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현대시

한국현대시와 시조 1수

임기종 2016. 8. 10. 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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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동과 장미 - 오규원(吳圭原)

 

개봉동 입구의 길은

한 송이 장미 때문에 왼쪽으로 굽고,

굽은 길 어디에선가 빠져나와

장미는

길을 제 혼자 가게 하고

아직 흔들리는 가지 그대로 길 밖에 선다.

 

보라 가끔 몸을 흔들며

잎들이 제 마음대로 시간의 바람을 일으키는 것을.

장미는 이곳 주민이 아니어서

시간 밖의 서울의 일부이고,

그대와 나는

사촌(四寸)들 얘기 속의 한 토막으로

비 오는 지상의 어느 발자국에나 고인다.

 

말해 보라

무엇으로 장미와 닿을 수 있는가를.

저 불편한 의문, 저 불편한 비밀의 꽃

장미와 닿을 수 없을 때,

두드려 보라 개봉동 집들의 문은

어느 곳이나 열리지 않는다.

 

(시집 {왕자가 아닌 한 아이에게},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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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사꽃 그늘/이승은

 

골짝에 접어들수록 마음처럼 붉어진 길

눈물도 그렁그렁 꽃잎 따라 필 것 같다

고샅길 홀로된 집 한 채

숨어 우는 너도 한 채

 

복사꽃 그늘에서 삼키느니, 밭은기침

선홍의 내 아가미 반짝이며 떠돌다가

끝내는 참지 못하고

가지마다 뱉어낸 꽃

 

우리 한때 들끓었던 것

참말로 다 참말이던 것

날카롭게 모가 서는 언약의 유리 조각에

메마른 혀를 다친다, 오래고 먼 맹세의 봄

 

200726회 중앙시조대상 수상작

이승은 시집"환한적막" [동학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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