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량(閑良)은 이제 없다
세상을 내려 보는 감흥(感興)에 가슴 벅차
무소유(無所有) 되뇌이던 한량은 이제없다
재주껏 갖고자 하는 아수라(阿修羅)만 넘치고.
연상의 기생 묘에 술잔을 올리면서
'홍안(紅顔)은 어디두고 백골(白骨)만 묻혔는가'
백호(白湖)의 노래 소리가 이명으로 들린다.
십팔세 기생에게 정 주던 칠십 노객
풍류객 그 한량을 이제는 볼 수 없다
인생을 즐기는 여유 사라진지 오래라.
경포호 달 다섯을 헤아려 볼 수 있는
정 많던 한량님은 어디로 가셨는가
색안경 쓴 속물들의 계산속만 빠르니.
산고(産苦)의 아내부탁 까맣게 잊어먹고
금강산 구경 가서 일년 만에 돌아왔던
한량네 정수동님을 어디에서 만날까.
수표교에 자리 깔고 술통 괴고 앉아서
한잔은 술이요 또 한잔은 안주라며
술 두말(二斗) 다 비워버린 그 한량은 이제 없다.
처용(處容)의 가면(假面) 쓰고 한량입네 하면서
춤추는 가짜들이 거리를 활보할 뿐
진정한 한량님 들은 어디에도 없구나.
세파(世波)에 찌들어서 주름진 각박한 삶
지쳐서 살아가는 범부(凡夫)들 틈새에는
위장(僞裝)된 거짓 한량이 진짜라며 춤춘다.
두꺼운 프라스틱 냄새 찌든 가면(假面)을 쓴
화려한 가짜들이 활개를 치는 요즘
이 땅에 한량은 없다 찾을 수가 없더라.
-기생: 황진이로 백호 임제보다 10여세 위였다고
-백호(白湖): 조선 전기의 문인 임제(林悌)의 호.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자순(子順)
-정수동: 1808년(순조 8)∼1858년(철종 9). 조선 후기의 시인
- 아수라(阿修羅):육도 팔부중의 하나로 싸움을 일삼는 나쁜 귀신
(전에 쓴 글을 조금 고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