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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동과 장미 - 오규원(吳圭原)
개봉동 입구의 길은
한 송이 장미 때문에 왼쪽으로 굽고,
굽은 길 어디에선가 빠져나와
장미는
길을 제 혼자 가게 하고
아직 흔들리는 가지 그대로 길 밖에 선다.
보라 가끔 몸을 흔들며
잎들이 제 마음대로 시간의 바람을 일으키는 것을.
장미는 이곳 주민이 아니어서
시간 밖의 서울의 일부이고,
그대와 나는
사촌(四寸)들 얘기 속의 한 토막으로
비 오는 지상의 어느 발자국에나 고인다.
말해 보라
무엇으로 장미와 닿을 수 있는가를.
저 불편한 의문, 저 불편한 비밀의 꽃
장미와 닿을 수 없을 때,
두드려 보라 개봉동 집들의 문은
어느 곳이나 열리지 않는다.
(시집 {왕자가 아닌 한 아이에게},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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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사꽃 그늘/이승은
골짝에 접어들수록 마음처럼 붉어진 길
눈물도 그렁그렁 꽃잎 따라 필 것 같다
고샅길 홀로된 집 한 채
숨어 우는 너도 한 채
복사꽃 그늘에서 삼키느니, 밭은기침
선홍의 내 아가미 반짝이며 떠돌다가
끝내는 참지 못하고
가지마다 뱉어낸 꽃
우리 한때 들끓었던 것
참말로 다 참말이던 것
날카롭게 모가 서는 언약의 유리 조각에
메마른 혀를 다친다, 오래고 먼 맹세의 봄
〈2007년 26회 중앙시조대상 수상작〉
이승은 시집"환한적막" [동학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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