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우리말의 어원

임기종 2015. 12. 9. 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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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랑비, 가랑

우리 말에는 비와 관련된 단어가 유난히 많다.

가랑비, 가을비, 궂은비, 꿀비, 눈비, 는개, 단비, 목비, 못비, 보슬비, 줄비 등 40여 단어를 헤아리니 가히 우리 민족은 비에 관심이 많았던 민족이었음이 틀림없다.

이들 비 이름은 대체로 그 모양, 상태, 역할, 시기 등에 기초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이렇듯 이름을 짓는 관점이 분명하니 그 이름의 유래도 쉽게 드러난다.

빗줄기가 실()과 같아서 실비, 오랫동안 끄느름하게 내린다고 해서 궂은비, 필요할 때 알맞게 온다고 해서 단비, 이슬과 같다고 해서 이슬비, 안개와 같다고 해서 안개비이다.

그러면 가랑비는 어떤 비일까?

가늘게 내리는 비라는 정도만 알 수 있을 뿐 그 유래가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나 가랑비의 15세기 어형을 잘 분석해 보고 사용 예를 찬찬히 살펴보면 가랑비의 명명의 근거와 그 유래도 어렵지 않게 밝혀진다.

가랑비는 15세기의 월인석보(月印釋譜)에 나온다. 이것은 가랑과 비()로 분석된다. ()가 모음과 모음 사이에서 유성음화된 사실을 반영한 표기이다. 이에 따라 가랑비의 비가 우()라는 사실은 분명히 밝혀진 셈이다.

문제는 선행요소의 정체이다. 혹자는 지금의 가루()15세기에 쓰였다는 사실에 주목해 가루와 같은 비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신빙성이 없다. 가루()와 관련시킬 수 있는 비에는 가랑비만 있는 것이 아니라 보슬비, 이슬비 등과 같은 여타의 가느다란 비도 있기 때문이다. 또 가를 가랑()의 어간으로 간주해 가랑비를 갈라진 비로 해석하기도 하나 이 또한 믿을 수 없다. 비 이름에 가랑()을 이용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가랑비를 가랑()과 연결시켜 이해한 것은 실제와 관계가 있는 가랑머리(두 가랑이로 땋은 머리), 가랑비녀(머리에서 나란히 두 가랑이가 진 비녀), 가랑이(원몸의 끝이 갈라져 나란히 벌어진 부분) 등의 가랑에 유추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가랑은 안개()의 뜻이다. 두시언해(杜詩諺解)의 노년화사무중간(老年花似霧中看)에 나오는 가랑이 바로 무()의 그것이다. 두시언해 초간본 속의 무는 중간본에는 안개로 바뀌어 나온다. 이로써 가랑비가 안개비라는 사실이 자명해진다. 그리고 모양에 근거해서 만들어진 단어라는 사실도 드러난다. 가랑이 안개비라는 사실은 지금 가랑비를 안개비라 하고 있는 사실을 통해서도 더욱 분명히 알 수 있다. 15세기의 가랑은 17세기의 석어유해(譯語類解)에 로 변하여 나온다. 의 가랑은 ``에 접미사 ‘-이 결합된 어형으로 파악된다. 이 는 18세기 이후 가랑비로 변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가랑비에 대한 엉뚱한 어원 설이 나오게 된 것은, 그 어형이 많이 달라졌고 또 무()의 가랑이라는 단어가 안개라는 단어에 밀려나 일찍 사라졌기 때문으로 파악된다.

출처 : 조항범(趙恒範) / 충북대학교

 

 

가르치다, 갈다, 치다

우리말 가르치다에는 깊은 뜻이 담겨 있다. 가르치다의 중세어는 그르치다 인데 여기에서 `그르`는 가루를 뜻하는 말인 `-그르와 맥을 함께 한다고 풀이한다.

가루를 만드는 이치 그대로 문질러서 갈면 물건을 마음에 맞게 다듬을 수 있는 갈(칼의 옛말)이 된다. 그뿐이 아니다. 밭을 갈아 씨를 뿌리면 열매가 맺게 되고 사람을 갈면 미욱함을 슬기로움으로 갈게 할 수 있기도 하다.

갈다라는 중세어는 말하다-이르다는 뜻도 지니고 있었다. 남에게 말을 한다는 것은 곧 상대방의 마음 밭을 갈고자 함이었음을 이갈다 라는 말은 말해 준다.

이와 같이 여러 가지 뜻을 갖는 갈-그르에 치다가 붙어서 이뤄진 말이 오늘날까지 쓰여 내려오는 가르치다 이다. 훈몽자회에 육()자를 칠 육, ()자를 칠 양이라 했듯이 치다는 기르다는 뜻을 갖는다. 오늘날 쓰이는 치다는 양치기, 소치는 아이 하는 식으로 동식물에 국한되고 있지만 옛날에는 부모 봉양한다는 뜻으로 사람에게도 쓰였다. 가르치다의 치다에는 그렇게 사람의 정신을 양육한다는 뜻이 깃들어 있다. 갈고, 치고하는 가르치다 이니 겹겹으로 깊은 덕육의 정신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자면 뜻글자인 한자의 가르칠 교()자보다도 우리말 가르치다는 뜻이 더 깊다. 이 교()자는 가볍게 두드려 주의를 줌과 애써 배움을 합친 회의문자이다. 그렇다 할 때 우리말 가르치다의 깊은 뜻에는 미치지 못함을 알겠다.

- 출처 : 재미있는 어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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