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현대시

한국현대시와 시조 1수

임기종 2016. 4. 22.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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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家庭)     - 박목월(朴木月)

 

지상에는

아홉 켤레의 신발.

아니 현관에는 아니 들깐*에는

아니 어느 시인의 가정에는

알전등이 켜질 무렵을

문수(文數)가 다른 아홉 켤레의 신발을.

 

내 신발은

십구 문 반(十九文半).

눈과 얼음의 길을 걸어

그들 옆에 벗으면

육 문 삼(六文三)의 코가 납작한

귀염둥아 귀염둥아

우리 막내둥아.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얼음과 눈으로 벽()을 짜 올린

여기는

지상.

 

연민(憐憫)한 삶의 길이여.

내 신발은 십구 문 반.

아랫목에 모인

아홉 마리의 강아지야.

강아지 같은 것들아.

 

굴욕과 굶주림과 추운 길을 걸어

내가 왔다.

아버지가 왔다.

아니 십구 문 반의 신발이 왔다.

 

아니 지상에는

아버지라는 어설픈 것이

존재한다.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 들깐 : 경상도 방언으로 부엌 가까이 설치되어 주로 주방 용품을 보관하는 곳간

 

(시집 {경상도의 가랑잎}, 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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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깎는 대패 /오 동 춘

 

나이 많으십니까 좀 깎아 드릴까요

청년 되고 싶어요 새로 할일 뭔데요

짐승 짓 누릴 삶이면

안 깎아요! 절대로.

 

우리 참삶 앎인 사람 나이 깎을 대패 없고

험한 누리 온몸 바쳐 나라 빛낸 귀한 사람

그 나이 깎고 말구요

더욱 빛 삶 이루게요

 

놀부 심술 잔뜩 품고 인생 발길 더런 사람

밝은 길 낯 돌리고 그믐 칠야 즐긴 사람

그 갈 곳 나이 값 못한 죄

불못 말고 어딜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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