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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야(雪夜) - 김광균(金光均)
어느 먼 곳의 그리운 소식이기에
이 한밤 소리 없이 흩날리느뇨.
처마 끝에 호롱불 여위어 가며
서글픈 옛 자취인 양 흰 눈이 내려
하이얀 입김 절로 가슴에 메어
마음 허공에 등불을 켜고
내 홀로 밤 깊어 뜰에 내리면
머언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
희미한 눈발
이는 어느 잃어진 추억의 조각이기에
싸늘한 추회(追悔) 이리 가쁘게 설레이느뇨.
한 줄기 빛도 향기도 없이
호올로 차단한 의상(衣裳)을 하고
흰 눈은 내려 내려서 쌓여
내 슬픔 그 위에 고이 서리다.
({조선일보}, 193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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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산지에서/자경 전 선 구
법열로 가득 채운 닿지 않는 산초 등잔
적막도 잠든 산 속에 혼불로 밝혀 두고
영겁을 가슴에 품어 오고 감도 잊었던가.
고뇌도 삭고 삭으면 기쁨으로 변하는가
희열도 서러움도 본래에는 한 몸이었나
초연을 가슴에 품고 생도 멸도 잊었던가.
침묵은 뜨거운 설법 울려오는 저 소리를
침묵은 심연이다 그치지 않는 저 음성들
침묵은 화엄이로다 철을 넘어 피는 꽃들.
산천도 귀를 열고 빛 밝히는 말씀 듣고
석 장승 눈을 뜨고 장엄함을 바라볼 때
영혼의 닻을 드리우면 진리 한 폭 얻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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