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현대시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임기종 2017. 6. 5. 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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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목(裸木) - 신경림 -

 

나무들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서서

하늘을 향해 길게 팔을 내뻗고 있다.

 

밤이면 메마른 손끝에 아름다운 별빛을 받아

드러낸 몸통에서 흙 속에 박은 뿌리까지

그것으로 말끔히 씻어 내려는 것이겠지.

 

터진 살갗에 새겨진 고달픈 삶이나

뒤틀린 허리에 밴 구질구질한 나날이야

부끄러울 것도 숨길 것도 없이

한밤에 내려 몸을 덮는 눈 따위

흔들어 시원스레 털어 다시 알몸이 되겠지만

알고 있을까 그들 때로 서로 부둥켜안고

온몸을 떨며 깊은 울음을 터트릴 때

멀리서 같이 우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쓰러진 자의 꿈>(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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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 비낀 아침 이전안

 

 

흐리어 멍든 가슴 무얼로 닦으리까

기우는 그믐 밤은 총총 별이 빛나는데

하늘가 아른대는 사랑 초롱 이는 그 눈빛.

 

잠도 설친 지난밤에 댓잎에 맺는 이슬

새벽닭 한 홰 울어 먼동트는 동녘 창을

불그레 아침 노을만 회한으로 비낀다.

 

이 어둠 걷어내고 해맑은 광명으로

바꾸어 갈아넣을 영창으로 마련하여

아침놀 황홀히 물든 해돋이 서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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