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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家庭) - 박목월(朴木月)
지상에는
아홉 켤레의 신발.
아니 현관에는 아니 들깐*에는
아니 어느 시인의 가정에는
알전등이 켜질 무렵을
문수(文數)가 다른 아홉 켤레의 신발을.
내 신발은
십구 문 반(十九文半).
눈과 얼음의 길을 걸어
그들 옆에 벗으면
육 문 삼(六文三)의 코가 납작한
귀염둥아 귀염둥아
우리 막내둥아.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얼음과 눈으로 벽(壁)을 짜 올린
여기는
지상.
연민(憐憫)한 삶의 길이여.
내 신발은 십구 문 반.
아랫목에 모인
아홉 마리의 강아지야.
강아지 같은 것들아.
굴욕과 굶주림과 추운 길을 걸어
내가 왔다.
아버지가 왔다.
아니 십구 문 반의 신발이 왔다.
아니 지상에는
아버지라는 어설픈 것이
존재한다.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 들깐 : 경상도 방언으로 부엌 가까이 설치되어 주로 주방 용품을 보관하는 곳간
(시집 {경상도의 가랑잎}, 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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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깎는 대패 /오 동 춘
나이 많으십니까 좀 깎아 드릴까요
청년 되고 싶어요 새로 할일 뭔데요
짐승 짓 누릴 삶이면
안 깎아요! 절대로.
우리 참삶 앎인 사람 나이 깎을 대패 없고
험한 누리 온몸 바쳐 나라 빛낸 귀한 사람
그 나이 깎고 말구요
더욱 빛 삶 이루게요
놀부 심술 잔뜩 품고 인생 발길 더런 사람
밝은 길 낯 돌리고 그믐 칠야 즐긴 사람
그 갈 곳 나이 값 못한 죄
불못 말고 어딜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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