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글

철학우화 56

임기종 2014. 8. 19. 0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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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작

  내가 어떤 집에 머물러 있었는데 그 집은 상가였다. 그 죽은 사람은 부인이 없었기 때문에 그의 여동생이 장례를 도와주려고 왔다. 나는 거기에 머물면서 일어나는 일을 그냥 지켜보고 있었다. 사람들이 찾아올 때마다, 그 여동생은 문밖을 보며 곧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였으며 그 죽은 남자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그는 아주 훌륭했으며, 그가 세상을 떠나니 이제 하늘이 노래지고 땅이 꺼질 것만 같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당신은 바깥 뜰에 좀 더 앉아 계십시오. 그러다가 만약 누구인가 오면, 즉시 나에게 신호를 보내 주세요."

  그녀는 나에게 솔직하게 이렇게 말하기까지 하였다. 그리고 사람들이 가버리고 나면, 그녀의 눈물은 말끔히 사라진다. 그녀가 울부짖을 때는 눈물이 그녀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으나 사람들이 집밖으로 나가자마자, 사람들이 등을 보이자마자, 눈물이 말끔히 사라지면서 이것저것 재잘거리며 수다를 떨고 일을 하였다. 나는 아연실색하여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당신은 완벽한 여배우 같습니다. 당신은 너무나도 완벽하게 눈물까지 흘리지 않았습니까?"

  하고 묻기까지 하였었다.

 조작. 그대는 다른 사람의 육체를 조작할 뿐만 아니라, 그대 자신의 육체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조작하고 있다. 그대는 로봇이 되어 모든 자발성을 잃어 버렸다. 바로 이렇게 하여 삶은 추한 불구가 되었다. 그리고 지옥이 창조되었다. 그래서 그대의 사랑은 거짓이다. 그대의 마음도 거짓이다. 그대의 웃음도 거짓이다. 그대의 눈물도 거짓이다. 그러면서도, 어떻게 그대가 그러한 허구 속에 살면서 행복을 생각한다고, 진리를 생각한다고, 해방이나 해탈을 생각한다고 상상할 수 있겠는가? 거짓된 존재를 위한 해탈이란 없다. 허구는 떨쳐버려야 한다. 자발적이 되어라. 거기에는 잃어버릴 것이 아무것도 없다. 아니, 오히려 모든 것을 얻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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