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흐흐흐."
사람만 보면, 아니 혼자 방안에 있을 때도 동궁 양녕은 미친 사람처럼 히죽히죽 웃는다. 태종 임금의 맏아들로서, 앞으로 임금 자리에 오를 왕세자가 미쳤다는 소문이 장안에 쫙 퍼졌다. 양녕은 그럴수록 하라는 공부는 하지 않고 낮에는 사냥을 하고, 밤에는 대궐 담을 뛰어넘어 술집에서 술을 마시고 오가는 사람을 때려눕히기 일쑤였다.
무술년, 이젠 양녕의 나이도 25세.
열한 살에 왕세자로 책봉된 후 오늘에 이르는 동안 그중 7, 8 년의 세월을 미치광이 노릇을 하고 지낸 것이다.
몇 해 전의 일이다. 양녕은 부왕 태종과 어머니 민비가 소곤거리면서 하는 이야기를 문밖에서 들었다.
"참 아쉬운 일이오. 충녕과 양녕이 바뀌어 태어났으면 좋았을 것을."
"누가 아니랍니까. 충녕이 맏이였어야 할 것인데."
이 이야기는 양녕의 가슴에 비수처럼 꽂혔는데 어느 날 세자를 가르치는 스승 이래가 찾아오자,
"옳지, 지금부터다!"
하고 일부러 비스듬히 기대 앉아서 개 짖는 시늉을 하기 시작했다.
"멍멍멍."
양녕은 잇달아 짖어대며, 물어뜯을 듯이 이래의 다리에 매달렸다. 그러다 정신을 차리는 듯도 하였지만 이래는 양녕의 이러한 행동을 태종에게 낱낱이 고했다.
양녕이 미친 짓을 하자 둘째 효녕은 은근히 자기에게 세자 책봉의 기회가 올 줄 알고 눈가림으로 공부를 하고 있었다.
어느 날 양녕이 효녕의 방을 찾아가 그를 나무라며 자신이 미친 짓을 하는 것은 아버지의 뜻을 헤아려 충녕을 세자로 책봉시키기 위한 것임을 말한다. 이에 효녕도 크게 감동을 받아 깨닫고 그 날로 머리를 깎고 염불을 외우는 불제자가 되어 궁을 떠난다.
결국 황희 판서와 개국공신 이직의 간언도 뿌리치고 태종이 충녕대군을 왕세자로 책봉하자 양녕대군은 편안한 마음으로 광주로 귀양을 떠나고, 황희와 이직도 귀양살이를 하게 되었다.
1418 년, 제4 대 임금에 오른 세종은 형님들의 마음을 헤아려 지성껏 모시며 가까이 두고자 하였으나 양녕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전국을 돌아다니며 풍류객들과 사귀고, 아우 세종을 돕기 위해 암행어사의 자격으로 민정을 살피기도 했다.
시, 글씨, 활과 무술 등 다방면으로 뛰어난 양녕이었지만 순리를 알았기에 왕의 자리와 호화로운 생활을 과감히 버리고 평민과 더불어 시원한 삶을 살다간 그의 인생관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가슴 뭉클한 감동과 지혜를 준다.
소용없거나 미천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모든 것은 제자리에 있을 때에 가장 좋다. 쓸데없게만 보이는 것도 그밖의 것들을 강화시켜 주고 뒷받침해 준다. (H. W. 롱펠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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