자 해야 한다. 오직 용기있는 자만이 난관을 돌파할 수 있는 법이다.  <대지도록>

 

    여든다섯번째 이야기-불속에서 태어난 아이

  옛날에 한 부유한 노인이 있었는데, 슬하에  자식이 없다가 뒤늦게 부인이 임신을  하게 되었다. 그는 무척 기뻐하며 육사외도에게 달려가 태어날 아기에 대해 물었다. 그러자 그들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당신의 처가 잉태하고있는 아이는 딸인데, 태어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요절할 것이오."

  이 말을 듣고 걱정이 태산 같아진 노인은 이번에는 부처님에게 달려가 물었다. 부처님은 이렇게 말했다.

  "당신의 부인은 아들을 낳을 것이오. 그 아이는 복도많고 장수할 운명을 가지고 있소."

  부처님의 예언을 전해들은 육사외도는 임산부를 죽여 부처님의 예언이 엉터리라는 사실을 입증하려고 했다. 그래서 그들은 기회를 노리다가 임산부에게 독이 들어 있는 물을 마시게 해서 죽여버렸다노인은 부인이 죽은 것을 알고 망연자실해 있다가 예를  갖춰 화장을 하기로 했다. 화장 준비를 마치고 시신에 불을 붙이자 갑자기  부인의 배가 갈라지더니 한 남자아이가  울면서 튀어나왔다. 그 모습은 마치 활짝 핀 연꽃 속에서 원앙새가 날아오르는 것과 같았다이때 그 사실을 천안으로 알게 된 부처님은 제자 기바에게 말했다.

  "네가 그 노인의 집에 가서 불 속에 있는 아이를 구출해 오너라."

  기바는 곧 노인의 집으로 달려가 활활 타오르는 불  속으로 손을 뻗어 아이를 끌어안으려고 했다. 그때 육사외도가 기바에게 다가와 협박했다.

  "네가 만약 그 아이를 데려간다면, 죽음을 면치 못하리라."

  이에 기바가 말했다.

  "나는 부처님의 명을 받고 이 아이를 구하러왔다. 너희들이 나를 아비지옥의 맹렬한 불 속에 집어넣는다고 해도 나를 조금도 해칠 수 없거늘, 하물며 인간 세상의 불로 나를 위협하려 드느냐?"

  기바는 마치 시원한 강물에 들어가는 것처럼 활활 타오르는 불길도 아랑곳하지않고 불 속으로 들어가 아이를 구해 나왔다. 그리고 아이를 노인의 품에 안겨주었다. 노인은 무척 기뻐하며  아이를 안은 채 부처님을 찾아와 절을 하며 아이의 이름을 지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부처님이 웃으시면서 말했다.

  "이 아이는 불 속에서 태어났고, 불은 수제라고 부르니, 그 아이 이름은 수제가라 함이 좋겠구나."  <대반열반경>

 

    여든여섯번째이야기-백 리 밖에 들리는 북

  부처님이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실  때의 일이다. 벽라라는 이름을  가진 천왕의 태자가 부처님을 찾아와 예배하고 물었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옷과 음식, 칠보와 여러 가지 즐거움 그리고 관직과 토지를 가지려고 합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모두 부질없고 헛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방법이 없겠습니까?"

  부처님께서 감탄하면서 말했다.

  "대단한 질문이로다. 토지와 온갖 보배를 갖추고 있음에도 사람들을 구제하려는 마음을 가지다니..."

  벽라가 계속해서 물었다.

  "사람들을 구제하려는 마음을 가진 자는 어떻게 행동해야 합니까?"

  "크게 나누어 두 가지 행이 있다. 선을 행하면 복이 따르고 악을 행하면 재앙이 따름은 마치 그림자가 형상을 따르는 것과 같은 이치이니라."

  "정말로 그렇습니다. 바로 부처님 말씀 그대로입니다. 저는 전생에 왕으로  있을 때 사람의 목숨이 무상하다는 사실을 일찍이 깨닫고 여러 신하들에게 보시를 베풀면서 말했습니다.

  "백 리 밖에까지 소리가 울리는 커다란 북을 만들려고 하는데, 그 일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이 있겠소?"

  이에 여러 신하들이 입을 모아 대답했습니다.

  "저희들에게는 그러한 능력이 없사오나 광상이라는 신하는  능히 그것을 해낼 수있을 것입니다. 그는 충성심도 강하고 백성들을 자비로 보살피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해서 저는 그 광상이라는 신하를  불러 과연 그 일을 할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가 대답했습니다.

  "대왕께서 원하시는 북을 만들 수 있사옵니다. 북을  만드는 데 필요한 비용을 저에게 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저는 매우 기뻐하며 창고를 열어 그 안에  있는 재물을 광상에게 모두 맡겼습니다. 그런데 광상은 그 재물들을 왕궁의 문 앞에 옮겨두고 북을 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 우리들의 인자한 대왕께서 한량없는 자비를 베풀어 가난한 백성들을 구제하고 수행자들에게 공양하고자 하시니 궁핍한 사람들은 모두 왕궁 문 앞으로 오라."

  이 말이 전해지자 전국 각지의 가난한 이들과 심지어 이웃 나라의  거지들까지 몰려들어 왕궁 앞길은 인산인해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하늘을 우러러보며 탄성을 내질렀습니다.

  "우리같이 가난한 사람들이 오늘에서야 살길을 찾았구나."

  광상은 가난한 이들에게 재물을 나누어주었습니다그런일이 있은 후 1년이 지나자 저는 광상을 불러 물었습니다.

  "북은 다 완성되었느냐?"

  "완성된 지 이미 오래입니다."

  "그런데 어째서 그 북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인가?"

  "현명하신 대왕께서는 친히 국내를 돌아보사 불법의 북소리가 시방에 진동함을 직접 들어보십시오."

  그래서 저는 마차를 타고 국내를 순시하였는데 가는 곳마다 백성들이 발디딜  틈도 없을 만큼 많았습니다.

  "우리 나라 백성들이 이렇게 많았더냐?"

  이에 광상이 대답했습니다.

  "대왕께서는 그 덕을 사방에 떨치고자 백 리 밖에서도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커다란 북을 만들라고 저에게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한낱 마른 나무와 죽은  가죽으로 대왕의 높은 덕을 선양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대왕께서 북을 만들라고 주신  재물로 수행자들을 공양하고 또 가난한 백성들에게 아낌없이 보시했습니다. 그랬더니 이웃 나라 백성들까지 우리 나라로 몰려들어와 대왕께서 보시는 대로 백성들의 수가 이와 같이 늘어났습니다."

  광상의 대답을 들은 저는 근처에 있는 백성들에게 물었습니다.

  "너희들은 어디에서 왔느냐?"

  "저희들은 백 리 밖에서 왔습니다. 대왕이 크게  덕을 베푸신다는 소문을 듣고 태어난 고향을 등지고 이 나라에 와서 목숨을 부지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잘된 일이로다. 백성이 가난한 것은 나라가 병을 앓고 있는 것과  같다. 내가 약을 주고 신하들로 하여금 죽을 주게 해서 그 병을 고치고 말리라. 여보게, 광상. 경은 앞으로 백성들이 바라는 대로 구제사업을 계속하고 일일이 내게 보고하지 않아도 되네."

  나중에 저는 수명이 다하자 천상에 태어나 천묘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천상의 수명이 다하자 저는 다시 이 세상에 비행황제로 태어나 온갖 보물로 치장한 채 편안하게 살 수 있었습니다. 그후 다시 천상에 태어나 천왕의 태자가 되었던 것입니다제가 이런 복을 누릴 수  있었던 까닭은 바로 계를 지키고 중생들을 구제한 공덕의 소치임이 분명합니다. 부처님이 가르치신  계를 받들어 몸을 올바로 하고 수행하면 얻지 못할 복이 복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에 부처님께서 벽라에게 말했다.

  "사람의 행동은 그림자가 그 형상을 항상 따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반드시 과보가 있게 마련이니라."

  벽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기뻐하며 절을 하고 물러갔다.  <불설천왕태자벽라경>

 

    여든일곱번째 이야기-들개

  옛날에 먹는 것에 유난히 욕심이  많은 들개가 있었다. 그 들개는  항상 마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먹을 것을 찾아다녔다그러던 어느 날 들개가 염색공장에 들어갔다가 그만 남색 물감통에 빠지고 말았다. 들개를 발견한 염색공장 주인이 화가 나  들개를 끄집어내 밖으로 집어던져버렸다땅바닥에 패대기쳐진 들개의 몸에는 온통 흙먼지가 묻게 되었다. 들개는 더럽혀진 몸을 씻기 위해 강으로 가 목욕을 한 후 둑으로 올라왔다. 그런데 들개의 털은 여전히 남색을 띤 채 빛났다다른 들개들이 그 모습을 보고 매우 이상하게 여겨 다가와 물었다.

  "너는 누구냐?"

  "나는 제석천왕이 보낸 사자다. 천왕께서는 나를 백수의 왕으로 임명하셨다."

  남색을 띤 들개는 술술 거짓말을 해대기 시작했다. 이에 여러 들개들은 생각했다.

  '모습은 들개가 분명한데, 털은 우리와 다르단 말이야.'

  들개들은 사자에게 가서 자기들이 들은 이야기를 보고했다사자는 또 사자왕을 찾아가서 그 이야기를 전했다. 그러자 사자왕은 부하를 보내 사실 여부를 알아보게 했다사자왕의 부하가 가서 보니 남색 들개가 커다란 흰 코끼리 위에 앉아있고 뭇 짐승들이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데, 그 모습은 마치 백수의 왕을 시봉하는 것 같았다. 부하는 사자왕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서 자신이 본 광경을 자세히 설명했다.

  보고를 들은 사자왕은 자신의 여러  부하들을 이끌고 뭇 짐승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갔다. 그랬더니 소위 '들개왕'이 흰 코끼리를 타고 있고 그 주위에 여러 들개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게다가 호랑이, 표범 같은 맹수들도 그 근처에서 보초를 서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새끼 들개들은 멀리 한쪽 편에 물러서 있었다.

  사자왕은 몹시 기분이 나빠 이 들개의 진상을  파악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자왕은 들개 무리 중에서 한 마리 들개를 뽑아 들개왕의 어머니를 불러오게 했다 들개왕의 어머니가 물었다.

  "내 아들이 그곳에서 어떤 동물들과 함께 있느냐?"

  "아드님 주변에는 사자와 호랑이, 코끼리 등이 있습니다. 저는 멀리서서 바라만 볼 뿐입니다."

  "네가 가면 분명히 내 아들을 해치고 말겠구나."

  들개왕의 어머니는 이렇게 말하고 나서 노래를 불렀다.

  "나는 산 속에 사는 것이 너무 즐겁다네

  마음대로 물도 마시고 쉬기도 한다네

  네가 들개 울음소리를 내지 않는다면

  내 아들은 코끼리등 위에 있는 한 아무 일 없으리."

  들개왕의 어머니를 만나고 온 들개는 다른 동료들에게 말했다.

  "저 녀석은 백수의 왕이 아니라 바로 들개라구. 나는 내 눈으로 산 속에 있는 저 녀석의 어머니를 직접 봤단 말이야."

  그러자 동료들이 말했다.

  "그러면 우리들이 시험해보자."

  그들은 '백수의 왕'으로 자칭하는 들개의 근처로  다가갔다. 그런데 들개에게는 그들만의 특이한 전설이 있었다. 만일 한 들개가 울었는데도 다른 들개가 따라  울지 않으면 그 들개의 털이 모두 빠지고 만다는 것이었다.

  '들개왕'을 시험해보고자 들개 한 마리가 울기 시작했고, 뒤이어 나머지 들개들도 따라 울기 시작했다. 이에 들개왕은 고민에 빠졌다.

  '내가 따라 울지 않는다면 털이 몽땅 빠지고 말텐데... 그렇다고 코끼리 등에서 내려가 운다면 내가 들개인 줄 알고 분명히 다른 짐승들이 나를 죽이고 말  거야. 차라리 여기 코끼리 등위에서 우는 게 낫겠다.'

  그래서 들개왕은 코끼리 등위에서 울기 시작했다. 그러자  코끼리는 등위에 있는 녀석이 평범한 들개임을 알아채고 곧장 코로 등위에 있는 들개를 붙잡아 땅바닥에 패대기를 친 후 밟아 죽여버렸다.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파승사>

 

    여든여덟번째 이야기-부자와 악사

  아름다운 곡만을 능숙하게 연주하는 한 악사가 있었다. 한번은 그가 어느 부잣집에 가서 연주를 하게 되었다. 그 부자는 악사의 재능을 인정하여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악사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여 자신에게  소 한 마리를 선물로 달라고  했다. 부자는 악사의 연주는 높이 샀지만 소를 주려니 아까운 생각이 들어 이렇게 말했다.

  "네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 년간 음악을 연주한다면 소를 주마."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계속해서 음악을 들으실 수 있겠습니까?"

  "당연하지!"

  악사는 신이 나서 정성을 다해  삼일 밤낮을 쉬지 않고 음악을  연주했다. 부자는 밤낮없이 들려오는 음악 소리에 그만 머리가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결국 부자는 하인에게 소를 끌고 오라고 해서 악사에게 줘버렸다.  <잡비유경>

 

    여든아홉번째 이야기-세 마리 물고기

  남해의 수위가 어느 날 갑자기 높아져 바닷물이 육지로  밀려들게 되었다. 그때 운이 나쁜 물고기 세 마리가 파도에 휩쓸려 해변의 작은 웅덩이에 갇히고 말았다. 그러자 물고기들은 서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논의했다.

  "우리들은 지금 뜻하지 않은 곤경에 처하게  되었다. 이제 방법은 하나 밖에 없어파도가 몰아칠 때 있는 힘을 다해 파도를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는 바다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 거야."

  그러나 앞쪽에 고기잡이 배가 길을 가로막고 있어 물고기들은  감히 앞으로 나설 수가 없었다. 큰 파도가 웅덩이에 몰아쳤을 때 첫 번째 물고기가 먼저 있는 힘을 다해 몸을  훌쩍 솟구쳐 배를 뛰어넘어갔다. 두 번째 물고기는 수초 아래 숨어서  천천히 배 밑으로 헤엄쳐 지나갔다. 그러나  세 번째 물고기는 망설이며 왔다갔다 하다가 힘을 다 써 마침내 어부에게 붙잡히고 말았다첫 번째 물고기는 곧이어 닥칠 위험을 예상했기에 죽을 힘을 다함으로써 살 수 있었던 것이고, 두 번째 물고기는 순간적인 기지를 발휘해서 살 수 있었다그러나 세 번째 물고기는 작은 웅덩이가 일시적으로 안전할 뿐임에도 우유부단하게 망설이다가 기력을 다 잃고 어부에게 붙잡힐 수밖에 없었다.  <출요경>

 

    아흔번째 이야기-독나무의 뿌리

  옛날에 공원을 관리하는 한 사내가 있었다. 그 공원에는 독나무 한 그루가  심어져 있었다. 공원에 놀러온 수많은 사람들은 그 나무 아래에서 휴식을 취하곤 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심한 두통 내지 복통을 앓다가 죽고 말았다그 사내는 독나무가 바로 그 문제의 근원이라 생각하고  도끼를 들고 가서 그 줄기를 잘라버렸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자 독나무는 예전과 똑같이 자라났고 도리어 나뭇잎이 더욱 무성해졌다.

  또다시 그 사실을 알지 못한 어떤  사람이 뙤약볕을 피하기 위해 그  나무 아래로 와서 땀을 식혔다. 그러나 그 사람은 땀이 다 마르기도 전에 목숨을 잃고 말았다. 공원을 관리하는 사내는 다시 도끼를 가지고 가서 그 나무를 베어버렸다. 그러나 독나무는 죽기는커녕 가지가  무성하게 자라는 것이었다. 사내는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독나무를 베어보았지만 독나무는 끊임없이 자랐다결국 그 독나무 밑에서 땀을 식히던 사람들과 심지어는 그 사내의  부모형제와 친척까지 모두 세상을 뜨고 말았다. 사내는 세상에 의지할 사람이 아무도 없음을 비통하게 생각하며 그 지방을 뜨기로 했다다른 지방을 향해 길을 가던 도중 그 사내는 한  현인을 만났다. 현인은 그 사내의 얼굴이 수심에 가득차 있는 것을 보고 이유를 물었다. 사내는 독나무에 얽힌 슬픈 사건을 자세히 이야기해 주었다이야기를 다 듣고 난 현인이 그 사내에게 말했다.

  "솔직히 말하건대 당신이 당한 일은 모두 당신 자신이 자초한 일이오! 물을 막고자 하면 반드시 제방을 튼튼히 쌓아야 하는 법이고, 나무를 베려면 마땅히 그 뿌리를 뽑아야  하는 법이오. 당신은 독나무가 잘 자라게 도와준 것이나 다름없소. 빨리 돌아가서  독나무의 뿌리를 파버리면 다시는 사람들이 다치는 일이 없을 것이오."  <출요경>

 

    아흔한번째 이야기-엉겁결에 세운 무공

  옛날에 아주 풍요롭고 잘사는 나라가  있었다. 이웃 나라 왕은 그  나라를 호시탐탐 노리다가 급기야 전쟁을 일으켰다. 그러자 부자 나라의 국왕은 전국에 방을 내걸어 십오 세부터 육십 세까지의 남자들을 징집했다.

  그때 그 나라에 베 짜는 일을 하는 한 노인이  있었다. 그 노인의 아내는 무척 젊고 아름다웠는데 숨겨둔 정부가 있었다. 남편을 귀찮게 여긴 그녀는 때때로 정부와 함게 남편을  죽일 모의를 짰다. 징집이 좋은 기회라 여긴 그녀의 정부는 부인에게 이렇게 말했다.

  "지금 나라에서 남자들을 징집하는데, 각 개인이 병기와 먹을 양식을  챙겨 전쟁터로 간다 하오. 그러니 무슨 일이 있어도 당신의 남편을 참전하게 만드시오."

  아내는 궁리 끝에 쌀이 담긴 항아리와 베 한 필을 남편에게 주면서 말했다.

  "이것들을 챙겨서 전쟁터로 가세요. 만일 항아리를  깨뜨리거나 베를 잊어버리면 다시는 당신과 살지 않을 거예요."

  그렇게 해서 노인은 전쟁터로 나갔다. 전쟁터에서 노인은 적들을 물리칠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아내를 잃을까봐 두 가지 물건을 지키는 데에만 급급했다한번은 노인이 속한 부대가 적을  맞아 싸우다가 중과부적이라 급히 후퇴를  하게 되었다. 노인은 두 가지 물건을 잃어버릴까봐 전전긍긍하다가 그만 홀로 뒤에  남게 되었다. 적군은 노인만 후퇴하지 않고 홀로 남아 있는 모습을 보자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멀리서 보니 그 노인이 이상한 병기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적군은 분명 계략이라 생각하여 후퇴했다. 이때 먼저  후퇴했던 아군이 구원군과 함께 다시 진격해서 결국 큰 승리를 거두었다부자 나라의 국왕은 승리를 자축하며  매우 기분이 좋아 무공을 세운  사람들에게 상을 주려고 했다. 그러자 뭇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저 베 짜는 노인이 가장 큰 공을 세웠습니다."

  이에 국왕은 그 노인을 불러 당시 상황을 물었다.

  "어떻게 혼자 적군을 맞으려고 생각했는가?"

  "대왕이시여, 사실은 그게 아닙니다. 아내가 전쟁터에 가기 전에 항아리와 베를 주면서 만약 그것들을 잃어버리고 오면 다시는 같이 살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모두 급히 퇴각하는데 저는 그 물건들을 지키느라 그만 때를 놓쳐 부득불  혼자 적군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적군은 홀로 있는 저를 보고 계략이 아닌가 생각해서 물러서다가 아군에게 참패한 것입니다. 그러니 결코 저의 용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 아닙니다."

  "하하하, 사실은 마누라가 무서워서 그랬단  말이오? 어쨌든 노인장 덕분에  승리를 거두게 되었으니, 노인장이 가장 큰 공을 세운 것만은 틀림없소."

  국왕은 그노인에게 관직과 수많은 재보를 하사했다. 그리고  노인의 자손들은 대대로 그 지위를 이어 명망 높은 가문이 되었다.  <잡비유경>

 

    아흔두번째 이야기-바보가 남을 바보라고 하다

  옛날에 돼지 기르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 이었다. 그는 어느 날 폐허가 된 마을을 지나다 바싹 마른 분뇨가 수북히 쌓여 있는 것을 보고 혼자 중얼거렸다.

  "우리집 돼지들이 배가 고프겠군! 여기 이렇게 많은 분뇨가 있으니 마른 풀로 엮어서 머리에 이고 돌아가면 돼지들이 얼마나 좋아하랴."

  그는 마른 풀로 분뇨를 싸 머리에 이었다. 그런데 뜻밖에 집에 오는 길에  큰 비를 만났다. 마른 분뇨가 빗물에 젖자 그 사람은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똥물을 뒤집어쓴 꼴이 되어버렸다그때 지나가던 다른 사람이 그 모습을 보고 비웃으면서 말했다.

  "당신 정신병자로구먼! 설사 마른 분뇨라고 해도 냄새가 나서 머리에 이고 갈 수는 없는데, 하물며 이렇게 큰 비가 내리는 날 그것을 이고 가다니..."

  그 사람은 이 말을 듣자 도리어 화를 내고 욕을 하며 대꾸했다.

  "당신이야말로 머리가 돈 게 틀림없어우리집 돼지들이 배가 고파  이것을 먹으려고 기다리고 있단 말이야. 당신이 정말 똑똑한 사람이라면 나를 바보라고 말할 수는 없어."  <장아함경>

 

    아흔세번째 이야기-어리석은 고집

  옛날에 두 친구가 있었다. 한 사람은 똑똑했고 다른 한 사람은 매우 우둔했다. 어느 날 똑똑한 친구가 우둔한 친구에게 말했다.

  "우리 둘 다 집이 가난하니 뭔가 할 일을 찾아보세. 우리는 친한 친구니까 함께 힘을 모아 일을 해보세. 먼저 산으로 가 들짐승이라도 잡아서 팔아보는 게 어떤가?"

  의견이 일치한 두 사람은 성을 나와 돌아다니다가 한  마을에 도착하였다. 그 마을은 이미 폐허가 된 지 오래였기 때문에 쓸 만한 물건은 거의 없었고 길가에 약간의 황마만 널려 있었다. 똑똑한 이가 말했다.

  "저 황마라도 서로 반씩 나누어 가지고 가세."

  황마를 짊어진 두 사람은 계속해서 길을 가다가 또  다른 마을을 지나게 되었다. 그곳에는 마사가 땅바닥에 널려 있었다. 똑똑한 이가 말했다.

  "마사는 가볍고 가늘어서 휴대하기 편한 데다가 값어치도 황마보다 높네. 나는 황마를 버리고 마사를 가지고 갈 참이네."

  그러자 우둔한 이가 말했다.

  "나는 이미 황마를 봇짐에 단단히 틀어맸으니 버릴 생각이없네."

  똑똑한 이는 황마를 버리고 마사를 매었다그리고 길을 계속 가다가 이번에는  마포를 보게 되었다. 다시 똑똑한 이가 말했다.

  "마포는 바로 마사로 짠 것이네.   필의 마포를 만들자면 수많은 마사가 있어야  하네. 나는 마사를 버리고 마포를 갖고 갈 생각이네."

  우둔한 이는 이번에도 똑같은 말을 했다.

  "나는 이미 황마를 봇짐에 단단히 틀어맸으니 그것을 버리고 마포를 챙길 생각이 없네."

  똑똑한 이는 마사를 버리고 마포를 봇짐에 틀어매고는 계속해서 길을 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면화를 보게 되었다. 그때 똑똑한 이가 말했다.

  "면화는 마포보다 값이 더 나가고 휴대하기도 편하니 면화를 챙겨야겠네."

  그러나 우둔한 이는 계속 고집을 부렸다.

  "나는 이미 황마를 봇짐에 단단히 틀어맨 상태네. 게다가 그것을 들고 이렇게 먼 길을 왔는데  어떻게 버릴 수 있단 말인가?"

  똑똑한 이가 우둔한 이가 말을 듣지 않자, 자기만 마포를 버리고 면화를  챙겼다. 그후에 그들은 면화사를 보게 되었고, 그 다음에는 흰색 면포 그리고 계속해서 백동, 백은, 마지막으로 황금을 보게 되었다. 똑똑한 이는 무언가 보일 때마다 계속 바꾸어 짊어졌고, 우둔한 이는 시종일관 황마만을 고집하였다똑똑한이가 우둔한 이에게 말했다.

  "황금이 없었더라면 나는 백은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네. 만약 백은이 없었더라면 백동을 가지고 있었을 테지. 그리고 백동, 면호, 면화사, 면화, 마포가 없었더라면 마사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네. 또 마사마저 없었더라면 황마를 가지고 있었을  테고. 그러나 지금 여기에 황금이  있지 않은가? 지금까지 본 것 중에서 황금의 가치가 가장 높지 않은가? 자네가 황마를 버리고 나도 백은을 버린다면 우리 둘 다 황금을 가지고 돌아갈 수 있을 것이네."

  그래도 우둔한 이는 끝까지 고집을 부렸다.

  "나는 이미 황마를 봇짐이 단단히 틀어맸고 또 그것을 가지고 먼 길을 왔으니 버리긴 싫다네자네는 자네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나는 상관하지 않고 이 황마를 가지고 가겠네."

  똑똑한 이는 백은을 버리고 황금을 갖고 돌아갔다. 집안  사람들은 그가 멀리서 오는 모습을 보고 모두 기뻐하며 뛰어나와 환영했다. 똑똑한 이는  기분이 무척 좋았다. 그러나 우둔한  이는 황마를 가지고 집에 돌아갔다. 집안 사람들은 그를 보고서도 기뻐하지  않고 환영하지도 않았으며 도리어 비웃기만 했다. 우둔한 이는 그제서야 후회막급한 심정이 되었다.  <장아함경>

 

    아흔네번째 이야기-사막에서 물과 풀을 버리면

  옛날에 두 사람의 상인이 각자 오백 명씩의 무리를 거느리고 있었다. 어느 날 그들은 다른 나라에 가서 장사를 하기로 했다. 그곳에 가려면 광활한 사막을 지나야 했으므로 함께 모여 떠나기로 했다.

  그 동안의 경험에 따라 그들은 꽤 많은 양의 물과  풀을 준비하여 사막을 지나고 있었다. 그때 한 야차귀가 대상의 무리를 발견하고 미모의 소녀로 둔갑했다. 그녀는 화려한 옷을 걸치고 머리에 현란한 장신구를 단 채 거문고를 타고 있었다. 대상의 무리가 다가오자 그녀는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

  "먼 길을 가시느라 피곤하시죠? 그런데 그 많은 물과 풀을 지니고 있다니요? 이 근처에 물과 풀이 아주 많은 곳이 있으니, 이젠 필요없을 거예요. 그러니 그것들을 버리고 저를 따라 물과 풀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는 게 어때요."

  그 말을 듣고 한 우두머리 상인이 수하들에게 물과 풀을 모두 버리게 했다. 그러나 또 다른 우두머리 상인은 뭔가 이상하다는 듯이 생각에 잠겼다.

  '사막에서 물과 풀을 버리는 것은 목숨을 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저 한  사람의 말을 순순히 따를 수는 없다. 게다가 저 미모의 소녀는 어디에서 왔는지도 모르잖는가?'

  물과 풀을 버린 우두머리 상인과 그를 따르는 무리들은  소녀를 따라 반나절쯤 갔지만, 물과 풀을 볼 수 없었다. 그래서 그 소녀에게 막 물어보려고 하는데이미 그 소녀는 사라지고 없었다. 결국 그들 모두는 사막에서 죽고 말았다. 그러나 물과 풀을 버리지  않은 우두머리 상인과 그 수하들은 무사히 목적지까지 가서 장사를 잘할 수 있었다.  <잡보장경>

 

    아흔다섯번째 이야기-스스로 짓고 스스로 받는 법

  어느 날 국왕이 잠결에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던 두  사람의 내관이 소근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그 중 한 내관이 말했다.

  "내가 오늘날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은 모두 왕의 은혜 덕분이다."

  그러자 다른 내관이 말했다.

  "나는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 모두 자기의 운명에 따른 것이다."

  국왕은 이 말을 듣고 왕의 은혜 덕분으로 산다는 내관에게 상을 내리고자 생각했다. 그러고는 왕후에게 사람을 보내 알렸다.

  "내관 한 사람을 보낼 테니, 그가 오면 금은보화와 좋은 옷을 주도록 하시오."

  이렇게 지시한 왕은 그 내관을 불러들여 함께 술을 마시다가 반쯤 남은 술잔을 건네며 왕후에게 갖다주라고 시켰다. 왕후가 있는 곳으로 가던 내관은 갑자기 코피가 흘러 멈추지  않았다. 마침 자기 운명으로 산다고 말했던 내관이 지나가기에 자기 대신 그 술잔을 왕후에게 갖다주라고 부탁했다왕후는 한 내관이 술잔을 갖고 오자 왕이 내린 명령에  따라 그에게 후한 상을 내렸다. 상을 받은 내관은 왕에게 그 사실을 보고했다. 국왕은 그 말을 듣고 깜짝놀라며 원래 술잔을 맡겼던 내관을 불러 물었다.

  "어찌된 일인가? 내가 그대에게 왕후에게 가보라고 했거늘 왜 가지 않았는가?"

  "갔었습니다. 그런데 도중에 코피가 흘러 멈추지 않았습니다. 저는 왕후께서 그 모습을 보면 놀라실까봐 다른 내관에게 대신 술잔을 왕후에게 갖다드리라고 부탁했습니다."

  전후사정을 알게 된 국왕은 깊게 탄식하며 말했다.

  "부처님 말씀이 틀리지 않구나! 스스로 짓고  스스로 받는 법이라고 하시더니... 이것은  결코 변할 수 없는 법칙임을 이제야 분명히 알겠노라."  <잡보장경>

 

    아흔여섯번째 이야기-침이 땅에 떨어지기 전

  옛날에 돈이 무척 많은 한  장자가 있었다. 그를 따라다니던 자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장자의 마음에 들려고 노력했다. 장자가 침을 땅에 뱉기라도 하면 주위에  있던 자들은 서로 먼저 달려들어 발로 문질러대면서 아첨을 했다그때 그 무리 중에서 한 어리석은 이가 이렇게 생각했다.

  '장자가 침만 뱉으면 저렇게 사람들이 달려들어 바로  문질러대니 다음번에는 내가 먼저 그렇게 해보리라.'

  그러다가 장자가 막 침을 뱉으려 하는 모습을 보고 그 어리석은 이는 발을  들어 장자의 입을 짓이겨서 이발을 부러뜨리고 말았다. 장자는 너무나도 기가 막혀 그 어리석은 이에게 물었다.

  "너는 무슨 까닭으로 내 입을 짓뭉갠 거냐?"

  "어른께서 침만 뱉으면 땅에 떨어지기 무섭게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달려들어 발로 문질러댑디다. 저도 그렇게 하고 싶었지만 항상 기회를 놓쳤지요. 그래서 이제 막 침을 뱉으시려는 것 같길래 바로 문질러 어른의 마음에 들려고 한 것 입니다요."  <백유경>

 

    아흔일곱번째 이야기-거문고와 거문고 소리

  옛날에 한 국왕이 국정을 돌보고 있는데 어디선가 우아한 거문고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감동한 국왕은 좌우의 대신에게 물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이길래 이렇게 아름다운가?"

  "대왕이시여, 거문고 소리입니다."

  "네가 가서 그 소리를 찾아와라."

  국왕이 한 대신에게 명령했다. 얼마 후 그 대신은 거문고 하나를 들고 와서 말했다.

  "대왕이시여, 이것이 거문고입니다. 방금 전의 소리는 바로 이 악기에서 나온 것입니다."

  국왕은 거문고를 받아들고 그것을 향해 조용히 말했다.

  "방금 전의 그 소리는 정말 아름다웠다. 다시 한 번 나에게 그 소리를 들려다오."

  그러나 거문고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그러자 국왕은 불같이 화를 냈다.

  "나는 너에게 거문고를 가져오라고 하지 않았다. 내가 가져오라고 한 것은 방금 전의 그 아름다운  소리란 말이다."

  거문고를 가져온 대신이 황급히 꿇어앉으면서 말했다.

  "대왕이시여, 거문고는 여러 가지 부분이 합쳐져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것은 손잡이이고, 저것은  몸통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줄입니다. 이러한 것들이 모두 어우러져 사람이 이것을 연주할 때 비로소 아름다운 소리가 나오는 법입니다. 거문고를 타지 않고서는 소리가 날 수 없습니다. 방금 전에 국왕이 들은 아름다운 소리는 이미 사라져버렸는데, 신이 어찌 그것을 가져올 수 있겠습니까?"

  "그 소리의 허무함이 이와 같은데도 세상 사람들은  그 사실을 모르고 이것에 정신을 팔게 되는구나. 이건 사용해서는 안 될 거짓된 물건이로구나."

  말을 마치자 국왕은 거문고를 던져 산산조각 내버렸다.  <잡아함경>

 

    아흔여덟번째이야기-못된 장난

    한 바라문이 광야에 우물을 파고 토기로 된 두레박을 걸어두어 목동과 행인들이 사용하기 편리하게끔 만들어놓았다어느 날 저녁 한 무리의 여우가 우물 근처에 나타나 땅바닥에 괴어 있는 물을 마시고 있었다. 그러나 여우왕만은 그 물을 마시지 않고 두레박 속에 있는 물을 마셨다. 물을 다 마신 여우왕이 두레박 속에서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자 두레박은 깨지고말았다. 나머지 여우들은  여우왕이 저지른 일에 화를 내며 따졌다.

  "이 두레박은 행인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것인데 그렇게 부숴버리면 어떻게 합니까?"

  그러자 여우왕이 대답했다.

  "재미로 그랬다, ? 나만 기분 좋으면 되지, 다른 일은 내 알 바 아니다."

  다음날 한 행인이 두레박이 깨져 있는 것을 보고  바라문에게 알렸다. 바라문은 곧 새 두레박을 달아놓았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또 여우왕이 그것을 깨버렸다. 그러기를 십여  차례 계속하는 동안 여우들은 여우왕을 그때마다 말렸으나, 여우왕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두레박이 며칠 못 가서 자꾸 깨지자 바라문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도대체 왜 그런일이 생기는지 지켜보기로 했다. 하루 동안  바라문이 숨어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지켜본 결과 여우가 못된 장난을 치고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우물을파서 행인들에게 도움을 주려고 했는데, 여우가  자꾸 못된 장난을 하다니... 이번에는 아예 깨지지않는 단단한 나무로 두레박을 만들어놓자.'

  바라문이 만든 나무 두레박은 단단할 뿐만 아니라 여우가 고개를 집어넣을  수는 있지만 빼기는 어려운 구조로 되어있었다. 바라문은 여우를 혼내주기위해 나무 두레박을 우물 옆에 두고 그 근처에서 방망이를 든 채 숨어 있었다행인들이 물을 마시고 난 후, 여우왕이 몰래와서 나무 두레박에 고개를 들이밀고 또 그것을 부수려고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두레박이 움직이지도 않고 고개도 빠지지않았다. 이때  숨어 있던 바라문이 뛰어나와 방망이를 인정사정없이 휘두르자 여우왕은 그만 숨이 끊어지고 말았다.  <법원주림>

 

    아흔아홉번째 이야기-새들이 왕을 뽑다

  눈 덮인 산의 양지바른 곳에 수많은 새들이 모여 살고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러 새들이 모여 그들을 대표하는 왕을 뽑기로 했다.

  "선거를 해서 왕을 뽑도록 하자. 그렇게 해서 왕을 중심으로 뭉치면 어떠한 적도 물리칠 수 있을 것이다."

  "좋은 생각이다. 그런데 누구를 왕으로 뽑아야 할까?"

  "나는 학을 추천하고 싶다."

  "학은 안 돼! 왜냐하면 학은 다리도 길고 목도 길다. 만일 다른 새들이 눈에 거슬리는 행동을 하면 학은 그 새의 머리를 쪼아버리고 말 거야."

  "맞아, 맞아!"

  "나는 거위를 추천한다. 거위는 순백의 깃털을 가지고 있으니 뭇 새들이 존경할 만하다."

  "거위도 안 돼! 거위의 깃털이 희고 깨끗하기는 하지만 그 목은 휘어지고 또  길다. 자기의 목도 곧지 못한데, 어떻게 일을 공정하게 처리할 수 있겠어?"

  "공작새가 좋겠다. 공작새의 날개는 오색찬란해서 보는 이들을 기쁘게 한다. 그가 왕이 된다면 모두들 화목하게 지낼 수 있을 거야."

  "공작새의 날개가 아름다운 것은 사실이지만 그는 부끄러움을 모른다. 매번 춤출 때마다 온갖 추태를 다 보인단 말이다. 또 잘난 척하기도 좋아한다. 그가 왕이 되면 우리들도 나쁘게 물들고 말 것이다."

  "나는 부엉이를 추천한다. 그는 낮에 쉬고 밤에 활동하니 우리들을 보호할 수 있다. 그러니 왕이 되기에 충분하다."

  그러자 여러 새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옳소! 옳소!"

  그때 총명한 앵무새 한 마리가 남들이 하는 말을 참을성 있게 끝까지 듣다가 부엉이를 추천한다는 말에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생각했다.  '좋은 생각이 아냐. 새의 습성은  밤에 잠을 자고 낮에는 이리저리  먹이를 찾아 돌아 다니는 것이다. 그러나 부엉이는 밤에는 깨어있고 낮에는  잠을 잔다. 그가 왕이 되면  주위의 신하들은 모두 밤낮으로 깨어 있어야 하니 얼마나 고통스럽겠는가? 내 생각을 말하면 부엉이가 화를 낼  뿐만 아니라 그 보복으로 내 깃털을 모두 뽑아버릴지도 모른다. 그런다고 그냥 가만히 있으면 여러 새들이 고생을 하게 될 것이다. , 어떻게 한다? 자기 생각만 하면 큰 일에 해를 끼칠 수 있어. 모두를 위하고 또 정의를 위해서라면 깃털이 뽑히는 아픔을 참아야겠지.'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앵무새는 자신의  의견을 발표했다. 그 말을 들은  여러 새들이 잠시 생각해본 후 말했다.

  "나이가 많다고 해서 슬기로운 것은 아니구나. 너는 어리지만 제법 슬기롭구나."

  다시 앵무새가 덧붙였다.

  "내 말이 이해가 가면 부엉이를 왕으로 뽑아서는 안 돼. 부엉이가 웃을 때 뭇 새들은 공포감을 느끼는데, 그가 화라도 내면 어떨지 생각해 봐."

  "앵무새 말이 옳소!"

  이에 뭇 새들은 이렇게 결정했다.

  "이 앵무새는 총명하고 슬기로우니 우리들의 왕이 되기에 적합하다. 그를 왕으로 뽑자."

  이렇게 해서 앵무새는 새들의 왕으로 추대되었다.  <법원주림>

 

    백번째 이야기-나를 환영하는 것이 아니오

  축차시라국의 박라우라 마을에 칭가발타라는  가난한 사람이 살았다. 칭가바타의  집은 원래 아주 큰 부자였지만 서서히 가세가 기울어 나중엔 거지꼴이 되고말았다. 친척들은 거지꼴이 된 칭가발타를 보지않으려 했고 혹 만나는 일이 있으면 교만을 떨며  사람 취급을 하지 않았다. 칭가발타는 너무나 괴로워 고향을 등지고 대상들을 따라 먼 나라로 떠났다. 그곳에서 그는 열심히 일해 돈을 많이 벌게 되었다이윽고 고향이 그리워진 칭가발타는 대상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고자 했다. 그때 고향에 있던 친척들은 칭가발타가 부자가 되어 금의환향한다는 소식을 듣고 산해진미와 여러  기녀들을 데리고 마중나갔다칭가발타는 수수한 옷을 입고 대상의 선두 부분에 있었다. 칭가발타는 고향을 떠날 때 어린 나이였으므로, 십여 년이 지난 지금 그를 금방 알아보는 친척은 없었다. 도리어  친척들은 앞쪽에 서있는 칭가발타에게 이렇게 물었다.

  "칭가발타는 어디에 있습니까?"

  이에 칭가발타가 대답했다.

  "저쪽 뒷부분에 있습니다."

  친척들은 대열의 뒷부분에 가서 물었다.

  "칭가발타는 어디에 있습니까?"

  대상 중의 한 사람이 대답했다.

  "저 앞쪽에 가고있는 사람이 바로 칭가발타요."

  친척들은 다시 앞쪽으로 달려와 칭가발타에게 물었다.

  "자네가 바로 칭가발타이면서 왜 뒤쪽에 가서 찾으라고 한 것인가?"

  칭가발타는 씁쓸해하면서 얘기했다.

  "내가 가난했을 때 친척 여러분들은 날 보려 하지도 않고 말조차 걸지도 않았소. 그런데 내가  부자가 되어 돌아온다니까 이제 이렇게 마중을 나온 것이군요."

  "아니, 자네 무슨 말을 그리 섭섭하게 하는가?"

  "옛날에는 상대도 하지않다가 내가 부자가 된 걸 알고 이렇게 산해진미와 기녀들을 데리고 와서 환영하다니... 결국당신들이 환영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바로 저 재물이지 뭐겠소?"

  이렇게 얘기하자 친척들은 낯을 들지 못했다.  <대장엄론경>

 

    백한번째 이야기-연자매를 돌리다

  옛날에 한 국왕이 적국의 침공에 대비해서 수많은 전마를 기르고 있었다. 어느 날 이웃 나라 왕이 병사들을 이끌고 쳐들어왔다. 그러나 그 나라에 훌륭한 전마가  무수히 많은 것을 보고 승산이 없다고 판단하곤 돌아가버렸다. 이에 국왕은 기뻐하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적들이 돌아가버렸으니, 이 전마들을 어디에다 쓸꼬? 백성들에게 고루 나누어주어 일하는 데 쓰게 하면 유용할 것이다.'

  국왕은 대신에게 명을 내려 백성들에게 골고루 전마를  나눠주게 해다. 백성들은 국왕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나눠받은 전마들을 주로 연자방아를 돌리는 일에 썼다그런데 몇 년 후 이웃 나라 왕이 다시 침범해왔다. 국왕은 급히 명을 내려 전마들을 회수해서 국경으로 나가 적을 맞게 했다. 그러나 전마들은 오랫동안 연자방아를 돌렸던 습관 때문에 전진하지를 못하고 원을 그리며 빙빙 돌기만 했다. 병사들이 아무리 채찍을 휘둘러도 마찬가지였다. 이른  본 이웃 나라 왕은 쾌재를 부르며 공격해와서 이 나라를 전멸시켰다.  <대장엄론경>

 

    백두번째 이야기-새와 친구가 된 사내

  먼 옛날 바라나국에 한 부유한 장자가 아들을 낳았는데, 그 인물이 무척  수려했다. 그때 장자의 친척 중에 외국에 가서 장사를 하던 이가 장자에게 새알을  선물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자 그 알이 갈라지더니 조그마한 새가 나왔는데, 그 깃털이 휘황찬란했다. 아들을 무척 사랑한 장자는 매우 기뻐하며 아들에게 그것을 가지고 놀라고 주었다작은 새와 아들은 갈수록 친해졌고 둘  다 어느새 어른이 되었다. 이제  그 작은 새는 사람보다 훨씬 커다란 새가 되었다. 장자의 아들은 그 큰 새의 등에 올라타고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놀다가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 둘은 단짝이 되어 날마다 그렇게 재미있게 지냈다그러던 중 장자의 아들은 어느 나라에서 연극을 공연한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래서 그는 큰 새를 타고 그 나라로 날아가 연극을 구경했다. 큰 새는 그동안 나무에 앉아 쉬고 있었다그때 장자의 아들은 우연히 그  나라 공주를 보고는 한눈에 반해버렸다그는 몰래 공주에게 편지를 보내 자신의 마음을 전했다. 공주 역시 장자의 아들에게 마음이 있어 그들은 밤에 몰래 만나 사랑을 나누었다. 그러나 그들의 비밀스러운 만남은 오래 가지 않았다. 곧 그 사실을 안 국왕은 병사들을 시켜 장자의 아들을 잡아오도록 했다. 그리고 그를 없애라는 명령을 내렸다붙잡힌 장자의 아들이 병사들에게 말했다.

  "나를 죽이려고 여러 가지 준비를 할 게 뭐 있습니까? 어차피 죽을 목숨인데, 제가 저 나무위로 올라가 스스로 떨어져 죽겠습니다."

  병사들은 어차피 죽을 녀석이라고 생각해서  그의 청을 들어주었다. 나무 위로  올라간 그는 큰 새를 타고 유유히 그 나라를 빠져나와 자신의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현우경>

 

    백세번째 이야기-경거망동

  옛날에 한 물소왕이 물소떼를 거느리고 초원에서 살고  있었다. 물소들은 배고프면 풀을 뜯고 목마르면 샘물로 목을 축이며 자유롭게  지냈다. 그러다가 다른 곳으로 이동할  때가 되면 물소왕이 선두에서 그 무리를 이끌었다. 물소왕은 생김새가 위풍당당하고 위엄 있었지만 성격은 매우 유순한 편이었다어느 날 물소왕이 무리를 거느리고 지나가는 모습을  근처에서 뛰놀고있던 원숭이가 보게 되었다. 원숭이는 물소왕에게 진흙을 뿌리고 돌을 던지며 입술을  비죽거리면서 욕을 해댔다. 그러나 물소왕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상대도 하지 않고 지나갔다.

  원숭이는 물소왕이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아 이번에는 그 뒤를 따라오는 물소떼에게 진흙을 뿌리고 돌을 던지며 그들을 놀렸다. 물소떼는 화가 났지만  자신들의 우두머리인 물소왕이 잠자코 지나는 모습을 본 터라 그들 역시 원숭이를 상대하지 않고 조용히 지나쳤다원숭이는 물소떼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자기를 무서워한다고 생각해서 매우 의기양양해졌다. 그때 무리에서 처진 새끼 물소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신이 난 원숭이는 새끼물소 뒤를 따르며 침을 뱉고 욕을 했다. 새끼 물소는 무척 화가 났지만 앞서간 어른 물소떼가 전혀 원숭이를 상대하지 않았음을 돌이키며 생각했다.

  '어른들의 행실을 본받아야 해.'

  그래서 새끼 물소는 앞뒤를 못 가리고 경거망동하는 원숭이를 피해 앞서간 물소떼를 따라가버렸다원숭이는 이제 자기가 천하무적이라는 망상에 빠졌다. 그때  한 무리의 사람들이 길을 따라오고 있었다. 원숭이는 아까와 마찬가지로 재주를 피우며 사람들을 향해 진흙을 뿌리고 돌을 던졌다. 게다가 요리조리 뛰어다니면서 욕을 퍼붓기까지 했다사람들은 원숭이의 행동에 무척 화가 나서 원숭이를 포위해 붙잡았다. 그리고 너나할것없이 원숭이를

실컷 두들겨팼다. 앞뒤를 분간하지 못하고 천하제일이라고 으시대던 원숭이는 결국 사람들의 손에 맞아죽고 말았다.  <생경>

 

    백네번째 이야기-한 척 반과 오 촌의 차이

  옛날에 가난하게 홀로 사는 한 노인이 있었다그는 어느 날 우연히 시장에서 도끼  한 자루를 샀다. 이 도끼는 보배 중의 보배였는데, 그는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노인은 그 도끼로 나무를 해서 땔감을 팔아 생계를 유지했다. 그렇게 계속 쓰자 도끼는 날이 무뎌지고 말았다그때 살박이라는 대상인이 그나라에 왔다. 그러던 차 우연히 노인이 들고 있는 도끼를 보았다. 살박은 한눈에 그 도끼가 값어치가 대단한 보물이라는 사실을 눈치챘다. 그래서 그 노인에게 물었다.

  "그 도끼는 파는 것입니까?"

  노인이 탄식하듯 대답했다.

  "나는 이 도끼로 땔나무를 해다가 입에 풀칠하고 있는데, 어떻게 판단 말이오?"

  "비단 백 필을 주면 팔겠습니까?"

  노인은 화려한 옷을 입고 있는 살박을 훑어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이 도끼가 무슨 비단 백 필만한 가치가 있단 말인가? 돈 있는 자들은 그저 돈만 믿고 남을 놀리려드니 정말 못 봐주겠군.'

  노인은 살박의 물음에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자 살박이 계속해서 물었다.

  "노인장, 왜 대답하지 않는 것입니까? 다시 잘 흥정해봅시다. 비단 이백 필이면 어떻겠습니까?"

  그 말을 듣고 노인은 얼굴이 더 험악해졌다. 그러자 살박이 이상하다는 듯이 말했다.

  "돈이 적으면 더 쓰겠습니다. 그런데 왜 기뻐하시지 않는 것입니까? 그렇다면 삼백을 더해 비단 오백 필에 그 도끼를 사겠습니다."

  노인은 갑자기 대성통곡을 하며 말했다.

  "값이 적어서가 아니라 내가 대단히 멍청했던 사실이 후회스러워서 그러오. 이 도끼는 원래 길이가 한 척 반이었는데, 계속해서 땔나무를 하느라 닳아서 오 촌밖에 남지 않았다오.   촌 길이의 도끼가 비단오백필이라니 원래대로였으면 그 값이 얼마냔 말이오? 정말 후회되는구려!"

  살박은 노인의 말에 기쁘게 웃으면서 말했다.

  "노인장, 언짢아하지 마십시오. 내 비단 천 필을 드리리다."

  이렇게 해서 두 사람은 거래를 끝냈다. 살박은 도끼를 사가지고 갔고, 노인은 비단 천 필을 얻게 되었다원래 이 도끼는 값을 매길 수 없는 보배였다. 그 어떤 물건이라도 도끼 위에 올려놓고 땔나무로 태우면 보물로 변하게 하는 보배였던 것이다.  <천존설아육왕비유경>

 

    백다섯번째 이야기-탕과 재료

  옛날에 한 국왕이 주방장에게 명하여 맛있는 탕을 끓이게 했다. 주방장은 물, 고기, , 생강, 콩 그리고 찹쌀 등의 재료를 솥에 넣고 정성들여 탕을 끓였다탕이 다 끓었는데 왕이 주방장에게 뜻밖의 명령을 내렸다.

  "네가 끓인 탕에 재료를 넣은 순서대로 먼저 물맛을 보고 다음에는 고기, 그리고 파, 생강콩 마지막으로 찹쌀의 맛을 각기 따로 맛보고 싶다."

  그러자 주방장이 국왕에게 말했다.

  "탕은 이미 다 끓어서 여러 가지 맛이 섞여 있는데, 어떻게 그 각각의 맛을 대왕께서 음미할 수  있게 하겠습니까?"

  그제서야 국왕은 이제 알겠다는 듯이 말했다.

  "여러 가지 맛이 탕 속에서 섞이면 일일이 구별할 수 없는 법이로구나!"  <나선비구경>

 

    백여섯번째 이야기-불씨

  옛날에 한 바라문이 산속에서 수도에 전념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시동에게 말했다.  "볼일이 있어 며칠 동안 마을에 다녀오려고 한다. 너는 집 안에 있는 불을 잘 단속해서 꺼지지않게 해라. 만일 불이 꺼지면 나무를 문질러 다시 불을 피워놓도록 해라."  바라문은 이렇게 지시한 후일을 보러 산을 내려갔다. 그런데 이 시동은 천성이 놀기를 좋아하는 아이였다. 바라문이 있을 때에는 야단맞을까봐 두려워서 억지로 참고 있었던 것이다.

  바라문이 하산하자 그 아이는 좋아 죽을 지경이었다아이는 산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놀다가 그만 불을 지키라는 바라문의 지시를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다놀다가 지쳐서 집에 돌아와보니 불은 이미 꺼져 있었다. 아이는 얼른 땅에 엎드려  타다 남은 재를 힘껏 불어보았지만  한 점의 불씨도 남아 있지 않았기에 불이 다시 일어날 리 없었다아이는 도끼로 장작을 패면 불을 피울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성공할 리가 없었다. 그래서 다시 장작을 잘게 썰어 절구통에 넣고 절굿공이로 찧기도 해보았지만 여전히 불씨는 일어나지 않았다얼마 후 바라문이 일을 마치고 돌아와서 시동에게 물었다.

  "집을 나설 때 불을 잘 단속하라고 일렀는데 불씨는 꺼뜨리지 않았겠지?"

  "주인님이 나가신 후 제가 밖에 나가서 노는 바람에 그만 불을 꺼뜨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면 불을 다시 피울 생각은 하지 않았느냐?"

  "했습니다. 저는 불이 나무 끝에서 일어나는 모습을 예전에 보았기에 도끼로 나무 끝을 패보았지만 불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나무를 잘게 썰어 절구통에 넣고 찧어도 보았지만 역시 불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시동의 이야기를 들은 바라문은 송곳을 꺼내  나무 끝 부분에 구멍을 뚫은 후  작은 나뭇가지를 넣고 힘차게 비빈 다음 연기가 일어나자 그 위에 건초를 쌓아 불을 피웠다. 그리고 시동에게 말했다.  "불을 피우려면 마땅히 이렇게 해야 하는 법이지, 그저 장작을 두들겨 패고 찧는다고 해서 불씨가  생기지는 않느니라."  <장아함경>

 

    백일곱번째 이야기-중도의 비유

  한 사문이 밤에 독경을 하다가  갑자기 집 생각에 마음이 서글퍼져서  출가한 것을 후회하였다. 생각 끝에 그는 다시 환속할 마음을 먹었다. 이를 감지하신 부처님은 그 사문을 불러다가 물었다.

  "너는 속세에서 무슨 일을 했느냐?"

  "거문고 타는 일을 했습니다."

  "거문고 줄이 느슨하면 소리가 어떻더냐?"

  "그러면 제대로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줄이 너무 팽팽하면 또 어떻더냐?"

  "줄이 끊어져 소리가 나지 않게 됩니다."

  "줄이 느슨하지도 팽팽하지도 않고 적당할 때는 어떠한가?"

  "그러면 모든 소리가 고르게 납니다."

  "수행도 이와 마찬가지이니라. 정신을 집중함에 그 적당함을 아는 자가 도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무릇 도를 닦는 사람은 쇠붙이에 비유될 수 있다. 쇠를 두드리며 점차로 몹쓸 부분을 버리면 나중엔 좋은 쇠그릇을 얻게 된다. 도를 닦을 때에도 점진적으로 마음의 때를 제거하며 한발한발 깊이 들어가야 하는 법이다. 급하게 굴면 몸이 괴롭고 몸이 괴로우면 번뇌가 생긴다. 번뇌가 생기면 곧 수행하기 어려워지고 수행을 멈추면 죄를 짓기가 쉬운 법이니라."  <사십시장경>

 

    백여덟번째 이야기-돌아온 아들

  옛날에 어떤 사내가 어릴 때 가출하여 여러 지방을  떠돌면서 살았다. 그 사내는 어느덧 어른이 되었지만 궁핍한 날품팔이 생활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한편 아들을 잃은 아버지는 사방으로 그리운 아들을 찾아다녔으나 찾지 못했다. 그래서 어느 도시에 자리를 잡고 장사를  시작했다. 아버지는 열심히 일한덕에 얼마 지나지않아 그 도시에서 제일 큰 부자가 되었다부자가 된 아버지는 하루도 아들 생각을 하지 않는 날이 없었다.

  '내 나이 이제 늙어 죽을  날이 멀지 않았다. 남들은 내가  큰 부자라고 부러워하지만, 자손이 없으니 이 재보가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죽은 후에는 모두  남의 손에 들어가 흩어져버릴 게 뻔하다. 수십 년 전에 잃어버린 아들을 찾을 수만 있다면 좋으련만.'

  어느 날 아들은 이 도시 저 도시를 전전하다가 마침내 아버지가 살고 있는 도시에 오게 되었다. 그는 날품을 팔러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가 여러 하인들을 거느리고  있는 아버지를 보았다. 그러나 워낙 어릴 때 아버지와 헤어졌기 때문에 아들은 아버지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했다. 다만 화려한 옷을 입고 휘황찬란한 가마를 탄 아버지의 모습에 그만 기가 질릴 뿐이었다.

  '이크, 저 이는 아마 왕족이나 귀족임이 틀림없다. 괜히 날품을 판답시고 얼씬거리다가는 나를 강제로 잡아다가 일을 시킬 줄도 모른다. 빨리 이곳을 벗어나서 다른 곳으로 가 일을 해주고 옷과 양식을 구해야겠다.'

  그리고 그는 자리를 뜨려고 했다. 그때 가마 속에 있던 아버지는 우연히 그를 보고 한눈에 그가 아들임을 알아차렸다. 이제 재산을 물려줄 아들을 찾았다고 생각한 아버지는 너무 기쁜 나머지 하인들을 시켜 그를 데려오라고 명했다. 하인들이 달려가 그를 붙들자 아들은 기겁하며 소리쳤다.

  "나는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는데, 왜 나를 붙잡는 것이오?"

  그러나 하인들은 주인이 시킨 일이라 이유도 얘기 않고 억지로 데려가려고만 했다. 아들은 강제로 붙들려 가면 큰 일을 당하리라는 생각에 힘껏 버티다가  그만 기절해버리고 말았다. 그 모습을 멀리서 본 아버지는 하인들에게 말했다.

  "저 사람을 강제로 데려올 필요는 없으니, 물을 뿌려 정신을 차리게 하고는 그냥 놔주어라."

  부자는 아들이 아버지인 자기를 알아보지 못하고  또 자신의 막대한 부에 기가 질려  그러는 줄 알고 다른 방법을 강구하기로 했다아들은 정신을 차린 후 그 도시 이곳저곳에서 날품을  팔며 겨우 연명하고있었다. 어느 날 부자는 하인들에게 아들을 찾아가 이렇게 말하게 했다.

  "우리가 일하고 있는 집에 가서 같이 일하면 삯을  두 배로 주겠소. 그렇게 어렵지 않은 그저 거름을 치는 일이오."

  아들은 하인들의 말을 듣고 부잣집에 와서 일을 하게  되었다. 부자가 창문 틈으로 아들의 모습을 바라보니 남루한 옷에 초췌한 꼴을 하고 있자 마음이 무척 아팠다. 부자는 곧 허름한 옷을 골라 일꾼처럼 변장하고는 아들에게 다가갔다.

  "젊은 사람이 참 안됐구만. 무슨 고생을 그렇게 많이 했길래 행색이 그러한가? 여기는 부잣집이니 일만 열심히 하면 호의호식할 수 있을 걸세. 그러니 다른 곳으로 갈 생각은  하지 말게. 나는 나이로 봐도 자네 아버지뻘이니 앞으로 무슨 문제가 있으면 나를  아버지처럼 여기고 언제든지 의논하게. 나도 자네를 친아들처럼 돌봐주겠네."

  그렇게 해서 부자는 아들과 함께 일하며 차츰 친해졌다그렇게 여러 해가 흐르자 아들은 부자를 진짜 친아버지처럼 대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부자는  국왕과 대신 그리고 친척들을 초청한 다음 아들을 불러 옆에 세우더니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사실 이 사람은 내 아들이오. 나는 수십년 전에 아들을 잃고 사방으로 찾아다녔지만 찾을 수가 없었소. 그러다가 몇 해 전에 우연히 아들을 바로 이 도시에서 찾게 되었소. 이제 이 아들에게 전 재산을 물려주어 가업을 잇게 할 참이오."

  아들은 아버지의 뜻밖의 선언을 듣고 깜짝 놀랐다.

  ', 원래 저 부자가 나의 친아버지였구나. 나는 원래 부자의  재산에는 아무런 욕심도 내지 않았는데, 이제 이 엄청난 재보가 다 내것이 되었구나.'  <묘법연화경>

 

      팔만대장경의 알기 쉬운 해설

    1. 팔만대장경이란 무엇인가?

  팔만대장경은 고려국신조대장, 즉 고려대장경의 속칭이다. 고려대장경을  팔만대장경이라고 부르는 까닭은 그 경판 총수가 8만여 장이 넘는 데서 비롯되었다고도  하고, 또 불교에서 아주 많은 수를 지칭할 때 쓰는 팔만사천이라는 숫자에서 나왔다고도 한다팔만대장경은 1995년 유엔 교육과학문화기구인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함으로써 이제는 '트리피타카  코리아나(Trippitaka Koreana)'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다.

  대장경이란 불교 경전 일체를 총괄하는 말로 일체경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것은 부처님의 설법을 담은 경, 불제자들이 지켜야 할 도리를 담은  율 그리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연구해놓은 논을 모두 포괄해서 이르는 말이다그런데 불교는 세계에서 그 경전 수가 가장 많은 종교이므로 대장경을  결집하는 일은 정말 어렵고도 방대한일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한자 문화권의 각  나라들은 경쟁적으로 대장경을 조성해왔다. 그것은 당시 국력의 평가가 불교문화의 성숙도에 의해  좌우되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중국에서는 10여 차례의 대장경 조판사업이 있었고, 고려에서는 세 차례 그리고 티벳, 만주, 몽고, 거란, 일본에서도 대장경은 여러 가지 모습으로 선을 보였다그렇다면 세계에는 여러 가지 대장경이 존재하고 있는데 왜 우리의 팔만대장경만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것일까? 그것은 한마디로 말해서 완벽한 보존 그리고 단 한 자의  오자도 불허하는 정교함과 가장 잘 정리되어 있는 편제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우리의 팔만 대장경 역시 세계적인 보물이 되기 앞서서 많은 우여곡절을 겪지 않을 수 없었다. 고려 현종때 완성된 초조대장경과 대각국사 의천이 주도하여 고려 숙종 때 완성된  속장경이 몽고군의 침입으로 모두 잿더미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려인들은 이에 절망하지 않고 계속 몽고에  저항하면서 왕실과 백성이 모두 힘을 합쳐 부처님의 가호를 빌어 외적을 물리치고자 고종 23(1236)에 다시  대장경 조판을 시작해서 16년 만에 재조대장경, 즉 지금 우리가 보고있는 팔만대장경을 완성시킨다.

  우리 선조들의 각고의 노력이 있었던 탓인지 팔만대장경은 그후 임진왜란과 한국전쟁 같은 대규모 전란 속에서 여러 번의 소실 위기를 맞으면서도 바로 어제 만든 것처럼 완벽한 모습을 보존하고 있다. 실로 경이롭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종교를 떠나 모든 한국인들에게  팔만대장경이 특별한 의미를 갖는 것은 바로 그런 연유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팔만대장경을 이루는 각 경판은 크기가 가로 약 69.7cm, 세로 약 24.2cm,  두께 약 3.6cm이며, 무게는 약 3.5kg 쯤 나간다. 그리고  그 재질은 자작나무와 후박나무로  알려져 있다. 이 경판  위에는 사방 약 1.5cm 크기의 한자가 앞 뒤 양면 합해서 644자쯤 새겨져 있다. 이 경판은 모두  합쳐 81,240판이며 수록된 경전은 1,514종에 총 6,569권에 이른다. 하루 한 권씩 읽는다고 해도 18년이 걸리는 그야말로 방대한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의 자랑스러운  팔만대장경은 근대에 이르러 그  빛을 잃어가고 있는 듯하다.

바로 우리의 팔만대장경을 저본으로 해서 만든 일본의 대정신수대장경이 세계적인 정전으로 불교학계에서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대장경연구소가 전 국민의 성원 속에서 팔만대장경 전산화작업을 진행하고 있고, 적어도 2000년에 완성할 전망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때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나는 우리의 팔만대장경이 예전의 그 명성과  지위를 다시 찾기를 학수고대한다. 그리고 해인사의 장경각의 겉모습만 보고 대장경을 직접 보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은 동국대 영인본 고려대장경(48)을 찾아보는 것도 보람있는 일일 것이다그러나 한자로만 되어 있는 것을  감안하면 아무래도 일반인들은 동국대역경원에서 간행한 '한글대장경'을 읽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한글대장경'  곧 완간될 예정이므로 이제는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대장경을 완전히 일독할 수 있게  되었음을 알려드린다.

  2. 팔만대장경과 설화

  1,514종의 방대한 경전을 담고 있는 팔만대장경은 대승삼장과 소승삼장으로  대별할 수 있다. 삼장이란 '경율론'을 함께 이르는 말이다. 소승삼장에 속한 경전들은 주로 역사적인 실제 인물로서의 석가모니 부처님의 설법을 담고 있으며, 대승삼장은 초월적이고 영원한 존재로서의 부처님을 부각시키고 있다또 부처님이 경을 설한 형식, 방법, 순서 또는  의미, 내용 등을 따라 분류하는 방법을 교판이라고 하는데, 이 교판은 특히 중국불교에서 발전한 것으로 여러 가지 분류법이 있다. 여기에서는 천태종의 개조인 지의대사의 오시교를 잠깐 소개해 보기로 한다.

  1) 화엄시: 부처님이 성도한 직후 21일간 화엄경을 설한 시기.

  2) 녹원시: 화엄이 이후 12년간 소승의 아함경을 설한 시기부처님이 최초로 설법을 시작한 곳이 녹야원이므로 녹원시라고 부르는 것이며, 설한 경명을 따서 아함시라고 부르기도 한다.

  3) 방등시: 녹원시 이후 8년간 유마경, 금광명경, 승만경, 능가경, 무량수경 등의 방등부 경전을 설하신 시기.

  4) 반야시: 방등시 이후 22년에 걸쳐 제부의 반야경을 설하신 시기.

  5) 법화열반시: 부처님이 최후 5년간 법화경과 열반에 드시기 직전에 열반경을 설하신 시기.

  이처럼 천태오시교를 통해 팔만대장경을 크게 다섯 부류로  나누어볼 수도 있다. 그리고 좀더 복잡하게는 팔만대장경 속에 들어 있는 경전의 형태를 형식과 내용에 따라 다음과 같이  12종으로 나눌 수 있는데, 이것을 일러 12분교라고 한다.

  1) 수트라(sutra): 우리가 일반적으로 부르는 경을  의미하며 반야심경처럼 사상적으로 의미가 완료된 경전을 일컫는다.

  2) 게야(geya): 중송이라고 한역하며 산문 경전의 내용을 거듭 시어체로 표현한 것으로 법화경과 화엄경을 비롯해서 대부분의 대승경전이 여기에 속한다.

  3)가타(gatha): 법구경처럼 완전히 시적 언어로만 이루어진 경전을 가리킨다.

  4) 우다나(udana):다른 이의 물음에 답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종교적 체험을 이야기하는 내용을 담은 경전.

  5) 아브타다르마(abhta-dharma):범부는 경험하지 못하는 깨달은 자만의  독특한 경지 등을 설명하고 있는 경전.

  6) 이틴타카(itinttaka): 부처님과 여러 제자들의 전생 인연담.

  7) 니다나(nidana): 특별한 인연 때문에 설하게 된 경전.

  8) 아파다나(apadana): 비유로써 설명하는 경전.

  9) 자타카(jataka): 부처님의 전생 이야기

  10) 비아카라나(vyakarana): 부처님의 제자들이나 재가 신자들이 후세에 성불하리라는 내용을 담은 경전.

  11) 바플리아(vaplya): 우주론 및 인생론을 철학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경전.

  12) 우파데사(upadesa): 논서를 가리킨다.

  사실 팔만대장경 속에 있는 수많은 경전들은 주로 출가자 즉 비구와 비구니를 위한 것들이다. 따라서 일반인들이 이해하기도, 실천하기도 어려운 내용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것은 부처님이 일반 대중을 멀리했기 때문에 생긴 결과는 아니다. 다만 불경의 결집이 승가차원, 즉 출가자들 중심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그리고 부처님이 일반 대중들을 위해서도 아주  쉬운 말로 가르침을 전했던 사실을  입증해주는 것이 바로 불전 속에 남아 있는  설화들이다. 이러한 설화들은 재미있는 이야기  형식을 빌어 불법의 핵심을 일반 대중들에게 쉽게 전달하고 있다. 팔만대장경 속에는 이러한 설화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그런데 위에서 한 분류에 의거해볼 때 설화가 비교적 집중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곳은 소승삼장 그리고 천태오시교 에 따르자면 녹원시, 12분교에 따르자면 이틴타카, 니다나, 아파다나, 자타카, 비아카라나 등이라고 할 수 있다.

  3. 본서에 인용된 주요 경전에 관한 이야기

  . 현우경

  현우경은 고려대장경 이외의 대장경에는 현우인연경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 현우경은 송나라 때 스님 여덟 명이 우전국에 가서 여러 법사들의 강의를 듣고 각자가 들은 바를 번역하여 집성한 것이다 .따라서 현우경 같은 경전은 산스크리트 어 원본이 동일한 제목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이 현우경은 찬집백연경 그리고 잡보장경과 함께 불교 설화 및 비유문학의 3대 대작으로 불리고 있다찬집백연경은 이름 그대로 '백 가지 인연담을 담은 경전'인데, 현우경에 있는 설화 10가지가 여기에서도 동일하게 보이고 있다. 잡보장경에는 모두 합해 121가지의 설화가 들어 있는데, 이 경전의 특징은 설화속에 등장하는 주인공들 중에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인물들이 많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미란타왕과 나선비구 그리고 카니시카왕과 마명보살 등의 실존 인물이 출현한다.

  다음으로 부처님의 전생 이야기를 담고 있는 대표적인 경전으로 본생경이 있는데, 이것은 팔리 어 삼장에 속해 있는 경전으로 무려 550편의 전생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러나 본생경은 온전하게 그대로 한역된 것이 아니라 생경, 현우경잡보장경 등에 부분 번역되어 있다그리고 육도집경 역시 여러 가지 전생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경전으로 유명하다.

  . 법구비유경

  법구비유경은 법구경과 거의 동일한 경전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법구경은 운문으로 되어 있는 게송들만 모아놓은 경전이지만, 법구비유경은 그 게송들이 설해지게  된 전후사정을 싣고 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알려져 있고 또 가장 많은 언어로 번역된 불경이 바로 법구경이다. 그이유는 무엇보다도 아름답고 간결한 시어로 기초적인 불교 교의를  쉽게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쉽게 볼 수 있는 법구경은 팔만대장경 속에 들어 있는 한역  법구경에서 번역한 것이 아니라 주로 팔리 어 법국여, '담마파다'에서 번역된 것이다. 참고로  팔리 어본은 26423게송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한역 법구경은 39750게송이 들어 있다.

  . 아함경

  아함경이라고 하면 흔히 한 권의 경전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그러나 아함경은 아함부에 속하는 장아함경, 중아함경, 증일아함경, 잡아함경을 통칭하는 말이다.   사아함은 북방불교에 전해진 것으로 모두 1832,088경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 현재 동남아시아의 불교국에 전승된 오아함은 장부, 중부, 상응부, 증지부, 소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속에 포함된 경전의  총수는 무려 5,274경이나 된다. 북방불교에 전해진 사아함과 남방불교에 전해진 오아함은 그 내용과 구성이 상당히 유사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아함경은 불교 경전 중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기에 원시불교  연구에 더없이 중요한 원전이 되고 있다. 또 신격화된 부처님이 나타나는 후기의 대승경전들에 비해 가장 인간적인 석가모니 부처님의 모습을 느끼게 해준다. 이 아함경은 주로  불교의 근본개념인 중도, 팔정도, 사성제 그리고 삼법인 등을 소박하고 간결한 문체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라고 하겠다.

  . 사십이장경

  사십이장경은 최초의 한역 경전으로  알려져 있다. 사십이장경의 이름은  불교의 요지를 42장에 걸쳐 간략하게 풀이하고 있는데서 유래한 것이다. 이 경전은 여러 경전에서 요지를 추려 뽑은 것이기 때문에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사상을 담고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이 경의 서두에 따르면 후한의 명제가 어느 날 밤 온몸이 황금색으로 빛나는 신인이 궁전으로 날아들어오는 꿈을 꾼 후 신하에게 그 이야기를 했다그러자 신하는 저 멀리 천축이라는 나라에 부처님이라는 성인이 나타났다고 하는데, 아마도 그 신인이 부처님인 것 같다고 대답했다. 이에 명제는 대월지국에 사신을 보내 불경을 얻어 오게 했는데, 그것이 바로 사십이장경이라고 한다.

  다음으로 매우 짧고도 재미있는 비유를 담고 있는 백유경은 백구비유경  또는 백구비유집경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름대로 하자면 백 가지 비유가 들어 있어야 하지만 실제로는 98가지의 비유가 들어 있다. 그리고 팔만대장경 속에 들어 있는 잡비유경은 이 경전의 이역본이라고 한다.

  . 법원주림

  법원주림은 총 일백 권의 방대한 분량으로 당나라 때 도세법사가 10여 년에 걸쳐 여러 경전에 실려있는 모든 사항을 종류별로 나눠 집대성한  책이다. 또 이 책은 세부  항목마다 그 전거와 출처를 낱낱이 밝히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경율이상 역시 6세기 경에 중국에서 찬술된 책으로 불교 학습에  중요한 사항들을 50권으로 정리해놓은 일종의 불교 백과사전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경율이상에서 언급하고 있는 경전 중에는 상당수가 현재 전해지지 않고 있어 한역 경전의  유통사를 연구하는데 이 책은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 대당서역기

  이 책은 당나라 현장스님이 인도 내에  있는 70여 개국을 돌아보고 당시인도부교의  현황과 불교유적 및 그에 따른 전설들을 충실하게 기록한 것이다. 상당히 흥미로울 뿐만 아니라 당시 인도불교연구에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책으로 평가받고 있다. 현장스님의 여행 기간은 총  17년이었고, 방문한 지역은 서쪽으로는 현재의 이란 그리고 남쪽으로는 스리랑카를 망라하는 광활한 지역이었다이 대당서역기는 법현전 그리고 왕오천축국전과 함께 동양의 3대 여행기로 불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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