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학과 재치

육담(肉談) . 후레자식이군

임기종 2025. 2. 23. 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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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말기, 좀 모자라는 어떤 선비 하나가 집안은 넉넉한지라 돈으로 벼슬을 사서 안동부사가 되었다. 그러나 도임하던 날부터 어리석음을 드러내어 아전들의 놀림감이되고 말았다. 어느날 사또가 저녁을 먹고 동헌 뜰을 거닐고 있었는데 마침 때가 삼월 초순인지라 등불조차 희미하므로 부사는 혼자말로

" 우리 고향에는 달도 밝아 놀기도 좋더니만 이곳 안동엔 어찌 달도 없는고? "

하거늘 이때 한 아전이 근처에 있다가 뛰어나오며

" 왜 여기에도 있기야 합지요. "

" 그럼 어디에 있길래 안 보이느냐? "

" 사와야 합니다. 괘 비싸긴 합니다만...."

" 얼마나 주면 살 수 있을까? "

" 작은달, 큰달이 있는데, 작은 달 값은 오백 냥이요. 큰 달 값은 천 냥입니다. "

" 그럼 천 냥은 지금 없으니 오백냥으로 작은 달을 사오너라. "

돈을 받아 가지고 나온 아전은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집에만 틀어박혀 있다가 여드레만에 동헌으로 들어왔다. 부사는 떠오른 반달을 정말 사온 것으로 알고 좋아하다가 자기의 그림자를 보고

" 이게 누구냐? "

" 소인의 자식 놈입니다. "

" 네 자식이 어찌 관가엘 들어오느냐? "

" 소인이 들어오니까 따라 들어왔지요. "

" 그런데 어찌 그리 버릇이 없느냐? 양반 보고도 절을 하지 않으니! "

" 소인이 못 가르쳐서 그렇습니다. 저놈은 받는 분이 먼저 해야만 따라 하는 놈이 올시다. "

허리를 굽혀 보니까 과연 그림자도 허리를 굽히므로 부사는

" 에이 그놈, 천생에 후레자식이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