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서로 비슷한 삼촌과 조카가 함께 길을 가다가 어느 객사에 묵게 됐다. 주인 부부가 얇은 벽을 사이에 둔 건넌방에서 밤새도록 갖가지 재주를 다하며 방사를 벌이자 조카가 그 소리를 듣고 잠을 이루지 못하고 삼촌을 잡아 흔든다. 그래도 깊은 잠에 빠진 삼촌은 일어나지 않는다. 이튿날, 조카가 삼촌에게
“지난밤 이러이러한 재미있는 현상을 봤습니다”
하고 말한다. 그러자 삼촌은
“어째서 나를 깨워 그것을 함께 구경하게 하지 않았느냐”
“그럴 리 있습니까? 암만 흔들어도 삼촌이 일어나지 않더군요”
하고 말한다. 그러자 삼촌이 제기랄 하고 탄식하며
“오늘 하루만 더 자면서 그 짓 하는 것을 좀 보고 가자. 오늘 저녁에는 내 명심해 자지 않고 기다리리라”
하고 병을 핑계 삼아 하루 더 묵는다. 그날 밤, 밤이 깊어 가는데 주인 방에서는 전혀 움직임이 없다. 삼촌이 잠시 눈을 붙이는데 깊은 잠이 들기 전이다. 그때 벽을 통해 안방에서 주인이 처의 옷을 벗기는 부시럭 소리가 들린다. 조카가 삼촌을 흔들어 깨우자 삼촌이 비몽사몽간에 크게 기뻐하며 큰소리로
“주인 놈이 그 일을 정말 시작했느냐”
하니 주인이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라 음심(淫心)이 위축돼 다시 하지 못하고 조용해진다. 그래서 이틀이나 헛되이 여관이 머물러 있다가 마침내 주인 놈의 행락 광경을 보지 못하고 밥값만 치렀다고 한다.-어수록(禦睡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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훔쳐보는 것은 조선시대에도 행했나 보다. 어쨌든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들리는 감창소리로 대리 만족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참 안됐다.
훔쳐보기 즉 관음증(觀淫症, voyeurism)은 이성과 성적 접촉에서 얻는 쾌감보다 나체를 훔쳐보거나 남의 성행위를 봄으로서 성적 흥분을 느끼는 경우이다.
훔쳐보기에서는 보통 피 관찰자와 성행위는 일어나지 않고 훔쳐보는 중이나 그 후 목격한 내용을 기억하고 대개 자위로 절정감을 느낀다. 심한 경우 훔쳐보기가 성행위의 유일한 형태가 되기도 한다.
관음증적 행동의 발병은 대개 15세 이전에 일어난다.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신체적, 정신적으로 많이 성장하고 성행동에서도 한 단계, 한 단계 발전하게 돼 완전한 성의 즐거움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 성도착증 또는 변태성욕자라고 하는 사람들은 어느 한 단계에 고정돼 더 이상 진전을 못하는 것이다. 관음증도 그 한 예이다. 하지만 나이 들어 관음증을 가진 사람들이 요즘도 많다.
인터넷이 발달한 요즘, 관련 사이트에 들어가면 세상의 모든 성행위를 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을 관음증이라고 단정할 수 없지만 일종의 유사 관음증이라 볼 수 있다.
조물주는 정상적인 남녀 교접을 지상목표로 해서 인간을 만들었다. 그러나 정상을 벗어난 이상(異常)을 목적으로 삼는다면 이건 병이다. 지금은 인터넷을 들여다보면 무한에 가까운 성 정보를 골방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어 타인의 은밀한 사생활을 엿보면서 대리만족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소위 몰래 카메라 문제도 이와 같다. 서울 강남에는 도시 전체에 카메라가 있다. 물론 도둑을 잡으려는 의도다. 요즘은 목욕탕 탈의실과 화장실, 러브호텔에도 몰래 카메라가 돌고 있다. 지름이 수㎜ 정도인 몰래 카메라가 시중에서 싼 가격에 유통되고 있고 이를 탐지하는 장치도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있다. 나날이 훔쳐보기를 원하는 세태가 한심하다. 혹시라도 대낮에 모텔을 찾을 때는 주의하라. 당신을 지켜보는 눈이 벽 속에 숨어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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