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현대시

한국현대시와 시조 1수

임기종 2016. 4. 25. 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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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컵       - 박목월(朴木月)

 

빈 것은

빈 것으로 정결한 컵.

세계는 고드름 막대기로

꽂혀 있는 겨울 아침에

세계를 마른 가지로

타오르는 겨울 아침에.

 

하지만 세상에서

빈 것이 있을 수 없다.

 

당신이

서늘한 체념으로

채우지 않으면

신앙의 샘물로 채운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는

나의 창조의 손이

장미를 꽂는다.

 

로오즈 리스트에서

가장 매혹적인 죠세피느 불르느스를.

 

투명한 유리컵의

중심에.

 

(시집 {무순},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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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잔 /양 점 숙

 

지게미의 세상 맹물에도 잔은 넘쳐

오줌독 오기마저 잔술로 받아낸

뒤꿈치 묻어온 술내 봉화처럼 붉었다.

 

그림자 굵은 푸서리의 바람 속에서

정수리 뭉개지던 풋바심에 죽사발

술잔에 멍석말이한 세월 뼈대마저 노랗다.

 

뿌리 뽑힌 먹 장승 모로 누운 저녁엔

아버지의 사진첩, 삭정 끝에 달로 뜰고

흐려온 봄밤의 그림자 장지문 밖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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