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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운(紫雲)서원과 10만 양병설
문치(文治)의 극성으로 국방이 소홀하니
정병(精兵) 십만 양성하여 준비함이 옳으리다
충언(忠言)은 당파(黨派)에 밀려 임진왜란 불렀다.
동해를 바라보며 고고성(呱呱聲) 울리시고
돌아가 파주(坡州)에서 북녘을 지키시니
작금(昨今)엔 만고의 죄인이 없게 하여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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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운(紫雲)서원 : 이율곡과 부친. 모친 일가가 묻혀있는 곳. 파주에 있음.
오죽헌 몽룡실: 강릉 오죽헌. 율곡이 태어난 곳
고고성(呱呱聲) : 아기의 울음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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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발발 10년 전, 병조판서 이이는 경연(經筵)에 들어가
선조에게 10만 양병(養兵)을 건의했다.
(……) 직무를 게을리하며 세월만 보내고 무사안일한 습관이 들면
하루아침에 갑자기 변이 일어나 저잣거리 백성들을 이끌고 싸우게 되는 것을
면치 못할 것이니, 그러면 일을 크게 그르치게 될 것이다.
당시 동인 출신 유성룡(柳成龍)은
“지금처럼 태평무사한 때는 경연의 자리에서 성인의 학문을
우선으로 삼아 힘써 권해야 마땅하지, 군대의 일은 급한 일이 아니다.”
하고 반박했다. 그 후 얼마 뒤 이이는 타계했다.
1592년, 왜란이 발발하자 그때서야 유성룡은
‘우리는 만고의 죄인’이라며 이이의 10만 양병설을
가볍게 여긴 것을 크게 후회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