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피렌체에는 미켈란젤로가 조각한 '다비드 상'이 있다.
이 조각품은 값을 매길 수가 없다.
왜냐하면 아무리 많은 돈으로도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다비드 상'은 당시 26세의 미켈란젤로가
1501년 8월 피렌체 대성당의 지도자들로부터 조각을 의뢰받고
결이 좋지않고 조각하기 어려운 5m가 넘는 거대한 대리석을 이용하여
3년만에 4.49m의 높이로 탄생시킨 것이다.
미켈란젤로는 처음 원석인 대리석을 앞에 두고 깊이 생각을 하였다.
"아! 저 대리석 안에는 어떤 형상이 들어 있을까?"
며칠을 생각한 끝에 그는 그 대리석에서
구약성서 사무엘 상 17장에 나오는 '다윗의 승리'를 캐내리라
마음을 먹고 망치를 들었다.
그런데 작업이 거의 끝나 갈 무렵 대리석 가운데
깊게 그어진 금이 하나 나타났다.
그것은 결정적인 흠이었고 더 이상 조각을 계속할 수 없었다.
미켈란젤로는 크게 실망하여
대리석을 그만 깨 버리려고 망치를 높이 들었다.
그 때 하나의 음성이 들려왔다.
"미켈란젤로야! 네 안에는 흠이 없느냐?
네 인생에는 그런 아픔과 고통이 없었느냐?"
미켈란젤로는 망치를 내려놓고 얼른
자기 안에 있는 상처를 찾아보았다.
미켈란젤로가 로마에 있었을 때의 일이었다.
교황 율리우스 2세가 성 베드로 대성당 건축을
자신의 경쟁 상대였던 브라만테에게 맡기자,
미켈란젤로는 실망과 분노를 안고 로마를 떠나
피렌체로 와 버렸다.
얼마 뒤 교황은 대성당 천장의 그림을
미켈란젤로에게 부탁 했다.
그러나 이미 마음이 상할대로 상해있던 미켈란젤로는
자신은 조각가이지, 화가가 아니라는 이유로 요청을 거절했다.
그 일을 떠올린 미켈란젤로는 대리석의 흠이
다름 아닌 자신의 상처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자신의 상처를 어루만지면서 조각을 계속하였다.
드디어 '다비드 상'이 완성되었을 때 그 조각은 완벽하였다.
깊게 그어진 그 금은 마치 살아 있는 듯한 근육이 되어 있었고
피가 흐르는 듯한 핏줄이 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미켈란젤로가
결이 좋지않은 대리석에 조각을 하면서
깊게 그어진 금 하나를 발견하고 크게 실망하여
그 대리석을 그만 깨버리려다가 누군가 전해준 메시지를 듣고
그 결정적인 흠을 최대한 살려서 완벽하게 조각을 해내었듯이,
우리들도 인생을 살아가는데 결정적인 흠이 있더라도
그 흠 때문에 인생을 바로 포기하지 말고
오히려 그 흠을 최대한 이용하고 활용해서
더 멋지고 더 행복한 삶을 살아가라는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또한 이 이야기는 미켈란젤로가
결정적인 금 때문에 크게 실망하여 이미 조각한 대리석을
깨버리려고 망치를 든 순간,
어디선가 들려오는 하나의 음성 때문에 더 크게 부활하여
오늘날 수백년이 지나도 생생하게 살아서 내려오듯이,
우리들도 인생을 살아가면서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결정적인 흠을 갖고 어떻게 해야 할 지 난감한 상황에 처했을 때
누군가로부터 바른 길을 갈 수 있도록 안내해주는 음성을
들을 줄 아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라고 일러주고 있습니다.
한 때의 잘못된 판단으로 순간의 결정적인 실수를 했다고 해서
그 실수에 얽매여 자신이 하는 공부나 사업을
바로 포기하거나 쉽게 좌절하지 말고,
여유를 갖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한 생각을 돌려 최선을 다 한다면
오히려 그 실수가 성공의 바탕이 되고 소중한 계기가 되어
삶을 더욱 더 풍요롭고 풍성하게 해줄 겁니다.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1501-1540)
피렌체가 외국 군대의 위협에 직면했을 때 이 도시를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미켈란젤로에게 성당의 지도자들은 피렌체 시 공화국의 새로운 헌법과 예술적 우위를 기념할 목적으로 1501년에 다비드(David) 상을 의뢰했다. 다비드 상을 만드는 일은 미켈란젤로에게는 새로운 도전이며 기회였다. 그는 26세의 나이에 반세기 전에 조각가 두치오가 쓰다 실패해 버려둔 대리석으로 3년 만에 <피에타>보다 더 훌륭한 걸작을 완성시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다비드는 골리앗이란 적의 대장을 돌팔매로 죽인 소년 영웅으로서 뿐만 아니라 정의로운 개혁의 왕으로서 피렌체의 개혁정부에 타당한 상징적 인물이었다. 5.49m의 거대한 다비드 누드상은 시 정부의 자유 수호의 상징으로 시청인 팔라조 베키오 앞에 세워졌다. 당시의 시민들은 도전적인 시선과 잘 발달된 근육을 가진 순수한 다비드 속에 자기들의 미덕이 구현되었다고 믿었다(현재 원작 다비드 상은 보존상의 문제로 시청 앞에서 피렌체 아카데미 건물 내부로 옮겨져 있다). 미켈란젤로도 시민들의 이러한 바람을 알았지만 살아 있는 가장 위대한 조각가라는 명성에 걸맞는 가장 아름다운 세기의 명작을 만들려는 야심을 가지고 있었다.
결이 좋지 않아 조각하기에 어려운 대리석판인데도 미켈란젤로는 고대 그리스 조각의 이상과 해부학적 구조를 만족스럽게 해결했다. 그는 자기 자신이 믿는 구약성서의 새로운 영웅상을 제시했다. 하나님이 누드의 아름다운 인간을 창조한 것같이 그도 성스러움과 초인간적 능력을 자신의 '다비드'에게 부여했다. 미켈란젤로는 "사람의 발이 그가 신은 신보다 더 고귀하고, 인간의 살이 그가 걸친 양가죽보다 더 고상하다는 것을 모를 만큼 야만인은 아니다"라고 기록한 일이 있다.
한 발을 앞으로 내딛고 조용히 서 있는 것 같은 다비드는 가상의 적을 향해 일촉즉발의 긴장 상태에 있다. 몸의 전체, 특히 '토르소 '의 근육이 단단하게 긴장되어 있고. 노기 띤 얼굴은 무섭게 긴장되어 있다. 그의 양미간은 찌푸려지고 눈은 충혈되고 코밑 언저리의 근육은 실룩거려 올라가고 입술에는 흥분된 듯 피가 몰려 있다. 그의 몸 오른편은 힘줄이 튀어나온 긴 팔이 방어하고 있고, 크고 힘찬 손안에는 골리앗의 이마에 이내 날아갈 돌이 쥐어져 있다. 서양 소설에서 흔히 믿음직한 남자들의 손을 모사할 때 미켈란젤로가 만든 다비드의 손에 비유할 만큼 이 손은 힘과 남성다움으로 유명하다.
다비드의 왼손은 돌팔매를 잡기 위해 올려져 적에게 노출되어 있다. 다비드의 머리와 시선은 기독교에서 악을 상징하는 왼편을 경계하며 노리고 있다. 다비드의 몸은 힘과 정의 · 분노를 상징하고, 돌을 쥔 팔은 힘과 원칙과 공화국의 권위를 뜻한다. <다비드> 상은 그리스 코우로스의 거인 조각에서 볼 수 없었던 정신적 · 심리적 움직임을 영웅적인 힘찬 육체 속에 표출한 르네상스 예술의 극치다. 그는 <피에타>의 부드럽고 감성적인 모성애와는 대조적으로 아름답고 영웅적인 다비드 조각을 통해서 허약한 인간상을 탈피하고 신의 창조 능력에 견줄 만한 초능력의 인간형을 제시했다. 그가 쓴 시에는 그의 이러한 갈망이 잘 나타나 있다.
"아름다운 사물을 갈구하는 내 눈과 구원을 소망하는 나의 영혼은 아름다운 것들을 명상하는 힘 말고는 하늘에 올라갈 다른 능력이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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