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현대시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임기종 2016. 9. 13. 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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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 이별 - 한용운 -

 

당신과 나와 이별한 때가 언제인지 아십니까.

가령 우리가 좋을 대로 말하는 것과 같이, 거짓 이별이라 할지라도 나의 입술이 당신의 입술에 닿지 못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 거짓 이별은 언제나 우리에게서 떠날 것인가요.

한 해 두 해 가는 것이 얼마 아니 된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시들어가는 두 볼의 도화(桃花)가 무정한 봄바람에 몇 번이나 스쳐서 낙화가 될까요.

회색이 되어가는 두 귀 밑의 푸른 구름이, 쪼이는 가을 볕에 얼마나 바래서 백설(白雪)이 될까요.

머리는 희어 가도 마음은 붉어 갑니다.

피는 식어 가도 눈물은 더워 갑니다.

사랑의 언덕엔 사태가 나도 희망의 바다엔 물결이 뛰놀아요.

이른 바 거짓 이별이 언제든지 우리에게서 떠날 줄만은 알아요.

그러나 한 손으로 이별을 가지고 가는 날은 또 한 손으로 죽음을 가지고 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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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위에 그림자/백이운  

 

다시 흘려 보내야 할 그 무엇 있다면

지상의 이른 아침 두물머리로 나오거라

저마다 목숨을 탄주하는 뭇 숨결이 보이리니.  

 

물 그림자에 제 그림자 조용히 포개며

저희끼리 주고받는 은빛 언어 연연(燃燃)해도

버릴 것 버리지 못해 숨죽이는 나무들.  

 

집착에서 자유로우면 이 봄도 물로 흐르리,

나뭇가지에 의지해 있던 힘없는 작은 새가

한순간 물 그림자를 향해 내려앉다 솟구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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