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학과 재치

육담(肉談). 의원의 처방

임기종 2025. 2. 15.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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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어떤 시골에 한 선비가 살고 있었는데, 집안은 넉넉한 편이었지만 모자라는 데가 있었다. 그러나 그 아비되는 생원은 나이에 걸맞지 않게 여자를 좋아하며 여자라면 사족을 못 쓰는 위인이었다.

마침 그 부인에게는 열일곱살 된 몸종이 하나 있었는데, 인물이 곱고 몸매가 좋아 생원이 은근히 눈독을 들여오고 있었으나 아내의 눈이 무서워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던 차, 하루는 친구 의원을 불러

" 사실은 내 사정이 이러이러하니 내가 병이 났다고 자네를 부르거든 자네는 이러저러하게만 처방해주게. 그럼 내가 후사하리다. "

하고 단단히 부탁해 놓았다. 며칠 후 생원은 배를 움켜쥐고 방바닥을 딩굴며 죽는다고 아우성치자, 부인과 아들은 기겁을 해서 의원을 불러왔다. 의원은 진맥을 하고 나서

" 허허 이거 병증세가 심상치 않은걸. "

" 어떻게 약을 써야겠습니까. 의원님? "

" 약이라곤 꼭 한가지 있긴 하지만...."

" 그렇다면 무슨 짓을 해서라도 구해서 쓸테니 부디 가르쳐 주십시오. "

" 십 칠팔세 나는 숫처녀하고 병풍 안에 들어가서 가슴을 맞대고 땀을 내야만 낫겠는데 헌데 그걸 어찌 구하겠소. 천한 종 아이들은 많지만 남몰래 사내가 거쳐 간 몸인지 알 까닭이 없고, 여염집 처녀는 믿을 수는 있지만 구하기가 어려울테구. "

이때 선비의 어미가 마침 미닫이 밖에서 이 말을 엿듣고 있다가 급히 선비를 불러

" 내 몸종 아이는 내가 친딸처럼 한 이불 밑에서 길러 왔으니까 틀림없는 숫처녀다. 그 애라도 쓰도록 해봐라. "

이리하여 그날 밤, 병풍으로 방을 가리고 몸종 아이를 들여보내고는 그 아내가 몰래 문 밖에서 서생원의 발한(發汗)하는 것을 살펴보니, 밤 자리 그 일과 다를 게 없는지라, 투덜거리며 안으로 들어와

" 그것이 가슴을 대고 땀을 내는 약이냐? 그와 같이 해서 땀을 낼진대 어찌 나와 땀을 내지 못할꼬? "

하며 불평을 퍼부으니, 선비가 흘겨보면서 하는 말이

"어머님은 어찌 그리 어리석은 말씀만 하시오, 그래 어머님이 숫처녀란 말이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