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묵자(玄默子) 홍만종(洪萬宗)의 당숙인 영안도위(永安都尉)가 연경(燕京)에 가는 도중 요소(遼蘇)의 사이에 이르렀더니 군관 네 사람이 함께 한 여염집에 들어가 바깥채에서 묵으려고 했다. 그런데 그 집안이 하도 조용해 사람의 소리라곤 없다가 갑자기 한 소녀가 나와
"남편이 장교(將校)인데 멀리 나가 있어 제가 홀로 집을 지키니 가이 나그네를 재울 수 없습니다."
하고 말이 그치자 이내 안으로 들어가는데 본즉 분명히 천하국색(天下國色)이라. 이날 밤 한 사람이 여럿이 잠든 틈을 타 가만히 안으로 들어가 쉽사리 여인의 허락 아래 서로 극환(極歡)을 즐겼다. 밤이 깊은지라 귀를 모아 옆의 소리를 들은즉 곧 자기 친구의 코고는 소리라. 이에 한 사람이 몸을 빼어 안으로 들어가니 분벽사창(粉壁紗窓)이 반쯤 열려 있어 크게 기꺼워 몰래 걸어 나가 장차 한 번 간통할까 하는데 문득 창밖에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매 곧 몸을 방 옆에 있는 독 사이에 숨기니 한 사람이 먼저 와서 그 독 사이에 엎드려 있다. 드디어 숨을 죽여 기다리는데 또 한 사람이 문을 열고 들어와 앉고 얼마 있다가 또 한 사람이 가만히 기어들어 앉는다. 얼마 있다가 또 가만히 기어들어 자리에 줄잡아 앉는지라 여인이 이에 손뼉을 치면서,
"웬 늙은 종놈들이 기약치 않고 이렇게 모여왔는고?"
하고 웃으며 말하니, 독 사이에 모여 앉은 네 사람이 제각기 뛰어나오면서 바라보니 다 동행들이라. 네 사람이 서로 돌아다보며 웃으면서,
"옛날에 이른바 시인의사(詩人意思)가 일반(一般)이다."
한 말이 이 경우가 아니냐 했다.
-명엽지해(蓂葉志諧)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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