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기다리는 동안 - 황지우 -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 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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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유배지
-반 고흐의 '사이프러스나무가 있는 밀밭을 보며-옥영숙
요양소 창살너머 처음 본 풍경은
잘 익은 밀 이삭이 황금바다에 고개 숙여
밀밭은 사자의 갈기로 떠도는 섬을 휘감았다
사이프러스는 촛불처럼 어둔 하늘을 뚫고
바람과 투쟁하는 목선을 띄운다
한치 밖 세상을 보며 죽음을 감지하고
산과 하늘 나무사이로 침묵하는 얼굴들
목마른 강물 한줄기 끌어오지 못한 채
지난날 소용돌이치던 야윈 세월을 포옹했다
그리움과 노여움이 부딪히는 햇살에
이 시간 가고 나서 한 세월 밀려오면
고단한 삶을 씻어내고 쪽빛바다와 만나야지
해초처럼 파도에 밀려온 유배지에서
태어남도 죽음도 자유롭게 투망질하며
내 생을 노략질하던 항해에 돛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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