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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孤高) - 김종길 -
북한산(北漢山)이
다시 그 높이를 회복하려면
다음 겨울까지는 기다려야만 한다.
밤사이 눈이 내린,
그것도 백운대(白雲臺)나 인수봉(仁壽峰) 같은
높은 봉우리만이 옅은 화장을 하듯
가볍게 눈을 쓰고
왼 산은 차가운 수묵으로 젖어 있는,
어느 겨울날 이른 아침까지는 기다려야만 한다.
신록이나 단풍,
골짜기를 피어오르는 안개로는,
눈이라도 왼 산을 뒤덮는 적설(積雪)로는 드러나지 않는,
심지어는 장밋빛 햇살이 와 닿기만 해도 변질하는,
그 고고(孤高)한 높이를 회복하려면
백운대와 인수봉만이 가볍게 눈을 쓰는
어느 겨울날 이른 아침까지는
기다려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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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있나 - 엄미경 -
썰물이 나가고 난 바다와 마주 앉아
노을을 진창 쏟는 하늘이 서러워져
손가락 젖은 모래에 낙서처럼 너를 쓴다
검은 물밑 저희끼리 춤을 추고 나부대고
오색의 열대어를 감싸안는 해초 숲
계절은 자꾸 깊어져 알 수 없는 노랫말
천년을 또 흐르고 바람은 아직 불어
가슴이 서늘히 타오르네 무덤으로
내일은 무엇이 있나 금박의 도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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