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현대시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임기종 2016. 10. 14.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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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두 - 송찬호 -

 

나는 새장을 하나 샀다.

그것은 가죽으로 만든 것이다.

날뛰는 내 발을 집어넣기 위해 만든 작은 감옥이었던 것.

 

처음 그것은 발에 너무 컸다.

한동안 덜그럭거리는 감옥을 끌고 다녀야 했으니

감옥은 작아져야 한다.

새가 날 때 구두를 감추듯.

 

새장에 모자나 구름을 집어넣어 본다.

그러나 그들은 언덕을 잊고 보리 이랑을 세지 않으며 날지 않는다.

새장에는 조그만 먹이통과 구멍이 있다.

그것이 새장을 아름답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 새 구두를 샀다.

그것은 구름 위에 올려져 있다.

내 구두는 아직 물에 젖지 않은 한 척의 배.

 

한때는 속박이었고 또 한때는 제멋대로였던 삶의 한켠에서

나는 가끔씩 늙고 고집 센 내 발을 위로하는 것이다.

오래 쓰다 버린 낡은 목욕통 같은 구두를 벗고

새의 육체 속에 발을 집어넣어 보는 것이다.

-<10년 동안의 빈 의자>(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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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와 꿈의 변주 /정공량

 

 

혀짤린 비명 하나

안개 속에 떠오른다

 

멀어지길

까닭없이,

강물되어 흘러가길

 

신호등 불빛 아래서

우리들은 멈춰있다

 

해체와 와해의 벌판

바람들만 떨고 있다

 

발목잡힌 시간의 뼘

웃자란 공복의 키

 

무너질 내일의 벽에

쾅쾅 힘을 던진다

 

절망의 씨앗들이

눈꽃처럼 흩어진다

 

허망의 절벽 위로

별 하나를 그리며

 

가야할

더 많은 날의

서릿발 선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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