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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선생전(麴先生傳)-이규보

임기종 2014. 4. 9.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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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선생전(麴先生傳)-이규보

 

 

국성(麴聖:맑은 술, 술을 의인화한 호칭)이란 사람의 자(字)는 중지(中之:곤드레)니 , 본관은 주천(酒泉 :중국 춘추 전국 시대의 주나라에 있던 땅 이름)고을 사람이다.

어려서 서막(徐邈 : 중국 진나라 사람, 술을 좋아해 국법으로 금하는 밀주를 만들어 마셨다고 함)에게 사랑을 받아, 막(邈)이 이름과 자를 지어 줬다.(성을 서막이 지어줬다고 한 것은 태평광기(太平廣記)의 서막 설화 중 청주위성인 탁주위현인(淸酒爲聖人 濁酒爲賢人)'에서 연유했으며 자 중지는 '국순전'의 '이기성인지덕 시복중지以其聖人之德 時復中之'에서 인용한 것이다.) 그의 먼 조상은 본시 온(溫)이라는 고장의 사람으로 항상 힘써 농사를 지으면서 자급(自給)하면서 살고 있었는데(누룩은 따뜻한 온도에서 잘 뜨기 때문에, 온(溫)이라는 고장에서 살았다는 말) , 정(鄭)나라가 주(周)나라를 칠 때에 포로가 돼 본국으로 돌아가지 못했으므로, 그 자손의 일파가 정나라에서 살게 됐다. 그의 증조(曾祖)는 역사에 이름이 나타나지 않았고, 조부 모(牟 : 보리를 의인화)는 살림을 주천(酒泉)으로 옮겨, 이때부터 주천에서 살게 됐다. 아버지 차(흰 술의 의인화)에 이르러서 비로소 벼슬길에 나아가 평원독우(平原督郵 : 郵(우)를 '憂로 바꾸면 '근심없이 하는 벼슬'이란 뜻이며, '청주 종사의'靑州를 '淸酒'로 바꾸면, '술 마시는 것을 일삼아서 한다 는 뜻이 된다. 평원도 격현에 있으므로, '평원독우'란 격상(명치 위치)에 머물러 숨이 막히는 좋지 못한 술을 의미하며, 청주는 제군에 있으므로 '청주종사'는 제하(배꼽 밑)까지 시원하게 잘 넘어가는 술을 말한다.)의 직을 역임했고, 사농경(司農卿 : 한나라 때 구경의 하나로 미곡과 전적을 관장하던 관저) 곡(穀)씨의 딸과 결혼해 성(聖)을 낳았다. 성(聖)은 어렸을 때부터 도량이 넓고 침착해 손님이 그 아비를 보러 왔다가도 성을 유심히 보고 그를 사랑했다. 손님들이 말하기를 "이 아이의 도량(마음과 그릇)이 출렁출렁 넘실넘실 만경(萬頃)의 물결과 같아 가라 앉히더라도 더 맑아지지 않으며, 뒤흔들어도 탁해지지 않으니 우리는 그대와 더불어 이야기하기보다는 성(聖)과 함께 즐기는 것이 낫겠소."

성이 자라서, 중산에 사는 유영(위진 시대의 죽림칠현 중의 한 사람. '주덕송(술의 덕을 찬양)'을 지음), 심양에 사는 도잠(도연명의 본명)과 벗이 됐다. 이들은 서로 말하기를,

"하루라도 이 친구를 만나지 못하면 심중(心中)에 물루( 몸을 얽매는, 세상의 온갖 괴로움)가 생긴다. "

라고 하며, 만날 때마다 해가 저물도록 같이 놀고, 서로 헤어질 때는 항상 섭섭해 했고, 기쁨을 잊고 문득 마음에 취(醉)하고야 돌아왔다.

국가에서 조구연(糟丘椽)을 시켰으나, 미처 나아가지 못했고, 또 나라에서 청주 종사로 불러, 공경들이 계속해 그를 조정에 천거했다. 위에서 명해 공거(公車)를 보내 불러 보고 목송(目送 : 눈짓)해 말하기를,

"저 군이 주천(酒泉)의 국생(麴生)인가. 짐(朕)이 그대의 향기로운 이름을 들은 지 오래다."

이보다 앞서 태사(太史)가 임금께 아뢰기를, "지금 주기성(酒旗星)이 크게 빛을 낸다 하더니."

이렇게 아뢰고 나서 얼마 안 돼 성(聖)이 이른지라, 임금이 또한 이로써 더욱 기특하게 여겼다. 임금은 즉시 곧 주객 낭중(主客郎中)벼슬을 시키고, 이윽고 국자제주(國子祭酒)로 올려 예의사(禮儀使)를 겸하게 되었다.

무릇 조회(朝會)의 잔치와 종조(宗朝)의 제사, 천식(薦食), 진작(進酌)의 예(禮)에 임금의 뜻에 맞지 않음이 없는지라. 이에 임금은 그의 그릇(기국)이 듬직하다 하여 승진시켜 승정원 재상으로 있게 하고 ,후설 (喉舌: 목구멍과 혀)의 직에 두고), 우례(優禮 : 융숭한 대접)로 하여 매양 들어와 출입할 적에도 고자(轎子)를 탄 채로 전(殿 : 대궐)에 오르라 명하며(술이 상에 차려져 황제의 연희에 올려짐을 은유적으로 표현), 이름을 부르지 않고 국선생(麴先生)이라 일컬었다. 임금의 마음이 불쾌함이 있어도 성(聖)이 들어와 뵈면 임금은 비로소 크게 웃으니 무릇 사랑받음이 모두 이와 같았다. 원래 성은 성질이 구수하고 아량이 있었다. 날이 갈수록 사람들과 친근해졌고 특히 임금과는 조금도 스스럼없이 가까워졌다. 자연 임금의 사랑을 받게 되어 항상 따라다니면서 잔치 자리에서 함께 놀았다. 성에게는 세 아들이 있었다. 혹(酷)과 폭(暴)과 역(醳)이다. 혹은 독한 술, 폭은 진한 술, 역은 쓴 술이다. 이들은 그 아비가 임금의 사랑을 받는 것을 믿고 방자하게 굴었다. 중서령 모영이 임금에게 글을 올려 탄핵했다. 모영은 곧 붓이다. 그 글은 이러했다.

"행신이 폐하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는 것을 천하 사람들은 모두 병통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제 국성이 조그만 신임을 받고 조정에 쓰이고 있어 요행히 벼슬 계급이 3품(여기서는 술 중에서 3품 벼슬의 격에 올랐다는 뜻으로 쓴 것)에 올라서, 많은 도둑을 궁중으로 끌어들이고 사람들을 휘감아서 해치기를 일삼고 있사옵니다. 이것을 보고 모든 사람들이 분하게 여겨, 소리치고 반대하며 머리를 앓고 가슴 아파합니다. 이자야말로 국가의 병통을 바로잡는 충신이 아니옵고, 실상 만백성에게 해독을 주는 도둑이옵니다. 더구나 성의 자식 셋은 제 아비가 폐하께 총애 받는 것을 믿고, 제 마음대로 세상에 횡행하고 방자하게 굴어서 모든 사람들이 다 괴로워하고 있사옵니다. 바라옵건대 이들에게 모두 사형을 내리셔서 모든 사람들의 입을 막으시옵소서."

이에 성의 아들 셋은 즉시 독약을 마시고 자살했다. 성도 죄를 받아 서인으로 폐해졌다. 한편 치이자(말가죽으로 만든 주머니, 술을 넣는 데 쓴다. 모양이 올빼미 배처럼 생긴 데서 만들어진 말)도 성과 친하게 지냈다 해서 수레에서 떨어져 자살했다.

처음에 치이자는 우스갯소리를 잘해서 임금의 사랑을 받았다. 자연 국성과 친하게 되어, 임금이 출입할 때에는 항상 수레에 실려 다녔다. 어느 날 치이자는 몸이 곤해서 누워 있었다. 성은 희롱하여 물었다.

"자네는 배는 크지만 속이 텅 비었으니 그 속에 무엇이 있는가?" 치이자가 대답했다.

"자네들 수백 명은 넉넉히 용납할 수가 있지."

이들은 이렇게 항상 서로 우스갯소리를 하며 지냈다.

성의 이미 벼슬을 그만두자 제 고을과 격 마을 사이에는 도둑들이 떼 지어 일어났다. 제는 배꼽, 격은 가슴을 뜻한다. 이에 임금은 이 고을의 도둑들을 토벌하라는 명을 내렸다. 하지만 적임자가 쉽게 물색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다시 성을 기용해서 원수로 삼아 토벌하도록 했다. 성은 부하 군사를 몹시 엄하게 통솔했고, 또 모든 고생을 군사들과 같이했다. 수성(근심을 말함)에 물을 대어 한 번 싸움에 이를 함락시키고 나서 거기에 장락판 (장락이란 길이 즐거워한다는 뜻)을 쌓고 회군하였다. 임금은 그 공로로 성을 상동 후에 봉했다.

"신은 본래 가난한 집 자식이옵니다. 어려서는 몸이 빈천해서 이곳저곳으로 남에게 팔려 다니는 신세였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폐하를 뵙게 되자, 폐하께서는 마음을 놓으시고 신을 받아들이셔서 할 수 없는 몸을 건져 주시고 강호의 모든 사람들과 같이 용납해 주셨습니다. 하오나 신은 일을 크게 하시는데 더함이 없었고, 국가의 체면을 조금도 더 빛나게 하지 못했습니다. 저번에 제 몸을 삼가지 못한 탓으로 시골로 물러나 편안히 있었사온데, 비록 엷은 이슬은 거의 다 말랐사오나 그래도 요행히 남은 이슬방울이 있어, 감히 해와 달이 밝은 것을 기뻐하면서 다시금 찌꺼기와 티를 열어젖힐 수가 있었나이다. 또한 물이 그릇에 차면 엎어진다는 것은 모든 물건의 올바른 이치옵니다. 이제 신은 몸이 마르고 소변이 통하지 않는 병으로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사옵니다. 바라옵건대 폐하께서는 명령을 내리시와 신으로 하여금 물러가 여생을 보내게 해주옵소서."

그러나 임금은 이를 승낙하지 않고 중사를 보내어 송계, 창포 등의 약을 가지고 그 집에 가서 병을 돌봐주게 했다. 성은 여러 번 글을 올려 이를 사양했다. 임금은 부득이 이를 허락하여 마침내 고향으로 돌려보냈다. 그는 천수를 다하고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그의 아우는 현(賢)이다. 현은 즉 탁주다. 그는 벼슬이 이천 석에 올랐다. 아들이 넷인데 익, 두, 앙, 남이다. 익은 색주, 두는 중양주, 양은 막걸리, 남은 과주다. 이들은 도화즙을 마셔 신선이 되는 법을 배웠다. 또 성의 조카들에 주, 만, 염이 있었다. 이들은 모두 적을 평씨에게 소속시켰다.

사신(史臣)은 말한다.

"국씨는 원래 대대로 내려오면서 농가 사람들이었다. 성이 유독 넉넉한 덕이 있고 맑은 재주가 있어서 당시 임금의 심복이 되어 국가의 정사에까지 참여하고, 임금의 마음을 깨우쳐주어, 태평스러운 푸짐한 공을 이루었으니 장한 일이다. 그러나 임금의 사랑이 극도에 달하자 마침내 국가의 기강을 어지럽히고 화가 그 아들에게까지 미쳤다. 하지만 이런 일은 실상 그에게는 유감이 될 것이 없다 하겠다. 그는 만절이 넉넉한 것을 알고 자기 스스로 물러나 천수를 다하였다. "주역"에 '기미를 보아서 일을 해나간다.(見機而作 사태나 현상을 미리 짐작하여 파악한 뒤에 행동과 실천을 수행해 나간다.)'고 한 말이 있는데 성이야말로 거의 여기에 가깝다 하겠다." <동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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