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이 딸을 부잣집으로 시집보냈다. 그런데 그 딸이 좀 모자란 구석이 있는터라 그는 내심 이렇게 생각했다.
'가만 있자, 내가 밥을 굶을 정도는 아니지만 아무래도 딸애가 잘사니까 어떻게 해서든 쌀 한섬이라도 얻어 와야겠다.‘
그는 드디어 날을 잡아서 딸네 집에 놀러갔다. 시집살이 엄한 옛날에 친정아버지가 집에 놀러오셨으니 딸이 얼마나 반가웠을까.
"아버지 오셨어요?"
딸은 좋아서 어쩔줄 몰라 하며, 아버지를 방으로 모시고 들어갔다. 큰절을 올린 뒤 두루두루 안부를 묻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버지, 요즈음 어떻게 사세요?"
"살기는 어떻게 사냐? 아침 먹으면 종일 굶다가 점심 먹고 또 점심 먹으면 종일 굶다가 저녁 먹고 세상을 이렇게 산다."
딸은 깜짝 놀랐다.
"아니 그렇게 어려우세요? 저희는 아침 먹고 점심 먹고 저녁 먹고 또 아침 먹고 점심 먹고 저녁 먹고 그러는데요."
"너희야 잘사니까 그러겠지만 없는 사람들이야 어디 그렇게 할 수 있겠냐? 할 수 없이 그냥 아침 한끼 먹고 종일 굶고 점심 한끼 먹고 종일 굶고 또 저녁 한끼 먹고 종일 굶지."
"아버지 그동안 얼마나 배가 고프셨어요? 쌀이나 한섬 드릴테니까 가지고 가서 잡수세요."
이리하여 그 아버지는 계획대로 쌀 한섬을 얻어 왔다. 그러나 친정 아버지가 돌아간 후로 계속 걱정이 되던 딸은 어느 날 친정에 가서 어머니에게 물었다.
"엄마, 요즈음은 어떻게 사세요?"
"너희나 우리나 사는거야 똑같지, 뭐가 어떠냐?"
"아이, 어떻게 먹고 사시냐고요?"
"너희가 먹는대로 우리도 먹고 살지."
"저번에 아버지한테 들었더니 안 그렇던데요?"
"그래? 아버지가 뭐라시든?"
"아침 먹으면 종일 굶다가 점심 먹고, 점심 먹으면 종일 굶다가 저녁 먹고 그러신다던데요?"
"그럼 너희는?"
"우리는 아침 먹고 점심 먹고 저녁 먹고 그러지요."
"아이구, 이 답답한 것아! 그 말이 그 말이지."
한참 친정어머니와 이야기하던 멍청한 딸은 그제서야 무언가를 퍼뜩 깨달았다.
"엄마, 아버지가 세상에 그럴 수가 있어요? 쌀 도로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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