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농사꾼이 장에 갔다 오는 길에 중 한 사람을 만났다. 중이 큼지막한 보퉁이를 들고 신바람을 씽씽 내며 걸어가기에
"스님께서는 무엇을 사 가지고 가십니까 ?"
하고 묻자 그 중이 하는 말
"오늘 장에 좋은 양고기가 나왔더군. 갖은 양념을 발라 구워 먹으려고 사 간다네"
"아니, 스님께서도 고기를 드십니까 ?"
농사꾼이 깜짝 놀라 이렇게 물으니 중이 몹시 당황해 얼버무린다.
"아니 뭐 누가 고기를 먹고 싶어서 먹나. 절에 좋은 술이 있지 뭔가. 술안주로야 양고기가 제일이지. 그래서 조금 샀다네"
"그럼 스님께서는 술도 드시나요 ?"
농사꾼이 더 놀라서 이렇게 물었다. 중은 또 실수했구나하고 얼른 둘러대는데
"그게 아니라 절에 손님이 와 계시지 않겠나. 중이야 술을 안 먹지만 손님 대접까지 안 할 수 없지 않은가"
"그렇군요. 어떤 손님이신지 귀한 분인가 보군요 ?"
농사꾼이 고개를 끄덕이자 한 고비 넘긴 중은 신바람이 난다.
"귀하다마다. 오랜만에 장인이 오지 않았겠나"
듣고 보니 점입가경이라 농사꾼이 되물을 수밖에
"아니, 방금 장인이라고 하셨습니까 ?"
"장인뿐인 줄 아나, 장모도 와 있는 걸"
"예? 그게 정말입니까 ?"
중이 그제야 아차 했는지 말꼬리를 슬쩍 돌리는데
"이 사람아, 중이라고 농담도 못 하나? 나와는 인연이 있는 사람들인데 절에 좀 시끄러운 일이 있어 찾아 왔다네"
"그랬군요. 산중 절에도 시끄러운 일이 있다니 믿기지 않는데요 ?"
한 고비 넘긴 중이 가만히 있으면 좋을 것을, 어디 입이라는 게 가만히 있을라고 붙어 있나.
"골치 아픈 일이라네. 글쎄 마누라하고 첩하고 대판 싸움이 붙었지 뭔가? 오죽했으면 장인 장모가 담판을 내겠다고 그 멀리서 찾아 왔겠나?"
"예? 첩이라고요?"
"이 사람아, 누가 첫째 첩 가지고 그러는 줄 아나? 얼마 전에 얻은 둘째 첩이 말썽이라네. 지금도 대판 싸우고 있을지 모르니 난 어서 가 봐야겠네"
중이 이러고 성큼성큼 앞서 가더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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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 귀의할 때 받는 5가지 계율을 오계(五戒)라 하는데 그것을 어기는 것을 파계(破戒)라 한다. 이 오계를 유교에서는 다섯 가지 덕목인 오상(五常)과 비교하고 이를 실행하는 것을 대효(大孝)라 했다.
불교의 오계 가운데 생명체를 죽이지 말라는 불살생(不殺生)은 유교의 인(仁)이요 남의 것을 훔치지 말라는 불투도(不偸盜)는 의(義)이며 음란한 행동을 하지 말라는 불사음(不邪淫)은 예(禮)에 해당한다. 술을 마시지 말라는 불음주(不飮酒)는 지(智)이며 거짓말을 하지 말라는 불망어(不妄語)는 신(信)을 말한다.
파계(破戒)를 하면 자신에게 해롭고 나쁜 소문이 나며 지혜 있는 이에게 꾸중을 듣게 되고 죽을 때 후회하며 죽어서 악도(惡道)에 떨어지게 되는 5가지 허물이 몸 안에 남는다고 한다.
또 간음을 십악(十惡)중 3번째로 꼽는 십악(十惡)은 살생(殺生), 투도(偸盜도둑질), 사음(邪狀간음姦淫), 망어(妄語 이간질), 기어(綺語 악담), 악구(惡口 거짓말), 양설(兩舌 입에 발린 말), 탐심(貪心 욕심내는 마음), 진심(瞋心 시기, 질투, 분노의 마음), 치심(癡心 그릇된 주장을 강행하는 마음)의 열 가지다. 거기에다 모든 생물들은 욕계(慾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의 삼계(三界)에서 살고 있다고 보고 욕계(慾界)의 식욕(食慾), 음욕(淫慾), 수면욕( 睡眠慾)을 수신오계(修身五戒)로 묶어 금기시 했다.
파계는 불교 수행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이 시간, 우리는 항상 파계의 위험에 부딪치면서 살고 있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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