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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장

임기종 2014. 3. 5.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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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장

 

완장은 무지랭이 시골 청년이 보잘 것 없지만 권력을 얻으면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통해 권력과 폭력의 모습을 추적해 가는 인간적인 소설이다.

작품의 줄거리는 땅 투기로 돈푼깨나 벌어 기업가로 변신한 졸부 최 사장이 저수지 사용권을 얻어 양어장을 만들고 그 저수지 관리를 동네 건달 임종술에게 맡긴다.

노란 바탕에 파란 글씨가 새겨진 감시원 완장을 찬 종술은 완장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그날로 안하무인으로 마을 사람들 위에 군림하려고 한다.

노란 완장을 팔에 두른 종술의 위세와 행패는 점점 더 심해져 오죽하면 동네 후배의 입에서 이런 소리가 나올 정도다.

“소문으로 듣기에는 더러 들었어도 성님 그 완장 유세가 이렇게 대단헌 줄은 미처 몰랐소!”

종술에게 완장의 쓰임새는 권력욕을 충족시키는 데에만 있지는 않았다. 읍내 술집 작부 부월이를 공략하는 데에도 완장을 앞세웠을 정도다.

종술의 그 쥐꼬리만한 권력은 저수지에서 낚시질을 하는 도시의 남녀들에게 기합을 주기도 하고 고기를 잡던 초등학교 동창부자를 폭행하기도 한다. 완장의 힘에 빠진 종술은 면소재지가 있는 읍내에 나갈 때도 완장을 두르고 활보한다.

어깨에 힘을 잔뜩주고 팔자걸음에 에헴하는 종술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마침내 완장을 두른 종술의 허황되고 무모함은 저수지로 나들이 나온 최 사장 일행에게 행패를 부리는 것으로 극에 달한다. 결국 그 사건으로 관리인 자리에서 쫓겨나지만, 종술은 해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저수지 ‘감독’하는 일에 여념이 없는 나날을 보낸다. 그러다가 가뭄 해소책으로 저수지의 물을 빼 전답에 쏟아 부을 위기에 직면한다.

물을 빼야 한다는 수리조합 직원과 경찰에게까지 행패를 부려보지만 결국 경찰에 쫓기는 처지가 되고, 공권력에 도전한 종술의 호기는 완장의 허황함을 일깨워주는 부월이와 함께 마을을 떠난다.

그리고 그 다음 날 소용돌이 치며 물이 빠지는 저수지 수면 위에 종술이 두르고 다니던 완장이 떠다닌다. 그 완장을 종술의 어머니인 운암댁이 조용히 지켜보는 것으로 소설은 끝을 맺는다.

이 소설의 저자 윤흥길(尹興吉, 1942년 12월 14일 ~ )은 전라북도 정읍시 정주읍 시기리 출생이며, 전주 사범학교를 수학하고 원광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였다.

196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회색 면류관의 계절이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주요 작품으로 황혼의 집,장마, 묵시의 바다, 완장,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등이 있다. 인간의 근원적인 갈등과 민족적 의식의 저변에 위치한 삶의 풍속도를 예리하게 파헤치는 솜씨를 지닌 작가이다.

나는 이 완장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지금도 우리 주변에 무수히 살고 있는 종술이를 생각하고 있다.

한 장의 명함에 수십개 직함을 새겨 놓은 알뜰한 당신, 과연 당신은 종술이가 아닌가.

학교동창회, 직장 동기회, 학교 자모회, 동네 자경단, 동네 이장 모임, 교회 장로, 집사, 심지어 교통정리하는 모범운전자 등등 무수히 많은 완장 찬 사내들을 주변에서 볼수 있다.

심지어는 장애인 등록증으로 지하철 경노석을 점거하고 있는 40대 중반의 남자를 본적도 있다.

어떤 이는 주어진 완장을 누가 볼세라 감추고 역할을 하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어떤 이는 주어진 완장이 팔에 맞지 않은 듯 늘리고 늘려서 과시하려는 사람도 있다.

어떤 완장이든 역할에는 그 나름대로의 업무범위가 정해지는 법이다.

국회의원 완장은 국민의 대변인으로서의 역할을 부여한 것이고 공무원의 완장은 국민의 심부름 꾼으로서의 임무가 주어진 것이다.

경찰의 완장은 도둑과 사회질서를 잡으라는 것이고 검찰의 완장은 경찰의 위에서 그 질서의 옳고 바름을 챙기라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렇게 하는가?

팔뚝에 노란색 완장만 채워주면 뛰고 날뛰는 종술이로 변하는 우리네 완장의 위력을 거짓이라고 누가 말할 것인가.

교회 직분의 완장은 봉사하라는 완장임에도 벼슬인양 생각하는 사람이 있고, 국회의원에게 완장을 채워줬더니 그 임부부여의 소멸시효가 선거당선일까지만 유효하다고 생각하는 무수히 많은 노란색 금뺏지 완장이 있다.

30여년 직장생활을 했고 받은 급여 뻔히 아는데 어떻게 수십억 수백억의 재산을 모을 수 있으며 호의호식하며 생활할 수 있는가.

이것도 완장의 힘이 아니었나 의심되는 부분이다.

혹시, 지금 이글을 읽으시는 당신도 완장을 왼쪽 팔에 끼우고 계시지 않는가?

완장은 눈에 보이는 완장과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완장이 있다.

더 큰 무서운 위력은 눈에 보이지 않는 그 완장임에도 겉으로 보이지 않기에 당연한 듯 여기며 살고 있는 우리가 더 위험한 것이다.

가만히 돌아보자. 지금 내 팔뚝에 노란색 완장이 채워져 있는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