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설 어릴 땐 설이라면 가슴 뛰는 날이다 장롱에 넣어뒀던 새 옷을 차려입고 세뱃돈 몇 푼 받으면 세상 내 것이었다. 어른께 절을 하고 들은 덕담 이랬다 ‘빨리 커 훌륭한 사람 꼭 되어야 한다’ 그 아들, 나이가 들어 손자들을 두었다. 이제는 받은 덕담 할 차례 되었는데 ‘할애비 본을 보고 잘 커라’ 해도 될까 돌아본 지난날들이 온 가슴을 누른다. 현대시조 2021.02.12
사랑 사랑 말로는 안되는 것 글로도 못쓰는 것 분명히 있는 그것 눈에는 안보여도 많아서 싫다는 말을 못하는 바로 그것. 마음에 새기는 것 가슴이 느끼는 것 줄수록 많아지고 나눠야 커지는 것 행복이 있는 곳에는 분명히 있는 그것. 현대시조 2021.02.10
봄을 기다림 봄을 기다림 입춘이 지났으니 낼 모래 꽃 필텐데 누리를 감싸 도는 냉기는 여전하다 봄날은 언제 올려나 기다림에 지친다. 영세상 한숨소리 애가 타 깊어가도 먼 산의 하얀 눈은 아직도 희끝하다 목련은 언제 필려나 신이화가 반갑다. 현대시조 2021.02.10
해솔길 해솔길 살다가 힘이 들면 이 길을 걸으시오 방조제 바로 건너 방아머리 옆길로 천천히 걷다가 보면 가슴이 뚫릴거요. 고향이 그리우면 여기에 가보시오 흙냄새 소똥냄새 솔 냄새 바다냄새 비우고 걷다가 보면 옛 생각도 날거요. 산길로 바닷길로 이어진 사십리 길 개미허리 다리에 매달린 작은 섬이 노을에 물든 해거름 즐기고 있으리니. * 해솔길 : 대부도 트래킹 코스 현대시조 2021.02.07
갯바위 갯바위 밀려온 파도 물결 하얗게 부서지고 갈매기 낮게 날아 먹이 찾기 바쁘다 비릿한 바다 냄새가 싱그럽던 어느 날. 따개비 부처 손이 틈새를 메운 바위 새까만 홍합들도 햇빛에 반짝인다 물고기 새끼 두 마리 웅덩이에 갇혔고. 부서진 파도 위에 무지개 피오르면 두눈을 꿈벅이는 갯바위의 돌게들 촌부(村婦)의 바구니 속에는 석화(石花)꽃이 피었다. 현대시조 2021.02.06
수미네 반찬 수미네 반찬 -프로의 자세 유명한 요리사가 홀에서 서빙하고 외국인 주방장도 설거지에 바쁘다 프로는 최선을 다한다 제 할일을 알기에. 촬영용 각본일까 생각도 해보지만 행동과 표정보면 인성이 짐작된다 최선을 다하는 그들 프로는 아름답다. 현대시조 2021.02.05
다듬이 소리 다듬이 소리 때려야 펴진다고 밤새껏 두드렸어 얼마나 아파야만 올곧게 펴질까나 탁탁탁 한 맺힌 소리 보고 싶은 울 엄마. 살아서 숨 쉬어도 존재감 없는 자리 엄마는 맺힌 한을 다듬이로 풀었지 이제는 들을 수 없는 울 엄마의 숨소리. 현대시조 2021.02.03
4백년 전의 편지 4백년 전의 편지 얼마나 간절하면 꿈에도 보고싶어 한(恨)맺힌 눈물찍어 적어 올린 글인데 무심한 사람 소식없이 지새는 밤 하얗소. 죽도록 같이하자 팔베개 맺은 언약 그 약속 어이하고 북망산 먼저 가오 뱃속의 어린자식은 뉘를 보고 아비랄까. 4백년 오랜 설움 구천을 떠돌던 혼 이제는 가려해도 못 비운 그리움에 눈물에 젖은 육신이 미라 되어 누웠소. 현대시조 2021.0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