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조

달밤에(梅蘭菊竹)

임기종 2022. 5. 22. 0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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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밤에(梅蘭菊竹)

 

검버섯 덕지덕지 긴 세월 찌든 고목

희미한 그림자가 달빛에 어른댄다

이 향내 없었더라면 봄을 그냥 놓칠 뻔.

 

고요도 숨을 죽인 어스름 삼경(三更)쯤에

한지를 바른 창에 덧그려진 수묵화

지나다 멈춘 바람이 가늘게 흐느낀다.

 

봄여름 지낸 후라 서늘한 바람결에

있는 듯 없는 듯이 묵묵히 이룬 자태

고고한 기품 흘리며 가을밤이 깊었다.

 

새벽녘 들려오는 귀뚜리 울음소리

가녀린 그믐달이 눈썹마냥 고운데

창밖에 어른거리는 청죽의 잔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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