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학과 재치

육담(肉談) . 도대체 뭔 소린지

임기종 2024. 11. 11.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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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시기라는 마을에 모로쇠란 사람이 있었다. 그는 맹인이었으나 땅에 떨어진 개털도 찾을 수 있고 귀가 먹었지만 개미가 씨름하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었다. 코가 막혔으나 쓰고 단 냄새를 맡을 수가 있었고 말 못하는 벙어리인데도 구변이 떨어지는 폭포수와 같더라. 다리(?)를 절지만 아들, 딸 구남매를 뒀고 집은 낡아 초라해도 항상 눈같이 하얀 털을 가진 말을 타고 다녔는데 그 모습이 숯섬에 먹칠한 것 같았다. 언제나 자루도 날도 없는 낫을 띠도 매지 않은 허리에 차고 23,7일에 산에 들어가 풀을 베니 양지쪽에는 눈이 아홉 자나 쌓였고 응달에는 풀이 무성해 키 넘을 정도였다. 드디어 낫을 들어 풀을 베려 하는데 머리, 몸통, 꼬리도 없는 다리가 세 개나 달린 뱀이 나타나 보일락 말락 하더니 갑자기 덤벼들어 들고 있던 낫을 물었다. 별안간 낫이 퉁퉁 부어오르더니 이내 뒤웅박 만하게 부풀어 올랐다. 모로쇠가 어쩔 줄 몰라 마을로 달려 내려오다가 도중에서 검은 장삼을 걸치고 지나가는 여승을 만났는데 자세히 보니 머리에는 동백기름을 바르고 얼굴에는 분화장을 했다. 모로쇠는 급히 여승에게 낫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고쳐 줄 것을 부탁하니 여승이 몸을 뒤로 제 껴 한쪽 손을 허리에 얹고 다른 한 손으로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그건 어렵지 않으니 내가 시키는 대로 해 봐라. 말발굽이 닫지 않은 역원(驛院)의 부엌 아궁이와 불 지핀 일이 없는 굴뚝의 그을음과 교수관의 먹다 남은 식은 적()과 행수기생의 더럽힌 일이 없는 음모와 글 읽을 때 고개를 끄덕이지 않는 선비와 허리춤에 이를 잡을 때 입을 삐죽이지 않는 노승, 이 다섯 가지를 한데 넣어 찧은 약을 낫에 바르면 지체 없이 낫느니라.”

모로쇠는 그제야 안심을 하고 마을로 내려오는데 길가에 종이도 바르지 않은 대 바구니 속에 술이 열 말쯤 담겨 있다. 등자 잔으로 마구 떠 마시니 얼마 안가서 취해 버렸다. 또 위를 쳐다보니 감나무에 석류가 주렁주렁 열려있다. 두 손으로 땅을 짚고 방귀를 크게 한 번 뀌니 순식간에 다 떨어진다. 주워 보니 전부 썩어 먹을 수가 없으나 모로쇠는 죄다 주워서 벗 없는 마을에 가서 친구들과 함께 포식을 했다. 장차 죽으려 해도 죽을 수 없고 살려 해도 살 수도 없으니 그 결과는 어찌 됐는지 전혀 알 수가 없더라. -어면순(禦眠楯)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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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대 신동흔(申東昕)교수가 파고다공원에서 채록한 이야기다.

대학 중에 최고의 대학은 바로 파고다 대학이다. 나는 제2고보를 다니던 시절 일본형사를 죽이고 경찰서 지하실에 갇힌 적이 있다. 밥 나르는 아주머니의 치마폭에 숨어 그곳을 탈출해 만주에서 독립군에 투신했다. 8년을 헤맨 끝에 승산 없는 싸움에 회의를 느껴 탈영하고 금강산에 몸을 담았다. 거기서 한 도승이 천자문을 만번 읽으라는 가르침을 받았다. 지금 우리는 세계화 시대에 살고 있다. 옷과 시계, 자동차가 다 세계화됐다. 문제는 우리의 정신이 병들고 있다는 것이다. 그 마음의 병을 고치기 위해 연구한 끝에 드디어 약을 만들어냈다. 지금 미국의 의학박사들이 임상실험중이다. 이제 그 약이 나오면 좋은 세상이 열릴 것이다. 세계화 시대를 맞아 외국어를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나는 28개 국어를 구사한다. 그래서 유엔 총회에서 나를 초청해 연설하도록 했다. 나는 128개국이 모인 데서 전쟁도 빈곤도 국경도 없는 세상, 병사지고가 없고 범죄 없는 세상을 역설해 기립박수를 받았다. 그리고 바로 어젯저녁에 김포공항에 돌아왔다. 이제 얼마 있으면 TV에서 내가 만든 절망은 없다 제2라는 드라마가 시작되는데 젊은이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나에겐 부러울 것이 없다. 파고다공원이 내 것이고, 한국이 내 것이며, 우주가 또한 내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어려운 것은 어젯밤 공항에 도착한 이후로 계속 굶었다는 사실이다. 자장면 한 그릇만 먹게 조금씩 보태 주시기 바란다.

-세계대통령 금자탑(1997.3.29.)이라는 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