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학과 재치

육담(肉談) . 고양이에게 어물전을 맡겨서야

임기종 2024. 11. 7. 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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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선비가 예쁜 첩을 하나 뒀다. 하루는 첩이 고향에 잠시 다녀오겠다고 하자 선비는 남녀간의 음사(淫事)를 알지 못하는 놈에게 첩을 따르게 해야지 생각하고 종들을 불러

"너희들은 옥문이 어디에 있는지 아느냐

묻는다. 그때 어리석은 듯하나 속으로 엉큼한 한 종놈이 더듬거리며 하는 말이

"그것이야 말로 바로 양미간에 있습지요"

하고 대답한다. 선비가 기뻐하며 그 종에게 첩을 따르게 했다. 두사람이 집을 떠나 큰 냇가에 당도하자 첩이 잠깐 쉬자고 말한다. 그 동안 종은 벌거벗고 개울 속에서 미역을 감는다. 첩이 종놈의 양물을 문득 보니 워낙 크고 실함에 반해 놀리면서 하는 말이

"네 두 다리 사이 고기로 된 막대기는 대체 무엇이냐"

종놈이 대답한다.

"날 때부터 있던 혹부리 같은 것이 점점 돋아나더니 오늘날 이만큼 컸습니다"

하니 첩이 말한다.

"나도 날 때부터 양다리 사이에 작은 틈이 있더니 점점 커서 지금은 깊은 구멍이 됐다. 지금 너의 그 뾰족한 것을 나의 옴폭 패인 곳에 넣어보면 어떨까"

하고 그 자리에서 방사를 벌인다. 선비는 어리석은 종놈에게 첩을 호송시키기는 했으나 혹시 하는 생각에 가만히 뒤를 밟다가 산꼭대기에서 두 사람이 하는 짓을 보니 첩이 종놈과 함께 즐기는 운우(雲雨)가 바야흐로 무르익고 있었다. 선비는 화가 나 산을 달려 내려와 묻는다.

"방금 무슨 짓을 했느냐"

하니 종놈이 울면서 말하기를

"낭자께서 저 끊어진 다리를 건너지 못하는 고로 소인이 낭자의 옥체 한 곳이라도 상처가 없게 하고자 받들어 모시려고 하는데 오직 배꼽 아래 두어 치 되는 곳에 한 치쯤 되는 구멍이 있어 그 깊이를 가히 측량할 수 없는지라 혹시 풍독(風毒)이라도 입으시면 어쩌나 하고 겁이 나서 곧 지금 그것을 보철(補綴)하는 중이로소이다"

하고 말한다. 그때 선비가 웃으며 말하기를

"착한지고, 그곳은 천상의 구멍이니 조심하고 손대지 말라"

했다 한다. -촌담해이(村談解滯)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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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괴산출생 역사, 민속학자 이능화(李能和)는 그의 저서 조선여속고라는 책에서 조선시대 유식한 여자들을 네 종류로 구분했다.

양반집 부녀자로 글을 아는 여자,

양반댁 부녀자로 시와 그림을 그릴 줄 아는 여자,

양반집 첩실로 시와 그림을 그릴 줄 아는 여자

그리고 교방기녀로 시를 짓고 그림을 그릴 줄 아는 여자다.

이들을 시와 그림의 우열로 나누면 교방기녀가 첫째요 양반첩실이 둘째, 다음이 양반부녀자가 되는데 이는 그들이 처한 위치에 따라 정감(情感)과 감성이 달랐기 때문이다.

조선사회에서는 사대부 아니고는 사람대접을 못 받았다. 사람대접을 받는 순위는 사대부 남성, 양반여성, 서자녀, 양첩, 천첩, 양민, 기녀, 관노, 사노를 포함한 천인 순이다. 그런데도 최하 계층인 기녀들에게 교육을 시킨 것은 사대부들의 말을 알아듣게 만들어서 자신들이 즐기기 위함이었다.

조선시대에는 양반이 천민과 혼인할 수 없었다. 만약 양반남성이 양민이나 천민 여성과 결혼하면 그 여자는 정처가 되지 못하고 첩()이 된다. 첩이란 가부장적 제도가 남성의 성적 욕망과 야합해 만들어낸 횡포의 산물이다. 그래서 첩을 별실, 측실, 소가, 소실이라 불렀고 첩을 들이는 것을 첩을 본다, 얻는다, 둔다, 살린다 로 표현했다. 첩을 마치 물건이나 동물을 대하듯 했다. 첩은 남편을 부군(夫君), 적처(嫡妻)를 여군(女君)이라 불렀고 적손(嫡孫)에게는 마치 노비가 상전의 자제 대하듯 서방님, 도련님이라 불렀다. 첩의 소생인 서자(庶子)는 비록 양반가문이라도 반사(半士), 좌족(左族), 사점(四點)배기, 불치(不齒)라 부르며 철저히 소외당했다. 심지어 같은 마을에 못 살고 서촌(庶村)을 이뤄 서손(庶孫)끼리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