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현대시

한국현대시와 시조 1수

임기종 2016. 7. 29.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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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수(刺繡) - 허영자(許英子)

 

마음이 어지러운 날은

수를 놓는다.

금실 은실 청홍(靑紅)

따라서 가면

가슴 속 아우성은 절로 갈앉고

처음 보는 수풀

정갈한 자갈돌의

강변에 이른다.

남향 햇볕 속에

수를 놓고 앉으면

세사 번뇌(世事 煩惱)

무궁한 사랑의 슬픔을

참아내올 듯

머언

극락 정토(極樂淨土) 가는 길도

보일 상 싶다.

 

(시집 {가슴엔 듯 눈엔 듯}, 1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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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 변주(變奏)/김 정 희

 

우수절 젖은 하늘 물안개 낀 들녘에 서면

전생의 어느 길목 먼 그대 발자국 소리

끊일 듯 이어진 가락 비파 소리 들리고.

 

딩동 댕, 딩동 댕댕, 실로폰을 치듯이

처마 끝 낙숫물 소리 창문을 두드린다

귀 열고 눈 떠 보라고 재촉하는 하늘 말씀.

 

이슬비 보슬보슬 청매(靑梅)를 익히는 손

시디 신 열매 맛을 삶이라 타이르며

매화꽃 이운 자리에 내리는 은총 있다.

 

꽃과 잎을 물들인 한 줄기 바람 앞에

늘상 젖은 눈매로 쓴 두루마리 글씨

지상에 전하는 안부, 그대 떠난 뒷소식.

 

눈발이 휘날린다, 허공에 걸린 말씀들

전지를 펼쳐 놓고 써 내려간 저 글귀는

은박도 찬란한 밀경(密經)을 지상에 봉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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