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학과 재치

주장군전(朱將軍傳)

임기종 2024. 10. 18.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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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의 이름은 맹()이요, 자는 앙지(仰之)인데 조상 대대로 낭주(囊州)에서 살았다.

한편 주군 공갑(孔甲)을 섬기던 그의 선조 강()이 남방주오역상지관(南方朱烏曆象之官)의 임무를 수행하던 중 전장에 나가 유윤(惟允)의 땅을 빼앗아 바쳤다. 그 공으로 공갑이 감천군 탕목읍을 하사하고 식읍(食邑)을 삼게 하니 그때부터 그 곳에 일가를 이루게 된 것이다. 맹의 아비 이름은 혁()인데 열 임금을 계속 섬겨 벼슬이 중랑장(中郞將)에 이르렀고 어미 음()씨는 본관(本貫)이 주애현(朱崖縣 붉은 바위언덕이 둘러진 고을이라는 뜻 )으로 어려서부터 붉은 입술과 발그레한 얼굴에 자색이 뛰어나고 성품이 어질어 내조의 공이 컸다. 그래서 그 아비는 어미 음씨를 매우 소중하게 여겼다. 비록 때로 피를 쏟는 작은 허물이 있었으나 그것을 탓하지 않았다.

이들은 대력(大曆) 11년에 아들 맹을 낳는다. 맹은 품행이 비범했으나 다만 한 가지 흠이라면 눈이 하나뿐이라는 것이다. 때때로 이로 말미암아 더욱 그 이름을 떨치기도 했으니 반드시 흠잡을 것은 아니라고 하겠다.

맹은 성격이 온순해 평소 고개를 숙이고 지냈다. 이런 맹도 한번 화가 나면 수염이 꼿꼿해지고 온몸에 힘줄이 드러나면서 어떤 일이 있더라도 오래도록 읍하고 굽히지 않았는데 특히 목의 힘이 대단했다. 또 천성이 남을 공경할 줄 알아 자주 몸을 굽혀 고개를 끄떡끄떡 하곤 했다. 몸에는 언제나 자주 빛 단령(團領)을 입고 비록 엄동폭서를 당할지라도 도시 벗을 줄 몰랐다. 무릇 출입할 때는 반드시 두 개의 구슬이 들어있는 붉은 주머니를 잠시라도 몸에서 떼 놓지 않고 차고 다녀 세상사람 모두가 독안룡(獨眼龍 눈이 하나뿐인 용) 이라 불렀다.

이웃에 장중선(掌中仙 손바닥)과 오지향(五指香 다섯 손가락)이라는 두 기생이 있었는데 맹이 이들을 좋아해 번갈아 가며 함께 자주 즐겼다. 두 기생은 맹이 서로가 모르게 만나는 것을 알고 주먹을 휘두르면서 죽네 사네 달려들었다. 맹의 성질이 워낙 온순해 두들겨 맞아 눈시울이 몇 군데 찢어지고 눈물이 옷깃을 적셔도 오히려 달게 웃으며

하루라도 너희들의 주먹으로 두들겨 맞지 않으면 마음이 편치 않고 섭섭하더라

말하곤 했다. 이 얘기를 전해 듣는 사람들은 모두 맹을 천하게 여겼다. 그 후부터 맹이 절조를 굽힌 것을 크게 뉘우치고 기회가 있으면 명예를 회복하겠다고 굳게 맹세한다.

단갑(亶甲)이 즉위한 지 3, 제군(臍郡)의 자사(刺史)인 환영(桓榮)이 아뢰어 말하기를

저 밑 지방에 오래된 훌륭한 연못이 있사온데 샘물이 달고 땅이 기름져 초목이 무성하나 사는 백성들이 적습니다. 힘써 개간한다면 반드시 그 효과가 클 것으로 생각하오나 근자에 가뭄이 심해 그 못이 거의 마르고 가끔 못 기운이 위로 올라와 응결하고 있습니다. 원하옵건대 폐하께서는 즉시 신하를 파견하시와 지신(地神)을 다둑거리고 날로 역군을 감독해 못을 깊이 파 물을 모아뒀다가 흘려보낸다면 천하대본(天下大本)을 잃지 않을 것이니 비록 무식한 지아비와 지어미라 할지라도 어찌 폐하의 조치에 감동하지 않으리요. 깊이 통촉하시와 선처하심을 복망하나이다

하고 진언을 한다.

왕이 그 말을 옳게 여겨 파견할 인재를 물색했으나 좀처럼 찾을 수 없다. 결국 여러 신하를 불러 인물 선택을 하문하자 온양부(溫陽府) 관리 주차(朱借)가 맹을 추천하면서 가히 쓸 만 하다고 말하니 왕이 이르기를

짐 또한 그 이름 들은지 오래로다. 그러나 옛말에 이르기를 눈이 바르지 못하면 그 마음도 바르지 못하다했는데 듣기에 맹의 모습이 대머리에 상하 찢어진 외눈인 것이 한이로다

주차가 그 말을 듣고 사모도 안 쓴 대머리를 조아리며

옛 성군은 오직 두 토끼를 쫒지 아니한 간성지장(干城之將)을 버리지 않았다 하옵니다. 어찌 한 가지 용모의 흠을 가지고 갑자기 버리시나이까? 원하옵건대 폐하께서는 당분간 맹을 시험해 써 보소서. 만일 맹이 그 직을 능히 감당하지 못 한다면 신이 그 죄를 마땅히 감수하겠나이다

왕이 아무 말 없이 오래도록 생각에 잠겨 앉아 있다가

경의 말이 옳도다. 다만 깊은 숲 속에 몸을 사려 그 양기를 감추고 있는 맹이 오히려 짐이 기용함을 좋아하지 않고 사양한다면 그 일이 사람들에게 금방 알려질 것이다. 그렇다면 짐의 입장이 곤란하지 않겠는가. 그것이 몹시 걱정이다

주차가 말한다.

맹의 성품이 부드러우나 펴고 나오면 그 위력이 강해 하외(河外)에 미치는데 비록 지금 사나운 용맹을 굽혀 하내(河內)에 들어가 있음은 사지(四肢)에 뼈가 없는 소치이온즉 폐하께서 성심껏 청하신다면 어찌 사양할 수 있겠나이까

왕은 주차에게 날을 받아 폐물을 가지고 가게 한다. 기꺼이 왕명을 받드는 맹에게 왕이 크게 기뻐하며 절충장군(折衝將軍)을 하사하시고 보지착사(寶池鑿使 귀한 연못을 파는 관리라는 뜻)라는 직책을 명하신다.

맹은 명을 받들어 주야로 강행해 용천(涌泉)과 양릉천(陽凌泉)을 건너 양관(陽關 다리 사이에 있는 혈자리)을 지나 곧 못 언덕에 이른다. 못과 양릉천 사이는 삼천리(三千里). 이전에 이성(尼城)사람 맥효동(麥孝同 옛날에 음탕한 비구니가 보리가루로 남근을 만들어 사용한데서 연유)이 스스로 못을 파서 물을 대려고 하다가 장군이 온 것을 알고 얼굴을 붉히면서 물러났다. 장군이 사방을 두루 살피고 득의만면한 얼굴로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이 땅은 북으로 옥문산(玉門山)과 남쪽으로 황금굴(黃金窟)이 이어져 있으며 동서에 붉은 낭떠러지가 서로 둘러서 있고 그 가운데 바위가 있으니 모양은 흡사 감씨를 닮았구나, 진성 술객(術客)들이 이르는바 요충출지(要衝出地). 지형은 붉은 용이 구슬을 머금은 형극이라 힘이 센 자가 아니면 뜻한 바를 이루지 못할 것이로다

하고 드디어 조목을 들어 그 형세를 왕에게 표()를 올린다.

신 맹은 선조의 여열(餘烈)을 이어받아 성조(聖朝)의 크나큰 은혜를 입어 천리를 달려와 죽어서라도 그 절개를 세우려 하는 바이라 어찌 오래도록 외지에서 사소한 고행을 싫어하리요. 성공을 기약한 후 이미 감천군에 이르렀으니 바라옵건대 살아서 옥문관(玉門關)에 들어감을 날로 기다려 마지않는 바이옵니다

왕이 맹의 표를 보시고 기뻐하시면서 그의 장한 공적을 칭찬하는 글을 내리는데

서방(西方)의 일은 오직 경에게 맡겨 부탁하는 바이니 노력을 아끼지 말지어다

맹이 조서를 받들고 머리 조아려 치사한 후 사졸(士卒)과 함께 고락을 같이 하면서 한편으로는 타이르고 때로는 다그치며 간간히 파헤치는데 어떤 때는 반면(半面)만 보이다가 수시로 전체를 나타낸다. 또 구부렸다 폈다가 엎디었다 제쳤다 들어갔다 나갔다 있는 힘을 다해 거의 필사적이라.

일은 아직 반도 못했는데 비로소 맑은 물줄기 몇 가닥이 흘러나오더니 갑자기 흐린 파도가 용솟음쳐 감당할 수가 없다.

온 섬이 몽땅 물에 빠지고 수풀도 잠겼으니 장군 또한 어찌 면할 수 있으리요. 맹장군은 온몸이 흠뻑 젖었어도 태연히 서 있으면서 머리털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당시 숲 속에는 벼룩 무리들이 모여 살고 있었는데 갑작스런 외부 침입군의 환()을 당해 숨어 있던 중 또 물난리의 변을 당했다. 이들이 격류에 밀려 황금 굴까지 떠내려가다가 굴의 신()을 만나자 울부짖으며 살려달라고 하니 굴신이 말하기를

요즘은 짐승들 무리까지 이런 우환을 당하니 큰 탈이로구나. 그가 가끔 흰죽을 보내 대접하는 것을 고맙게 여겨 오랫동안 일체 말하지 않았는데 이제 그대들을 위해 마땅히 일해주리라

하자 벼룩 무리들이 좋아라고 날뛰며

이 일은 저희들 일가 부스러기의 생사에 관한 일이오니 널리 살피시어 우리 같은 미물(微物)을 불쌍히 여기소서. 이자의 모습을 말씀드리면 살아서는 뼈 같은데 죽으면 살덩어리입니다

굴신이 벼룩의 말을 듣고 자못 딱하게 여겨 즉시 연못의 신을 찾아 크게 꾸짖는다.

너희 집의 지각없는 손님이 너무나 심하게 구는구나. 언제나 이환낭(二丸囊 남자의 불알)을 우리 집 문 앞에 달아두고 무상출입하는데 처음엔 다문다문 그러는 것 같아 가만히 참았더니 요즘은 너무 잦아 이웃의 체면도 돌보지 않고 물로 우리 집 뜰과 문을 흠뻑 적시고 문짝을 함부로 치니 미쳐도 분수가 있지 어찌 이럴 수가 있느냐

하면서 굴신이 연신 입을 삐죽거리자 연못 신은 잘못했다고 빈다.

손님의 심한 출입으로 그 폐가 어른에게 미쳐 비록 죽물로 변상을 하기는 했으나 어찌 문을 더럽히는 욕에 상당하리요. 이에 마땅히 벌을 주겠사오니 존경하옵는 당신께서는 이웃 정리(情理)를 생각하시와 널리 용서바랍니다

밤이 되자 못 신이 가만히 보니 장군 맹이 사졸(士卒)을 독려하면서 연못 파는 데 정신이 없다. 전후를 분간치 못하는 이 기회를 이용해 가만히 그 머리를 깨물고 또한 두 언덕의 신과 함께 협공하니 맹 장군은 머리가 터져 흰 골수가 몇 술 가량 흐르더니 힘이 다해 죽고 말았다.

부음(訃音)을 들은 왕은 몹시 애통한 나머지 조회를 취소하고 모든 정사를 뒤로 미룬 후 맹에게 장강온직효사홍력공신(長剛溫直效死弘力功臣 길고 단단하며 따뜻하고 곧더니 힘을 쓰고 난후에 죽은 신하)이란 호를 내리시고 예로서 곤주 땅에 장사를 지냈다.

나중에 곤주를 지나던 어떤 사람이 우연히 장군을 만났는데 자세히 쳐다보니 번쩍거리는 대머리로 지금도 여자의 그것 속을 헤엄쳐 다니면서 때때로 불생불사(不生不死)석가의 학문을 배우고 있더라고 전한다.

-어면순(禦眠楯)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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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글을 가전체(假傳体)문학이라 한다.

가전체란 사물을 의인화한 것을 말하는데 이 주장군전은 남녀의 성기와 성행위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글이다.

맹이라는 장군을 남자의 성기로, 기타 성행위 장면은 왕의 명에 따라 귀한 연못을 파는 임무 수행으로 묘사했다.

이글은 단순한 해학이라기보다 문학적 가치를 가진 글이다.

정확한 해부생리와 남녀간의 성행위 묘사. 그것도 너무나 사실적이고 도전적이다. 성기부근 털 속에 사는 기생충까지 묘사한 솜씨야 말로 가히 환상적이다.

감히 세계 어느 나라 어느 문호가 이런 글을 쓸 수 있을까.

웃고 넘기기에는 너무 아깝다.

이 글은 조선 초기 문신 송세림(宋世琳)의 어면순(禦眠楯 졸음을 막아주는 방패)이라는 책에 나온다.

글쓴이는 5백여년 전 조선시대 선비 송세림(宋世琳, 1479~?)이다.

송세림의 본관은 여산(礪山)이고 자는 헌중(獻中). 호가 취은(醉隱고송(孤松눌암(訥庵)이다. 1498(연산군 4) 진사(進士)가 되고 1502년 알성문과(謁聖文科)에 장원, 여러 벼슬을 거쳐 1516(중종 11) 능성현령(綾城縣令)으로 재직 중 이도쇄신(吏道刷新)과 지방행정의 개혁을 상소하여 시행하게 했다. 그뒤 교리(校理)에 이르러 신병으로 관직을 사퇴했으나 문명(文名)이 높았고 그림과 글씨에도 뛰어났다. (글쓴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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