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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사당 -노천명 -
나는 얼굴에 분칠을 하고
삼단 같은 머리를 땋아 내린 사나이.
초립에 쾌자를 걸친 조라치들이
날라리를 부는 저녁이면
다홍치마를 두르고 나는 향단이가 된다.
이리하여 장터 어느 넓은 마당을 빌어
램프불을 돋운 포장 속에선
내 남성(男聲)이 십분 굴욕되다.
산 넘어 지나온 저 동리엔
은반지를 사 주고 싶은
고운 처녀도 있었건만
다음 날이면 떠남을 짓는
처녀야!
나는 집시의 피였다.
내일은 또 어느 동리로 들어간다냐.
우리들의 소도구를 실은
노새의 뒤를 따라
산딸기의 이슬을 털며
길에 오르는 새벽은
구경꾼을 모으는 날라리 소리처럼
슬픔과 기쁨이 섞여 핀다.
-<삼천리 9호>(1940.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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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엔 그리움이 있다 성덕제
파름한 하늘을 가슴에다 담아놓고
키가 큰 나무가 호숫가에서 서 있는 곳
노을도 불타는 가슴을 그곳에다 묻었다.
한여름 매미소리 하늬바람 부르면은
무성한 나무들도 그늘을 펴놓고는
유년의 먼 들녘에서 그리움을 불렀다.
아, 그대 아는가 우리들의 그 세월을
눈이 큰 아이의 수줍음이 피던 그땅
햇살이 물장구 치며 웃던 그곳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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