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비둘기를 쏘아 죽인 장군
무예와 지략을 겸비했던 전국 시대의 영웅호걸 다케다 신겡에게 이런 일화가 전해진다.
어느 날 대 결전을 앞두고 있을 때였다. 출전을 격려하기 위한 주연이 벌어져 전군이 한창 흥청거리는 중이었다. 어디서 왔는지 산비둘기 한 마리가 날아왔다. 그리고 마치 신겡의 출전을 축하하는 듯 연회장 위를 두어 번 돌더니 조용히 뜰 앞의 소나무 가지에 앉았다. 진용을 완전히 갖추고 막 출전하려던 참이었기 때문에 이것을 본 일동은 기뻐하며 투지를 불태웠다.
"이것이야말로 필승의 길조다!"
그런데 그때 도 산비둘기 한 마리가 날아와서 똑같이 연회장 위를 맴돌고 소나무 가지에 앉았다. 일동은 더욱 기뻐서 모두 일어나 함성을 질렀다.
"정말 좋은 조짐이야."
"이것이야말로 전승의 징조다. 한 마리도 길조인데 두 마리씩이나 왔으니 이번 싸움은 대승을 거둘 게 틀림없어."
그러나 그것을 보고 있던 신겡은 조금도 기뻐하지 않았다. 오히려 마땅치 않은 얼굴로 잠시 산비둘기를 쏘아보더니 옆에 있던 활을 집어 화살 하나로 산비둘기 두 마리를 쏘아 떨어뜨렸다. 기뻐하던 일동이 한순간에 조용해졌다. 잠시 후 한 사람이 물었다.
"왜 상서로운 비둘기를 쏘셨습니까?"
그러자 신겡은 소리를 높여서 말했다.
"새 중에서도 비둘기는 가장 머리가 나쁘다고 한다. 그런 비둘기가 싸움에 앞서 승패를 알 턱이 없다. 뿐만 아니라 다음 번에 이렇게 출전할 때 비둘기가 날아오지 않는다면 뭐라고 하겠는가. 오늘 것이 길조라면 오지 않는 것은 흉조라고 하겠지. 이렇게 된다면 이런 시시한 것이 군사들의 사기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 마음에 미혹이 끼는 것이야말로 싸움에 임하는 자가 가장 경계해야 할 일이다."
부하들은 과연 옳은 말이라고 감탄하면서 자신들의 경솔한 행동을 부끄러워했다.
과학이 눈부시게 진보한 세상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생활 속에서는 의외로 "재수가 좋다"라든지 "재수가 나쁘다"는 말이 활개치고 있다. 이 일화처럼 재수가 좋으면 이것을 길조라 하고 재수가 나쁘면 이것을 흉조라고 하는 사고 방식이 의외로 뿌리 깊이 박혀있다.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때 사용하난 "재수"라는 말의 의미를 "모든 일을 해 나아감에 있어서 길흉의 징조",또는 "전조"라는 식으로밖에 파악하지 않는다. 게다가 그 징조나 전조를 길조나 흉조와 결부시키는 결정적 관건이 되는 "재수가 좋다"라든지 "재수가 나쁘다"라는 것은 거의 대부분 비과학적이고 하찮은 현상에 의존하는 것이다.
이 일화에서 출전을 앞두고 비둘기가 날아왔다고 하는 것 역시 하찮은 미신이다. 만약 비둘기가 승리를 의미한다는 전승이 전해져 온다면, 아마도 그것은 일찍이 어디에선가 출전을 앞두고 비둘기가 날아오는 사건이 있었고, 그것이 승리로 연결되었다는 아주 우발적인 관련이 마치 비둘기를 길조인 양 만들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신겡이 그것을 냉정하게 인식하고 비둘기를 쏘아 떨어뜨림으로써 부하들을 꾸짖었듯이, 싸움을 앞두고 비둘기 따위가 승패를 예견할 수 있을 리가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다. 따라서 그런 하찮은 것, 그런 어리석은 것에 질질 끌려 다니며 재수가 좋다느니 재수가 나쁘다느니 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행동인가 하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 그런데 왜 우리는 그런 것을 생활에서 없애지 못하는 것일까. 게다가 이상하게도 과학자라고 하는 사람들 중에 그런 맹신자가 의외로 많다. 우리는 이것을 "현대 지성의 놀라운 원시성"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연기"라는 말이 있다. 모든 것은 인연에 의해서 일어난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모든 것의 결과는, 반드시 그 일이 일어나게 된 원인이 있기 때문이며, 그 원인이 결과를 낳게 하는 직접적인 이유인데, 그렇다고 원인만으로 결과가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반드시 인연이라고 하는 간접적인 이유가 작용한다는 것이다. 흔히 말하는 쉬운 예를 들면 벼라고 하는 결과가 나타나게 하는 것은 볍씨라는 원인인데, 그 원인을 책상 위에 놓아둔다면 아무리 기다려도 벼라는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그 원인에 밖에서의 힘, 즉 흙이라든가 물 또는 빛이라는 인연이 가해질 때 비로소 벼라는 결과가 나온다는 것이다. 즉 인연에 의해서 모든 것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것은 불교의 기본적인 가르침인데, 그 본래적인 의미에 대해 이해를 하게 되면 징조라든가 전조 하는 것으로 왜곡된 대수롭지 않은 의미와 그 비과학성을 단숨에 떨쳐 버릴 수 있다.
위의 조그만 일화에서 재수 따위를 하찮게 여기는 신겡의 태도에서 무용과 지략을 겸비한 무장의 놀라운 의연성을 엿볼 수 있고, 동시에 "현대 지성의 원시성"에 새삼스럽게 놀라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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