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장(風葬)․1 - 황동규(黃東奎)
내 세상 뜨면 풍장시켜 다오
섭섭하지 않게
옷은 입은 채로 전자시계는 가는 채로
손목에 달아 놓고
아주 춥지는 않게
가죽 가방에 넣어 전세 택시에 싣고
군산(群山)에 가서
검색이 심하면
곰소쯤에 가서
통통배에 옮겨 실어 다오
가방 속에서 다리 오그리고
그러나 편안히 누워 있다가
선유도 지나 무인도 지나 통통 소리 지나
배가 육지에 허리 대는 기척에
잠시 정신을 잃고
가방 벗기우고 옷 벗기우고
무인도의 늦가을 차가운 햇빛 속에
구두와 양말도 벗기우고
손목시계 부서질 때
남 몰래 시간을 떨어트리고
바람 속에 익은 붉은 열매에서 툭툭 튕기는 씨들을
무연히 안 보이듯 바라보며
살을 말리게 해 다오
어금니에 박혀 녹스는 백금(白金) 조각도
바람 속에 빛나게 해 다오
바람 이불처럼 덮고
화장(化粧)도 해탈(解脫)도 없이
이불 여미듯 바람을 여미고
마지막으로 몸의 피가 다 마를 때까지
바람과 놀게 해 다오.
(시집 {풍장},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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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耳鳴)의 시/권 갑 하
어쩌면 눈이 부신 형광 같은 속삭임인가
전생에 못다 삭힌 그리움의 다발다발
슬픔을 무두질하듯 밤낮 잉잉거린다.
어디쯤 바람이 드나 귀를 후벼 보지만
역광으로 쏟아지는 꼬물대는 헛발질만
투명한 직벽의 유리창 팅팅 몸을 부딪는다.
사랑도 눈물도 다 사룬 새벽 머리맡
노래를 부등켜안고 혼을 놓친 음절 하나
부서진 자모(子母)들만이 끊긴 현에 사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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