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학과 재치

육담(肉談) . 부친의 기일이라

임기종 2025. 1. 6.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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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사는 귀공자(貴公子)가 어떤 고을에 들렀다. 마침 관장이 잔치를 베풀었는데 예쁜 기생들도 있었다. 그러나 귀공자는 그날이 부친 제삿날이어서 근신해야 하므로 살며시 빠져나와 숙소로 돌아왔다. 그런데 옆자리에 앉았던 기생 역시 따라 나와 숙소까지 온 것이었다. 귀공자는 숙소까지 쫓아온 기생을 보자 너무 예뻐서 마음을 진정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부친의 제삿날에 기생을 껴안고 즐긴다는 것은 윤리도덕상 용인되지 않는 일이어서 깊은 고민과 마음의 갈등을 느꼈다.

"얘야, 오늘은 내가 너와 함께 잠을 잘 수 없는 형편이니 그만 돌아가 다오."

하고 기생에게 타일렀지만 끝내 돌아가지 않고 이불 속으로 파고든다.

귀공자가 많은 생각이 교차되면서 고민하는 동안 밤은 점점 깊어 갔고, 옆에 누운 기생은 끊임없이 몸을 맞대며 유혹했다. 그래서 마침내 더 참지 못하고 기생을 껴안아 옷을 벗겨서 눕힌 다음, 결합하고 말았다. 그러고 가만히 생각하니, 아무래도 돌아가신 부친께 죄 짓는 것 같아 기분이 개운치 않았다.

'내 도덕군자를 자처하면서 이래서는 안 되지..............'

이 생각이 머리를 스치자 그만 중단하고 몸을 일으켜 앉아 기생에게 사과했다.

"오늘은 내 부친의 기일이라, 이렇게 거두어 중단하는 것을 이해해다오. 뒷날 다시 와서 밤새도록 잘 놀아 줄게."

이 말을 들은 기생은 떨치고 일어나 화를 내면서 큰소리로 외치더니 나가버렸다.

"아니 도련님, 도둑놈이 남의 집 창고에 들어가.. 물건을 훔쳐 나오다가 주인에게 들켜 물건을 그냥 놓고 도망친다면, 물건을 안 가지고 나왔다고 해서 도둑이란 이름을 면할 수가 있을까요?"

뒷날 이 얘기를 들은 사람들은 그 기생의 말이 명언이라고 하면서 웃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