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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을 구름처럼 떠도는 한 나그네가 있었다. 그는 해가 뉘엿뉘엿 서산으로 넘어가자 하룻밤 묵어가기 위해 한 마을에 들어섰다. 마침 흉년이 들었던 때라 마을은 썰렁하고 무척 곤궁해 보였다. 나그네는 지친 발걸음을 쉬어 가기 위해 일부러 마을에서 가장 나아 보이는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이리 오너라."
곧이어 하인인 듯한 사람이 나왔고 나그네는 곧 사랑채로 안내되었다. 그는 널찍한 방에 앉아 주인을 기다렸다. 잠시 후 깨끗한 의복을 입은 한 선비가 나타나 미소를 띠우며 인사를 청했다. 나그네는 하룻밤 잠자리를 얻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터에 저녁까지 봐주려는 주인의 마음씨에 미안한 생각마저 들었다.
밥상은 주인과 겸상이었지만 아무 반찬도 없었다. 덩그러니 뚜껑이 덮인 놋주발 두 개만이 상 위에 놓여나온 것이다.
"귀한 손님이 오셨는데 정말 죄송합니다. 뜨거울 때 조금이라도 드십시오."
주인은 나그네에게 저녁 들기를 권유하며 수저를 들고 밥주발의 뚜껑을 열었다. 나그네도 감사의 말을 전한 뒤 주인이 하는 대로 따라 했다. 뚜껑을 연 나그네는 순간 두 눈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놋그릇 속에는 뜨겁게 끓인 백비탕이 가득 담겨져 있었다. 때가 흉년인지라 나그네에게 대접할 것이 아무것도 없었던 가난한 주인이 손님을 위해 맹물이나마 정성껏 끓여온 것이다. 나그네는 주인의 마음이 너무도 고마워 뜨거운 백비탕 한 그릇을 후후 불어가며 맛있게 배불리 먹었다.
가진 것이 없다고 해서 빈곤은 아니다. (미르티알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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