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 안창호는 1878 년 대동강변에서 태어나 1938 년 병원에서 죽음을 맞을 때까지 독립운동에 전 생애를 바친 사람이다. 그는 국민의 마음과 생각을 높이는 데 앞장섰으며 흥사단을 조직하여 힘을 길렀고, 임시정부에서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도산은 '참'의 사람이었다.
'아아, 거짓이여! 너는 내 나라를 죽인 원수로구나. 내 평생에 다시는 거짓말을 아니하리라.'
도산은 스스로 이렇게 탄식할 정도로 거짓을 미워했으며 이 거짓이 우리나라를 망친 가장 큰 원인 중의 하나라고 생각했다.
도산은 '사랑'의 사람이었다
'남자도 여자도 우리 2천만이 다같이 사랑하기를 공부하자. 그래서 서로 사랑하는 민족이 되자. 오직 사랑하자.'
그의 동지애는 유별하였다. 동지에 대해서는 물질과 사랑과 정성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독립운동을 하다 반신불수가 된 동지를 위해 운하 공사장에서 수개월 동안 인부로 일하여 약값과 치료비를 보내 주기도 했다. 그는 또한 웃음을 좋아했다. 저마다 좋은 마음으로 웃는 얼굴을 가지는 것이 그가 그리는 새 민족의 모습이었다.
도산은 '겸허'한 사람이었다.
그는 겸손한 마음으로 인생을 살았으며 오만한 마음이나 권위주의적인 태도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언변과 통솔력과 덕성이 뛰어난 인격자였지만 자만하지 않았다. 늘 뒤에서 묵묵히 직분을 다하고 명예와 공은 남에게 돌리는 것이 그의 철학이었다.
그는 1919 년 상해 임시정부가 수립되었을 때 노동총판으로서 일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 대통령 대리 후보자로 추천되었다. 도산은 그 자리를 끝내 사양했지만 결국 대통령 대리로 선정되자 이렇게 말했다.
'나는 잠시라도 대통령 대리의 명목을 띠고는 몸이 떨려서 시무할 수가 없소.'
스스로를 능력이 없고 인격이 모자라는 사람으로 격하하며 높은 자리에 앉아 있으면 송구스럽고 민망하여 몸이 떨려 일을 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국민이 내일에의 신념을 갖지 않으면 발전은 있을 수 없다.
There can be no progress if people have no faith in tomorrow. (J. F. 케네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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