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학과 재치

육담(肉談) . 모른체 하는 것이

임기종 2024. 11. 28. 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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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젊은 부부가 함께 방안에 누워 있는데 큰 비가 쏟아지며 우레 소리가 진동한다. 밤은 칠흑같이 어둡고 번갯불이 번쩍 번쩍 방안을 밝힌다.

장독을 잘 살폈는가 ?”

하고 사내가 부인에게 묻자

아직 뚜껑을 안 덮었는데 당신이 빨리 나가서 덮고 오시오

하고 부인이 말한다.

내가 본래 우레를 두려워하니 대신 나가 봐

하고 이불속으로 들어가 버린다.

두 사람은 서로 이렇게 앙탈을 하다가 처마 밑으로 비가 무섭게 내리치자 처가 어쩔 수 없이 억지로 일어나 방을 나와 장독대 옆으로 나간다. 마침 대청 밑에 숨어 있던 도둑놈 하나가 그 부부의 서로 다툰 일을 듣고 미리 도자기 화분을 들어 그 여자의 앞에 던진다. 그 여인이 크게 놀라 까무러치자 도둑놈이 벼락처럼 달려들어 겁간하고 도망쳐버렸다. 방안에 있던 남편은 처가 오랫동안 들어오지 않는 것을 이상히 여겨 나가보니 아내가 빗속에 누워 있다. 끌어안고 방안으로 들어오자 그 때서야 겨우 깨어난다. 그리고 간신히 살아난 처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여보, 그런데 벽력신(霹靂神= 벼락)도 숫놈이 있소 ?”

왜 무슨 일이 있었어 ?”

하고 묻는다. 처가 그제서야 부끄러워하며

밖으로 나가자 말자 갑작스레 벽력신이 덤벼들며 제 몸을 내려 누르기에 혼비백산했지요. 거의 죽은 몸 같이 한동안 인사불성이 됐으나 나중에 가만히 생각해 보니 벽력신의 행위도 꼭 낭군과 함께 자는 것과 꼭 같습디다. 어찌 그리 조금도 틀리지 않게 남녀간의 일과 꼭 같았는지

그것 봐, 내가 만약 나가서 오래 어정댔더라면 벼락을 면치 못했을 거야. 벼락 귀신이 무슨 누구의 낯을 봐가며 용서해 줄줄 알아, 큰일 날뻔 했지.”

하고 무사했음을 자축했다. - 어수록(禦睡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