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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수(刺繡) - 허영자(許英子)
마음이 어지러운 날은
수를 놓는다.
금실 은실 청홍(靑紅) 실
따라서 가면
가슴 속 아우성은 절로 갈앉고
처음 보는 수풀
정갈한 자갈돌의
강변에 이른다.
남향 햇볕 속에
수를 놓고 앉으면
세사 번뇌(世事 煩惱)
무궁한 사랑의 슬픔을
참아내올 듯
머언
극락 정토(極樂淨土) 가는 길도
보일 상 싶다.
(시집 {가슴엔 듯 눈엔 듯}, 1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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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 변주(變奏)/김 정 희
우수절 젖은 하늘 물안개 낀 들녘에 서면
전생의 어느 길목 먼 그대 발자국 소리
끊일 듯 이어진 가락 비파 소리 들리고.
딩동 댕, 딩동 댕댕, 실로폰을 치듯이
처마 끝 낙숫물 소리 창문을 두드린다
귀 열고 눈 떠 보라고 재촉하는 하늘 말씀.
이슬비 보슬보슬 청매(靑梅)를 익히는 손
시디 신 열매 맛을 삶이라 타이르며
매화꽃 이운 자리에 내리는 은총 있다.
꽃과 잎을 물들인 한 줄기 바람 앞에
늘상 젖은 눈매로 쓴 두루마리 글씨
지상에 전하는 안부, 그대 떠난 뒷소식.
눈발이 휘날린다, 허공에 걸린 말씀들
전지를 펼쳐 놓고 써 내려간 저 글귀는
은박도 찬란한 밀경(密經)을 지상에 봉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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