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현대시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임기종 2017. 6. 13. 0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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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칼 나의 피 -김남주-

 

 

만인의 머리 위에서 빛나는 별과도 같은 것

만인의 입으로 들어오는 공기와도 같은 것

누구의 것도 아니면서

만인의 만인의 만인의 가슴 위에 내리는

눈과도 햇살과도 같은 것

 

토지여

나는 심는다 살찐 그대 가슴 위에 언덕에

골짜기의 평화 능선 위에 나는 심는다

자유의 나무를

 

그러나 누가 키우랴 이 나무를

이 나무를 누가 누가 와서 지켜주랴

신이 와서 신의 입김으로 키우랴

바람이 와서 키워주랴

누가 지키랴, 왕이 와서 왕의 군대가 와서 지켜주랴

부자가 와서 부자가 만들어놓은 법이, 판검사가 와서 지켜주랴

 

천만에! 나는 놓는다

토지여, 토지 위에 사는 형제들이여

나는 놓는다 그대가 밟고 가는 모든 길 위에 나는 놓는다

바위로 험한 산길 위에

파도로 험한 사나운 뱃길 위에

고개 넘어 평짓길 황톳길 위에

사래 긴 밭의 이랑 위에 가리마 같은 논둑길 위에 나는 놓는다

 

나 또한 놓는다 그대가 만지는 모든 사물 위에

매일처럼 오르는 그대 밥상 위에

모래 위에 미끄러지는 입술 그대 입맞춤 위에

물결처럼 포개지는 그대 잠자리 위에

구석기의 돌 옛무기 위에

파헤쳐 그대 가슴 위에 심장 위에 나는 놓는다

나의 칼 나의 피를

, 자유여 자유의 나무여

 

-<나의 칼 나의 피>(1987), 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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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섬진강 이동륜

 

 

 

더러는 화려한 탈출 줄줄이 남행南行이다

빈손에 바람 가득 신이 난 야반도주夜半逃走

덤으로 함께 가는 달 그 달빛에 젖어간다.

 

멀다고 느껴질 땐 마음이 떠난 거라고

한사코 밝혀가던 그리움의 긴 촉수燭數

은어銀魚는 어디 있을까 새벽강이 잠을 잔다.

 

흔들어 깨우기엔 손끝이 너무 시려

사름사름 물이 오른 수초水草만 더듬거리다

홀연히 놓쳐버렸네, 아득한 유년의 꿈.

 

연어가 그랬듯이 거슬러 올라가면

잡아놓은 세월만큼 봇물[]은 찰랑이고

그 물에 떴다 잠겼다 어지러운 북행北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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