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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목(裸木) - 신경림 -
나무들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서서
하늘을 향해 길게 팔을 내뻗고 있다.
밤이면 메마른 손끝에 아름다운 별빛을 받아
드러낸 몸통에서 흙 속에 박은 뿌리까지
그것으로 말끔히 씻어 내려는 것이겠지.
터진 살갗에 새겨진 고달픈 삶이나
뒤틀린 허리에 밴 구질구질한 나날이야
부끄러울 것도 숨길 것도 없이
한밤에 내려 몸을 덮는 눈 따위
흔들어 시원스레 털어 다시 알몸이 되겠지만
알고 있을까 그들 때로 서로 부둥켜안고
온몸을 떨며 깊은 울음을 터트릴 때
멀리서 같이 우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쓰러진 자의 꿈>(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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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 비낀 아침 이전안
흐리어 멍든 가슴 무얼로 닦으리까
기우는 그믐 밤은 총총 별이 빛나는데
하늘가 아른대는 사랑 초롱 이는 그 눈빛.
잠도 설친 지난밤에 댓잎에 맺는 이슬
새벽닭 한 홰 울어 먼동트는 동녘 창을
불그레 아침 노을만 회한으로 비낀다.
이 어둠 걷어내고 해맑은 광명으로
바꾸어 갈아넣을 영창으로 마련하여
아침놀 황홀히 물든 해돋이 서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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