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열녀문이라는 것이 있다.
과부가 개가하지 않고 늙어 죽으면 임금이 내리는 표상이다. 일부종사(一夫從事)가 지덕(至德)이었던 시절의 일이지만 그 시절에도 그리 흔치는 않았던 것이다. 조선조의 여인네들은 삼종지도(三從之道)라하여 어려서는 아버지를 따르고 결혼하여서 남편을 따르며 늙어서는 자식을 따른다는 계율에 얽매여 있었다.
옛날에는 과부가되면 개가나 재혼이 그렇게 쉽지 않았음을 간단히 시사하는 대목이다. 더군다나 과부가 정을 통하던지 외부의 남성과 교재가 있다던지 하는것은 생각도 못할 일이었다. 그런 처지의 과부를 구원하는 단 한 가지 책략이 있었다.
그 것은 소위'보쌈'이라는 것이다. 이것은그 사회에서 은밀히 허용하고 있던 일종의 필요악이었다고 하겠다. 과부를 사랑하는 어떤남성이 야음(夜陰)을 이용해 그 과부를 보자기에 싸서 훔쳐가는 풍습이었다.
그 남자로서는 겉으로 드러나게 과부를 데려올 수도 없고, 한편으로는 과부를 두고 있는 그 집에서도 처치곤란의 독처하는 며느리를 남모르게 또는 명분을 잃지 않고 새삶을 허락하는 방식으로서 활용되었던 음성적인 제도였다. 유일한 과부 구원책이었다 할 것이다. 과부로서도 수절을 원하지 않는 여인으로서는 내심 이 보쌈을 원하여 은밀한 눈짓을 담너머로 보내지나 않았을까?
'여행 ,그림 그리고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치맛의 비밀 (0) | 2017.09.06 |
---|---|
나무 시집보내기 (0) | 2017.09.05 |
동양족보 서양족보 (0) | 2017.09.01 |
미인의 상징 전족 (0) | 2017.08.31 |
세계 최초의 지하철 (0) | 2017.08.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