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그림자

시인을 만나다 오래전 인사동의 어느 화랑 안에서 말투가 어눌하신 촌로 한분 만났다 한참 후 돌아 봤더니 천상병 시인이다. 막걸리 한잔이면 한 끼가 때워지니 더 이상 바라는 건 사치일 뿐이라며 돌아간 그 훗날에는 즐거웠다 하리라던. 같이 온 여인네가 시인에게 묻는다 선생님, 오늘은 시를 몇편 쓰셨어요 새벽에 두 편 썼거든 그만하면 됐지 뭐. 매사가 욕심으로 이루어 질 것이면 세상에 못할 일이 어디에 있겠는가 마음이 조급한 탓에 생각으로 책을 엮다.

환영(歡迎) 무논의 초록빛이 싱그럽게 빛나고 접시꽃 활짝 웃자 망초꽃 만발했다 동녘에 떠오른 해도 아우라로 둘렀다.

아~ 테스 형 당신은 나라위해 무엇을 하였는가 국민의 의무까지 요령껏 회피하고 뒤돌아 금수저인걸 자랑하지 않았나. 누구는 테스 형을 목 놓아 부르더라 세상이 왜 이래요 천국은 있는가요 의무를 기만한 자들이 설쳐대고 있음에. 겉으론 공복(公僕)이라 사자후 외치면서 제 할일 안한 자들 왜 이리도 많은가 철면피 하 많은 세상 테스 형을 부른다.

해우소(解憂所) 입안에 들어가서 더러운 것이 없고 몸에서 나온 것에 깨끗한 게 없다는데 끙하고 대통(大通)한 후에 걱정하나 덜었소.

시조(時調) 시조는 삼장 육구 구색 갖춘 정형시 삼사에 또 삼사에 종장 첫구 세 글자 바꿔선 안되는 정서 이어가야 하느니. 퓨전이 좋다하고 맘대로 써대는 글 시드는 우리 시조 뉘에게 죄를 묻나 한번쯤 생각을 하자 우리 시조 우리 얼.

거기서 거기 이만큼 나이드니 안 뵈던 것 보이데 가진 자 못가진 자 거기서 거기더군 수의엔 주머니 없단 걸 늦게나마 알으니. 도토리 모여앉아 서로 크다 해봐도 크다면 얼마 클까 거기서 거기인 걸 남은 생 베풀며 살세 가져갈게 없으니.

무제(無題) 마음 문 닫고 보니 대낮도 적막이데 한치 앞 뵈지 않는 앞날을 걱정하다 불현 듯 깨달음 얻네 모두 다 지나가리.

중국 계림(桂林) 그대로 놔두어도 한 폭의 그림이다 허공에 어려있는 안개 속 봉우리들 이강(離江)의 가마우지만 하루살기 바쁘다. 수만개 봉우리로 비좁은 하늘저편 뒤돌아 바라보니 아련한 저녁노을 뇌리(腦裏)속 깊은 곳에다 진경산수 새겼다.

해거름 푹 삶은 돼지고기 곰삭은 배추김치 막걸리 한잔 술에 느끼는 작은 행복 사느라 지친 하루가 어둠속에 잠길 때.

아버지 산만큼 크시더니 바다같이 깊더니 오르지 못할만큼 높기만 하시더니 이제는 하늘에 올라 뵐 수조차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