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현대시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임기종 2017. 6. 30. 06:57
728x90




너를 사랑한다 - 강은교 -

 

그땐 몰랐다

빈 의자는 누굴 기다리고 있는 것이라는 것을

의자의 이마가 저렇게 반들반들해진 것을 보게

의자의 다리가 저렇게 흠집 많아진 것을 보게

그땐 그걸 몰랐다

 

 

신발들이 저 길을 완성한다는 것을

저 신발의 속가슴을 보게

거무뎅뎅한 그림자 하나 이때껏 거기 쭈그리고 앉아

빛을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게

그땐 몰랐다

 

 

사과의 뺨이 저렇게 빨간 것은

바람의 허벅지를 만졌기 때문이라는 것을

꽃 속에 꽃이 있는 줄을 몰랐다

 

 

일몰의 새떼들, 일출의 목덜미를 핥고 있는 줄을

몰랐다

 

꽃 밖에 꽃이 있는 줄 알았다

일출의 눈초리는 일몰의 눈초리를 흘기고 있는 줄 알았다.

시계 속에 시간이 있는 줄 알았다

희망 속에 희망이 있는 줄 알았다

, 그때는 그걸 몰랐다

 

 

희망은 절망의 희망인 것을

절망의 방에서 나간 희망의 어깻살은

한없이 통통하다는 것을

너를 사랑한다.

 

-<초록 거미의 사랑>(2006)-

 

------------------------------------------


高 正 國

 

 

(1)

한 세상 사는 것이

다 길이라 하는 것을,

 

물빛 글썽이는

만 보고 가노라면

 

세월은

소롯길로 와서

억새꽃을 피웠네.

 

 

(2)

노을녘 산마루엔

하늘만한 뉘우침이

 

웃자란 억새밭에

하얗게 눕던 날은

길잃은

조랑말 한 마리

을 향해 울었다.

 

 

(3)

반 평생 구빗길을

먼 발치로 따라와서,

 

때로는 이맛섭에

주린 듯 돋는 별빛.

 

그 순명(順命)

비포장길에서

삐걱이는 내 수레여.



'한국현대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0) 2017.07.05
한국현대시와 시조 1수  (0) 2017.07.04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0) 2017.06.29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0) 2017.06.28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0) 2017.0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