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전체 소설 기타

저생전(楮生傳)-이첨

임기종 2014. 4. 9.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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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생전(楮生傳)-이첨

 

 

생의 성은 저인데, 저란 닥나무로 종이의 원료이다. 그의 이름은 백이며, 희다는 뜻이다. 자는 무점으로, 무점은 아무런 티가 없이 깨끗하다는 말이다. 그는 회계 사람으로 한나라 채륜의 후손이다. 

생은 태어날 때 난초탕에서 목욕을 하고, 흰 구슬을 희롱하고 흰 띠로 꾸렸기 때문에 그 모양이 깨끗하고 희었다. 그의 아우는 모두 19명이나 된다. 이들은 저생과 같은 어머니에게서 태어났다. 이들은 서로 화목하고 사이가 좋아서 잠시도 떨어지는 법이 없었다. 

이들은 원래 성질이 정결하고, 무인을 좋아하지 않아, 언제나 문사들만 사귀어 놀았다. 그 중에서도 중산 모 학사가 가까운 친구인데, 모 학사란 곧 붓을 가리킨다. 저생과 모 학사는 마냥 친하게 놀아서 혹시 모학사가 저생의 얼굴에 먹칠을 하고 더럽혀도 씻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저생은 학문으로 말하면 천지, 음양의 이치를 널리 통하고, 성현과 명수에 대한 학문의 근원에까지도 모르는 것이 없었다. 심지어 제자백가의 글과 이단불교에 이르기까지도 모조리 써서 보고 연구하였다. 

한나라에서 선비를 뽑는데 책을 지어 재주를 시험했다. 이 때 저생은 방정과에 응시하여 임금께 말하였다.

“옛날이나 지금의 글은 대개 댓조각을 엮어서 쓰기도 하고, 흰 비단에 쓰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모두 다 불편하기 짝이 없습니다. 신은 비록 두텁지는 못하오나 진심으로 댓조각이나 비단을 대신하려 하옵니다. 저를 써 보시다가 만일 효력이 없으시거든 신의 몸에 먹칠을 하시옵소서.”

이 말을 듣고 화제는 사람을 시켜서 시험해 보라 했다. 시험해보니 그의 말대로 과연 편리하여 전혀 댓조각이나 비단을 쓸 필요가 없었다. 이에 저생을 포상하여 저국공 백주 자사의 벼슬에 임명하였다.(중략)

당나라 때였다. 홍문관이란 기구를 설치하게 되었다. 이에 저생은 저수량, 구양순 등과 함께 옛날 역사를 강론하고 모든 나랏일을 상고하여 처리하였다. 이리하여 세상에서 말하는 ‘정관의 좋은 정치’를 이룩했다. 또, 송나라가 일어나자 정주학의 모든 선비들과 함께 문명의 좋은 정치를 이룩하기도 하였다. 사마온 공은 ‘자치통감’을 편찬할 때 저생이 박식하고 아담하다 해서 늘 옆에 두고 물어서 썼다. 그때 마침 왕안석은 권세를 부려 ‘춘추’의 학문을 좋아하지 않았다. 왕안석은 ‘춘추’를 가리켜 다 찢어진 소식지라고 평하였다. 저생은 이를 옳지 못한 평론이라고 했다. 이리하여 마침내 배척당하고 쓰이지 못하였다.

원나라 초년이 되었다. 저생은 본업에 힘쓰지 않고, 오직 장사만을 좋아하였다. 몸에 돈 꾸러미를 두르고 찻집이나 술집을 드나들면서 한 푼 한 리의 이익만을 도모하였다. 세상 사람들은 간혹 이를 비루하게 여겼다.

원나라가 망하자 저생은 다시 명나라에서 벼슬을 하여 비로소 사랑을 받게 되었다. 이로부터 자손이 번성하여 대대로 역사를 맡아 쓰는 사씨가 되기도 하고, 시가의 일가를 이루기도 하였다. 발탁되어 관직에 있는 자는 돈과 곡식의 수효를 알게 되었고, 군사에 관한 사무에 종사하는 자는 군대의 공로를 기록하였다. 그들이 맡은 직업에는 비록 귀천이 있기는 했지만 모두 직무에 태만하다는 비난을 받지 않았다. 대부가 된 뒤부터 그들은 거의 다 흰 띠를 두르기 시작하였다. 

태사공은 말한다. 

무왕이 은을 이기고, 아우 숙도를 채땅에 봉하여 주의 아들 무경을 도와서 은나라의 유민들을 다스리게 하였다.

무왕이 죽자 성왕이 주나라를 다스리게 됐는데, 나이가 어려서 주공이 이를 도왔다. 이때 채숙이 나라 안에 근거 없는 풍설을 퍼뜨리자 주공은 그를 귀양 보냈다. 그 아들 호는 과거의 행동을 고쳐서 덕을 닦았다. 이에 주공은 그를 천거하여 높은 벼슬에 썼다. 성왕은 다시 호를 신채로 봉했으니 그가 곧 채중이었다.(중략)

아아! 왕자의 후손들은 그 조상이 대대로 쌓은 두터운 덕으로 해서 국가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융성해지고 쇠약해지는 것은 모두 운명과 교화의 탓이었다. 채는 본래 주와 같은 성을 가지고 있었다. 이 나라는 양쪽 강국 사이에 끼여 있어서 공연한 공격을 받아 왔다. 그러면서도 같이 그 자손이 없어지지 않고 있다가 한의 말년에 이르러 드디어 봉읍을 받고 그 성을 바꾸게 되었다. 그러니 나라가 변해서 사사로운 집이 커져서 그 자손이 천하에 가득해지는 것을 채씨의 후손에게서 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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